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독박’ 민주당 딜레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31 10:34:50
  • 호수 1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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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일수록 여당만 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은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그 비난은 더불어민주당이 독박을 쓰고 있다. 그간 민주당의 정치적·정책적 강경책은 청년 민심을 분노시켜 그때마다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을 기사회생시켜 왔다. 분명한 건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국민에겐 악영향만 줄 뿐이라는 점이다.

여야는 지난 14일 국민연금 모수개혁안에 합의한 후 지난 20일 본회의서 가결 처리했다. 이번 개혁안의 핵심은 “더 내고 더 받는다”는 것이다. 기존 9%였던 보험료율은 13%로 올라갔고, 오는 2028년 40%로 예정됐던 소득대체율도 43%로 올라간다. 지난 2007년 60%였던 소득대체율은 50%로 일시 인하됐다가 매년 0.5%씩 내려가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국민연금 기금 고갈 예상 시기는 2056년서 2064년으로 8년 미룰 수 있다.

정해진 운명

소득대체율 43%는 국민의힘이 지난 21대 국회 때부터 주장했던 내용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당시 45%를 주장했다가, 이재명 대표가 “44%를 수용하겠다”고 물러섰던 적이 있다. 이번에도 이 대표가 43% 수용 의사를 밝혀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국민연금은 지난 1988년 최초 도입 당시 보험료율 3%에 소득대체율 70%를 보장했다. 원금의 약 23배를 보장하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소득대체율을 보장했다. 국민연금 기금은 대부분 주식·채권시장서 운용된다. 전 국민을 강제로 가입시켜 조성되는 기금을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함부로 투자하긴 어렵다.

따라서 높은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언제까지나 보장할 순 없다. 보험료율이 올라가고, 소득대체율이 내려가는 것은 정해진 운명에 가깝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을 두고 “초기 가입자에겐 고수익을 보장하지만, 가입자가 줄어들면 파산하는 다단계 피라미드”라고 비판한다. 연금개혁청년행동이 지난해 10월18~19일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63.2%와 30대의 59.2%는 “국민연금의 구조는 자녀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우는 다단계 사기 같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선 제1금융기관·제2금융기관만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그 외의 기관이 원금과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을 판매하면, 유사수신행위법에 따라 2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될 수 있는 유사수신(다단계)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에 대해선 “합법적 다단계 아니냐”는 일각의 인식도 있다.

모수개혁안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청년층의 비난은 민주당에 집중되고 있다. 비난을 듣는 이유는 ▲압도적 원내 1당이란 위치 ▲높아진 소득대체율에 있다. 비난의 핵심은 “현재 대한민국 인구 구성상, 민주당 지지세가 높은 86세대(1960년대 태생·1980년대 학번)에게 유리한 개혁안”이란 것이다.

“86세대에 유리” 평가
청년층 중심 비난 커져

이 때문에 민주당서도 반대·기권표를 던진 의원이 8명이나 나왔다.

이 중 3040 세대인 이소영·전용기·장철민 의원은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서도 전체 의원 중 60%에 육박하는 59명이 반대·기권표를 던졌다. 이들 중 소장파로 불리는 젊은 피 김재섭 의원은 “정치 기득권을 장악한 기성세대의 협잡이고, 미래세대를 약탈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재준 의원도 “은퇴가 임박한 86세대들은 끝까지 조금 내고 받을 때만 즉시 더 받는다”고 비판했다.

대선주자급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정답이 없는 문제인 것은 맞다”면서도 “청년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손해를 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청년들의 부담과 불신을 철저히 외면하고 무시한 국민연금법 개정”이라면서 거부권 행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개혁신당은 소속 의원 3명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이준석 의원은 “60대 정치인들은 이 계수조정 방식으로 10년 정도 시간을 벌고, 그사이에 정치 인생을 마무리하면 그만”이라고 비판했다.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도 “개혁안은 부모가 자식 저금통 털어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제 시행을 주장하는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도 반대표를 던졌다. 용 대표는 “이번 합의안은 재정 안정에 완전히 기울었다”며 “공적연금이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으로서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사가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란 사실도 청년 민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논란이 일자 박 의원은 지난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2030세대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연금 문제는 모든 세대가 고민해서 대응할 문제”라며 “세대가 싸울 방식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부양은 한 가족의 문제지, 편 가르기나 세대 갈등 등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강경책 나올 때마다
국민의힘은 기사회생

박 의원은 지난 2020년 임대차 3법을 발의해 청년층의 비난을 듣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박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의 핵심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 1회를 보장해 임대차 기간을 사실상 2+2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상승 폭을 5%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전·월세 물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전·월세 임대료는 크게 상승했고, 특히 전세 물량이 줄었다.

지난 2023년 발생했던 대규모 전세 사기의 원인을 임대차 3법의 여파로 보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다. 당시 박 의원은 자신이 임대차 3법을 대표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 한 달 전 본인 소유의 아파트 임대료를 크게 올려 비난을 들었다.

스스로 국회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 미리 월세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는 발언을 했던 사실까지 발굴돼 비난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

또 민주당은 지난해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시행을 강경하게 추진하면서 청년 민심에 불을 지른 적이 있다. 금투세에 대해선 “개인투자자들에게만 부과되고, 매년 부과하는 특성상 장기투자자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이어졌다.

하지만 강경파였던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시행을 밀어붙이려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졌다. 그럴수록 반발은 더욱 커졌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는 폐지 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그때그때 위기에 빠진 국민의힘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역설적인 선택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큰 틀의 정국 운영에도 영향을 끼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한 후 지지율이 폭락해 국민의힘에 기사회생의 기회를 줬다.

최근엔 한 권한대행이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 추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기에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파면 사유에 해당한다”면서 한 권한대행에 대한 재탄핵 추진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적과의 동침?

민주당의 정책적·정치적 강경책은 ▲박찬대 원내대표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진 의장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선택은 국민의힘에 새 활기를 제공하고, 청년 민심이 국민의힘에 힘을 보태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도 대규모 이탈표가 발생하는 등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당 장악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밖으로 드러냈지만, 최소한 여론의 비난은 민주당이 대신 받아주고 있다.

정치적·정책적 선택마다 국민의힘을 회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압도적인 원내 다수당이란 민주당의 특성상 정국엔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적과의 동침’은 국민에겐 악영향만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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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