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튄 흉악범 6인 추적> <단독> 검거된 ‘도박왕 조삼’ 사라진 1조3000억 추적

입수한 공소장 보니 “돈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필리핀 도박왕’ 김모씨가 송환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9월 구속 기소됐으나 아직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았다. 범죄조직단체 및 도박 혐의를 받는 만큼 중형이 선고돼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부당이득을 환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금액만 약 1조3000억원이다.

‘필리핀 도박왕’ 김모씨는 2년간 국내 송환을 피해 1조3000억원대 도박 수익을 냈다. 그의 별명이 ‘조삼’이라고 불린 이유다. 사정당국은 이 금액을 환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사 과정서 포착하지 못한 차명계좌의 존재가 걸림돌이다. 당국은 사실혼 관계로 추정되는 그의 두 번째 아내가 핵심 ‘키맨’이라고 보고 있다.

역대급
불법 수익

김씨의 도박사이트 운영은 2014년 10월부터 이뤄졌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2019년 9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김씨가 필리핀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결정적인 첩보를 입수했다.

경찰은 관련 첩보 자료를 국정원과 함께 분석한 뒤 김씨를 포함해 22명에 대한 국제형사경찰기구(이하 인터폴) 적색수배를 발부받고, 국정원·필리핀 수사당국과 2년간 이들의 행방을 쫓았다.

검거 당시 김씨는 최고급 리조트에 거주하며 마이바흐 등 고가 외제차량 10대를 타는 초호화 생활을 하고 있었다. 평소 무장 경호원들도 대동하고 있어 붙잡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 2021년 9월18일, 경찰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 담당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 추적팀 FSU, 현지 경찰특공대 등 30여명으로 꾸려진 검거팀은 김씨의 거주지를 급습해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러나 필리핀 형사사법체계를 잘 아는 그는 현지서 형사사건에 엮이면 재판 종결 전까지는 한국으로 추방되지 않는다는 꼼수를 이용했다.

타인에게 자신을 사기와 특수협박 혐의로 2차례나 고소하게 한 것이다.

국내 송환이 계속 미뤄지자, 경찰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을 통해 필리핀 법무부에 조기 송환 협조를 요청했다. 경찰은 지난해 7월부터 필리핀 법무부와 매주 실무회의를 열었고, 양국 간 공조로 필리핀 법무부의 추방 결정을 끌어냈다.

그는 막판까지 국내 송환을 늦추려고 발버둥 쳤다. 추방 결정이 난 뒤에도 다시 제3자로 하여금 자신을 위조수표 사용 등 조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게 한 것이다. 필리핀 법무부가 추방 결정을 번복하자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이상화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는 송환 협조를 재차 강력하게 요청했다.

결국 필리핀 법무부가 이 대사의 요청을 받아들이며 그의 시도는 불발됐다.

결론적으로 경찰은 김씨와 2020년부터 필리핀에 체류 중이던 조직원 20명 중 16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서울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국내 조직원 177명 중 166명을 검거해 사실상 범죄조직을 와해시켰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말 송환돼 구속 기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필리핀 도주 후 200여명 규모 범죄조직 꾸려
체포 2년 만 국내 송환…지난해 9월부터 재판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범죄단체조직·활동 ▲도박 공간개설 및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김씨 조직 사이트의 서버는 서울과 일본, 홍콩 등에 있었다. 2017년 2월 필리핀 마닐라로 도주한 김씨는 마카티에 있는 한 호텔 카지노서 진행되는 바카라 등의 도박을 생중계해 이용자들로부터 게임의 결과에 돈을 결제하게 하는 사설 스포츠 토토 도박사이트를 만들었다.

이용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와의 거래가 시작된 것이다.

그의 조직은 철저했다. 마닐라에 오자마자 2020년 5월까지 모집된 200여명의 조직원들을 총괄 관리하면서 ▲스포츠토토팀 ▲바카라팀 ▲사이트관리팀 ▲지원팀으로 나눠 팀장과 팀원까지 정했다.

스포츠토토팀은 사이트관리팀이 제작한 카바라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도금을 배팅하는 것을 모니터링하면서 지정된 계좌의 대포통장으로 도금이 입금되는 것을 확인하고 게임머니를 충전해 줬다. 특히 총판 모집 및 지원팀의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홍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인터넷 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사이트관리팀인 CS팀은 도박사이트 제작과 관리에 집중했다. 팀장들은 팀원들의 업무에 따른 수익을 정산해 총책인 김씨와 이사에게 보고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 팀원들에게 전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특히 김씨가 텔레그램을 통해 업무지시가 이뤄지면 조직원들이 서로를 본명이 아닌 명칭으로 부르게 해 수사기관이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했다.

변호사 교체
시간 끌기?

지원팀은 CS팀의 백업 역할을 담당했다. 지원팀은 개인정보 판매업자로부터 구입한 불특정 인물들의 핸드폰 번호 중 신규회원으로의 유치가 가능하거나 관리가 필요한 회원들의 정보를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다른 팀이 해당 데이터로 회원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같은 방법으로 김씨의 조직은 150개가 넘는 계좌로 약 150만회에 걸쳐 도박사이트 이용자들로부터 1조3000억원이 넘는 돈을 입금받아 약 40억원을 취득했다. 사이트가 2021년까지 운영됐던 점을 고려하면 김씨가 굴린 판돈 전체 규모는 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취득한 범죄수익에 관한 취득이나 처분을 은닉하기 위해 타 명의의 가상자산 거래 계정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부 수익금으로 가상화폐를 매수하고 거래소 거래를 통해 매도해 현금화한 이후 천안 시내에 위치한 한 토지를 매수하려 했다.

김씨의 조직이 소탕됐으나 아직 해결돼야 하는 문제는 산더미다. 1조원이 넘는 부당이익금을 환수하고 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김씨가 재판에 넘겨진 지 6개월 가까이 지났음에도 아직 1심 선고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의 공소장이 접수된 건 지난해 9월20일이다. 김씨는 이때부터 ‘시간 끌기’ 전략을 썼다. 그가 처음 선임한 법무법인은 공소장이 접수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임했다. 개인 변호사는 공판기일 연기를 신청했다.


그다음에 선임했던 대형 로펌은 선임계를 중앙지법에 제출한 다음 날, 사임신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장검사,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선임해 이른바 전관 혜택을 노리는 모양새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재판 절차를 미루기 위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며 “6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공판이 다섯차례도 진행되지 않은 건 피고인이 재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거나 불구속 구사를 받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봤다.

차명계좌
운영 의혹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김씨의 혐의를 두고 사기도박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 내용에 밝은 한 수사관은 “수년간 이뤄진 조직적인 범죄고 수사 과정서 김씨가 보이스피싱을 주도했다는 정황도 여러번 포착된 바 있다”며 “검찰의 추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른 수사관도 “1조3000억원대 부당이익은 역대급 범죄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중형이 선고되기 어렵지 않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추가 기소가 이뤄지는 걸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를 기망한 행위를 입증해야 한다. 승률을 조작했다거나 이용자들을 속였다는 근거가 필요하다. 단순히 인터넷상에 도박장을 개설하거나 상대방과 도박하는 구조를 만들고 수수료 형식으로만 수익을 냈다면 사기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남부지검의 한 검사도 “차후 공소장 변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검찰서 신중하게 기소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이 전관을 썼다고 해도 재판부서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에는 어려운 사례”라고 말했다.

윤석열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검찰은 ‘범죄수익환수’에도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대검찰청은 일선 검찰청에 도박사이트 운영 및 자금세탁 조직원의 재산을 철저히 추적해 몰수·추징보전 조치하고, 실물 재산도 압수해 범죄수익을 완전히 박탈하도록 지시했다.

그동안 도박사이트 운영자들은 도박 개장 혐의로 기소됐으나 형량이 높지 않아 ‘몇 년 징역 살고 나오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만약 조세포탈죄로 기소하면 포탈세액이 1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징역 5년 이상 선고가 가능하고, 포탈세액의 2~5배 상당의 벌금도 필요적으로 병과할 수 있어 실질적인 범죄수익환수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범죄수익환수 대응팀에는 법무부, 교육부, 문체부, 복지부, 여가부, 방통위, 대검찰청, 경찰청,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포함) 등 9개 부처가 참여하고 있다.

부당이득금 환수 불가
“사막서 바늘 찾는 격”

그러나 국내의 미납 세금은 역대 최대로 쌓여있는 체납액만 100조원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80% 이상은 사실상 못 받을 가능성이 큰 세금으로 분류돼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누계체납액은 102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징수 가능성이 큰 정리 중 체납액은 전체의 15.2%인 15조6000억원에 그쳤다. 못 받을 가능성이 큰 정리보류 체납액은 86조9000억원이다. 범죄수익의 경우 전체 추징액 대비 환수로 이어지는 금액이 1%에도 못 미친다.

동년 기준 유죄판결이 확정됐지만 거둬들이지 못한 추징액 규모는 31조4000억원에 달한다. 미납 세금처럼 징수할 방법이 제한적인 데다, 현행법상 추징금은 벌금과 달리 노역장 유치 집행과 같은 방법으로 납부를 압박할 수도 없다.

김씨 사건의 경우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직원들을 통해 은닉하거나 벌어들인 수익 일부를 필리핀 길거리 환전소서 대량으로 바꿔치는 방법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코인 거래소도 추적이 어려운데 수십서 수백만원을 환전소서 현금화한다면 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김씨가 은닉한 금액을 추적할 순 있어도 이미 현금화된 돈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사정당국은 김씨의 두 번째 아내로 추정되는 A씨가 김씨의 수익 일부를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대포통장으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 필리핀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사 중”이라며 “범죄수익환수를 담당하는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A씨가 관리하는 금액의 규모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다. 당국 안팎에서는 수천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현재까지 첩보일 뿐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다.

부자가 아니었던 A씨는 김씨를 만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린 적이 없다. 마땅한 직업이 없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다. A씨는 현재 마닐라 지역 중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꼽히는 곳에 거주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의 자식은 일반인이 다닐 수 없는 국제학교를 다니며 호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세컨드가
핵심 키맨?

대검 관계자는 “마약 수사와 더불어 범죄수익환수도 지난해부터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문제다. 지금까지 검찰이 환수한 범죄수익환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은 김씨 사건과 관련해 타 기관 조사관들과 현지에 상주하며 들여다보고 있다. 아직 조사가 이뤄지고 있기에 자세한 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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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