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나도 안 터지는 스프링클러의 비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28 09:40:38
  • 호수 1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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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도 모르는 ‘소화 장식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전국적으로 화재 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스프링클러 및 소화전 작동불능에 관한 소방청의 규제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건물 내 소화 펌프의 압력과 방수량을 측정하는 ‘유량측정장치’가 화재안전기술인증 강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혹여 수압이 부족해 화재가 발생한 고층까지 물이 공급되지 못한다면 스프링클러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유량측정장치(이하 유량계)는 소화 펌프가 뿜어내는 물의 양과 압력 등을 측정하는 기계다. 건물의 배관공사 초기부터 안정적인 유량을 측정하기 위해 ‘성능시험 배관’을 설치하고, 여기에 펌프가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확인을 위해 유량계를 설치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소화전의 성능곡선과 방사압, 토출량 등의 적정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수상한 기준
권고와 의무

과거에는 성능시험 배관에 구멍을 뚫어 밴드로 체결한 부표 유량계가 사용됐다. 현재는 대부분 ‘차압 면적식 오리피스형 유량계’가 쓰이고 있다. 오리피스는 구멍이 뚫린 판을 의미하며, 유체가 배관 내에 오리피스를 통과하면서 생기는 압력 차로 유량을 측정하는 것을 오리피스형 유량계라고 한다.

문제는 대부분 소방설비 회사에서 유량계의 기준을 배관 크기에 따라 시험하는 대신, 배관공사를 임의로 정한 뒤 유량계를 설치해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지름 32A의 작은 배관에 65A의 성능시험 배관과 65A 유량계를 설치해 성능시험을 한다는 것이다. 65A보다 작은 배관의 LPM도 얼마든 측정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이는 유량계의 원리를 무시하는 방식이다. 펌프의 성능과 별개로 배관 크기와 모양 등에 따라 유량은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실제 ‘LPM(분당 리터)’에 비례해 유량계를 선정한 후 그에 맞는 성능시험 배관에 유량계를 설치해야 정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유량은 배관의 면적과 물의 유속을 곱해 나온다. 유량계는 이를 바탕으로 오리피스를 사용해 물의 차압을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실제 배관의 크기에 맞지 않는 부적합한 실험은 필연적으로 오차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방수량 조작 가능한 유량계 유통
청, 규제 없는 유량계 성능인증

소화 펌프의 LPM이 높게 나와도 배관의 길이나 굵기에 따라 스프링클러와 소화전에 전달되는 LPM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량계 측정이 정확하지 않다면 어느 곳에서도 소화전과 스프링클러 오작동의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 LPM이 낮으면 고층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에 물이 전달되지 않아 화재 예방이 어렵다. 따라서 스프링클러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선 펌프서 발생한 물이 배관으로 전달되는 유량계의 측정 결과를 계산해서 배관 설계를 하는 것이 맞다.

이런 배경에는 건축주 등이 유량계의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한 시공사는 유량계 업체에게 유량 설정값을 조작해 준공검사에 합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현장에 설치된 펌프의 정격 유량이 부족할 경우, 유량계 상부에 홀을 뚫고 물의 유입량을 조절해 인위적으로 부표가 정상적인 유량을 표시하도록 조작하는 방식이다.


고층 빌딩서의 낮은 수압이 스프링클러 오작동의 원인이 된 경우는 실제로 있었다. 2020년 2월 인천 서구 모 아파트 25층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아파트 소화설비 안전관리 담당자들이 배관 누수 문제로 펌프 압력을 낮게 설정해 스프링클러와 옥내소화전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다.

있어도
안 쓴다

이 불로 A씨가 거주하는 세대와 바로 위층 세대 내부가 모두 탔다. 또 인접 세대와 건물 외벽에 그을음 등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 소방청은 모든 소방공사에 성능 위주 설계로 공사를 진행하게 하며 인증된 제품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에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다만, 소방청이 2023년 3월28일 발표한 ‘성능인증의 대상이 되는 소방용품의 품목에 관한 고시’에서 유량계는 화재안전기술인증(NFTC)의 강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 화재안전기술인증 강제 대상이 아닌 유량계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의 인증을 받지 않아도 유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소방당국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유량계가 화재안전기술인증 강제 적용 대상이 아닌 부분에 관해선 정확한 이유를 검토해보겠다”면서도 “통상적으로 펌프의 수압이 스프링클러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준공검사를 통과하기 위해 시공사가 제조업체에 유량계 조작을 의뢰했다는 사실에 대해 알고 있느냐’는 물음엔 “그런 경우가 있다는 얘긴 들었지만, 요즘은 압력 수치 조작이 불가능한 전자식 유량계도 있다”고 답했다. 결국 소방 당국은 유량계의 성능보다 소화 펌프의 성능을 믿고 맡긴 셈이다. 3년 전 모 업체에서 전자식 유량계가 개발됐지만, 측정오차가 심해 현장에서 사용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소방청도
모르는 일

지난해 9월 KFI에서 차압 면적식 오리피스형 유량계에 대한 성능인증 기준이 발표됐다. 소방청서 유량계의 기술기준과 시험 세칙을 만들라는 지시에 따라 KFI가 3년 동안 유량계의 성능인증 기준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유량계는 소방청의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업체들은 인증받지 않은 제품을 저가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유량계가 부정확하게 측정되는 이유다. 현장서 유량계를 무작위로 수거해 교정검사 기관에 의뢰하면 밝혀질 일이지만 눈감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한 제조업체서 유량계를 생산하고 여러 곳에서 스티커를 바꿔가며 납품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고품질보단 저가, 저품질이 우선시되는 소방업계 상황을 견디지 못한 유량계 전문업체가 도산하는 일도 발생했다. 스프링클러의 성능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제품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국내에선 배관 외부서 초음파를 방사해 물의 속도에 따라 변화를 받는 투과파나 반사파를 읽고 유량을 측정하는 ‘초음파 유량계’가 개발되기도 했다.


수압·수량 체크 눈 가리고 아웅
불길 못 잡는 먹통 원인 중 하나

또 현장서 스프링클러의 수압과 수량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험밸브함도 개발됐다. 소방용 엔진 펌프 분야 전문기업 A사는 버튼식 압력계와 벤투리관을 응용한 차압 면적식 유량계 등으로 구성된 스프링클러 설비 시험밸브함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공급에 나섰다.

현행법상 스프링클러 설비는 일정 규모의 근린생활시설과 교육연구시설 내 합숙소, 노유자 시설, 무창층 또는 지하층에 설치된 다중이용업소 등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스프링클러 설비는 가장 먼 배관서 2개의 헤드를 개방했을 때 방수압력과 방수량이 각각 0.1MPa 이상, 50ℓ/min 이상 유지되도록 설치해야 한다. 이때 시험밸브함은 스프링클러 설비의 성능 확인을 위해 배관 끝부분에 부착된다.

기존 시험밸브함에는 방수 압력을 측정하는 압력게이지만 부착돼있다. 방수 압력은 이 게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방수량 측정을 위해서는 함 내에 있는 밸브를 개방하고 시간을 체크하는 등 일일이 사람 손이 닿아야 한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배관에 정체 모를 이물질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방수 압력을 조작하는 불법시공 등이 적발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방수 압력이 0.1MPa 이상이 되면 방수량이 50ℓ/min 이상이 유지된다는 통상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검사 시 방수 압력만 체크한다는 점을 시공업체들이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청 관계자
“그럴 리가···”


한편, 191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당했던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사고의 원인도 스프링클러와 물 공급의 부재 및 소화전의 작동불능이 원인이었다. 현재도 소방 안전에 관련된 기술과 제품은 50년 전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는 소방호스의 꼬임 방지에 대한 개선이 논의됐다. 기존 소방호스는 마찰손실이 클뿐더러 유량의 적정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불투명한 상황서 화재 예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화재 조기 진압을 위해 화재안전기술인증을 강제화해 소방 시설의 안정성을 높여야 할 상황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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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