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초가’ 국힘 다섯 가지 딜레마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04 13:37:24
  • 호수 1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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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완성한 오중 포위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중도 보수론을 주장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 외부 타격과 내부 잠식이 다양하게 이뤄질 포위망이다. 오면초가 상황에 빠진 국민의힘은 과연 돌파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중도 보수’라고 선언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18일 유튜브 채널 ‘새날TV’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보수가 아니다”라며 “실제로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갖고 있고, 진보 진영은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도냐
보수냐

그는 다음날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보수 또는 거의 범죄 정당이 돼가고 있으니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실제 중도좌파 또는 진보는 새로운 영역들이 맡아야 된다고 본다”며 “민주당의 입장과 위치는 중도 보수쯤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크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달 20일 비대위 회의서 “이 대표는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부르고, 재벌 해체를 주장했다”며 “이제 와서 오른쪽을 운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반도체특별법·상속세 인하·연금개혁도 국민의힘의 정책이었다”며 “여당 정책을 껍데기만 베꼈다”고 반박했다.

김기현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서 “‘답보하는 지지율에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 대표에게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 정당 국민의힘에 입당하실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국민의힘을 일컬어 “대한민국 유일의 중도 보수정당”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면서 사법부와 각을 세우는 국민의힘에 대해 “극우화되고 있다”는 일각의 평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8일부터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조사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34%를 기록했다. 중도층에 한정해 양당의 지지율을 집계한 결과 민주당은 42%였고, 국민의힘은 22%였다.

국민의힘이 중도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사이, 이 대표는 직접 빠르게 틈을 치고 나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국민의힘에 대한 오중 포위망이 완성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여러 세력으로부터 포위당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을 둘러싼 오중 포위망은 ▲이 대표와 민주당 ▲전광훈 목사 ▲이준석 의원과 개혁신당 ▲명태균씨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등으로 구성됐다. 이 대표와 민주당 외 다른 포위망은 국민의힘이 자초해 구성된 포위망이다.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은 한동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등으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내 일부 온건 보수를 함께 공략하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최종 유죄를 확정받아 수감돼있고, 진보정당들도 이렇다 할 대권주자를 내보내지 못하고 있다.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이 대표와 민주당은 진보 세력을 사실상 장악한 상황서 중도층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미 개혁 성향의 영남 출신 대선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잡는 등 동진 전략을 구사해 성공했던 경험이 있다.


외부서 타격할 민주당과 명
전광훈 차단할 대체재 부재

이 대표는 각론서도 중도 보수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달 18일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물가 상승으로 명목임금만 오르고 실질임금은 오르지 않는다”며 “누진세에 따라 세금은 계속 늘어난다”는 취지로 근로소득세 개편을 주장했다.

지난달 24일엔 경제 유튜브 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현행 10억원서 18억원으로 올리면, 서울의 웬만한 주택 보유자가 겪을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이 대표의 중도 보수 공략은 한편으로 서울 표심 공략을 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대표의 상속세·근로소득세 주장은 서울 거주 1주택자와 중산층 노동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대 대선서 윤 대통령보다 서울서 약 31만여표를 적게 얻었고, 이는 승패로 직결됐다.

국민의힘은 곧바로 반응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공개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국민의힘 김대식 원내수석대변인은 이튿날 기자들에게 “일대일 무제한 토론에 동의하고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상속세법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이 현안이 돼서 끝장 토론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론이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권 원내대표가 응하자, 이 대표는 양당의 대표·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모두 모인 3대 3 토론을 재차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 반격의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1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란봉투법을 다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중에 발생하는 불법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법이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해서도 “고소득 연구직에 대해선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정부·국민의힘의 주장에 대해선 반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하는 상법 개정안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런 입장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이 대표는 정치 공간서 차선 물고 달리고, 급정거·급출발을 반복하고,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바꾸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1차로서 우측 깜빡이를 켜고 있으면, 국민은 ‘뭐에 취해서 핸들을 잡았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구축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열쇠는 섬세함일 것이다.

이준석
선택은?


두 번째 포위망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이 구축하고 있다. 이 포위망은 분명히 외부에 있지만, 직접적인 공격보다 국민의힘 내부에 침투해 잠식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전 목사는 여러 차례 원내정당을 꿈꿨지만, 총선서 단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로는 자신이 결집한 강성 보수 지지자들의 세와 부정선거론을 미끼로 국민의힘 내부 잠식을 꿈꾸고 있다.

잠식은 이미 상당할 정도로 진행됐다. 잠식의 고리는 국민의힘 5선 윤상현 의원이다. 윤 의원은 지난 1월5일 진행된 전 목사 주최의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연단에 올랐다.

당시 전 목사는 윤 의원에게 “윤상현이 최고래요. 잘하면 대통령 되겠어”라고 말했고, 윤 의원은 전 목사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이어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지키는 데 가장 선봉에 선 여러분께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전 목사는 이미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당시 대표의 예방을 받는 수준의 입지를 다졌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 2019년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 참석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로는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전 목사를 다루기 위해선 큰 숙제 하나를 풀어야 한다. 전 목사의 정치관은 “교회는 정치에 간섭해야 하지만, 정치는 교회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2023년 4월엔 “총선서 국민의힘의 200석을 지원하는 것이 한국 교회의 목표”라면서 자신을 ‘200석을 몰고 올 거물’ 겸 ‘한국 교회의 상징’으로 격상시켰다. 그는 “정치인은 권력을 갖기 때문에 종교인의 감시가 없으면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정치인은 전광훈 목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의 몸집을 불려주고 정권을 안겨주는 대신 자신의 통제를 받는 위성 정권 및 위성정당의 위상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전 목사의 요구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전 목사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6일 신년 기자간담회서 “민주당 사람들은 민주노총 집회에 엄청 많이 가서 굉장히 위태로운 발언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기에 비하면 아직 우리가 문제 삼을 정도까진 아니라고 본다”는 등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 목사의 대중 동원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소속 정치인의 욕구를 억제하려면, 그에 걸맞은 당근을 제공해야 한다. 권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대체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전 목사는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단 측면서도 장기적으론 국민의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 목사는 3회에 걸친 창당과 국회의원 확보 시도가 실패한 이후 부정선거론 관련 활동을 이어갔고, 북한·중국의 선거 개입설로 확대했다. 이는 곧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윤 대통령과 전 목사는 같은 인식을 토대로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영혼의 동지가 됐다. 이는 곧 국민의힘에도 악영향을 미쳐, 명확하게 끊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권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진행된 관훈 토론회서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중앙선관위 스스로 투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요청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지난달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제가 국민의힘 대표를 그만둔 후, 국민의힘서 부정선거론이 종양처럼 거의 온몸을 덮어버렸다”고 비판했다. 전 목사와 부정선거론은 국민의힘 관련 이슈 중 중도층에게 가장 심한 거부감을 주는 논점이기 때문에 심각한 포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쥐락펴락
목사님

세 번째 포위망은 명태균씨가 친 포위망이다. 민주당은 꾸준히 명씨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고 있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SNS에 명씨의 황금폰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올렸다. 이는 명씨가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명씨의 변호를 맡은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021년 6월에만 명씨를 만났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아는 것만 해도 3번 더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1일엔 민주당이 홍 시장과 명씨가 같은 행사장서 함께 찍힌 사진과 명씨 스스로 “이준석 당시 대표에게 홍 시장의 복당을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남 변호사는 “조기 대선이 확정되면, 오 시장과 홍 시장을 사기·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소하겠다”는 명씨의 입장을 대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달 26일 “명씨에게 오 시장의 여론조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을 받는 오 시장의 후원자 김한정씨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국민의힘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오 시장은 국민의힘의 세를 중도로 확장할 수 있는 주자 중 1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전부터 가장 구체적인 의혹이 거론됐다는 것이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가시화되자, 민주당과 명씨는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바짝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명씨의 황금폰엔 국민의힘 소속 전·현직 의원 140명과 김건희 여사의 육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의미서 보면, 이 의원은 묘하게 펼쳐진 포위망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시절 명씨와 다양하게 연결됐고, 개혁신당 창당 후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공천 관련 회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명씨도 “내가 입을 열면 이 의원은 끝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명태균 특검법 발의에 참여했다.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은 지난달 26일 채널A 라디오 <정치 시그널>서 “나중에 열어보면, 아무 문제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빨리 특검하라, 꺼릴 일 없다는 것이 저희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일 서울 마포 홍대거리서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면서 대선주자 중 가장 먼저 사실상 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합리주의를 토대로 개혁 보수를 자처하고 있고, 국민의힘과 2030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다.

호시탐탐 틈 노려
내부 잠식 가능성

이 의원은 이 대표의 중도 보수 선언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등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의 중도 확장을 막을 변수 중 하나로 통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합당설 및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이 의원의 단일화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거론됐지만, 이 의원과 개혁신당은 그때마다 부정하고 있다.

이 가능성은 현실이 돼도, 반대의 상황이 연출돼도 불씨가 남는다. 현실이 되면, 이 의원과 국민의힘 구성원의 옛 갈등이 되살아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이 의원이 국민의힘 접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현실이 되지 않는다면, 이 의원이 얻을 지지는 한때는 국민의힘이 얻었고, 지금도 얻으려고 노력하는 중도·2030 남성 지지층으로부터 비롯될 가능성이 있다.

이 의원이 얻는 표만큼 이 대표와의 경쟁서 불리해진다. 현재 국민의힘엔 까다로운 복어를 다룰 수 있는 솜씨 좋은 요리사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포위망은 티는 안 나지만, 가장 깊고 거대한 포위망이다. 국민의힘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이 이어가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자택 인근 시위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적극적인 헌재 공격 발언을 이어가고 있고,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도 사실상 두둔하고 있다.

윤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탄핵 심판 최후진술 중 ‘영장 쇼핑’이란 말을 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국민의힘은 직·간접적으로 정당 차원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사례를 연출하고 있다. 삼권분립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나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직접 언급했다. 정당해산심판이 실제로 진행되면, 지난해 12월 이후 국민의힘이 직·간접적으로 이어가거나 두둔한 사법부에 대한 각종 공격은 어떻게 해석될지 의문이다.

사법부는 사법 파동을 일으키면서 사법부에 대한 공격에 대응했던 전례가 있다. 국민의힘이 사법부와 적절한 조화·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비상구가
안 보인다

일본 센코쿠 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우에스기 겐신 등이 주도해 구성했던 두 번에 걸친 포위망에 갇힌 적이 있다. 오다는 이 포위망들을 모두 무너트리고 일본 통일 직전까지 갔다. 반대로 중국 초패왕 항우는 한왕 유방이 구성한 연합군에 포위됐던 사면초가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해 사망했다. 국민의힘은 정면 공격·잠식을 노리는 다양한 적들에 갇혀 오면에 걸쳐 포위돼있다. 과연 이 ‘오면초가’를 뚫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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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