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㉟잠재의식 속 탈출 열망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1.13 05:00:00
  • 호수 1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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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탈출 성공 여부는 열흘 정도 지나면 알게 되었다. 

가라앉은 시체가 여름에는 사흘 안에 떠오르지만 겨울에는 열흘쯤 지나야 떠오르는 까닭이었다.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는 건 누구든 도중에 죽으면 시체가 물에 밀려 어김없이 되돌아온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끝장 중압감

익사할 때의 위치나 조수 간만의 변화에 따라 마산포까지 밀려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어쨌든 시체는 반드시 발견되었던 것이다.


수용소로서는 규율을 무시하고 탈출하다 죽은 일개 무연고자에 대해 어떤 책임의식 같은 걸 느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억울한 건 그저 죽은 자들뿐인 것이다.

아무튼 용운이 잠잠하게 참고 있었던 것은 탈출에 대한 의욕이 꺾여서가 아니었다. 실패하면 끝장일지 모른다는 중압감에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빨리 나서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더 완벽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탈출에 대한 집착과 욕망은 이성 밑바닥의 잠재의식 속에서 용암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고립된 수용소에도 계절의 질서는 어김없었다. 가을이 오고 있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서 산비탈 논밭엔 나락이 영글고, 고추잠자리가 자유의 화신인 양 날아다녔으며, 밤이면 당산 숲에서 피를 토하듯 두견새가 울었다. 용운은 가슴속으로 울다가 잠들곤 했다.

그 즈음 용운이 속한 반은 소금 운반 작업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의 지시로 네 명이 일개조가 되어 창고에 쌓아둔 소금가마를 방파제 너머로 운반했다. 그곳에는 세 척의 소금배가 대기해 있었는데 그중엔 5톤 짜리의 소형배도 한 척 섞여 있었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온 소금 도매상의 배인 것 같았다.

조원들이 소금가마를 들고 그 소형 배에 막 다가서는 순간, 선주가 선판의 뚜껑을 열고 안에서 기름통을 꺼내는 게 보였다.

그곳은 도구를 넣어두는 창고 같았다. 돌연 용운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뜻 보아 사람 하나 정도는 충분히 엎드릴 수 있을 만한 공간이었다.

‘그래! 저 안에 숨어들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어디 있을까. 얼마 되지 않는 육지까지의 운행 도중 선주가 창고를 열어 봐야 할 일은 아마도 생기지 않으리라.

들키지 않고 육지에만 닿게 된다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다! 혹시 선주에게 붙잡힌다 해도 간절히 얘기하면 애써 다시 이곳까지 데려와 인계하는 수고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또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급한 자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계속되는 선적 작업으로 빈틈이 없는 배의 상황, 조 편성에 따른 각자의 행동 제약, 작업 종료 후에 필수적으로 할 인원 파악……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희망을 이룰 가능성이란 전무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미련은 용운의 머릿속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모르는 사이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선적 작업이 완료될 무렵 사업계장과 선주들이 한데 모여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러더니 계산상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모두들 끝에 있는 첫 번째 배로 향하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주위에 원생들만 없다면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었다. 조원 중 가장 고참인 조장이 사업계장의 뒤에 대고 외쳤다.

“저, 우리들은 어떡할까요?”

사업계장은 고개만 잠깐 돌리더니 수월하게 말했다.


다급한 자의 희망사항
소금 도매상 배에 숨어

“됐어, 네가 그대로 인솔해!”

그 순간 용운은 목숨을 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임을 느꼈다. 그는 숙사로 향하는 척하다가 슬그머니 일행의 뒤로 처졌다.

마을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용운은 잽싸게 샛골목으로 빠져 들어갔다. 물론 지금 방파제로 간다고 해서 그 절호의 기회가 아직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만약 배가 떠나 버렸다면 다시 일행을 쫓아가 급히 오줌누었다고 핑계댈 참이었다. 아무튼 포기를 하더라도 눈으로 한번 확인해 봐야만 미련이 안 남을 것 같았다.

골목을 타고 되돌아온 용운은 마른 수초 덤불에 몸을 숨기고 방파제 너머로 눈길을 던졌다. 천만 다행히도 그들은 아직 첫 번째 배에 머물러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한 사람은 연거푸 소금 가마를 세어 보고 있었다.

용운은 크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곤 번개처럼 빠르게 방파제를 넘어가 소형 배 안으로 뛰어들었다.

창고 안은 좁고 캄캄했다. 각종 공구들이 쌓여 온몸에 배겨들었다. 피가 마르는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용운은 연신 방망이질치는 가슴을 누르며 수용소와의 무사한 결별을 하늘에 빌고 또 빌었다.

이윽고 다른 두 척의 배에서 시동을 거는 소리가 사이를 두고 들려왔다. 그 배들이 긴 소음을 남기며 멀어질 때까지도 어쩐 일인지 용운이 숨어든 배의 임자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어디선가 늑장을 부리던 배 주인이 돌아온 것은, 혹시 배가 이대로 정박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왈칵 일었을 때였다.

갑판을 쿵쿵 울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용운은 숨을 죽였다. 그런데 용운의 계산과 달리 배 주인은 갑자기 무슨 일인지 창고의 문을 덜컥 들어올렸다.

“으앗!”

배 주인은 기겁을 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용운은 급히 두 손부터 비벼댔다.

“아, 아저씨……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제발 아무에게도 이르지 마세요.”

“넌 뭐냐? 귀신이냐?”

배 주인이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짓궂은 기색이 엿보였다.

숨어든 이유

“혹시 바깥에 우, 우리 선생님 있나요?”

“좀 전에 갔다.”

“죄, 죄송합니다. 아저씨…… 그렇지만 제 얘기 좀 들어 주세요.”

“뭔데?”

“아저씨…… 저 오래 전에 헤어진 엄마를 찾아야 돼요. 빨리 육지로 나가서 찾지 않으면 못 만날지도 몰라요. 그래서 여기 숨어든 거예요. 아저씨, 제발 저 좀 데리고 나가 주세요, 예?”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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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검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유통·공급책들의 진술도 뒤집혔다.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이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도 수년간 겪은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경찰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과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필로폰 74kg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내 기뻐하던 수사팀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실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고 개입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경찰도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과도한 의혹? 백 경정은 지금까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벌어진 원인으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검찰을 지목했다. 직접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통화했던 녹취를 언급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 경정 수사팀에 지휘권이 없는 인사들이 수차례 연락을 취한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비교해보면 ‘압력을 넣었다’는 맥락은 일치하지만 누가 압력을 행사했고 어떻게 대통령실과의 접촉 등이 이뤄졌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용산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백 경정 팀의 수사에 허점이 있던 걸까?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지원해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측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영등포서 마약수사팀 의견 통일 안 돼 운반책들 “세관 도움 없었다” 주장 번복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했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그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백 경정은 당시 전화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나?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뒤집힌 분위기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 유통·전달책의 첩보로 시작된다. 사정기관에 첩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야당’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형량 거래인 ‘플리바게닝’을 통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때가 있다. 베테랑 수사관들도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다가 헛수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마약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물적 증거가 부족할 때다. 실제 검찰이든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 또는 야당의 정보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 경정팀에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운반책 3명은 최근 급작스레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검경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백 경정이 주장해온 의혹의 뿌리가 흔들린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에 구성된 합동수사단도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재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경정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백 경정의 판단이 100%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이 많았던 건 사실 아니냐.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약 운반책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공항본부 세관 직원은 여러 명이다. 직원 대부분은 백 경정팀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약 공범? 익명을 요구한 세관 직원 A씨는 <일요시사>에 “공황장애에 걸린 직원도 있고 확실하지도 않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경찰도 있었다. 그 자체가 우리가 범죄자라고 전제한 수사”라며 “2년이 지나도 나오는 게 없지 않나. 운반책들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하는데 이젠 진상규명이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마약 운반책들은 백 경정팀 조사에서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진술에서 언급된 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출입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는 진술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관 직원 B씨는 “운반책들이 2023년 1월에 그린 라인을 따라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그린 라인은 그해 5월에야 생겼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수사했다면 운반책들의 진술 중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측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혀 왔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여러 번 초기화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때 수사했을 때 직원 폰을 압수해 분석했는데 초기화된 걸 확인했었고 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직접 초기화한 후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도 했다”며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주장하다가 세관과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관이 마약 운반책들을 뒤에서 은밀하게 도왔다는 의구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상황에 누가 의심을 안 하겠나”고 강조했다. 세관 직원들 “2년간 범죄자 취급···억울” 휴대전화 초기화는? 수상한 점 여전히 존재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은 본래 지난 14일까지였다. 그러다 전날인 13일, 경찰청은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백 경정의 파견 기간을 돌연 2개월 연장했다. 내년 1월14일까지로 늘린 것이다. 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찰청에 백 경정 파견의 연장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동부지검의 요청을 검토한 뒤 경찰청에 연장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했고 본인과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전결권을 부여했다. 그는 합수단에 합류한 지 약 한 달 만인 이날부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사용 권한을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의 바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수사관 4명 중 2명이 원대 복귀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백 경정은 “두 사람이 파견 기한 만료 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파견 만료로 원대 복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경정에게 “개인 사정이 있어 파견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경정은 “계속 수사에 차질을 겪어 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스무명이 넘게 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3명이 수사를 이어가겠나”라며 “팀을 꾸렸으면 적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어렵게 파견 인력을 확보했었다”면서 “백 경정의 충원 의사를 대검에 전달했지만 인력은 보내는 쪽인 경찰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 경정과 동부지검 간 갈등은 끝나지 않는 모양새다. 백 경정은 최근 14일 A4 용지 12장 분량의 자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개인 명의로 배포했다. 그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용 권한을 받았고 파견도 2개월 연장됐다”면서 “조만간 사건번호를 생성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도할 수사 범위에 ▲세관 마약 연루 의혹 ▲검찰의 마약 밀수 사건 은폐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 중 수사 외압 의혹은 합수단 지휘 책임이 있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난달 파견 온 백 경정에게 별도 수사팀을 내줄 당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분야다. 공중분해 위기 지속 영등포경찰서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캐던 백 경정이 스스로 외압 피해자라 주장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경찰 지휘부 등을 고발한 사건이라 직접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커서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며 기존 수사 범위에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상 경찰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회피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