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김하늘

아무 죄 없는 아이를…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이제 갓 초등학교를 입학해 즐거운 학교생활을 시작해야 할 아이가 믿어야 할 선생님의 손에 세상을 떠나게 됐다. 피해자 김하늘양은 8세의 어린 나이에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서 한 아이의 생명이 희생된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지난 10일, 대전 서구 관저동 한 초등학교서 초등학생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과학수사연구소는 이날 피해자 김하늘양의 시신을 부검했다. 김양의 사인은 ‘다발성 예기 손상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됐다. 즉, 날카로운 도구에 의해 여러 곳이 찔려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계획적 범죄
3번 경고음

당초 김양 유족은 부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선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은 지난 10일 오후 5시50분경 학교 내 시청각실서 교사 A씨와 함께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오후 7시경 숨졌다. 이날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김양의 친할머니였다.

오후 5시쯤 김양의 아버지로부터 손녀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은 할머니는 즉시 김양을 찾기 위해 나섰다. 할머니는 “하늘이는 학교 정규수업을 마친 후 오후 4시20분까지 돌봄교실에 머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서 “하교 후 학원에 있어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버지는 휴대전화 앱을 이용해 김양의 위치를 추적했고, 앱에 표시된 위치는 다름 아닌 학교였다. 이에 아버지는 즉시 경찰에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학교 외부를 수색했고,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교내서 김양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 2층 시청각실 내 창고는 외부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이 때문에 학교 측은 처음에는 김양이 교내에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2층을 홀로 살펴보던 할머니가 시청각실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A씨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찾던 중 돌봄교실 옆 시청각실로 들어갔다”며 “비품 창고까지 확인하려 했는데 안이 너무 어두웠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는 순간, 피 묻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할머니가 A씨에게 김양을 봤냐고 묻자, 그는 “없어요. 나는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A씨의 머리맡에 손녀의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을 본 할머니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 침착하게 뒤로 물러난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와 경찰과 김양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 상황을 전했다.

할머니는 “그 사이 여자가 문을 잠갔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발로 문을 걷어차 강제로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119 구급대가 출동해 쓰러져 있던 김양과 A씨를 병원으로 긴급 이송했다. 현장의 참혹한 상황을 본 경찰은 김 양의 할머니에게 아이를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손녀가 숨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아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며 허망한 심정을 전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살인 혐의를 받는 교사 A씨에 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A씨는 아직 중환자실서 치료 중이며,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경찰은 A씨가 목 부위 봉합 수술을 받기 전 피의자 진술을 확보했다.

“어떤 아이든 함께 죽을 생각”
선생님의 끔찍한 진술 충격

경찰 조사에서 A씨는 범행을 인정하며 “교무실에 있기 싫어 잠겨있던 시청각실을 열어뒀다”며 “돌봄교실서 수업이 끝난 후,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함께 죽을 생각으로 맨 마지막에 남은 아이에게 책을 준다고 해 시청각실로 데려왔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당일 오후 학교 근처 마트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사건 당일 오후, 학교서 약2㎞ 떨어진 주방용품 가게서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흉기의 길이는 28㎝였다”고 밝혔다. A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복직 후 3일 만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교감이 수업을 못 하게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건 발생 직전까지 약 6개월간 질병 휴직을 했다가 복직한 지 불과 20여일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이번 사건이 계획된 범죄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A씨가 사건 당일 마트서 흉기를 미리 구매한 점과, 할머니가 최초로 현장을 발견했을 당시 가해 교사에게 자해 흔적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김 양의 할머니는 “시청각실 문이 잠겨있었는데 경찰이 강제로 개방했을 때, A씨는 이미 피투성이였다. 들킨 후 자해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사건 당시 딸의 위치를 추적할 때 사용한 애플리케이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하늘이의 휴대폰에 부모 보호 앱을 설치해뒀기 때문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아이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며 “오후 4시50분쯤부터 아이 휴대폰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를 확인하면서 현장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4시50분부터 들었을 때 하늘이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나이 든 여성이 달리기한 뒤 숨을 헉헉거리는 소리, 서랍을 여닫는 소리, 가방 지퍼를 여는 소리 등이 들렸다”며 당시의 녹취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A씨는 2018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해 12월9일엔 질병 휴직을 신청했으며, 휴직 기간 동안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휴직 당시 제출한 진단서에는 “5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반복해 왔으며, 지난해부터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9월 이후 증상이 악화됐다.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시달려 최소 6개월간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를 근거로 A씨는 지난해 12월9일부터 6개월간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그러나 불과 20여일 만에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휴직 당시
진단서 보니…

복직 당시 제출한 진단서에는 “12월 초에 심했던 잔여 증상이 현재는 거의 사라져 정상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기재돼있었다. 문제는 이 두 개의 진단서가 같은 병원의 동일한 의사에 의해 발급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즉,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같은 의사로부터 정반대의 소견을 받은 것이다.

A씨는 복직 후, 의사의 소견과는 달리 이상행동을 보였다. 그는 “왜 내가 이렇게 불행해야 하느냐”며 혼잣말을 반복하는 등 피해망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 주변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건 발생 나흘 전에는 동료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당시 A씨는 웅크린 채 앉아있었고, 이를 걱정한 동료 교사가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갑자기 헤드록을 걸고 손목을 강하게 붙잡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상황은 주변 동료 교사들이 말려야 할 정도로 심각했으나, 경찰 신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학교 측은 A씨의 상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에게 다시 휴직을 강하게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측은 A씨의 문제 행동과 관련해 대전시교육청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교육청은 같은 병력으로는 추가 휴직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시교육청 초등담당 장학 관계자는 “학교 측이 대전서부교육지원청에 해당 사안을 보고해, 지난 10일 오전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해 사실 조사를 진행했다”며 “조사 후 장학사는 학교 측에 해당 교사의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뒤 돌아갔으나, 결국 그날 오후 사건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사자를 직접 조사할 경우 자극할 우려가 있어 면담은 진행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에 따르면, 휴직 교사는 기간 만료 후 30일 이내에 복귀 신고만 하면 자동으로 복직할 수 있다. 문제는 복직 심사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각 지역 교육청마다 내부 지침이 다르다 보니, 어떤 곳은 단순한 서류 검토만으로, 또 어떤 곳은 면담 한 번으로 복직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김양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지적한다. 복직 직후 나타난 이상행동, 학부모들의 문제 제기, 동료 교사들의 반복된 이상 행동 보고 등 세 차례의 경고 신호를 무시한 결과 비극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육공무원법 제44조에 따르면, 교사가 정신적 또는 신체적 문제가 명백할 경우 임용권자가 직권으로 휴직을 명령할 수 있다. 또, 제45조에는 정신 건강 문제가 의심될 경우 최대 5년까지 휴직이 가능하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이 교직 수행이 가능한지 심의하고, 필요할 경우 교육감이 직권으로 휴·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질환교원심의위원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육 당국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쁜 별’
애도 물결

결국 법적 장치가 마련돼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점이 이번 사건의 핵심 문제라는 것이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정신질환 이력이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이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지난 11일 엑스(구 트위터)에 “우울증은 죄가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나 교수는 해당 글에서 “가해자는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면서도 “아직 아무것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서 언론이 우울증 휴직 전력을 앞다퉈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죄는 죄인에게 있지, 우울증이 죄는 아니다”라며, “우울증 휴직 이력을 강조하는 보도는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강화해, 정작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만들고, 한국의 정신건강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현재 한국의 우울증 치료율은 10%에 불과하다. 즉, 10명 중 9명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언론이 정신질환을 자극적으로 보도할 경우, 치료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사람의 생명은 의사만이 살리는 것이 아니다. 펜으로도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며, 신중한 보도를 당부했다.

나 교수는 “같은 나이 딸을 둔 아버지로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피해자 유가족의 감정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가해 여교사의 우울증을 앞세운 보도에 대해 나 교수와 비슷한 의견을 냈다. 백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오늘 오전 환자들이 ‘회사에서 나를 살인자로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많이 전해왔다”며 “우울증이 있을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국내 현실인 만큼 여론이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는 것이 무척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은 언론에 가해자의 진단명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정신 건강 관련 자문을 담당하는 지원단은 지난 12일 성명을 통해 “특정 진단명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편견을 가중시킬 뿐,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에 기반해 사건의 사회 구조적 요인과 개선 방안에 집중해 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막을 기회 3번 있었다”
병력 언급 편견만 가중

이어 “범죄 행위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며, 유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원단은 정신 건강 보도와 관련한 권고 기준으로 기사 제목에 정신질환을 언급하는 것을 지양할 것, 정신 질환을 범죄 동기나 원인과 연결하는 데 신중을 가할 것을 제안했다.

김양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양의 아버지는 딸이 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을 특히 좋아했다고 전했다. 그는 “하늘이의 꿈이 장원영이었다. 생일 선물로 아이브 포토카드를 받길 원했고, 특히 장원영 카드만 원했다”며 “어떤 프로그램이든 장원영이 나오면 늦게 자더라도 본방 사수를 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동생이 뽀로로를 보고 싶어해도 무조건 장원영을 봐야 하는 아이였다”며 “장원영양이 하늘이가 가는 길에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건네준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룹 아이브는 김양의 빈소에 근조화환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화환에는 “가수 아이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황선홍 K1 대전시티즌 감독도 김양의 빈소를 찾아 추모했다. 생전 김양은 축구 팬인 아버지와 함께 대전시티즌 서포터즈로 활동해 왔다. 홈 경기 때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응원했을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던 김양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축구계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빈소를 찾은 황 감독은 “하늘이가 너무 어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라 더 가슴이 아프다”며 “좋은 곳에서 편안히 쉬었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축구 팬들도 추모의 뜻을 전했다. ‘대전하나시티즌 팬’ ‘대전 붉은악마’ 등의 이름으로 근조화환이 보내졌다.

김양의 빈소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육종명 대전 서부경찰서장,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빈소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바라는 건 앞으로 우리 하늘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신질환을 앓는 교사들의 치료와 저학년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할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교육부는 교원이 정신질환 등으로 정상적인 교직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 휴직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는 ‘하늘이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늘이 법
입법 추진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교원이 일정 절차를 거쳐 직권 휴직을 받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늘이법은 교직 수행이 어려운 교사를 학생들과 분리하고, 복직 시 정상 근무 가능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부총리는 폭력성 등 특이 증상을 보이는 교원에 대한 긴급 개입 제도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법 개정으로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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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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