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인 범죄 판치는 보라카이

현지 경찰서장에게 들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올해 유난히 길었던 연휴로 필리핀 보라카이행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인파가 모이면 사건 사고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최근 한국인 범죄 소식이 전해지면서 낯 뜨거운 상황이었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봉쇄 조치, 코로나 등으로 성장통을 겪은 필리핀 말레이주 아클란에 속한 보라카이는 한인회와 협력하는 등 능숙하게 관광객을 맞이했다. 

해마다 관광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만 한화로 약 1조원이 넘는 보라카이. 여의도 4배쯤 되는 면적을 가진 길이 7km에 너비 1km의 작은 산호섬으로 연간 200만 관광객이 방문한다. 지난 9월에만 12만4491명으로 집계됐고 성수기인 7월에는 20만명을 훌쩍 넘겼다.

여의도 4배
연수익 1조

2018년 필리핀 정부는 급증하는 관광객 탓에 심각해진 환경 문제를 방치할 수 없어 섬을 폐쇄하는 극단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와 하수가 바다로 흘러가면서 해변에선 썩은 냄새가 풍겼다. 가장 큰 원인은 배수시설과 쓰레기 배출이었다.

필리핀 당국의 기초 조사에서 보라카이섬에 있는 많은 시설물에 하수시설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환경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고, 습지 9곳 가운데 5곳이 불법 건축물로 파괴됐다. 이에 에피마코 덴싱 내무자치부 차관보는 “도로 시스템을 해체해 배수시설과 불법적으로 연결된 시설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수도인 마닐라의 3배가 넘을 정도였다. 결국 필리핀 관광청은 복구 작업을 위해 2018년 4월26일부터 최대 6개월간 보라카이 전면 봉쇄를 결정했다.

재개장 후 에메랄드빛으로 돌아온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는 카메라 셔터를 절로 누르게 했다. 해변에 있던 한 연인은 손을 맞잡고 감상에 젖었다. 수백만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체감됐다. 

봉쇄 조치, 코로나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던 현지인들은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길에는 흡연하는 모습은 물론, 빈 맥주병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섬 내 위치한 보라카이 경찰서의 노력이 돋보였다. 체감상 50m에 한 명꼴로 경찰이 배치돼있을 정도였다.

말레이 경찰서장 다이니스 오르테가 아무기스(Dainis Ortega Amuguis) 중령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국어를 배워서라도 한국인들의 치안 유지에 힘쓰겠다”고 운을 띄웠다. 

한 달에 보라카이를 찾는 외국인 20여만명 중 24~30%는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한국인이 연루된 사건 사고도 잦을 수밖에 없다. 다이니스 서장은 “보라카이 한인회 측에서 소개한 한국어 강사를 통해 나를 비롯한 경찰들이 한국어를 배울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월 10만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이곳의 치안 유지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다이니스 서장은 “보라카이 섬에서 발생하는 범죄 및 긴급 상황에 3분 만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290명의 경찰력이 어떤 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주말도 쉬지 않고 훈련하고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한인회가 코리안 데스크 역할
“소통 협력 통해 치안 강화”

3개월 전 취임한 그는 화끈한 열정을 보였다. 필리핀 경찰학교 출신인 다이니스는 지난 7월부터 말레이 지방경찰서의 경찰서장을 맡고 있다.

“보라카이서 한국인을 비롯한 관광객은 주로 어떤 사건에 휘말리기 쉬우냐”는 질문에 그는 “이전에는 소매치기 등의 절도사건이 있었지만, 현재는 골목마다 순경을 배치해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관광지다 보니 클럽 등지에서 발생하는 음주 폭행 사건이 가장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말레이 경찰서는 음주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술집 입구에 무장경찰을 투입해 예방에 나선 상황이다. 가장 골칫거리인 마약 범죄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다이니스 서장은 “마약 범죄에 관해선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고, 잠복근무에 나선 상황이지만 100% 검거율을 장담하진 못한다”며 “한 번이라도 마약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고, 주기적으로 투약 여부 검사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보라카이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요 사건 대부분은 한국인이 연루돼있어 씁쓸함을 자아냈다. 보라카이에 상주하는 한국인 영사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다이니스 서장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취임하기 전 발생했던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2020년 1월17일 보라카이서 사망한 한국인 A씨는 호텔방서 잠든 채 사망했다. 그날 A씨의 아버지 B씨는 필리핀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범죄자
경유지

B씨는 보이스피싱(사기전화)인 줄 알았으나, 외교부 등을 통해 ‘아들이 사망한 게 맞다’는 소식을 접한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전화는 A씨의 고등학교 동창 C씨가 걸었던 것이었다. A씨는 사망 이틀 전 C씨와 단둘이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유족은 A씨가 여행 갔던 사실도, C씨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C씨는 A씨가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 당시 유족은 보라카이에 갈 형편이 못 돼 C씨에게 아들 시신을 국내로 데려와 줄 수 있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자 C씨는 필리핀 현지서 시신을 화장하는 게 어떻겠냐고 유족에게 제안했다. 유족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해외에 갈 수 없는 처지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귀국한 C씨는 유족을 만나자마자 화장 절차에 썼던 경비를 요구했다. 뒤이어 C씨는 평소 A씨에게 돈을 자주 빌려줬다며 채무를 갚으라는 요구도 했었다. 유족 측 지인 D씨가 평소 알던 보험설계사를 통해 A씨의 명의로 된 보험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사망보험금 수익자도 C씨로 등재돼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은 보험금 문제로 C씨와 연락이 끊긴 후 이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조사 결과 C씨는 보험설계사를 통해 A씨의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자신으로 돌렸고, 1억9000만~7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사건은 올해 1월에서야 밝혀졌다. C씨는 수감 생활 도중 보험회사를 상대로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는데, 당시 검찰 조사를 통해 C씨가 보라카이 호텔서 A씨를 살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C씨는 사망 당일 새벽까지 A씨와 함께 술을 마신 뒤 객실에 돌아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탄 숙취해소제를 A씨에게 마시게 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A씨를 C씨가 질식시켜 살해했다.

호텔 밀실 
살인사건

현재 C씨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재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보험계약 체결에 도움을 준 보험설계사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A씨가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라며 “숙취해소제에 약물을 넣지도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한국 언론에 전한 보라카이 거주 한국인도 만났다. 보라카이 한인회 소속 박태종 이사는 2년 전, A씨와 C씨가 자신이 인솔한 관광객이었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사건 당시 C씨가 제게 전화를 걸어 A씨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전해 호텔로 찾아갔다”며 “A씨의 시신을 직접 목격한 순간 타살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A씨의 시신에는 두드러기가 나 있어 약물중독이라는 의심이 들었다”며 “C씨가 의심스러웠지만, 보라카이에 코리안 데스크가 없어 A씨의 시신을 부검할 수 없었고 수사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박 이사에 따르면 현재 보라카이 한인회장 김수진 영사 대리가 해당 사건 조사 때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내용을 전달하면서 진상규명에 힘이 실렸다. 

박 이사는 “A씨가 사망한 호텔의 허가가 있어야 경찰에게 협조받을 수 있는데 김 영사 대리가 있어 그나마 가능했다”며 “보라카이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기에 코리안 데스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보라카이는 좁은 지역에 많은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단위면적과 관광객 수로 따지면 상황이 열악하다. 보라카이 내 한국 교민들은 400~500명 되는데 교민들 사이에서도 자잘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박 이사는 “현지서 사건이 발생하면 영사 대리 1명으로는 부족하다”며 “김 영사 대리가 직무를 맡은 지 20년인데 아직도 한국 대사관의 지원이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달에 20만명…30% 한국인
중범죄 대부분 한국인 연루

보라카이에 사는 한국인 대부분은 자영업과 관광업을 하고 있는데 간혹 전과자도 있어 불안감을 감수해야 한다. 또, 자영업자들이 경제인연합회를 운영하면서 당국과 소통하려 하지만, 상주하는 영사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박 이사는 “보라카이서 한국인 익사 사고나 관광 도중 실족사가 발생하면, 대사관과 영사를 통해 보고 후 통역만 해주고 판단하지는 못한다”며 “그저 원론적으로 통역만 해줄 수 있고 수사권은 필리핀 경찰에게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기 어렵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현재 마닐라나 세부에 위치한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영사는 3~4개월에 한 번씩 보라카이를 방문해 민원을 해결한다. 박 이사는 “영사가 보라카이를 방문하면 만료된 여권을 연장해 주는 등 이민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영사들이 와서 한인회총연합회 행사, 이벤트 등을 공식적인 행사로 격상시키고 필리핀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보라카이에 코리안 데스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보라카이가 관광객으로만 들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서 보라카이에 까띠끌란 공항을 통해 수월하게 입국할 수 있어 보라카이가 범죄자들의 경유지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라카이서 자영업과 관광업으로 수익을 내는 사람 일부가 한국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것도 해당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실제 보라카이서 한 단체를 만들고 잘나가는 경제인 노릇을 하던 남성은 한국서 보이스피싱범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외에도 악행을 일삼은 인물들이 보라카이를 들른 바 있다. ‘마약왕 전세계’로 알려진 박왕열은 보라카이와 연이 없다. 그러나 그의 여자친구가 보라카이서 ‘월세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또 지난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도 보라카이서 붙잡혔다. 강씨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 7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다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강씨는 1kg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일부러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도망 온 
피싱범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문틴루파에 위치한 뉴빌리비드(NBP) 교도소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제2의 박왕열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필리핀 보라카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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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