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대담> 살아 있는 정치사 박지원을 만나다

“7공화국 문을 여시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치 9단 박지원’이 여의도로 귀환했다. 92.35%라는 최고 득표율과 함께 ‘최고령 국회의원’이란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박 당선인은 ‘팔순 새순’ 국회의원이라며 웃어 보였지만 정치 9단이라는 별명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결코 아닐 테다. 여의도 사무실서 <일요시사>와 만난 박 당선인은 국내 정치의 현주소를 조목조목 짚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지난 4·10 총선서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 승기를 꽂는 데 성공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그는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한 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변인과 비서실장 등 굵직한 직을 두루 연임했다.

박 당선인은 <일요시사>와 만나 여의도로 복귀한 소감에 대해 “기쁘지만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며 “싸우지 않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국회,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이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을 통해 5선을 달성했다. 당선인의 동력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답게, 독립지사의 아들답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혼을 가지고 있다. 그 DNA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정치를 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민주당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동안의 변화 중 체감되는 게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 구성원도 바뀌기 때문에 당연히 민주당도 바뀌어야 한다. 개혁하고 혁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당을 위해 희생한다는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당은 충성심과 애당심이 많았다. 지금의 의원들은 개개인의 생각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쪽인 것 같다.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모님이나 윗사람이 무언가를 시키면 싫더라도 눈물을 찍찍 흘리면서 그 말을 따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않나. 시대가 변했으면 거기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 지도자는 변화를 이끌거나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수가 높아 이번 국회의장 선거에 나설 것이란 예상과 달리 불출마를 선언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후보 등록 마감 전날인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와 점심을 먹었다. 오찬 사실을 여태 공개하지 않았는데 오늘(13일 기준) 여기서 처음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날 이 대표와 1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 결과 “지금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가 나에게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직접 말한 건 아니다. 1시간 넘게 얘기하다 보면 대화의 흐름 정도로 알아챌 수 있지 않은가.

-국회의장 선거가 치러지기 전부터 후보들의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다. ‘기계적 중립은 필요없다’는 취지의 발언이 많았는데 어떻게 봤나?

▲국민의 정서는 중립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국회의장도 한때 당적을 가졌던 의원이고 임기를 마치면 당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친정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윤 대통령이 개혁, 입법, 특검 등을 향해 거부권을 남발한다면 의장으로서 삼권분립 원칙에 의해 국회 의견을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존경의 대상인 국회의장이 초반부터 “중립의 의무가 없다”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라고 하는 건 올바른 정치가 아니라고 본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 여부가 뜨거운 감자다. 박 당선인은 이 대표의 연임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인물로 꼽힌다. 당내 주요 인물들이 연임론에 군불을 때면서 점차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이 대표 연임은 당연한 것”
정권 교체의 길로 ‘뚜벅뚜벅’

하지만 지난 16일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의 주인공이었던 추미애 당선인이 국회의장 경선서 낙선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표의 의중을 뜻하는 ‘명심’은 추 당선인을 향했지만, 투표 결과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의 반작용으로 이 대표의 연임론이 굳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박 당선인은 “민주당이 아주 건강한 정당이라는 걸 국민에게 보여줬다”며 “결과적으로 우 의원의 당선이 이 대표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연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총선이 끝나고 내가 처음으로 이 대표의 연임론을 얘기했는데 당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대표의 연임은 당연하다고 본다.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이뤄진다.

총선서 승리하면서 국민은 이 대표를 재신임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2년 내내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의 절체절명 목표는 정권교체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큰 이 대표를 앞세워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각에서는 ‘친명 일색’ ‘이재명 독주’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어떠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이어가는 것과 같다. 정권교체의 길을 이 대표가 끌고 가야 한다.민주당 내 당 대표 연임을 금지하는 당헌·당규는 없다. 단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1년 전에 당원·당직을 사퇴해야 한다. 당시 김대중 총재도 문재인 대표도 전부 1년 전에 사퇴했다.

인터뷰가 중반에 접어들고 본격적으로 현 정부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정부가 각종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범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으로 향하는 길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박 당선인은 “특검 거부 마일리지는 탄핵 마일리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시기를 생생히 겪은 정치인이다. 과거를 회상하던 박 당선인은 개헌을 통한 4년 중임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시사했다. 근거는 무엇인가?

▲탄핵의 물결은 정치권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시작됐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6월 항쟁, 광우병 파동, 촛불 혁명까지 전부 민중의 불꽃이었다. 마지막 정의만 정치권서 다뤘을 뿐이다. 현재 탄핵에 대한 동력이 충분치는 않다.

일각에선 탄핵 남발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민생, 물가, 남북관계, 외교·안보 모두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6공화국 시대로 우리는 옛 시대를 정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7공화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을 대상으로 4년 중임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인가?

▲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 본인의 임기를 1년 앞당긴 2026년으로 단축하고 같은 해 지방선거를 치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 방법은 막대한 예산과 정치적 혼란도 줄일 수 있다.


이명박 전 정부 당시 여당 당 대표와 개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대표가 “책임지고 대통령을 설득하겠다”고 장담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잘 안 된 모양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단언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역사적인 미래로 가는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이 바뀌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영수회담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대통령이 변하지 않고 불통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남은 임기 동안 변화가 없다면 엄청난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15 부정선거부터 촛불집회까지
“탄핵 물결은 민중의 불꽃서 시작”

그렇게 되면 우리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강대강 국면이 이어지면 나라와 국민이 길을 잃는다. 민생을 비롯한 물가와 외교 남북관계 모두 어디로 가겠는가?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과 우리가 볼 때는 전혀 아닌데 말이다.

-용산 참모진의 문제도 있다고 보시나?

▲글쎄 참모진들도 문제지만 결국엔 대통령 스스로가 성찰하고 바뀌어야 한다.

-영수회담 추진 과정서 비공식 특사 라인이 가동됐다는 이른바 ‘용산 비선’ 논란이 불거졌다. 함성득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주축이라는데, 이는 어떻게 보고 계시나?

▲우리나라는 ‘박근혜 비선 트라우마’가 있다. 국정 농단으로 탄핵이라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선이든, 공식 라인이든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야당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서 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두 교수가 어떤 이유로 나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임 교수한테 물어보니 (사전에 답변을)조율하기로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모양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등판 시기를 예상한다면?

▲전당대회가 7월로 늦춰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시기가 늦어질수록 한 비대위원장 등판에 아스팔트를 깔아주게 된다. 현재 국민의힘 당헌·당규인 100% 당원투표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한 비대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50대 50으로 한다면 유승민 전 의원이 될 확률이 있다.

숫자에 맡길 일이지만 한 전 비대위원장과 유 전 의원 모두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으니 누가 당선되더라도 흥미진진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과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에 대한 평가도 궁금하다.

▲이번 총선서 개혁신당은 3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이 당선인은 지금처럼만 잘하시면 된다. 이 공동대표는 원내 진입에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투쟁하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민주당과 협력하는 협력 관계라고 본다.

-협력 이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합당이라든가, 아직 거기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22대 국회 개원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희망하는 상임위와 발의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다. 아무래도 지난 12년 동안 해온 것들인 만큼 익숙하기도 하다. 발의하고 싶은 법안으로는 사형제 폐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부터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2007년 국제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지만 법으로는 정비되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가법이 없으면 회원으로 받지 않는 만큼 이제는 법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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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걸리면 철퇴’ 대법정 417호의 저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원은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에게 철퇴를 내렸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00여일 만이다. 이날 선고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는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이어가게 됐다. 5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가해진 ‘대법정의 저주’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지난달 19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각종 혐의로 받는 재판 중에 가장 핵심 사안에 대한 법원의 첫 번째 판결이 이날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나오는 족족 유죄였기에 반전이라고 할 만큼 놀라운 결과는 아니었다. 443일 걸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지난달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로 윤 전 대통령은 최고형을 피해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이 형법상 내란죄가 맞다고 판시했다. 지 판사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자체는 헌법상 권한 행사로서 내란죄에 해당할 수 없고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목적에 따라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비상계엄의 목적이 국회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실관계의 핵심으로 군을 국회로 보낸 점을 꼽았다. 지 판사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국회를 제압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실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결국 군을 국회로 보낸 행위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인 ‘국헌문란 목적’과 ‘폭동’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은 국회에 군을 보내 봉쇄하고 주요 정치인 등을 체포하는 방법으로 국회 활동을 저지·마비시켜 국회가 상당 기간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하려는 목적을 내심으로 갖고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군대를 보내 폭동을 일으킨 사실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야당의 연이은 탄핵, 예산 삭감 등에 따른 국가 위기를 타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비상계엄이었다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는 “명분과 목적을 혼동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지 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도 언급했다. 전두환·노태우·박근혜·이명박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 5명 국가 위기 상황 타개는 명분에 불과할 뿐 본질은 헌법기관의 마비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공수처가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없다며 수사의 적법성을 문제 삼아 왔다. 재판부는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고 하더라도 검찰은 공수처 송부 기록 외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기소한 것으로 보이고 공수처가 수집한 증거를 다 빼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유죄 판단을 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정리했다. 검찰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이하 내란 특검)의 주장 중 윤 전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하기 위해 2023년께부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를 제압할 의도로 내외적 여건을 조성했다는 공소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준비가 허술했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무력화할 계획 등에 관한 별다른 증거나 자료,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외에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내란 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돼 징역 30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징역 18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징역 12년, 김종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징역 10년, 목현태 전 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최고형 피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선고 닷새 만인 지난달 24일 항소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법정의 기록은 물론, 훗날 역사의 기록 앞에서도 이번 판단의 문제점을 분명히 남겨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특검의 무리한 기소, 그 전제 위에서 이뤄진 1심의 모순된 판단과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저희는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으면서 서울중앙지법 대법정 417호의 ‘저주’가 이번에도 나타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법정 417호는 150석 규모의 형사 법정이다. 대법정 417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곳에서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5명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생길만한 대목이다. 전두환씨, 노태우 전 대통령의 하늘색 반팔 수의 차림은 국민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다. 최고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법정에 서서 판결을 듣고 있는 모습 자체가 충격인 시대였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우두머리(당시 내란 수괴) 등 혐의로 넘겨진 전직 대통령은 대법정 417호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996년 당시 검찰은 반란 및 내란 수괴 외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 총 10개 죄목으로 전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9개 죄목으로 기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전 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노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22년6개월, 2심에서 징역 17년, 이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국정 농단 다스 재판 그로부터 30여년 뒤 윤 전 대통령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 측 구형도 사형으로 같았다. 내란 특검은 지난 1월13일 “법률가로서 검찰총장까지 지낸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 누구보다 앞장서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헌법 질서 파괴로 나아간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피고인은 반성하지 않는다. 양형에 참작할 사유가 없고 오히려 중한 형을 정해야 한다”고 구형 배경을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의 1심 선고도 대법정 417호에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으로 지위를 잃고 구속 기소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등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남용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국민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였다. 2018년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231억9427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4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16년 10월 이후 불거진 국정 혼란의 장본인으로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 농단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국정 혼란과 대통령 파면의 주된 책임은 피고인과 최순실에게 있다”며 “그럼에도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책임을 주변에 전가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받던 18개 혐의 중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등 16개를 유죄로 봤다. 150명 규모 방청석 역사적 재판의 현장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다스의 실소유주를 이 전 대통령으로 결론 내리면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논란에 종지부가 찍힌 순간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선거 기간 내내 피고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됐지만 피고인의 결백을 믿는 다수의 국민 덕분에 피고인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며 “피고인은 대통령으로서의 막강한 권한을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 전체를 위해 행사해야 할 책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재판 결과 피고인이 친인척 명의를 빌려 다스를 설립해 실소유하면서 246억원가량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범행 기간이 길고 이득액이 상당하며 범행 당시 이미 국회의원, 서울시장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비판했다. 또 “의혹만 가득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질렀던 다른 범행이 함께 드러남으로써 당시 피고인을 믿고 지지했던 국민은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실망과 불신을 안겼다”며 “그런데도 친인척이나 측근이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등 책임을 전가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되풀이된 30년 역사 전직 대통령 관련 재판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 대법정 417호에서 열리는 건 규모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이 방청을 원하기에 대형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5명의 전직 대통령은 방청석의 150여명과 실시간으로 중계된 재판을 본 국민 앞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