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만 131명?’ 무료 로또 번호의 비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0.11 13:48:25
  • 호수 13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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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예언가?… ‘0.00000061%’의 덫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일확천금을 얻을 기회가 있을 때 거절할 사람은 없다. 자가 마련, 경제적 풍요 등 돈이 많으면 누릴 수 있는 게 그만큼 많다.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복권을 사고, 매주 복권이 당첨되길 원하지만 복권 당첨의 확률은 손익비를 따져 계산할 때 희박하다. 이런 상황 속에 소비자의 복권 당첨 확률을 높여주는 회사가 있다면 어떨까.

로또(Lotto)는 한국에서 발행하는 복권 중 하나다.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가 지정한 수탁사업자인 동행복권에서 발행한다. 로또는 2002년 12월2일부터 시작했다. 구매자가 45개의 숫자 중 6개 숫자를 고르는 방식이다. 수동은 구매자가 직접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숫자를 고르고, 반자동은 자동으로 절반, 수동으로 절반 숫자를 고른다. 자동은 가게에서 선택한 숫자를 입력한다.

대부분 처음
호기심 접근

입력한 숫자와 토요일 밤 추첨한 숫자가 일정 개수 이상 동일하면 당첨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추첨돼 나오는 숫자의 순서와 상관없이 번호만 맞으면 당첨금을 지급한다. 6개의 숫자 중 6개 번호가 모두 일치하면 1등이다.

확률 계산 통계로 계산한 기대 당첨금은 약 19억5216만원이다. 2등은 6개 번호 중 5개 번호가 일치해야 하고, 나머지 1개가 2등 보너스볼 번호와 일치해야 한다. 기대 당첨금은 약 5422만6000원이다.

3등은 6개 번호 중 5개 번호가 일치해야 하고 상금은 약 142만원, 4등은 4개 번호 일치, 5등은 3개 번호가 일치해야 한다. 상금은 각각 5만원과 5000원으로 고정 지급된다.


2020년 기준 로또는 매주 900억원어치씩 팔렸다. 1등은 8~13명이 발생했고 당첨금은 평균적으로 세전 20억원 정도다. 2등은 60~80명이며 세전 5000만~6000만원이다. 3등은 2000여명으로 당첨금은 세전 150만~160만원 정도다.

당첨금은 다른 복권들과 마찬가지로 복권 금액에 대해서는 비용 처리하며, 이를 제외한 당첨금이 5만원 초과 시 해당 금액에 대한 제세 공과금이 부과돼, 2‧3등 당첨금은 22%가 세금으로 나간다. 1등의 경우는 3억원까지 22%를,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33%를 제하고 받는다.

로또용지는 한 번에 5게임씩 하도록 설계돼있고, 실제로 5게임씩 하는 경우가 많으니 겹치는 수가 없으면 확률이 5배로 올라간다. 이런 확률을 감안한 회차당 확률은 1등은 약 0.00000061%, 2등은 약 0.0000036%, 3등은 약 0.00013%, 4등은 약 0.68%, 5등은 11.1% 다. 

이런 수치로 대다수의 사람은 로또를 가벼운 오락 활동으로 여긴다. 현실적으로 로또 1, 2등에 당첨되는 것 자체가 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 로또에 과도하게 몰입한 사람들은 너무 많은 돈을 로또에 투자해서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이 된다. 그뿐 아니라 과도한 부채 발생, 결혼생활 파탄, 비정상적 직장생활, 불법적 행동 등 심각한 지경에도 이른다.

당첨 번호만 연구 중인 회사 ‘우후죽순’
인공지능·분석시스템으로 확률 높다고?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가구주의 월평균 복권 구입 비용은 2019년 대비 지난해 3배 이상 늘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복권 중독’에 이른 사람이 늘었다는 증거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불황’으로 지속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복권 발행 금액은 6조6515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7.1% 늘었다.

종류별로 보면 로또 발행액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로또 발행액은 올해 5조4567억원으로 작년보다 7.3% 늘어났다. 스피또 등 즉석식 복권(인쇄 복권)은 지난해보다 14% 급증한 5700억원어치를 발행했고, 연금복권(결합복권)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5200억원어치를 내놨다.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로또 번호를 연구한다는 사람과 회사도 생겼다. 지금까지 한국의 로또 1등과 2등 당첨자가 다시 1등이 된 적은 없으니, 이미 1등으로 나온 번호 조합을 제외한 번호를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에 어떤 번호가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로또 번호를 연구해서 당첨됐어도 그저 우연에 불과하다.

최근 로또 번호 예측과 관련된 사기가 성행 중이다. 온라인 포털사이트에 ‘로또 무료 번호’를 검색하기만 해도 총 10쪽 분량의 뉴스, 질문, 추천, 업체 홍보 등의 글이 다양하게 검색된다. 이 글들은 주로 분석 시스템을 사용해서 로또 번호를 받으면 1등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이용 후기도 다양하다.

후기에는 “로또 번호를 주는 다른 업체도 여러 곳 이용해봤다. 그런데 다른 곳은 돈을 내고 가입해야 하는 곳이었다. 대부분 그렇다. 아니면 아예 좋은 번호를 받으려면 처음부터 멤버십 가입을 해야 했다”며 “로또를 사는데도 돈이 든다. 그런데 이 업체를 올해 4월부터 이용하면서 1주에 2000원씩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차수에는 1등 번호가 특이했는데(1034회, 지난달 24일 기준 26, 31, 32, 33, 38, 40+11) 이런 상황에도 당첨이 됐다”고 말했다.

못 믿을…
1등의 유혹

A 업체는 올해 8월에만 1등이 3명 당첨됐고 1등 총 당첨자가 131명이라며, 업체가 개발한 로또 분석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기재돼있었다. <일요시사>는 A 업체의 고객센터 번호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업체로부터 곧 전화가 왔다. A 업체 상담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A 업체에서 5년간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B씨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분석하는 전문 회사”라며 “제외수 10수 기법으로 확률 없는 10개의 번호 제거 후 35개 번호로 10단계 필터링 작업을 반복한다. 이 방법은 1등 당첨 확률인 814만분의 1을 59만분의 1까지 만드는 방법이다. 매우 전문적인 분석 방법이며 1년 동안 고액 당첨이 가능한 번호로 매주 10~20 조합을 문자로 발송한다”고 설명했다.

A 업체는 금요일마다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로또 번호를 제공했다. 그러나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회비를 지불해야 했다. 금액은 12개월에 24만원인데 14개월 12만원 할인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B씨는 “무료 로또 번호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번호로는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없다. 그러나 회원제를 선택하면 4등이나 5등 정도는 빈번하게 당첨되고, 3등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나도 2년 전에 3등 당첨이 된 적 있다. 내가 해보지도 않고 권할 순 없는 것 아니냐. 회원권이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4등이나 5등 당첨이 계속되니 충분히 회원권보다 더 돈을 벌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히려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회원권 구매 시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해주며 매주 요일을 지정해서 1:1 패턴 지정을 해주는 집중관리를 받을 수 있다. 또한 핸드폰으로 매주 분석 번호 문자도 받게 된다. 이 번호로 로또를 구입하면 한 달에 300만~500만원은 충분히 벌 수 있다. 4등이나 5등이 되면 어차피 로또 구매 비용을 아끼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3등 이상
호언장담

B씨는 “내가 팀장인데 잘 따라오다 보면 1~2등도 충분히 가능하다. 14만원이면 한 달에 8000원 정도다. 어차피 4등 3번만 당첨돼도 12만원 냈던 금액은 모두 회수 가능하다”며 “무료 번호도 있지만 이 번호는 개인에게 맞춘 번호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당첨 확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회원권을 구매한 분석 번호가 훨씬 이득이다. 1~2년 동안 분석 번호로 이득을 본 회원 중 한 분이 혼자서 해보시겠다고 탈퇴하셨다가 최근에 다시 오셨다”고 성과를 자랑하기도 했다.

실제 A 업체 홈페이지를 보면 ‘로또 1등 후기/인터뷰’란이 있다. 가장 최근의 당첨자는 지난 8월27일(1030회)로, 홈페이지에는 로또 번호와 거래내역 확인증이 올라와 있다.


로또 1등에 당첨됐다는 C씨는 “사업한다고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 올라온 지 벌써 20년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빚만 늘어서 집에도 못 내려갔다. 사업은 다 망했고 막노동을 했다”며 “월급으로 200만~300만원을 받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A 업체를 통해서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A 업체에서 2년간 회원으로 있었다. 어느 때는 회사가 힘들어서 로또 살 돈도 없었고, 압류가 돼 회원 가입도 못 했다. 이번 주에 2만원이 수중에 있길래 로또를 구매했는데 이렇게 행운이 찾아왔다. 빚도 다 청산하고 홀가분하다. 회원들 모두 포기하지 말고 당첨될 때까지 도전하라”고 독려했다.

C씨의 로또 1등 당첨 소감글에는 “정말 축하한다” “쓸쓸하고 외로운 싸움을 했다. 고생했다” “힘들지만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 로또 당첨으로 되돌아온 것”이라는 응원의 글이 쇄도했다. A 업체의 홈페이지만 보면 로또 1등과 2등 당첨은 손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비자가 A 업체를 신뢰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홈페이지에 ▲특허청 인증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 ▲세계기록 위원회 인증 ▲로또 1등 최다 배출 인증 ▲한국 소비자 만족지수 1위 ▲로또 마킹 시스템 특허 ▲대한민국 고객 만족 브랜드 대상이 기재돼있기 때문이다.

포토샵으로 당첨자 만들어내
‘됐다’ 싶으면 파워볼로 유도

그러나 홈페이지 하단에는 ‘당사의 분석 시스템은 누적된 데이터를 분석한 정보 제공만을 목적으로 하며, 당첨 확률 개선 서비스가 아닙니다. 따라서 서비스의 성과 보장 및 환불 보장을 하지 않으며, 기대 이익을 얻지 못하거나 발생한 손해 등에 대한 최종 책임은 서비스 이용자 본인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다.

홈페이지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도 충분히 놓칠 수 있는 위치에 적혀 있었다.

누가 이런 식의 사기를 당할까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피해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로또 번호를 나눠준다는 방식은 개인 문자를 통해서 광고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입 금액이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쉽게 접근한다.

문제는 ‘로또’에서 끝나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는 ‘파워볼’이라는 숫자 선택식 복권 게임으로 진화하는 추세다. 로또 업체에 가입해서 이용하다가 파워볼 사기를 당한 D씨는 소액의 돈을 벌기 위해 로또 업체에 가입했다. 이 업체는 D씨에게 파워볼로 재테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 소액의 수익이 발생하자, D씨는 이 업체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소액의 투자금은 점점 늘어났다.

업체에선 이제 100만원부터 투자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후 “1:1 개인 프로젝트를 하면 더 큰 돈을 번다. 이틀에 걸쳐 200만원을 1억으로 만들 수 있다”고 권유했다. D씨는 이때 감쪽같이 속았다.

8개월이 지나자 D씨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4000만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1500만원의 빚만 생겼다. D씨는 “로또 번호를 받으면서 파워볼 재테크로 유도했다. 처음에는 이게 도박인지도 몰랐는데, 절대 하면 안 되는 게임이었다. 파워볼 하는 사람들 모두 그만두길 바란다. 무조건 마이너스고 무덤”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20일 KBS에는 로또 업체 내부 관계자가 이런 방법이 모두 사기라고 증언한 내용이 있다. 당시 업체 관계자는 “로또 업체는 포토샵을 이용해 가지고 지워 버리고 날짜 바꾸고 회차도 바꾼다”고 폭로했다.

조작 광고
“모두 사기”

실제로 당첨이 된 적 없는데도, 당첨 번호를 배출한 것처럼 조작한다는 것이다.  업체 관계자는 “이(분석) 시스템이 있다고는 하는데 막상 보면 없다. 방송한 당첨 번호를 보고 작업하는 것이다. 고객 중 한 명이 3등에 당첨됐다고 하면 사람들이 호기심에 시작한다”고 말했다.

경기북부경찰청 김선겸 사이버수사 1대장은 “인공지능 예측 시스템이라든지 어떤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기술적인 조치는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가짜 로또 사이트 80억원 챙긴 총책 송환

경찰청은 해외에 거점을 둔 조작된 로또 사이트로 8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인 총책 A씨를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으로 강제송환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콜센터를 둔 투자빙자 사기조직의 총책인 A씨는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가짜 로또 사이트를 만들어 원금과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모두 100여명의 피해자로부터 투자금 80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대구 중부경찰서는 A씨 조직에서 국내 홍보와 인출 등을 담당한 조직원 20명을 구속하고, 해외 도피 중인 A씨를 검거하기 위해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에 국제 공조를 요청했다.

경찰청은 지난 7월 말 A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부받아 캄보디아 경찰과 합동 추적하는 과정에서 소재지를 입수했고, 공조 개시 10일 만인 지난 8월5일 검거했다.

강기택 인터폴국제공조과장은 “이번 사건은 그간 공조가 다소 부진했던 국가에서 공조 10일 만에 해외에 숨어있는 도피 사범을 검거한 사례”라며 “해외를 거점으로 하는 범죄조직 와해를 위해 최근 캄보디아에도 경찰협력관을 파견한 만큼 앞으로도 공조 역량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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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