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㊱산산이 부서진 탈출의 꿈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1.20 04:00:00
  • 호수 1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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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헤어진 엄마를 찾으려 한다구?”

“예, 아저씨.”

“엄마가 보고 싶니?”

“예.”

“언제 헤어졌냐?”


“몇 년 됐어요.

“엄마가 어디 있는지는 알구?”

필사적 매달림

용운은 그의 눈빛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무작정 여기저기 다 뒤질 거라는 식의 대답은 그를 어이없게 만들 터였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꾸미기도 쉽지 않았다. 섣부른 거짓말은 자칫 낭패를 자초하기가 십상일 것이었다.

엄마의 소재를 안다고 하면 자기가 연락해 줄 테니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할 것 같았다.

용운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디 있는지는 확실히 몰라요. 그렇지만 저는 꼭 찾을 거예요. 지금 우리 엄마도 저를 찾으려고 고생하고 있을 거예요. 은혜 잊지 않을 게요! 제발 저 좀 데리고 나가 주세요. 아저씨 부탁드려요.”

용운은 어느새 글썽거리기 시작하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있었다.

“허, 그것 참!”

배 주인은 난처한 듯 입맛을 다셨다.

용운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나아가 기필코 찾고 말겠다는 집념을 비장하게 되풀이했다. 배 주인은 입맛이 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야, 다 좋은데 말야. 나도 여길 몇 년째 드나든다만, 부모랑 헤어진 애가 어디 너뿐이냐? 그리고 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잘 안다면 모를까, 무작정 데리고 나가라면 어쩌라는 거냐, 응?”

용운은 예감이 불길하다 싶어 그의 손목을 힘껏 잡아 쥐었다.

“아저씨, 염려 마세요. 전 정말 찾을 수 있어요!”

다시 한번 입맛을 다시던 배 주인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야, 그럼 이렇게 하자. 난 지금 이장님 댁에 맡겨둔 후래쉬를 찾아와야 되니까 그동안 잘 생각해 봐. 그러고도 결심을 못 바꾸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예? 정말…… 이장님한테 가시는 건가요?”

“왜? 거짓말하는 것 같으냐?”


“아니, 그저…….”

“걱정 마라. 너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지 짓궂게는 안 할 테니까.”

배 주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곤 배에서 내려갔다. 용운은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슬그머니 배에서 내려와 방파제의 경사면에 엎드려 마을 쪽을 살폈다.

마을로 들어간 배 주인이 길에 다시 나타난 건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앗!”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염려했던 대로 배 주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왕거미 사장과 원생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용운은 숨을 몰아쉬었다. 뒤쪽은 바다, 둘러봐도 숨을 곳은 없었다. 다만 방파제를 따라 달려서 왼편 수수밭 쪽으로 도망가는 길뿐이었다.

배 주인이 데려온 왕거미 사장
저승사자처럼 쫓아온 원생들

방파제를 올라서는 순간 그들에게 노출될 것은 뻔했다. 용운은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도망가 봤자 좁은 섬 안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서 무엇을 어쩌겠다는 건지 따질 경황이 아니었다.

오직 잡히면 큰일이라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는 후다닥 방파제 위로 뛰어올라 수십 미터 떨어진 밭을 향해 필사적으로 내달았다.

멀리 떨어진 거리였음에도 왕거미 사장의 명령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또렷이 들려왔다.

“어서 잡아 와!”

검은 옷을 입은 원생들이 저승사자들처럼 쫓아왔다. 용운이 방파제를 따라 마을을 끼고 돈 다음 막 수수밭으로 들어서려는데 그들은 벌써 서너 발짝 뒤까지 육박해 오고 있었다.

순간 눈앞에 큰 똥구덩이가 나타났다. 마을의 공동 거름 구덩이였다. 용운은 다급한 나머지 앞뒤 생각도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수렁처럼 질척한 똥구덩이 속으로 빨려드는 순간, 어느새 다가온 사장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죽여 버릴 테다! 빨리 기어나와!”

용운은 겨우 고립무원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세게 흔들며 중얼거렸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글쎄, 빨리 나오란 말야, 게 같은 새끼야! 옆으로 가는 게 같은 새끼!”

아이들이 소리 죽여 키득거렸다.

“선생님,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번만 봐주세요.”

용운은 애원하고 있었다.

“안 나오겠다 이거냐? 좋아,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사장은 원생에게 굵은 새끼줄을 구해 오도록 지시했다. 잠시 후 그는 새끼줄을 받아 그 끝을 올가미처럼 엮었다. 그러곤 용운의 머리통을 향해 조준하더니 휙 던졌다.

올가미가 용운의 목에 걸렸다. 그는 힘껏 잡아당겼다. 용운은 로프를 목에 건 채 개처럼 끌려 나가야 했다. 원생들은 코를 쥐고 외면하며 투덜거렸다.

“새끼, 하필 거기야.”

“냄새 죽이는군.”

따가운 눈총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끌려간 용운은 마당 한끝에 벌거벗은 몸으로 세워졌다.

사장의 명령에 따라 원생들이 쉬지 않고 물을 끼얹었다. 수십 번 물벼락을 맞으며 씻고 씻어도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속속들이 파고들어가 몸 안에 배어 버린 것 같았다.

용운의 발 앞에는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통이 놓여 있었다. 사장이 원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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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산불 주원인 ‘실화·쓰레기 소각’ 예방법 없나?

10년간 산불 주원인 ‘실화·쓰레기 소각’ 예방법 없나?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지난 22일 경북 의성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 청송 등 인접 지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가히 ‘재난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번 산불이 성묘객의 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관련자 처벌 수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산림청 산불 원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입산자에 의한 실화가 171건(31%)으로 가장 많았고, 쓰레기 소각이 68건(13%), 논·밭두렁 소각이 60건(11%)이었다. 대형 산불은 특히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봄철에 주로 발생한다. 계절별 산불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2015~2024년 연평균 산불 546건 중 봄철에 발생하는 산불은 303건(56%)에 달했다. 실제 지난 2022년 3월4~13일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 강릉, 동해서 발생한 일명 ‘동해안 산불’은 산림 2만523㏊를 태웠다. 2020년 4월 경북 안동서 발생한 산불은 1944ha의 면적을 태웠으며, 2019년 4월 강원 고성·강릉·인제서 난 산불은 3일간 2872ha를 휩쓸었다. 이처럼 산불이 주로 봄에 발생하는 이유는 건조한 날씨와 더불어 야외활동이 잦아지는 시기인 점도 한 몫한다. 이번 의성 산불 역시 묘지를 정리하던 50대 성묘객이 라이터로 불을 피운 게 화근이 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성묘객은 산에서 쓰레기를 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울산 울주군 온양읍 야산서 발생한 산불도 농막서 나온 용접 불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앞선 21일 경남 산청서 발생한 산불 역시 풀베기 작업 중 예초기서 튄 불꽃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산불 관련 처벌이 약해 경각심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국회전자청원 시스템에는 실화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현행 산림보호법 53조는 과실로 산불을 냈을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고의로 방화를 한 경우에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형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산불의 특성상 발화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기 어렵고, 실화자를 특정하거나 과실 입증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실제 처벌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올해 3월까지 최근 5년간 산불 유발자 검거율도 46.1%에 불과하다. 처벌 수위도 낮다. 최근 4년간 산불 발생 건수는 2108건이었으나, 집행유예를 포함한 실형을 받은 건수는 43건(2.03%)에 그친다. 지난해에는 279건의 산불 중 110명이 범인으로 붙잡혔지만,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벌금형도 8명에 그쳐 처벌 비율이 7.2%밖에 되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형 산불 재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불법 소각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의 한 밭두렁에서는 산불이 계속 확산되는 상황 속에서도 한 주민이 불에 탄 신발, 가재도구와 폐기물 등을 태우는 모습이 목격됐다. 같은 날 안동 하회마을 인근서도 쓰레기를 소각하던 한 70대 노인이 관계기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하회마을 인근에선 의성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산림 당국이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대규모 재난 대응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또 다른 대형 화재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불법 소각 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은 ‘안전불감증’의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행 경북도 화재예방조례에 따르면 산림 인접지나 논·밭 주변서 사전 신고 없이 불을 피워 소방 인력이 출동할 경우 2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이 같은 수준의 처벌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농촌 지역의 불법 소각 관행을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단속에 투입되는 인원에도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농촌 지역에 거주 중인 주민들의 안전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라며 “과태료도 인상과 함께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과태료 인상 등 처벌 강화와 더불어 폐기물 수거 시스템 확충, 주민 참여형 안전 교육 등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영농 폐기물 및 생활 쓰레기 처리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소각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처리법의 보급 등 반복되는 산불 재난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경북 22명, 경남 4명 등 26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산림 피해 면적은 3만5810㏊로, 역대 최대 피해를 냈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2만3794㏊)을 넘어섰다. <jungwon933@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