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등판’ 한동훈 칼자루의 양날

드디어 납셨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일휘소탕혈염산하’(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이순신 장군의 검에 새겨져 있던 문구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이순신으로 빗대 표현했다. 난관을 헤쳐나갈 적임자라고. 그러나 한 비대위원장은 검사 시절 ‘조선제일검’으로 불렸다. 잘 드는 도구에 그칠 지, 총선서 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의 정치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의 전격 사퇴 이후 다시 한번 격랑의 시간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이 최종 결단을 내렸다. 앞서 윤재옥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은 상당히 숙고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진연석회의를 시작으로 의원총회, 의원 및 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서 한 비대위원장에 관한 찬성 비율이 6대4 혹은 7대3 정도라고 밝혔다. 

이슈몰이
관심 집중

지난 20일에는 상임고문단 회의까지 개최했다. 한 비대위원장의 임명을 위해 절차적 정당성을 쌓아 올린 셈이다. 빠른 비대위원장 인선으로 당내 혼란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 

이 자리서 상임고문단은 윤 대행을 향해 기용하라는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지난 21일 한 비대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직을 내던졌다.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이면서 데뷔가 이뤄진 셈이다. 

서울 모처서 윤 대행을 만나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비대위원장의 지명은 당초 예상보다 신속하게 이뤄졌다. 김 전 대표가 주류 희생을 둘러싼 당 혁신위와의 갈등 국면서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해왔으며, 사퇴 후 8일 만이다.


이날 윤 대행은 “한 비대위원장은 정치개혁을 이룰 가장 젊고 참신한 비대위원장”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 비대위원장의 비대위원장 인선 과정은 쉽지 않았다. 국민의힘 내부서 비토 정서가 곳곳서 발현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단 정치권의 이슈를 끌어오는 데는 성공했다.

현재 정치권은 곳곳서 분열 조짐이 가득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창당,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창당 등 곳곳서 신당을 만들기 위한 행보가 가속화되는 중이다. 

이 같은 사안들을 한 비대위원장이 모두 삼켜버렸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지점이다. 김 전 대표 사퇴 이후 국민의힘이 또다시 격랑의 정국으로 빠져드는 모양새였지만, 한 비대위원장이라는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리스크가 감춰졌다. 

한 비대위원장 본인도 발표에 앞서 사실상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못 박는 듯한 발언도 다수 내놨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찾아 “세상 모든 길은 처음에는 다 길이 아니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많은 사람이 같이하면 길이 된다”며 “진짜 위기는 경험이 부족해서라기보다 과도하게 계산하고 몸을 사릴 때 보인 경우가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취재진의 ‘윤석열 대통령의 아바타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누구도 맹종한 적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8일 만에 빠르게 비대위원장 수락
보수 결집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


이 같은 한 비대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겠다는 뜻으로 정치권은 해석했다. 이미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들은 한 비대위원장 추대를 위해 계속 판을 깔아왔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어느 정도 이점을 가져갔다. 이번이 벌써 3번째 비대위 체제지만, 비대위보다는 ‘정치인 한동훈’에 모든 시선과 관심이 쏠린다. 한 비대위원장의 인물론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암시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비대위원장의 손 안에 국민의힘의 명운이 달려 있다. 우선 보수 대권주자 후보로 1위를 질주 중이다. 
대중적인 이미지는 여느 정치인과 비교했을 때 뒤쳐지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한 비대위원장을 연호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역대 법무부 장관 중 한 비대위원장만큼 인지도가 높은 인물도 없다. 내년 총선서 인물론으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될 것임을 고려했을 때 당의 얼굴마담으로 세우기에는 적합하다. 실제로 그는 여의도 느낌을 지울 수 있고, 젊은 엘리트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다.

존재감과 인물 하나만으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또한 크다. 한 비대위원장의 등장 이전까지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차기 보수 대선후보로 불렸으나, 이제는 그가 대체 불가능한 수준의 지지율로 올라섰다.

비대위원장 후보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이 거론됐지만, 한 비대위원장을 뛰어넘는 관심을 받은 이는 없었다. 한 비대위원장은 보수 조직의 결집 측면서도 상당히 유리하다. 이준석 전 대표 사태 이후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분열을 거듭해왔다. 당연히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서도 갑론을박이 잦았다. 

과연 한 비대위원장이 갈라진 부분을 봉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갈등을 종식시킬 경우, 한 비대위원장은 정치인으로서 더욱 체급을 키울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 비대위원장은 당정 일체 체제를 한층 더 굳힐 수도 있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당정 일체가 필요하다가 강조해왔으나, 여러 문제들로 인해 관계가 견고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비록 수직적 관계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다수 야당에 둘러싸인 국민의힘이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국민의힘
간판으로 

이를 한 비대위원장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국민의힘은 여당임에도 할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비대위원장은 윤석열정부 2인자라는 인식과 함께 황태자로도 불린다. 그런 그가 못할 말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적어도 우려 목소리 정도는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공방전서도 활약할 모습이 그려진다.

민주당은 한 비대위원장을 겉으로는 반기고 있지만, 이제는 대놓고 한 비대위원장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저격하겠다는 액션을 취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표는 여전히 사법 리스크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계파 간 분란이 지속 중인데, 한 비대위원장마저 이 대표에 공격을 경우, 파급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 비대위원장도 여러 난관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우선 2인자라는 인식 때문에 윤 대통령과 얼마나 거리를 줄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적어도 현 체제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하다. 

누군가를 맹종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보였던 모습과 달리 자기 뜻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윤 대통령의 아바타, ‘찐윤(진짜 윤석열 핵심 관계자)’이라고 불리지만, 조금이라도 윤 대통령을 엄호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빈틈이 생겨버린다. 

일각에서는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민주당에서는 이 대표와의 검사 피의자 관계 설정보다도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물고 늘어진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은 “미친 짓이다. 그래서 저희는 감사하다”며 “오른팔을 당 대표로 세우면, 윤 대통령 심판 정서를 더 키운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한 비대위원장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전망된다. 관계의 깊숙함 탓에 늘 윤 대통령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것으로 보인다.

잘하면 대박
못하면 쪽박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대장동 50억-김건희 여사 주가조작으로 불리는 쌍특검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다. 민주당은 쌍특검 처리를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상당하다. 쌍특검 처리는 내년 총선 정국에 앞서 민주당과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안건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이를 방어해야 할 처지로 특히 김건희 특검이 발등에 떨어진 과제로 평가되고 있다. 이 말인즉슨, 한 비대위원장도 첫 번째로 부딪히게 될 난관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벌써부터 김 여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 해당 법안들은 정의당 특검 추천으로 결정하게 돼있다.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는 독소조항이 있다”며 “다음 총선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동하기 좋게 시점을 특정해 만들어진 악법”이라고 주장했다.

한 비대위원장과 김 여사의 관계는 윤 대통령만큼이나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가 검찰에 몸 담았던 시절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사이다. 김 여사의 호위무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첫 번째 미션인 김 여사 특검 방어를 위해서는 신중한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가장 유력한 방식은 쌍특검을 받은 뒤, 총선 뒤에 처리하자는 방침을 내세울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를 받고 나서 민주당은 김 여사의 또 다른 의혹인 서울양평고속도로, 명품백 사안을 줄줄이 꺼내들게 뻔하다는 것이다.

주가조작 의혹 특검을 처리한 뒤 한 비대위원장의 입장이 바뀐다면, 국민의힘으로서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한 비대위원장의 인물론이 먹혀들지 않고, 윤 대통령의 하수인 격으로 입지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빌미로 민주당은 벌써부터 한 비대위원장을 공격하고 나섰다. 겉으로는 축하 분위기지만, 한 비대위원장은 검사 재직 시절 민주당 카운터로 불렸다. 민주당 입장서도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김건희 호위무사’ 프레임 벗어나야
등판 일러 총선 패배 시 앞날 불투명

문제는 정치 이력이 없는 한 비대위원장이 이를 잘 방어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분명 당내 빚이 없지만 당내 세력도 전무하다. 일단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중심은 초선 의원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악수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 초선 의원들은 김 전 대표 사퇴 이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비대위원장에게 바짝 엎드려도 공천을 준다는 보장도 없다. 한 비대위원장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한 비대위원장을 공격하는 당내 세력이 생긴다. 이른바 ‘한핵관(한동훈 핵심 관계자)’과 ‘비 한핵관’으로 나뉘어 당내가 더욱 혼란스러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대위 체제의 문제는 또 있다. 내년 총선서 패배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이다. 총선 정국에 앞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에 밀리는 양상이다. 당내서도 한 비대위원장을 ‘게임체인저’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국민의힘 총선 의석수를 80석~90석으로 내다봤다. 한 비대위원장을 통해 현상 유지 정도는 가능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총선서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선방만 하면 대권주자 반열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셈이다. 

한 비대위원장이 총선에 직접 나설지도 의문이다. 비대위원장을 맡았다가 총선서 패배할 경우, 한 비대위원장의 입지가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차기 보수 대권주자로서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국민의힘의 얼굴로 불리던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3개월 남짓이다. 잘못되면 늘 간판으로서 책임을 지며 윤정부 탄생 이후 39개월간 7명(당 대표, 비대위원장, 권한대행)이 교체됐다. 한 비대위원장의 수명도 얼마나 오래 갈지는 지켜봐야 안다. 

조만간 공천 시기가 다가오면 한 비대위원장 역시 당내서 공천받지 못한 이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여기에 더해 다음 대선까지는 아직 3년이나 남아 있다. 

국민의힘에 부담이 되는 이재명-윤석열 구도보다는 이재명-한동훈의 구도를 가져가야 유리하다. 지금까지는 윤 대통령의 얼굴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서울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이 구도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 비대위원장의 등판으로 자신의 리스크를 감출 수 있다.

차라리 한 비대위원장의 이른 등판으로 다음 대권주자끼리의 맞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문제는 이 대표의 구속까지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 부분에 적극 공세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일찍부터
대선구도

여의도 정가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 이슈를 끌어오기 좋다. 다만 이슈만 되면 안 된다”며 “앞서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내면서 자신의 정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한 비대위원장도 이를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후임 법무부 장관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장관직서 물러나면서 공식적으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게 됐다.

끊임없이 거론된 정치 참여가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후임 법무부 장관이 누가 될지를 두고 관심이 쏠린다.

법무부는 당분간 차관 대행 체제로 업무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당장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차관인 이노공 법무부 차관 대행 체제가 유력하다.

법조계에서는 장관 후보군으로 이 차관을 비릇해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 길태기 전 서울고검장 등이 거론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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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