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따른 보복 우려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국제 유가 급등을 비롯, 글로벌 경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 “포르도 등 이란의 3개 핵시설에 대한 매우 성공적인 공격을 완료했다”며 “향후 공격은 훨씬 강력할 것”이라고 추가 폭격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날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 6대를 동원하고 벙커버스터 미사일 14발을 투하해 이란의 지하 핵시설을 공습했다. 이란은 이번 미국의 공격에 대해 보복 조치의 일환으로 자국 핵시설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전략적 카드로 꼽히는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를 의회에서 의결했다.
봉쇄 조치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가지고 있지만, 벌써부터 이미 전 세계 경제에 요동이 감지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남쪽에 위치하며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유일한 해로로,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 특히 한국으로 수입되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곳을 지나기 때문에, 해협 봉쇄 시 국제 유가는 물론 국내 물류비, 환율 및 소비심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과 씨티그룹 등 주요 금융 기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및 중동 전역으로 충돌이 확산될 경우,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또는 브렌트유(북해의 브렌트 유전에서 생산되는 저유황 경질 원유) 기준으로 90달러대로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처럼 석유·가스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가 받을 타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미 국내 휘발유·경유 평균 가격은 6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고, 업계의 불안감은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제 유가가 뛰면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막힐 경우, 우회 경로가 사실상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부 물량을 홍해 쪽 파이프라인으로 돌릴 수 있지만, 실효 용량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공급 차질은 제조업 전반에 ‘비용 압박’으로도 작용한다. 원가 상승, 수입 물가 상승, 소비자물가지수(CPI) 반영이라는 연결고리로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까지 오르면 수입단가가 추가로 뛰어 기업 수익성을 더욱 갉아먹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이번 중동 전쟁의 여파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확대돼 금리인하 등 경기 부양 요인에 제동이 걸리면서 경기 반등을 위한 이재명정부의 재정 확장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국내 비축유 200일분과 과잉 가스 재고로 단기 대응은 가능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그 파장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는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유관 기관이 참여하는 24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가동해 내수경제 타격을 방어하기 위한 전방위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23일 관계 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소집해 “국내 석유류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오는 29일 열릴 예정인 나토(NATO) 정상회의 불참을 결정하며 내수경제 방어에 나서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22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 취임 직후의 산적한 국정 현안에도 불구하고 그간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적극 검토해 왔으나 여러 가지 국내 현안과 중동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엔 대통령께서 직접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대통령실은 정부 인사를 나토 정상회의에 대신 참석시키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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