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㊻눈에 담긴 깊은 소망과 결의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4.07 04:00:00
  • 호수 15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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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새봄이 왔다. 1년이 흘렀는지 2년이 흘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떤 원생은 어린 얼굴에 주름살이 깊어져 몇 살쯤 더 먹어 보였고 어떤 원생은 눈에서 정기가 빠져 애늙은이 같았다. 

다들 이 세상 사람 같지가 않은 몰골이었다.

다가온 새봄

하지만 용운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살은 빠졌을지언정 두 눈이 그윽히 깊어지고 정기가 모여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거친 환경에 찌들어 얼굴 색은 거칠고 어두웠으나 입가엔 굳은 의지(意志)의 빛이 감돌았다. 그 얼굴에 여드름이 돋고 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춘기에 접어드는 나이라 그런지 뒷산에 피어나는 진달래나 들녘의 아지랑이를 보노라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모양이었다.

출렁이는 남빛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깊은 소망과 결의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바다 너머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마산포엔 꿈과 욕망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 있지 않을까?

그곳을 지나 서울로 가면 자꾸만 희미해져 가는 꿈과 소망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 가기만 한다면 어떤 고생을 하더라도 견뎌내고 막노동이라도 하며 고학을 해볼 참이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고생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그래서 성공을 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꼭 성공해서 이 지옥을 세상에 고발하고, 또 그 괴상스런 사이비 종교의 정체를 까발려 더 이상 엄마처럼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자!

용운뿐만 아니라 수많은 원생들이 겨우내 억눌렸던 모종의 욕망을 어떤 식으로든 발산하리라는 걸 잘 아는 선감원 측은 말 잘 듣는 원생들로 순찰대를 조직하여 철저한 통제를 가했다.

그들에게는 빨간 완장을 차게 하고, 탈출자를 발견하면 부득이한 경우 죽여도 좋다는 밀명을 내렸다.


일단 결심이 선 일에는 조급함이 뒤따르는 법이었다. 용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려고 애썼으나 마음처럼 쉽진 않았다. 실행의 날은 의외로 더디게 왔다.

그래, 어떤 성현께서, 목표를 세우되 서두르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고 실행하라 하셨다지. 그래야지.

그런 힘겨운 나날 속에서도 용운은 하루하루 그곳의 생리를 터득해 가고 있었다. 선감도의 지형에도 점차 밝아졌다.

당산, 상삿골, 물비탈 등 세 개의 작은 산이 주축이 된 선감도의 둘레는 8킬로쯤 된다는 것을 알았고, 인근에는 털미, 불도, 탄도, 누에섬, 대부도 등등의 섬들이 늘어서 있다는 것도 알았다.

또 이 섬은 경기만에 속하며, 마산포와의 거리는 강한 물살을 사이로 2킬로쯤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직 꽃샘바람이 불고 있었다.

용운은 연이틀 보리밟기에 동원되었다. 웃자란 보리를 밟아 뿌리를 튼튼히 내리게 하는 일이었다.

지난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해서 작업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요즘 들어 탈출에 대한 기회와 방법 모색,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자정이 넘도록 잠을 못 이루기가 일쑤였다.

요사이 그의 머릿속은 참으로 복잡했다. 그러나 복잡한 만큼 문제 해결 방안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첫 번째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무슨 수로 바다를 건너느냐 하는 것이었다. 바닷물은 하루에 어김없이 두 번 나가고 들어온다.

지금까지 보아온 바 경기만 해협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한번 물이 빠지면 개펄이 상당 부분 드러나는 게 사실이긴 했다.


조급함 뒤따르는 결심
사전준비를 위한 새벽

그때는 마산포와 실제 물의 거리가 1백 미터 남짓하다고 했다.

하지만 물살 강한 그 1백 미터의 바다를 헤엄칠 능력이 과연 내게 있는가? 익사자가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1백 미터에 불과하다는 거리상의 유혹 때문이라고 했다.

그게 함정인 줄도 모르고, 잘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다는 착각에 너나없이 빠진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시간의 한계였다. 목숨을 걸고 결행한다 해도 그랬다. 물 빠지는 시간에 맞춰 숙사를 빠져나갈 기회가 주어질 리도 없지만 혹시 주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해변까지 들키지 않고 무사히 당도해야 한다. 그런 다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개펄을 통과해야 하고 다시 1백 미터에 이르는 수영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3단계 과정을 모두 거치자면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의 여유는 있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시간의 공백이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꽉 짜여진 일과, 인원 점검, 단체 행동, 행동반경의 제약, 그리고 수많은 타인의 눈, 눈, 눈들……. 그런 제약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용운은 틈을 보아 밖으로 나갔다. 사전 준비를 위해서였다.

험한 당산으로 들어가 나루오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순간 축사 쪽에서 닭이 홰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용운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나무뿌리에 채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면서 그는 숨가쁘게 기슭을 탔다. 속새풀이 자꾸만 발목을 휘감았다.

그렇게 허겁지겁하면서도 용운은 쉬지 않고 사방으로 눈알을 굴렸다. 쓸 만한 통나무를 찾기 위해서였다. 최소한 몸통 정도의 크기는 돼야 물에서 매달려 가기가 쉬우리라.

그런데 그 순간, 용운은 불현듯 가슴속이 허전해지면서 이상스런 감정이 자신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박꽃 누나의 핼쑥하고 애잔한 얼굴이 문득 떠오르더니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왠지 그 지옥 같은 선감도를 떠나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용운은 얼굴을 노을빛처럼 붉혔다. 그 누나가 살고 있는 선감도는 지옥이 아니라 천국처럼 여겨졌다.

용운은 박꽃 누나의 얼굴을 지우고 대신 엄마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써 보았으나 왠지 잘 되지 않았다. 용운은 안타까움을 못 견디는 양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리저리 산을 헤매었다. 나뭇가지에 찢기기라도 했는지 이마께가 쓰라렸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

마땅한 통나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낫에 잘린 잔가지들은 많이 널려 있었으나 아무리 찾아봐도 죽어 넘어진 고사목 하나 없었다. 그런 것쯤이야 산에 흔하리라 생각했던 발상이 빗나가는 중이었다.

무정한 바다

새벽이 빠른 속도로 눈을 뜨고 있었다. 정신없이 산을 걷던 용운은 어느새 나루오름의 산비탈을 내려서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아뜩한 현기증이 일었다. 아, 저 한 치의 융통성도 보이지 않고 출렁이는 새벽바다는 얼마나 무정한가!

긴 곡선을 이루며 겹겹이 밀려와 사그라지는 포말은 또 얼마나 견고한가! 그리고 저 아득한 마산포…….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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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