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대담> 살아 있는 정치사 박지원을 만나다

“7공화국 문을 여시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치 9단 박지원’이 여의도로 귀환했다. 92.35%라는 최고 득표율과 함께 ‘최고령 국회의원’이란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박 당선인은 ‘팔순 새순’ 국회의원이라며 웃어 보였지만 정치 9단이라는 별명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결코 아닐 테다. 여의도 사무실서 <일요시사>와 만난 박 당선인은 국내 정치의 현주소를 조목조목 짚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지원 당선인은 지난 4·10 총선서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 승기를 꽂는 데 성공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그는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한 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변인과 비서실장 등 굵직한 직을 두루 연임했다.

박 당선인은 <일요시사>와 만나 여의도로 복귀한 소감에 대해 “기쁘지만 막중한 책임감도 느낀다”며 “싸우지 않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국회,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이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지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총선을 통해 5선을 달성했다. 당선인의 동력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답게, 독립지사의 아들답게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혼을 가지고 있다. 그 DNA가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열심히 정치를 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민주당의 역사를 함께했다. 그동안의 변화 중 체감되는 게 있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 구성원도 바뀌기 때문에 당연히 민주당도 바뀌어야 한다. 개혁하고 혁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당을 위해 희생한다는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당은 충성심과 애당심이 많았다. 지금의 의원들은 개개인의 생각을 조금 더 중요시하는 쪽인 것 같다.

-선당후사 정신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부모님이나 윗사람이 무언가를 시키면 싫더라도 눈물을 찍찍 흘리면서 그 말을 따랐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않나. 시대가 변했으면 거기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도 “정치 지도자는 변화를 이끌거나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수가 높아 이번 국회의장 선거에 나설 것이란 예상과 달리 불출마를 선언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후보 등록 마감 전날인 지난 8일, 이재명 대표와 점심을 먹었다. 오찬 사실을 여태 공개하지 않았는데 오늘(13일 기준) 여기서 처음으로 밝히는 것이다. 그날 이 대표와 1시간 반 동안 진지하게 얘기를 나눈 결과 “지금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표가 나에게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직접 말한 건 아니다. 1시간 넘게 얘기하다 보면 대화의 흐름 정도로 알아챌 수 있지 않은가.

-국회의장 선거가 치러지기 전부터 후보들의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다. ‘기계적 중립은 필요없다’는 취지의 발언이 많았는데 어떻게 봤나?

▲국민의 정서는 중립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국회의장도 한때 당적을 가졌던 의원이고 임기를 마치면 당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친정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윤 대통령이 개혁, 입법, 특검 등을 향해 거부권을 남발한다면 의장으로서 삼권분립 원칙에 의해 국회 의견을 존중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존경의 대상인 국회의장이 초반부터 “중립의 의무가 없다” “중립을 지키지 않겠다”라고 하는 건 올바른 정치가 아니라고 본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 여부가 뜨거운 감자다. 박 당선인은 이 대표의 연임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인물로 꼽힌다. 당내 주요 인물들이 연임론에 군불을 때면서 점차 기정사실이 되는 듯했다.

“이 대표 연임은 당연한 것”
정권 교체의 길로 ‘뚜벅뚜벅’

하지만 지난 16일 ‘어의추(어차피 의장은 추미애)’의 주인공이었던 추미애 당선인이 국회의장 경선서 낙선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표의 의중을 뜻하는 ‘명심’은 추 당선인을 향했지만, 투표 결과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의 반작용으로 이 대표의 연임론이 굳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와 관련해 박 당선인은 “민주당이 아주 건강한 정당이라는 걸 국민에게 보여줬다”며 “결과적으로 우 의원의 당선이 이 대표를 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연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총선이 끝나고 내가 처음으로 이 대표의 연임론을 얘기했는데 당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대표의 연임은 당연하다고 본다. 정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이뤄진다.

총선서 승리하면서 국민은 이 대표를 재신임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2년 내내 차기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당의 절체절명 목표는 정권교체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큰 이 대표를 앞세워서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일각에서는 ‘친명 일색’ ‘이재명 독주’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어떠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이어가는 것과 같다. 정권교체의 길을 이 대표가 끌고 가야 한다.민주당 내 당 대표 연임을 금지하는 당헌·당규는 없다. 단 대통령 후보가 되려면 1년 전에 당원·당직을 사퇴해야 한다. 당시 김대중 총재도 문재인 대표도 전부 1년 전에 사퇴했다.

인터뷰가 중반에 접어들고 본격적으로 현 정부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로 올랐다. 정부가 각종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자 범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으로 향하는 길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박 당선인은 “특검 거부 마일리지는 탄핵 마일리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던 시기를 생생히 겪은 정치인이다. 과거를 회상하던 박 당선인은 개헌을 통한 4년 중임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을 시사했다. 근거는 무엇인가?

▲탄핵의 물결은 정치권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시작됐다. 3·15 부정선거, 4·19 혁명, 6월 항쟁, 광우병 파동, 촛불 혁명까지 전부 민중의 불꽃이었다. 마지막 정의만 정치권서 다뤘을 뿐이다. 현재 탄핵에 대한 동력이 충분치는 않다.

일각에선 탄핵 남발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민생, 물가, 남북관계, 외교·안보 모두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지금은 6공화국 시대로 우리는 옛 시대를 정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하는 것을 시작으로 7공화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을 대상으로 4년 중임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인가?

▲윤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 본인의 임기를 1년 앞당긴 2026년으로 단축하고 같은 해 지방선거를 치르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이 방법은 막대한 예산과 정치적 혼란도 줄일 수 있다.


이명박 전 정부 당시 여당 당 대표와 개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대표가 “책임지고 대통령을 설득하겠다”고 장담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잘 안 된 모양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단언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역사적인 미래로 가는 제7공화국의 문을 여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총선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이 바뀌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영수회담과 취임 2주년 기자회견 등을 진행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대통령이 변하지 않고 불통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남은 임기 동안 변화가 없다면 엄청난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3·15 부정선거부터 촛불집회까지
“탄핵 물결은 민중의 불꽃서 시작”

그렇게 되면 우리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국회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강대강 국면이 이어지면 나라와 국민이 길을 잃는다. 민생을 비롯한 물가와 외교 남북관계 모두 어디로 가겠는가?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민과 우리가 볼 때는 전혀 아닌데 말이다.

-용산 참모진의 문제도 있다고 보시나?

▲글쎄 참모진들도 문제지만 결국엔 대통령 스스로가 성찰하고 바뀌어야 한다.

-영수회담 추진 과정서 비공식 특사 라인이 가동됐다는 이른바 ‘용산 비선’ 논란이 불거졌다. 함성득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혁백 고려대학교 명예교수가 주축이라는데, 이는 어떻게 보고 계시나?

▲우리나라는 ‘박근혜 비선 트라우마’가 있다. 국정 농단으로 탄핵이라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선이든, 공식 라인이든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야당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서 농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두 교수가 어떤 이유로 나섰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임 교수한테 물어보니 (사전에 답변을)조율하기로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모양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등판 시기를 예상한다면?

▲전당대회가 7월로 늦춰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시기가 늦어질수록 한 비대위원장 등판에 아스팔트를 깔아주게 된다. 현재 국민의힘 당헌·당규인 100% 당원투표로 전당대회를 치른다면 한 비대위원장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50대 50으로 한다면 유승민 전 의원이 될 확률이 있다.

숫자에 맡길 일이지만 한 전 비대위원장과 유 전 의원 모두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으니 누가 당선되더라도 흥미진진하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과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에 대한 평가도 궁금하다.

▲이번 총선서 개혁신당은 3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이 당선인은 지금처럼만 잘하시면 된다. 이 공동대표는 원내 진입에 실패했지만 계속해서 투쟁하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

▲민주당과 협력하는 협력 관계라고 본다.

-협력 이상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합당이라든가, 아직 거기까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22대 국회 개원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희망하는 상임위와 발의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보위원회다. 아무래도 지난 12년 동안 해온 것들인 만큼 익숙하기도 하다. 발의하고 싶은 법안으로는 사형제 폐지가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0일부터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았다. 2007년 국제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에 의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됐지만 법으로는 정비되지 않았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가법이 없으면 회원으로 받지 않는 만큼 이제는 법과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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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