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식 부대원 미스터리’ 대통령실 묵인 의혹

40년 전 사건 알고도 임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대통령실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부대원 사인 조작 의혹’을 알고도 임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종료 후 종합보고서가 대통령실에 접수된 사실을 감안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신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게 사실입니까?” 고상만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 사무국장이 진상규명위 활동 종료 보고서가 대통령실에 보고된 지난 9월, 대통령실 행정관에게 들은 말이다. 당시 후보자 신분이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부대원 사인 조작 의혹이 보고서에 담겼기 때문이다. 당시 파장은 일파만파였다고 한다. 

사인이
뭐길래…

대통령실서 수차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여느 때처럼 임명을 밀어붙였다.

고 전 사무국장은 2023년 말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에 출연해 신 장관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 1985년에 일어났던 이른바 ‘이 일병 사망사고’ 원인을 은폐하려 했다는 게 골자다. 이 사건은 신 장관이 약 40년 전, 중대장으로 있던 부대서 발생했던 사망사고다.

1985년 10월 당시 훈련 도중 이 일병이 불발탄을 밟고 숨진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진상규명위는 2022년 10월 재조사 끝에 훈련 중 발사된 60mm 박격포 포탄을 맞아 숨졌고, 신 장관을 포함한 부대 지휘관 및 간부들이 사고 원인을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고 전 사무국장은 이 사건을 상세하게 조사했다. 정확한 날짜는 1985년 10월24일 경기도 포천 훈련장서 육군 8사단 공지합동훈련이 있을 때였다. 신 장관은 화기 소대장에게 무전으로 박격포 발포 명령을 내리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고 전 사무국장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서 “신 장관이 화기 소대장에게 무전 명령으로 사거리를 전달했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장관이 화기 소대장에게 정확한 사거리를 알리지 않고 막연하게 멀리 한 발 쏘라고 했다는 주장이다.

1985년 중대장 시절 이 일병 사망 은폐?
대대장과 참고인 진술 달라…책임 전가?

또 화기 소대장이 있는 위치에서는 중대원의 위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포는 목표지점을 넘어갔고 신 장관은 화기 소대장에게 짧게 쏘라고 재차 지시했다고 했다.

결국 두 번째 박격포 탄이 건너편 산 중턱에 대기하고 있던 이 일병의 발밑에 떨어지면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 사건을 목격한 당시 전우들의 증언이다. 당시 중대원들은 이 일병이 사망하자 신 장관을 비롯한 부대 간부들이 이를 불발탄 폭사로 왜곡 조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장관은 진상규명위의 참고인 조사에 석 달 만에 응하기도 했다. 신 장관이 진상규명위로부터 처음 공문을 받은 것은 2022년 8월22일이지만 조사에 응한 것은 같은 해 11월28일이다. 신 장관 측은 진상규명위의 조사에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진상규명위 조사보고서에는 “A 보좌관은 ‘명백한 사건을 조사하는 이유가 뭐냐’면서 ‘과거 군 수사기록이 있을 텐데 그것에 다 기록이 돼있지 않느냐’고 주장함”이라고 적혀있다.


또 “A 보좌관은 ‘(먼저 조사받은)대대장으로부터 담당 조사관이 진술을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였다고 들었다’고 하며, 다른 주장을 하는 부대원의 명단을 요청함”이라고 나와 있다.

진상규명위는 2022년 9월14일과 9월22일 신 장관 측에 연락해 ‘조사 기한이 임박했다’ ‘서면조사도 가능하다’고 알렸으나 신 장관 측은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25일 이후 직접 대면조사가 가능하다”며 일정을 미뤘다. 약속한 기한이 지난 11월8일과 11월10일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11월16일 통화에서는 “바쁘다. 시간이 없다”고 답변했다.

“바쁘다”
미루기

신 장관은 군사망위 조사 당시 “중대 지휘관측소(OP)에 위치해 있었다”며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망 현장이나 환자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불발탄 사망’을 주장한 지휘관의 말은 달랐다. 당시 대대장이었던 김모씨는 “뻥 소리를 듣고 중대장과 대대장이 현장에 달려갔다. 현장서 가까운 중대장이 먼저 와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 일병이)‘소대장님 다리가 아픕니다’라고 얘기했고, 군의관과 소대장이 지혈하면서 ‘조금만 참아라, 괜찮다’고 답했다”며 “나와 중대장 신원식은 그 소리를 듣고 그동안 자부심을 갖고 근무해왔는데 우리를 찾지 않고 소대장만 찾아 섭섭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를 신원식도 했다. 그래서 사고 상황을 기억한다”며 “(이후) 엠뷸런스가 왔다”고도 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병사 이모씨도 “곧 중대장과 포반장 등도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그 자리서 중대장이 포반장에게 고함을 지르며 질책했다”고 했다.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대대장은 중대장을, 중대장은 대대장을 최초 발화자로 지목했다.

신 장관은 “사망 원인은 헌병대 수사 결과를 확인하신 대대장님 설명에 따라 인지했다”며 “대대장님이 ‘망인이 돌격 사격하던 중 엎드려 있다가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병대서 조사받지 않았다”고 했다.

“용산 차원
조사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헌병대서 나에게 (사건에 대해)물었겠지만 설명한 기억은 없고, 중대장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신 후보자가 먼저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판초에 구멍이 뽕뽕 난 것을 보니 203 유발탄(불발탄)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며 “‘누가 봤겠나. 지가 걸어가다 불발탄을 찬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그 상황이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헌병대 수사보고서에는 이 일병의 사체를 검안한 결과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의 사망 원인은 ‘양대퇴부 및 흉부 파편창에 의한 과다출혈’이었다. 문제는 이 기록지를 작성한 사단의무대 군의관 대위 전모씨는 진상규명위 조사에서 사체 검안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 일병 사인을 밝힐 핵심 증거인 탄 파편은 조사조차 되지 않았다. 진상규명위는 당시 현장 사진, 기록 등 탄 파편 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를 국방부에 요청했으나 군은 ‘해당 자료가 없다’고 회신했다. 국방부의 설명대로 사인을 공식 확인하기 위한 부검도 진행되지 않았다.

진상위 종료 후 직보
행정관도 수차례 확인

진상규명위가 활동을 종료한 건 2023년 9월13일이다. 5년간 활동을 이어왔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사는 수두룩하다.

앞서 송기춘 전 진상규명위원장은 “군 복무 중 사망했지만 순직자로 인정되지 않은 분이 약 3만9000명에 달한다”며 “이분들에 대한 예우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옳은지 말씀드리고 싶다”며 활동 기한 연장을 강조하기도 했다.

진상규명위는 1787건의 진정사건과 66건의 직권사건을 조사해 63.7%에 달하는 1180건의 진상을 규명했다. 217건은 취하, 151건 각하, 203건 기각, 진상규명 불능 89건 등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가 진상규명을 통해 국방부에 전사·순직 여부를 재심사할 것을 요청한 사건 중 94.7%가 전사·순직으로 인정됐고, 경찰청과 법무부에 재심사를 요청한 사건도 각각 94.6%와 100% 순직으로 인정됐다.


위원회 활동 연장을 위해선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돼야 했다. 2023년 5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위원회 조사 기간을 3년 연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활동 종료 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반된 진술
여전한 의문

진상규명위 활동 종료 후 결론이 종합된 보고서는 대통령실로 넘어갔다. 종합보고서가 넘어간 시점은 윤 대통령이 신 장관을 임명하기 이전이다. 윤 대통령이 보고서를 상세하게 보지 않았거나 알고도 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는 지적이다.

고 전 사무국장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서 이 사건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인사청문회 당시 신원식씨가 사실 여부를 부인한 것과 관련해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서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북 도발에 참수 훈련?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2023년 12월18일 MBN <뉴스7>에 출연해 참수작전 훈련이나 전략자산 추가 전개를 옵션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특수전 부대는 공중기동, 핵심시설에 대한 습격, 내부소탕 훈련을 하고 있다”며 “참수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전략자산 추가 전개에 대해서는 “수일 이내로 협의하고 있다”며 “전략자산 전개에 따른 한미, 한미일 훈련까지 염두에 두고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전 8시 24분쯤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해당 미사일은 고각으로 발사돼 약 1000km를 비행한 뒤 동해에 떨어졌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최고 고도는 약 6000km다.

전형적인 ICBM의 고각발사 궤도다. 이번에 쏜 미사일이 화성-18형이 맞다면, 지난 4월과 7월 이후 3번째 발사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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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