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발 두 국가론 후폭풍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09.30 11:14:56
  • 호수 1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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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갈라진 민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임종석의 ‘1민족 2국가론’의 주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개헌·북한 붕괴 시 대응·역사 인식·탈북자 대우 등 여러 논점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권도 다양한 찬반 의견을 내놓고 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19일,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서 “통일, 하지 맙시다”라며, ‘1민족 2국가론’을 주장했다. 임 전 실장은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고,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여 2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며 “비현실적인 통일 논의는 이제 그만 접어두고, 당위와 관성으로 통일을 이야기하지 말자”고 말했다. 이어 제3조 영토조항의 삭제 등 개헌을 주장하면서 “모든 법과 제도, 정책서 통일을 들어내자”고 강조했다.

통일 반대론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존재하기 때문에, 제3조와 제4조는 상호모순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지만, 남·북한이 특수관계에 있기 때문에 북한의 이중적 지위를 인정한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의 주장이 헌법에 반영되려면, 스스로 인정하듯이 개헌을 해야 한다. 북한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도 거셀 수밖에 없다.


통일 반대론은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 ▲옅어지는 민족주의 ▲통일 비용 우려 ▲남·북한의 상호 이질감 ▲중국·러시아와 국경이 맞닿는다는 우려 등을 이유로 제기됐다.

통일연구원이 2020년 6월 발표한 ‘KINU 통일 의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4.9%는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통일은 필요없다”고 응답했다. 남북통일의 이익에 대한 물음서도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응답한 경우(64.8%)가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응답한 경우(31.0%)의 2배를 넘었다.

북한 자체에 대한 관심도도 “무관심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61.1%였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나 남한의 흡수통일 상황서 중국의 반응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가 있다. 가장 많이 거론됐던 시나리오는 “북한 급변 발생 시 중국 인민해방군이 청천강 일대를 점령한 후 재차 남진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고조선·고구려·발해는 세계사?
2국가 체제 북한 붕괴 시 어떻게?

참여정부 외교안보비서관을 지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2010년 11월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면 중국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신의주나 나선 등 북한 영토 일부를 중국에 떼줘야 한다’는 스티븐슨 주한미국대사의 발언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했던 각종 기밀 문건에도 “북한이 붕괴하면, 한국 정부가 중국에 경제적 유인책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갑작스러운 붕괴와 남한의 흡수통일 상황 모두 중국의 무력 개입이나 선제적인 영토 할양 등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거론된 상황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2국가 체제가 정착된 상황서 북한이 붕괴해 중국이 무력 개입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짚어봐야 한다.

해킹조직 원전반대그룹이 2015년 7~8월 2회에 걸쳐 공개했던 문건에는 중국이 원하는 ‘북한 4개국 분할안’이 담겨있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남한은 평안남도·황해도를 담당하고, 중국은 평안북도·함경남도·양강도·자강도를 담당하며, 미국은 강원도를, 러시아는 함경북도를, 평양은 4개국이 공동으로 담당한다.

역사 교육과 관련해서도 모호한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국사에 포함되는 고대 국가 중 영토가 남한의 영역에 소재하지 않았던 국가는 고조선·부여·옥저·발해가 있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 점령을 위해 남진했던 일부 시기에만 남한 영역에 진출했다. 2국가 체제가 확정되면, 위에 언급한 고대 국가들의 정체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큰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시각과 상황에 따라서는 저 고대 국가들은 세계사에 포함될 수도 있다.

현재 영토가 타이완섬에 국한된 중화민국 정부는 명목상으로는 중국 대륙 전토와 몽골을 주권강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도 타이완섬을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 모두 ‘2개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세현·이종석 ‘찬’
문재인·박지원 ‘반’

임 전 실장에게 제기되는 일각의 비판 근거 중 하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서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2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했다”는 발언을 했던 것과 맞물린다.

이어 “북남은 동족·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고,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고 덧붙였다.

이에 임 전 실장은 “적대적 2개의 국가관계는 있을 수 없고, 평화적인 두 국가, 민족적인 두 국가여야 한다”며 “평화 공존과 화해 협력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기를 바란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은 김정은의 주장과 같고, 이것이 주체사상파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등 국민의힘 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1월 발언과 연결지어 비판했다. 아울러 탈북자들이 남한에 오더라도 ‘외국인’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한은 1991년 동시에 유엔 가입을 했으니, 사실은 그때부터 두 개 국가”라며, “결국 남북관계는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임 전 실장의 주장에 찬성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5월에 “2개의 국가를 향한 원심화 경향을 막기 어렵다. 현재 상황은 2개의 정상적인 국가로 있을 때만 못하다”며 “정상적인 2개의 국가가 됐다가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통일은 후대로 넘기자”고 강조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주장에 대해 “평화와 통일이라는 겨레의 염원에 역행하는 반민족적 처사”라고 비판하는 등 임 전 실장의 주장과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학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현역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성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해식 당 대표 비서실장도 지난 25일 부산 금정구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 직후 “임 전 실장의 메시지는 당의 강령과도 맞지 않는 주장”이라고 선을 긋는 등 당 차원서도 거리를 두는 기색이다.

적대적 국가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임 전 실장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통일을 얘기해도 좋을 만큼 평화가 정착되고, 교류와 협력이 일상으로 자리 잡은 후에 그때 미래 세대가 판단하자는 게 이상하냐”며 “상황을 바꾸려는 전략적인 노력 없이는 지금의 상태는 악화될 것이고, 윤석열정부 임기 말쯤에는 적대적인 두 국가가 상당히 완성돼있을 것”이라고 재차 주장했다.

개헌과 가치관의 변화를 포괄하는 주제인 만큼 당분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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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