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⑬막막한 엄마 찾기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7.29 04:00:00
  • 호수 1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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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자, 가자꾸나. 조금만 가면 따뜻하고 아늑한 방이 있단다.”

여인은 용운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용운은 일어나지 않고 버텼다. 그는 결정하기 전에 마지막 확신이라도 얻으려는 양 여인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여인은 역시 입으로만 상냥스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은 전혀 표정이 없었으며 차가운 빛을 안쪽에 감추고 있었다.

여인의 미소는 점점 요염해졌다. 그러면서 가늘고 흰 손으로 용운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대합실서의 꿈


“아, 안 돼요! 난 안 가요! 여기서 울 엄마를 기다려야만 해요!”

“엄만 안 온단다. 얘야, 어서 가자꾸나.”

“거짓말 마요! 엄마는 꼭 온댔어요! 아줌마는 백여우 같아요. 난 절대로 따라가지 않아요. 그러니 어서 저리 가세요!”

“호호, 내가 백여우라구? 호호호, 넌 미친 녀석이로군. 그 자리서 굶어 뒈져 버려.”

여인은 용운의 눈빛을 보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악담을 뱉곤 슬그머니 대합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대합실은 적막에 잠겨 갔다. 밤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용운은 쓰레기장에서 신문지를 주워 와 깔곤 누워 옹크렸다.

엄마 잃은 어린 소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간간이 흐느끼는 한편 차가운 냉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지 이를 부딪치며 달달 떨었다. 밤은 깊어갈수록 점점 추워지고 밖에서는 바람이 빈 깡통을 굴리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려왔다.

마당가의 허물어진 화단엔 꽃보다 잡초가 더 무성하다. 거무죽죽하게 말라 구겨져 버린 지 오랜 장미 아래에 맨드라미와 봉숭아가 피어 있다. 

아이는 봉숭아의 푸른 열매를 톡톡 건드려 터뜨리다가 한숨을 쉬고 입맛을 다신다. 다섯 살이 될까말까한 어린 아이의 눈에 무료감이 어린다.

아침나절 내내 혼자 놀았던 기억들이 중첩되어 어린 넋에 시간을 인식케 하는 걸까. 아이는 하늘을 쳐다보고 주위를 둘러본다. 바람 한 점 없이 괴괴하다.

아이는 다시 화단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쌀눈만큼이나 작은 풀꽃을 찾아 한참 들여다보다가 발작적으로 봉숭아 꽃잎을 훑어 따서 마당에다 흩뿌린다. 

한여름의 태양이 중천에 이글거리며 따가운 빛을 내리쏘고 있다.

울 듯한 표정으로 자기가 버린 꽃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의 눈에 빛이 돈다. 멀찍이 날아 떨어진 분홍 꽃잎이 움직인다.

다른 것은 가만 있는데 한 잎만 옴직거린다. 아이는 새끼 고양이처럼 기어 다가간다. 꽃잎 밑에서 통통한 구더기가 불쑥 기어 나온다.

구더기가 꼬물꼬물 전진하자 아이는 검지손가락 끝으로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듯이 살살 어루만진다. 구더기는 기겁을 하고 옆으로 나뒹군다.

구더기가 줄행랑을 놓자 아이는 작은 손바닥을 앞에 세워서 거대한 벽을 만들고는 웃는다. 구더기는 이물질에 닿자 방향을 돌리지 않은 채 바로 꽁무니를 머리로 변전시켜 달아난다.

아이의 손가락 끝이 추적자가 되어 말발굽 소리를 내며 뒤따른다. 엎드린 아이의 몸은 곰이나 거인 같다. 도망자는 발굽에 짓이겨진다. 아이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노르스름한 구더기들이 몇 마리나 줄을 지어 다가온다. 맞은쪽 구석에 붙은 재래식 변소가 그것들의 고향이다. 아이의 머리엔 그 작은 생물들이 더럽거나 징그럽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듯싶다.


그의 눈엔 귀엽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비치는지 모른다. 아이는 구더기를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곤 가지고 논다.

윤기 흐르던 구더기의 몸은 먼지를 타서 꾀죄죄해지고 차츰 홀쭉해진다. 활발하던 움직임도 조금씩 둔해지더니 이윽고는 멈추고 만다. 

꿈에서 느낀 전쟁 공포감
다시 만나자 무언의 약속

아이는 울적히 내려다보더니 그 중의 한 마리를 집어들어 입 속에 넣고 씹어 본다. 한 마리를 더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날카로운 폭음이 하늘을 가르며 울려퍼진다. 아이는 움찔 놀란다. 폭음은 증폭되어 천지를 진동시킨다.

아이는 해쓱해진 얼굴로 하늘을 쳐다본다. 일단의 전투기 편대가 염천을 찢고 지나가며 길고 허연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전투기는 태양보다 더 높이 떠가는 것 같다.

그 가운데 한 대의 기체로부터 은빛 광채 눈부신 폭탄 두 발이 투하된다.


그것들은 수리보다 빠르게 지상으로 하강하여 엄청난 폭발음을 일으킨다. 아이는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외부의 어떤 다른 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고집 센 울음이다. 아이의 크게 벌어진 입 속엔 허연 구더기의 찢긴 살점들이 진물과 함께 흩어져 있다.

아이의 울음 소리가 잦아든다. 갑자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멎었다가 다시 저절로 떨린다. 아이는 손을 가져가서 비빈다. 떨림은 멎는다. 그는 한곳을 쳐다본다.

큰 거미 한 마리가 구석에 웅크려 있다가 빠르게 허공으로 기어 나온다. 똥파리가 줄에 걸려 맹렬히 파닥거린다. 거미는 발빠르게 움직이며 파리를 옭아맬 기회를 노린다.

유심히 살펴보는 아이의 눈이 깜박깜박한다. 동공이 점점 커져 가고, 머루처럼 검은 눈동자엔 공포감이 어린다…. 

용운은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리송했다.

그는 일어서서 이리저리 거닐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용운은 사흘을 기다렸다. 누군가 가엾게 여겨 던져준 동전 몇 푼으로 풀빵을 사먹으며 견뎠다.

그러나 엄마는 아무래도 오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은 용운은 그 자리를 떠났다.

엄마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이상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돌아다니며 찾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용운은 현기증과 싸우며 남산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오를 때는 눈앞이 가물가물해져 엎어질 것만 같았다. 용운은 이를 악물고 걸어 올라 겨우 한 계단 위에 주저앉았다.

지난번에 엄마와 함께 앉아 소나무 껍질을 갉아 먹었던 곳이었다.

“엄마….”

용운은 중얼거리며 일어서서 다시 계단을 올랐다. 저 위쪽, 하얀 탑과도 같은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그곳에는 엄마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엄마가 자기를 데리고 이곳에 올라왔던 이유는, 저 탑을 표지로 삼아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엄만 꼭 오실 거야. 아니, 이미 저 위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라. 엄만 나를 내버린 게 아니고, 어떤 비밀스런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다녀오실 거야.”

불안한 눈빛

용운은 힘을 내어 남산 정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눈앞이 탁 트인 넓은 광장을 바라보며 용운은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

흰 적삼에 검정 무명치마를 입었던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고, 또 그 넓기만 하고 무정한 곳에서 언제 어떻게 엄마를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혹시 엄마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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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