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택 ①구례 운조루

품이 너른 평온한 집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 ‘구름 위를 나는 새도 돌아오는 집’. 운조루(雲鳥樓, 국가민속문화재)는 중국 시인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의 “구름〔雲〕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鳥〕들은 날기 지쳐 둥우리로 돌아오네”라는 구절에서 딴 글자로 이름했다. 구름처럼 너그럽고 포근한 고택은 베풀고 나누는 운조루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운조루는 1776년(영조 52년) 류이주 선생이 낙안군수를 지낼 때 지은 집이다. 250년 가까이 잘 보존된 외관은 물론, 고택에 스민 정신이 면면히 전해온다. 류 선생은 낙안에서 가까운 곳에 집터를 살펴보다가 뒤에는 지리산이,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는 명당에 운조루를 건축했다. 수원유수로 재직할 때 수원 화성 축조에 참여한 만큼 건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이다. 운조루를 짓는 7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으리라. 운조루는 규모가 제법 크지만, 장식이 거의 없는 소박한 자태가 돋보인다.

소박한 자태

솟을대문 앞에 커다란 뒤주가 놓인 집이 운조루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새긴 뒤주는 류씨 가문 대대로 이어오는 보물이다. 쌀 2가마니 반 정도 들어가는 뒤주에 항상 쌀을 채워 곤궁한 이웃이 가져가게 했다. 타인능해는 ‘누구나 열 수 있다’라는 뜻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당신을 이해한다는 공감과 타인을 향한 배려가 자연스레 배어난다. 운조루 1년 소출의 20%에 해당하는 36가마니를 이웃에게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뒤주 실물은 운조루유물전시관에 있다.

고택에 들어서자 꾸미지 않은 풍경에 마음이 평온해진다. 대문 양옆으로 긴 행랑채가 눈에 띈다. 일하는 사람이 머무르던 곳으로 서쪽 7칸, 동쪽 11칸이다. 행랑채 한쪽 끝에 죽은 사람을 석 달 동안 모셔두는 가빈 터의 흔적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문상객이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운조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채는 여름에 해를 가리고 겨울에 바람을 막는 들어열개가 있다. 문짝을 한껏 올려 고정하면 내가 집 안에 있는지, 자연 속에 있는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가롭게 운치를 즐기기 좋다.


현재 운조루는 10대손 류정수씨가 지키고 있다. 그는 사랑채 누마루에서 여행객을 반갑게 맞이하며 그윽한 차를 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오봉산과 계족산의 부드러운 곡선과 처마가 마음을 다독인다. 선조들은 이 풍경을 두고 얼마나 많은 글을 지었을까. 매천 황현 선생은 “서헌은 객을 머무르게 하는 가장 좋은 곳으로 비와 같은 솔바람 술 위에 파란을 일으키네”라며 운조루의 정취를 예찬했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이어지는 곳에 부엌이 있다. 운조루는 굴뚝이 낮은데, 밥 짓는 연기가 높이 솟지 않게 함이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긴 섬세한 건축이다. 여성이 생활하던 안채는 ‘ㅁ 자형’으로, 돌계단이 높아 고아한 기품이 서린 듯하다.

운조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채
이곳에서 바라보는 오봉산과 계족산

안채 다락은 바깥세상을 자유롭게 보지 못하던 집안 여인들에게 탁 트인 휴식 공간이자,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놀이터였을 듯하다. 운조루는 항상 열려 있으며 입장료는 어른 1000원, 학생(10~18세) 700원이다.

고택 근처 운조루유물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자. 류씨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유물과 고택에 있던 현판, 타인능해 뒤주 실물을 전시한다.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유물과 기록은 당시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강직한 필체가 눈길을 사로잡는 귀만와(歸晩窩) 현판은 류 선생의 친구인 서예가 직암 윤사국의 글씨다. 운조루 현판은 운조루 3대 주인 류억과 막연한 고동 이익회의 글씨로, 유연한 미가 흐른다. 소장고에 있는 수분실(隨分室) 현판의 뜻도 되새겨볼 만하다. ‘자기 형편에 따라 절제 있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전한다.

전시관에 걸린 영정 속 류 선생의 표정이 인자하다. 사랑채 누마루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뜰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넉넉한 인품이 느껴진다. 운조루유물전시관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명절 당일, 임시공휴일 휴관), 관람료는 없다.


운조루서 자동차로 5분쯤 가면 섬진강어류생태관에 닿는다. 섬진강 민물고기 자원의 전시와 보전을 담당하는 곳이다. 멸종 위기종인 수달(천연기념물) 한 쌍도 만날 수 있다(오후 2시30분~4시). 생태관은 지난 7월 재개관하면서 체험 수조, 먹이 주기 등 프로그램을 마련해 즐길 거리가 풍성해졌다. 생태관 옆 섬진강수달생태공원도 산책하기 좋다.

매월 끝자리 3·8일에 열리는 구례5일시장은 지리산서 나는 약재와 산나물이 푸짐하고, 인심이 넉넉하다. 40년이 넘은 뻥튀기 가게와 수제 도마 가게 등에서 온기가 넘치고, 핫도그와 호떡, 튀김 등 갖가지 주전부리를 파는 청년점포가 생기를 더한다.

구례5일장

‘2023~2024 한국관광 100선’에 든 천은사 상생의길&소나무숲길은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곳이다. 지리산 서남쪽 천은사 주변 3.3㎞에 조성한 길이다. 명상하며 천은사 주위 산을 도는 나눔길, 천은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보듬길, 무장애 탐방로 누림길서 자연의 깊은 여운을 맛보자.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운조루→섬진강어류생태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구례5일시장→운조루→쌍산재
-둘째 날 섬진강어류생태관→천은사상생의길&소나무숲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구례여행 www.gurye.go.kr/tour/main.do
-운조루 www.unjo ru.net
-섬진강어류생태관 https://sjfish.jeonnam.go.kr

문의 전화
-구례군청 문화관광실 061)780-2226
-운조루 061)781-2644
-운조루유물전시관 061)782-2432
-섬진강어류생태관 061)781-3666

대중교통
-버스 서울-구례,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8회(06:40~19:3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구례공영버스터미널 정류장서 4-2번·4-3번·4-4번·4-5번·4-6번·4-10번 버스 등 이용, 원내 정류장 하차, 운조루까지 도보 약 500m. 구례공영버스터미널 정류장서 4-8번·4-9번 버스 이용, 운조루 정류장 하차, 운조루까지 도보 약 40m.

*문의: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구례공영버스터미널 061)780-2731

-기차 용산역-구례구역, KTX 하루 6회(07:09~18:47) 운행, 2시간30분~3시간 10분 소요. 구례구역 정류장서 2-1번·2-5번·2-9번·2-12번 버스 등 이용, 서울안과 정류장 하차, 도보 약 300m 이동, 하나로마트 정류장서 4-2번·4-4번·4-5번·4-6번·4-10번 버스 등 환승, 원내 정류장 하차, 운조루까지 도보 약 500m.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순천완주고속도로→구례화엄사 IC→구례화엄사톨게이트서 왼쪽→용방교차로서 구례·지리산국립공원 방면 오른쪽→냉천교차로서 하동·화엄사 방면 오른쪽→냉천삼거리서 남해·하동 방면 회전교차로 12시 방향→광평삼거리서 남해·하동 방면 회전교차로 직진→운조루길 방면 좌회전→곡전재길 방면 우회전→운조루유물전시관 주차장

숙박 정보
-노고단게스트하우스: 산동면 하관1길, 061)782-1507, https://no godanguesthouse.modoo.at
-지리산호수리조트: 산동면 구만제로, 061)783-0011, http://jirisanhosu.com
-쉬리펜션: 토지면 섬진강대로, 010-4583-8255, www.shiri.co.kr

식당 정보
-들녘밥상(뽕잎백반): 토지면 운조루길, 061)781-8881
-지리산오여사(우리들깨칼국수): 구례읍 5일시장작은길, 061)781-1431
-지리산소풍(산나물밥·제철샐러드): 구례읍 구례2길, 0507-1332-4121

주변 볼거리
지리산피아골축제: 2023년 11월4~5일, 피아골단풍공원·피아골 일원, 061)780-2226(구례군청 문화관광실)
사성암, 천개의향나무숲,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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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