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번호 뽑는 로또 예측의 배신

과학적 근거 없는 자체 개발 AI?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지난해 복권 판매액이 6조7507억원을 달성하며 역대 최대 액수를 갱신했다. 물가 상승 등으로 외부적인 돈에 집중하는 경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로또 판매액이 늘어난 만큼 로또번호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도 늘었다. 하지만 복권업계와 한국소비자원은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며 로또를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비가 늘어나는 만큼 부가적인 서비스도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로또번호 예측 서비스가 가장 주목받고 있는 와중에 한국소비자원은 근거가 없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멀어지는
일확천금

최근 3년간 로또 판매액은 2021년 5조1371억원, 2022년 5조4488억원으로 계속 증가세다. 지난해 로또 판매액은 5조6526억원으로 역대 최대 액수를 갱신했다. 회차 평균 판매액도 573억원서 1086억원으로 512억원 증가했다. 

그만큼 로또 구매자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주 금요일 퇴근 시간에 ‘로또 명당’서 로또를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은 일상이 됐다. 

로또 판매량이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으로 삶이 팍팍해지면서 일확천금을 얻으려 하는 서민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확실하고 결과가 분명한 것을 원하고, 그것을 찾으려는 욕구가 있다”면서 “코로나가 터진 이후 사회가 더 복잡해지고, 급변하면서 경제 상황이 불확실해지면서 내가 노력한 만큼의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를 복권 당첨 구매와 같은 막연한 희망을 주는 것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이 생겨났다고도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과거에는 내가 열심히 일하면 직장서 승진도 하고 돈도 잘 모아 집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성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았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도저히 과거의 그런 안정적인 결과물들을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의 시대로 변하다 보니, 노력만이 아닌 외부적인 돈이나 한탕주의에 기대는 심리들이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우리 사회가 이제 월급과 같은 고정 수입만을 차분히 모아서는 집을 사거나 육아, 자녀 교육 등을 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라며 “이전에 부모 세대가 누렸던 경제적 부유함 등을 약속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로또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 생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복권 판매액 역대 최고
“한탕주의에 기대는 심리 커져”

로또 구매자들은 기대감을 갖고 45개의 번호 중에서 6개의 번호를 신중하게 고른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로또 1등 당첨의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로 0.0000123%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구매자들은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방법을 찾는다.

이미 시중에는 숫자 패턴을 통해 가장 근사치의 확률 분포도를 안내하는 책, 엑셀로 로또번호 분석 방법 등을 활용하는 책 등이 팔리고 있다. 심지어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서 로또번호 예측 동영상은 평균적으로 1만~2만 조회수를 보이고 있으며 5년 전에 게시된 ‘로또 1등 예상 번호 당첨되는 법 정확한 분석’이라는 동영상은 조회수가 182만회에 달하기도 한다.

한 로또 구매자는 자신을 ‘로또블로거’라고 밝힌 이로부터 “매주 머신러닝 유동 회귀 분석법을 이용한 자체 개발 프로그램으로 추출한 조합 번호로 많은 당첨자를 배출했다”며 당첨 예측 번호를 무료로 알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최근에는 로또번호 예측 사이트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재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준다는 취지의 온라인 사이트 업체들은 게시물에 ‘정밀 분석’ ‘최첨단 시스템’ ‘실제 당첨 영수증’ 등 키워드를 넣어 신빙성을 더하는 방식으로 구매자들을 속이고 있다. 

이들은 본인들이 자체 개발한 정밀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로또 번호를 받으면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6개월간의 당첨 번호와 전체 당첨 번호를 2개 그룹으로 형성해 비교 분석하는 식이다.

45개 번호
0.0000123%

로또 당첨 예측 서비스는 일정 기간 당첨 예상 번호를 조합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화로 가입을 권유하는 사례가 대다수며 번호를 제공해 주는 기간과 등급에 따라 10만원부터 1000만원 이상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로또 당첨 예측 사이트는 모두 거짓이며 로또는 매회 각각 무작위 추첨으로 어떤 프로그램으로도 당첨 번호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복권업계 설명이다. 

동행복권 관계자는 “어떤 분석 시스템도 절대 예측 불가능하다”며 “추첨은 이전 회차의 당첨이 다음 회차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매 회차 ‘독립 확률’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 1등 당첨서 많이 나온 숫자를 조합한다고 한들 당첨 확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첨 번호 추천 사이트서 허위로 당첨 티켓을 공개해 소비자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허위 1등 당첨 티켓을 제조해 이를 촬영 및 게시하는 경우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을 위반한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 잘못 퍼진 정보들을 통해 여전히 로또 당첨 번호 사이트를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로또번호 예측 서비스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1917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9년 88건 ▲2020년 227건 ▲2021년 332건 ▲2022년 655건 ▲2023년 615건이다. 

추천 사이트
“다 거짓말”

피해유형별로는 ‘계약해제·해지 시 이용료 환급 거부 및 위약금 과다 부과’가 60.9%(1168건)로 가장 많았고, ‘미당첨 시 환급 약정 미준수 등 계약불이행’ 27.6%(529건), ‘청약철회 시 환급 거부’ 7.3%(139건)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구제 신청 사건 처리 결과별로 보면 환급 등 합의가 성립된 경우가 58.9%(1129건)이며, 사업자가 협의를 거부하거나 연락을 두절하는 등의 사유로 합의가 성립되지 않은 경우도 41.1%(788건)에 달한다.


합의가 성립되지 않은 경우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사업자의 협의 거부 등의 사유로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경우(545건)가 대다수였으며 사업자가 연락을 두절한 등의 사유로 처리가 불능인 경우(116건)가 그 뒤를 이었다. 788건 중 661건으로 약 83.8%가 사업자로 인해 피해구제가 안 된 셈이다.

실제로 A씨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3차례에 걸쳐 통신판매로 사업자와 로또 당첨번호 예측 서비스 이용계약(이용기간: 36개월, 특약: 이용기간 동안 1등 미당첨 시 이용료 전액 환급)을 체결하고 이용료 270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이용기간 36개월 동안 1등에 당첨되지 않자 A씨는 사업자에게 이용료 2700만원원 전액 환급을 요구했으나 사업자는 A씨에게 계약체결 시 고지하지 않은 자체 규정에 따라 6개월 후에나 환급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B씨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차례에 걸쳐 전화 권유 판매로 사업자와 로또 당첨 번호 예측서비스 이용계약(특약: 1, 2등 당첨 보장)을 체결하고 이용료 1600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B씨는 지난해 12월까지 1, 2등에 당첨되지 않았다.

등급에 따라 1000만원 이상
5년간 1917건 피해구제 신청

이에 B씨는 사업자에게 이용료 1600만원의 환급을 요구했지만 이후 사업자와 연락이 두절됐다.


자체 규정에 따라 일부만 환급한 사례도 있다. C씨는 2022년 7월 전화 권유 판매로 사업자와 로또 당첨 번호 예측서비스 이용 계약을 체결하고 이용료 16만5000원을 지급했다. 이후 사업자의 지속적인 전화 권유로 2022년 11월 등급을 업그레이드하며 비용 88만원을 추가 지급했다.

업그레이드한 등급의 특약에는 2023년 12월까지 미당첨 시 전액 환급이 포함돼있었고 당첨되지 않은 C씨는 지난 1월 전액 환급을 요구했으나 업체는 자체 규정을 근거로 10만2000원만 환급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소비자원은 “당첨 번호 예측 서비스는 사업자가 임의로 조합한 번호를 발송하는 것으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당첨 보장 등 달콤한 유혹에 현혹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또 당첨 보장 등 특약에 대해서는 “녹취·문자메시지 등 입증자료를 확보하고, 계약 해지는 구두가 아닌 내용증명 등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속였다가 사기 혐의로 법정 제재를 받은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 3월13일 대법원 2부는 굿을 하면 로또 당첨 번호를 알려주겠다며 약 2억4000만원을 챙긴 무속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무속인은 범행 당시 “로또 복권 당첨이 되려면 굿 비용이 필요하다”며 피해자에게 접근했고, 총 23회에 걸쳐 피해자로부터 2억4000만원과 금 40돈을 받았지만 피해자는 결국 로또 1등에 당첨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달콤한 유혹
현혹 말라”

지난 3월1일 대전지방법원은 당첨 가능성이 큰 번호 조합을 생성할 수 있는 로또 복권 번호 조합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2억3800만원을 뜯어낸 40대 D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는 투자받아 복권을 대량으로 매입한 뒤 투자액 비율만큼 당첨금을 나누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A씨는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실이 없었으며, 로또 1·2등에 당첨된 적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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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