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내란 사태를 수사 중인 경찰이 대통령실 비화폰 서버를 확보 중이다.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사퇴하면서 경호처와의 협의에 속도가 붙은 분위기다. 경찰이 내란 관련 자료를 추가 입수했는지는 불투명하다. 입수했다고 하더라도 재판부로부터 증거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리스크도 남아있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뒷말이 나온다.

대통령실 비화폰 서버는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인물들의 혐의 입증을 위한 핵심 키로 꼽힌다. ▲윤석열 ▲김건희 ▲김용현 ▲노상원 등 핵심 인물들이 사용했다. 경호처가 경찰에 비화폰 서버를 넘기는 것보다 협의 과정이 중요하다. 재판부가 증거능력으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때문이다. 경찰은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을 협의 과정에 ‘참관’시키는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아직 멀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은 대통령경호처를 상대로 비화폰 서버를 임의제출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임의제출은 비화폰 서버를 복제(이미징)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수단은 언론 공지를 통해 “선별 및 임의제출받으려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당장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이 경호처와 임의 제출받기로 협의하고 있는 대상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경호처에 자신의 체포 저지를 지시했다는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통화 및 지시 기록 등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된 자료는 이번 제출 대상서 제외됐다.
현재 경호처는 특수단이 압수 대상으로 요구한 자료를 임의제출하는 데 적극적인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경호처 내 강경파로서 경호처장 직무대리를 맡았던 김 전 차장이 지난달 말 사의를 표한 것과 무관치 않다. 경호처는 안경호 기획관리실장에게 경호처장 직무대리를 맡겼는데, 안 실장이 직무대리를 맡은 이후 경호처 내부 기조가 이전보다는 협조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수단은 윤 전 대통령 측 등 피의자들이 참여한 상태서 비화폰 기록 중 수사 혐의와 관련된 정보를 선별한 뒤 압수해 증거로 활용할 계획이다.
특수단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범죄 혐의는 ‘특수공무집행 방해’이기에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때 혐의와 무관한 정보는 삭제할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사생활 침해 등을 막기 위해서다. 혐의와 무관한 전자정보를 보관하고 있다가 다른 범죄 혐의의 증거로 활용하는 것은 위법이다.
‘김건희 라인’ 경호처 3인방 사퇴 후 수사 속도
서버 자료 협조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한정
쉽게 말해 12·3 내란 사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물적 증거를 찾아도 혐의와 무관하다면 증거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전자정보 선별 과정서 영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가 아닌 다른 범죄 혐의를 발견하면 새로 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등 내란 혐의로 기소된 이들의 재판은 이미 진행 중이다. 수사 단계와 달리 재판이 진행 중일 때는 수사기관과 피고인은 대등한 관계가 된다. 피의자들이 기소된 이후 진행된 압수수색에서 나온 증거는 재판에 활용되기 힘들기도 하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경찰에 사실조회 요청을 하거나 압수수색하는 경우도 있으나 전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형사소송법 제272조는 법원이 직권이나 신청을 받아 필요한 사항의 보고 또는 그 보관 서류의 송부를 관련 기관에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제106조도 법원이 필요한 때에는 사건과 관련 있는 것에 한정해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정해져 있다.
특수단은 현재 비화폰 서버 등 디지털 증거에 대한 포렌식 과정서 향후 증거능력이 부인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검토에 집중하고 있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이나 김 전 차장 등 피의자들이 비화폰 서버 기록의 압수·선별 절차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재판서 증거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관련 혐의를 받는 피의자들이 수사 과정에 참관하지 못하면 재판부가 위법한 증거 수집으로 볼 수 있다”며 “기껏 확보해도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도루묵”이라고 말했다.
특수단은 하급심 판결뿐 아니라 최근 대법원 판례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하며 피압수자의 참여를 절차적으로 어떻게 보장할지 검토 중이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1년 11월 피의자가 소유·관리하는 정보저장 매체를 제3자가 임의제출하는 경우 소유자인 피의자에게도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피의자 참여 없이 해당 증거가 수집됐을 경우에는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취지였다.
경찰, 김·윤 참관 검토
“증거능력 인정이 중요”
특수단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정례 간담회서도 “증거능력이나 증명력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절차를 준수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단이 분석하고 있는 판례 중에는 입시 비리 등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2022년 대법원 판결도 포함됐다. 당시 사건서도 동양대 직원이 임의제출한 강사 휴게실 PC의 증거능력이 문제가 됐다.
특히 이 사건은 디지털 증거수집 과정서 ‘실질적 피압수자’ 개념과 그 범위가 법조계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검찰은 동양대 강사 휴게실 PC를 학교 직원(조교)으로부터 임의제출 방식으로 확보했는데, 정 전 교수 측은 해당 PC의 실사용자가 자신이라며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은 증거는 위법한 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2년 1월 정 전 교수가 과거 자택서 표창장 위조 등에 사용한 PC가 그 이후에는 동양대 강사 휴게실서 3년간 공용 PC로 사용됐다며 정 전 교수가 해당 PC를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동양대 직원이 해당 PC를 학교의 승인 하에 검찰에 임의제출했더라도 정 전 교수가 실질적 피압수자가 아니기에 적법한 증거라고 봤다. 정 전 교수에게 PC에서 추출된 전자정보 압수·수색 과정에 대한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것 역시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봤다.
당시 대법원은 “임의제출자가 아닌 피의자에게도 참여권이 보장돼야 하는 ‘피의자의 소유·관리에 속하는 정보저장 매체’는 피의자가 압수수색 또는 근접한 시기까지 정보저장 매체를 현실적으로 지배·관리하면서 관리처분권을 보유·행사한 경우여야 한다”면서 “피의자를 저장된 전자정보에 대해 실질적 압수·수색 당사자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고 판시했다.
소환조사는?
한편 특수단은 경호처와의 협의가 끝나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윤 전 대통령을 수사할 방침이다. 특수단 관계자는 “현재 입건된 상태고 소환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경호처와의 비화폰 서버 협의가 끝나면 소환조사 일정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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