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⑭껍질도 못 깬 병아리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8.05 04:00:00
  • 호수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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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분수대 앞에서는 엄마 아빠 손을 잡은 어린 아이 둘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운 옷을 차려 입은 그들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비둘기에게 과자를 던져 주었다. 

저쪽에서는 어떤 남자가 백발의 할머니를 등에 업고 둥개둥개를 하면서 노래하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배고픈 중생

“장난 삼아 엄마를 등에 업었는데…… 너무 가벼워서 눈물이 나 세 걸음도 못 가고…….”

용운은 울컥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는 힘없는 모습으로 남산을 자꾸 뒤돌아보며 내려갔다. 


기슭을 돌아 큰 길을 건너 내려가자 시장 초입이었다. 허름한 주막의 좌판 앞에 늙수그레한 서너 사람이 앉아 떠들고 있었다. 좌판 위엔 소주병과 막걸리 그리고 그릇에 담긴 달걀 따위가 놓여 있었다.

지켜보던 용운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한 노인네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나서 달걀을 들고 까기 시작했다. 용운은 예전에 엄마가 삶아서 까주던 하얗고 매끄러운 달걀을 상상하곤 군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노인의 손에 들린 달걀 껍질 속에서는 전혀 다른 것이 나오고 있었다.

노르스름한 털뿐만 아니라 감은 눈과 분홍색 부리까지 달린 병아리였다. 

노인은 무슨 말 끝에 실없이 허허 웃으며 그 죽은 병아리를 슬슬 뜯어먹었다. 알 껍질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펴고 울어 보지도 못한 채 삶겨 버린 그것은 ‘곤달걀’이라고 하여 보양식으로 많이 먹었다. 

용운의 머릿속엔 옛날에 폐병을 앓던 아버지가 뱀이나 지네 따위를 고아 약이라며 먹던 모습이 떠올랐다. 심지어 아버지는 쥐도 잡아 먹었다. 약탕기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꿈틀거리던 뱀의 눈을 보며 용운은 몸서리를 쳤었다.

병아리 살은 뜯어먹고 털은 뱉어 버리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용운은 또 몸을 떨었지만 빈 뱃속에서는 다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입을 다시는 용운을 바라보던 어떤 아저씨가 그릇에서 곤달걀 한 개를 집더니 휙 던져 주었다. 


“옛다, 배고픈 중생에 보시하누먼, 하하.”

용운은 땅에 떨어져 병아리의 모습이 반쯤 드러난 곤달걀을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마침 좌판 밑에 웅크리고 있던 발바리가 기어나와 달걀 냄새를 맡으려 했다.

용운이 저도 모르게 몸을 숙여 달걀을 집으려는 순간 발바리 놈이 낼름 물곤 좌판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용운은 침을 찍 뱉곤 남대문 시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 서울역 쪽에서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남대문 시장 안은 북새통이었다.

떡 목판을 앞에 놓고 앉은 아줌마를 비롯하여 풀빵 장수, 팥죽과 수제비 장수, 김밥 장수 등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인절미를 사러 간다던 엄마 생각이 났다. 

왼편으로 국수를 삶아 파는 노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손님 대부분이 그 주변의 짐꾼들로 여기저기 지게가 세워져 있었다. 주인 아줌마가 솥뚜껑을 열자 안개 같은 김과 함께 구수한 멸치 국물 냄새가 물씬 피어올랐다. 용운은 정신이 혼미해진 채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한 짐꾼에게서 돈을 받던 아줌마가 넋을 놓고 서 있는 용운을 힐끗 바라보더니 대번에 눈초리가 샐쭉해졌다.

물 한 방울 못 찍어 발라
넓은 풀밭서 좁쌀 찾기

“야, 니 뭐꼬?”

용운이 멈칫거리자 여자는 냉큼 물바가지를 움켜잡았다.

“저 문디 같은 자슥아, 물벼락 맞기 싫거덩 빨랑 꺼지라카이!”

문득 용운은 양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제야 며칠 동안을 흙바닥에서 뒹군데다 먼지와 눈물로 범벅된 얼굴에 물 한 방울 찍어 바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더러워진 옷에 검정 고무신……. 그야말로 거지나 다름없었다.

비척거리며 그곳을 빠져나가려는데 누군가 용운을 불렀다. 

“얘, 꼬마야.”

돌아보니 풀빵 장수였다. 아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는 풀빵을 하나 집어주었다. 용운은 황급히 받아들고 그곳을 빠져나와 허겁지겁 먹었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그나마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이젠 엄마를 찾아봐야 할 일이었다. 서울 시내를 쉬지 않고 헤매며 행인들의 얼굴을 살폈다. 검정 치마를 입었거나 뒷머리 모습이 엄마와 흡사하다 싶으면 급히 앞질러 가서 얼굴을 확인했다.


마치 넓은 풀밭에서 좁쌀을 찾는 것만큼이나 막연했지만 그것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서울역에서 헤어졌으니 그 주변 어딘가에 틀림없이 엄마가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어린 소년의 머릿속에 부산, 대전, 제주도…… 하는 식의 광범위한 지역은 안개 속 같았고, 따라서 어머니가 멀리 떠났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엔 상상이 미치지도 않았다.

그는 뱃속이 찰랑거리도록 물배를 채워가며 거리를 헤맸다. 번화가나 주택가는 물론 정류장도 빠짐없이 뒤졌으나 허사였다.

어쩌다 엄마와 닮은 여인이 얼굴도 미처 확인하기 전에 전차에 올라타 사라지기라도 하면 그 미련이란 두고두고 떨쳐버릴 수 없었다. 

수용소 아침

신새벽이었다.

모두들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을 때였다. 감각을 잊은 고막을 강제로 마구 헤집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기상!”

복도가 온통 우렁우렁 울렸다. 새벽잠을 깬 군상들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눈을 겨우 뜬 용운은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순간 그는 잠자리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레기 하치장이나 다리 밑, 혹은 처마 밑에서 잔뜩 웅크린 서글픔도 없었고, 노숙자의 스산함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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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수사’ 공수처·검찰 엇박자 내막

‘윤석열 수사’ 공수처·검찰 엇박자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검찰과의 줄다리기를 끝냈다. 대통령 기소권이 없는 공수처로서는 검찰의 요청을 쉽사리 거절할 수 없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구속이라는 성과를 거뒀으나 사건 이첩을 막을 순 없었던 셈이다. 오히려 공수처가 시간 끌기에 나섰다면 자칫 수사 자체가 꼬여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에 비협조로 일관했다. 불법 수사로 규정하면서 제 무덤을 파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대통령 측은 사건이 검찰로 이첩되면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기관 쇼핑’ 논란을 자처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친정을 믿겠다는 무리수로 해석된다. 수사는 끝났는데… 공수처는 지난달 22일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윤 대통령을 체포한 뒤 제대로 된 수사나 조사를 이어가지 못했다. 조사를 거부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은 이날까지 총 세 차례나 불발됐다. 앞서 공수처는 구인 시도 첫날인 같은 달 20일, 윤 대통령이 완강하게 거부하자 대치만 하다가 6시간 만에 철수했다. 전날에는 탄핵 심판 변론을 마친 윤 대통령을 상대로 구인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외부 진료를 받고 오후 9시가 넘어 복귀하면서 무산됐다. 인권 보호 규정상 오후 9시 이후 심야 조사는 피의자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체포 당일인 지난달 15일 첫 대면조사 때부터 모든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다. 7차례에 걸친 출석 및 조사 요구를 모두 거부한 셈이다. 공수처는 최근 언론 공지를 통해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려고 했으나 대통령실은 오후 3시쯤 집행을 불승인했고 관저 압수수색은 국정조사특위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해 오후 4시50분쯤 집행 중지했다”고 밝혔다. 공수처의 압수수색은 윤 대통령이 사용했던 비화폰 서버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조처였다. 경찰도 같은 이유로 대통령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으나 대통령경호처의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비화폰을 통해 군·경찰에 “국회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 “문짝을 도끼로 부숴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 등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전날 탄핵 심판 3차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수처는 지난달 23일 과천청사에서 윤 대통령 내란혐의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서울중앙지검에 공소제기(기소) 요구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판·검사나 경무관 이상 경찰관만 직접 기소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지난해 12월3일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폭동을 일으킨 혐의를 받는다. 직무권한을 남용해 경찰 국회 경비대 소속 경찰관들과 계엄군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국회의원들의 계엄 해제 요구권 행사를 방해한 혐의도 있다. 공, 불법 수사 규정 강제구인도 실패 어쩔 수 없이 이첩…구속 제외 성과 ‘0’ 공수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및 국방부 조사본부의 공조가 없었다면 오늘 수사 결과는 발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검찰청 역시 공수처의 이첩 요청권에 응해 사건을 적시에 이첩하고 이후 다수의 조서 및 공소장 관련 자료 등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도 공수처에는 비상계엄과 관련된 피의자들 및 관련자들 사건이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책임 있는 수사 대상자는 모두 의법 조치될 수 있도록 수사를 엄정히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측은 아직 검찰 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바 없다. 이들은 “검찰에 사건이 이첩된 이후 판단하겠다”며 유보해 왔다. 공수처 조사와 달리 검찰 조사엔 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계속 거부할 명분이 부족할 뿐 아니라 향후 재판 과정서 불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검찰 수사 분위기를 봐가며 수사에 응할 가능성이 크다”며 “검찰과 공수처의 갈등을 이용해 일부분 협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자신의 친정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종 기소권을 가진 검찰 조사 단계에선 구치소 방문 조사 등 최소 범위로 응하되, 내란 우두머리 혐의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전면 부인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과거 노태우·전두환·노무현·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검찰 조사에 응했던 바 있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은 구속 이후엔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 조사 거부 명분으로 내세웠던 ‘내란죄 수사권’을 다시 꺼내 들며 검찰 조사도 거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위고하 막론하고 윤 대통령 측은 지금까지 공수처와 검찰 모두 법적으로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으며, 내란죄 수사권은 경찰만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검찰이 윤 대통령 조사를 시도하는 것은 ‘불법 수사’라며 공수처 수사를 거부해 온 것과 대응 방식이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협조도 안 했는데 검찰에 협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애초 검찰도 윤 대통령에 대해 강하게 수사해 왔고 그런 검찰에 윤 대통령이 크게 실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달 검찰의 소환조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일에 출석해 여론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검찰은 구속 기간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실무 관행을 고려해 연장을 신청했다. 판사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면 10일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구속 기간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연장 허가 시 구속 만료 시점은 오는 5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날 전후로 윤 대통령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검찰은 공수처와 별도로 지난해 12월18일부터 12·3 비상계엄 사건을 수사해 왔다. 김 전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 핵심 관련자 10명을 군검찰과 함께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 밖에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등 비상계엄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과 군·경찰 간부들도 조사하며 윤 대통령 혐의를 다졌다. 후배들이 나설 차례 검찰은 그간 확보한 물적·인적 증거를 토대로 윤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캐물을 계획이다. 최 대행에게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을 지시했는지, 곽·이 전 사령관 등에게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위해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는지, 주요 인사 체포를 지시했는지, 총기 사용을 지시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윤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부르기보다는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면조사가 이뤄지면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은 친정인 검찰 후배들과 마주 앉아 조사받게 된다. 윤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23기로, 특수본부장인 박 고검장은 29기, 김종우 차장은 33기다. 수사팀 최순호 중앙지검 형사3부장은 국정 농단 수사팀서 당시 팀장이던 윤 대통령 지휘를 받기도 했다. 검찰은 우선 윤 대통령에 대한 혐의 다지기를 위해 국방부 조사본부를 압수수색했다. 검찰 특수본은 지난달 23일, 요인 체포조 편성 및 운영 혐의와 관련해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비상계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김명수 전 대법원장 등 정계와 법조계 주요 인사 14명에 대한 체포조 운영 정황을 포착해 최근까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찰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 체포조 운영 정황을 상세히 적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 전 장관의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충암고 후배 여 전 사령관은 박헌수 국방부 조사본부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령 선포됐으니까 너희 수사관 100명 우리한테 보내줘야 한다”며 지원을 요구했다. 이에 국방부 조사본부는 요인 체포조를 위해 조사본부 차원서 100명의 수사관을 동원했다고 보고 있다. 체포조에는 방첩사 수사관 50명과 경찰 수사관 100명도 동원됐다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헌재 여론전 윤 믿을 건 친정뿐? 검 “대면조사 필요…봐주기 없다” 비상계엄 선포 당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건네진 쪽지도 핵심 물적 증거다. 지난달 22일 민주당이 공개한 해당 쪽지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라는 제목 아래 ▲예비비 조속 편성 ▲국회 관련 각종 운용자금 완전 차단 ▲국가비상 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민주당은 이 쪽지를 윤 대통령이 최 대행에게 직접 전달했다며 “최 대행은 명백한 내란 공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 측은 해당 쪽지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시 국회를 위헌적으로 해산하려 한 핵심 증거라고 보고 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헌법재판소 변론서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란 쪽지를 기재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냐”고 묻자, “저는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 해제 뒤 한참 있다가 언론서 메모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며 부인했다. 쪽지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건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 현안 질의서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최 대행이 “윤 대통령이 저를 보시더니 ‘참고하라’며 옆에 누군가가 자료를 하나 줬는데, 접혀 있었다”는 발언부터였다. 이날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대통령께서 직접 주셨냐”는 질문에, 최 대행은 “대통령이 직접 주시진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대행은 “한 장짜리 자료인데, 접혀있었다”며 “제 직원(기재부 차관보)한테 ‘이것 가지고 있어’라고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4일 새벽 1시쯤 기재부 간부회의를 한 뒤, 차관보가 저한테 ‘아까 주신 문건이 있다’고 말해 확인했고, ‘비상계엄 상황서 유동성 확보를 잘 해라’라는 문장이 기억이 난다”고 답했다. 다만 최 대행에게 쪽지를 건네준 인사가 누구인지까지는 국회 회의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최 대행은 해당 문서를 계엄 해제 이후 폐기하지 않고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최 대행의 과거 발언을 살펴보면, 윤 대통령의 “쪽지를 준 적도 없다”는 말은 최소한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최 대행에게 직접 건네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 존재를 언론을 보고 알았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은, 최 대행의 “참고하라고 했다”는 발언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휴가도 반납 혐의 다지기 전날 국회 비상계엄 국정조사 청문회서도 윤 대통령의 쪽지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윤 대통령이 쪽지를 직접 준 게 맞다”고 증언했고, 한 총리는 “전체적인 것들을 기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금까지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 중 한 총리를 포함해 최 대행 등 7명을 조사했고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소환조사했다”고 전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