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인 범죄 판치는 보라카이

현지 경찰서장에게 들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올해 유난히 길었던 연휴로 필리핀 보라카이행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인파가 모이면 사건 사고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최근 한국인 범죄 소식이 전해지면서 낯 뜨거운 상황이었지만 정작 현지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봉쇄 조치, 코로나 등으로 성장통을 겪은 필리핀 말레이주 아클란에 속한 보라카이는 한인회와 협력하는 등 능숙하게 관광객을 맞이했다. 

해마다 관광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만 한화로 약 1조원이 넘는 보라카이. 여의도 4배쯤 되는 면적을 가진 길이 7km에 너비 1km의 작은 산호섬으로 연간 200만 관광객이 방문한다. 지난 9월에만 12만4491명으로 집계됐고 성수기인 7월에는 20만명을 훌쩍 넘겼다.

여의도 4배
연수익 1조

2018년 필리핀 정부는 급증하는 관광객 탓에 심각해진 환경 문제를 방치할 수 없어 섬을 폐쇄하는 극단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와 하수가 바다로 흘러가면서 해변에선 썩은 냄새가 풍겼다. 가장 큰 원인은 배수시설과 쓰레기 배출이었다.

필리핀 당국의 기초 조사에서 보라카이섬에 있는 많은 시설물에 하수시설을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환경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고, 습지 9곳 가운데 5곳이 불법 건축물로 파괴됐다. 이에 에피마코 덴싱 내무자치부 차관보는 “도로 시스템을 해체해 배수시설과 불법적으로 연결된 시설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이 수도인 마닐라의 3배가 넘을 정도였다. 결국 필리핀 관광청은 복구 작업을 위해 2018년 4월26일부터 최대 6개월간 보라카이 전면 봉쇄를 결정했다.

재개장 후 에메랄드빛으로 돌아온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는 카메라 셔터를 절로 누르게 했다. 해변에 있던 한 연인은 손을 맞잡고 감상에 젖었다. 수백만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체감됐다. 

봉쇄 조치, 코로나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던 현지인들은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길에는 흡연하는 모습은 물론, 빈 맥주병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섬 내 위치한 보라카이 경찰서의 노력이 돋보였다. 체감상 50m에 한 명꼴로 경찰이 배치돼있을 정도였다.

말레이 경찰서장 다이니스 오르테가 아무기스(Dainis Ortega Amuguis) 중령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한국어를 배워서라도 한국인들의 치안 유지에 힘쓰겠다”고 운을 띄웠다. 

한 달에 보라카이를 찾는 외국인 20여만명 중 24~30%는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한국인이 연루된 사건 사고도 잦을 수밖에 없다. 다이니스 서장은 “보라카이 한인회 측에서 소개한 한국어 강사를 통해 나를 비롯한 경찰들이 한국어를 배울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월 10만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이곳의 치안 유지는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다이니스 서장은 “보라카이 섬에서 발생하는 범죄 및 긴급 상황에 3분 만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290명의 경찰력이 어떤 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주말도 쉬지 않고 훈련하고 있다”고 웃으며 답했다.

한인회가 코리안 데스크 역할
“소통 협력 통해 치안 강화”

3개월 전 취임한 그는 화끈한 열정을 보였다. 필리핀 경찰학교 출신인 다이니스는 지난 7월부터 말레이 지방경찰서의 경찰서장을 맡고 있다.

“보라카이서 한국인을 비롯한 관광객은 주로 어떤 사건에 휘말리기 쉬우냐”는 질문에 그는 “이전에는 소매치기 등의 절도사건이 있었지만, 현재는 골목마다 순경을 배치해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관광지다 보니 클럽 등지에서 발생하는 음주 폭행 사건이 가장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말레이 경찰서는 음주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술집 입구에 무장경찰을 투입해 예방에 나선 상황이다. 가장 골칫거리인 마약 범죄에 관해서도 입을 열었다.

다이니스 서장은 “마약 범죄에 관해선 무관용의 원칙을 세우고, 잠복근무에 나선 상황이지만 100% 검거율을 장담하진 못한다”며 “한 번이라도 마약 범죄에 연루된 피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치료를 받고, 주기적으로 투약 여부 검사를 한다. 지금도 어딘가에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보라카이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요 사건 대부분은 한국인이 연루돼있어 씁쓸함을 자아냈다. 보라카이에 상주하는 한국인 영사가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다이니스 서장은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취임하기 전 발생했던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2020년 1월17일 보라카이서 사망한 한국인 A씨는 호텔방서 잠든 채 사망했다. 그날 A씨의 아버지 B씨는 필리핀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범죄자
경유지

B씨는 보이스피싱(사기전화)인 줄 알았으나, 외교부 등을 통해 ‘아들이 사망한 게 맞다’는 소식을 접한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던 전화는 A씨의 고등학교 동창 C씨가 걸었던 것이었다. A씨는 사망 이틀 전 C씨와 단둘이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유족은 A씨가 여행 갔던 사실도, C씨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C씨는 A씨가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유족에게 설명했다. 당시 유족은 보라카이에 갈 형편이 못 돼 C씨에게 아들 시신을 국내로 데려와 줄 수 있냐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러자 C씨는 필리핀 현지서 시신을 화장하는 게 어떻겠냐고 유족에게 제안했다. 유족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해외에 갈 수 없는 처지로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귀국한 C씨는 유족을 만나자마자 화장 절차에 썼던 경비를 요구했다. 뒤이어 C씨는 평소 A씨에게 돈을 자주 빌려줬다며 채무를 갚으라는 요구도 했었다. 유족 측 지인 D씨가 평소 알던 보험설계사를 통해 A씨의 명의로 된 보험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사망보험금 수익자도 C씨로 등재돼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은 보험금 문제로 C씨와 연락이 끊긴 후 이 사실을 경찰에 고소했다. 조사 결과 C씨는 보험설계사를 통해 A씨의 사망보험금 수익자를 자신으로 돌렸고, 1억9000만~7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사건은 올해 1월에서야 밝혀졌다. C씨는 수감 생활 도중 보험회사를 상대로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는데, 당시 검찰 조사를 통해 C씨가 보라카이 호텔서 A씨를 살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C씨는 사망 당일 새벽까지 A씨와 함께 술을 마신 뒤 객실에 돌아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탄 숙취해소제를 A씨에게 마시게 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A씨를 C씨가 질식시켜 살해했다.

호텔 밀실 
살인사건

현재 C씨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재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보험계약 체결에 도움을 준 보험설계사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C씨는 “A씨가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로 인한 급성 심장마비로 숨진 것”이라며 “숙취해소제에 약물을 넣지도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호텔 밀실 살인사건을 한국 언론에 전한 보라카이 거주 한국인도 만났다. 보라카이 한인회 소속 박태종 이사는 2년 전, A씨와 C씨가 자신이 인솔한 관광객이었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사건 당시 C씨가 제게 전화를 걸어 A씨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전해 호텔로 찾아갔다”며 “A씨의 시신을 직접 목격한 순간 타살이라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A씨의 시신에는 두드러기가 나 있어 약물중독이라는 의심이 들었다”며 “C씨가 의심스러웠지만, 보라카이에 코리안 데스크가 없어 A씨의 시신을 부검할 수 없었고 수사가 어려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박 이사에 따르면 현재 보라카이 한인회장 김수진 영사 대리가 해당 사건 조사 때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직접 내용을 전달하면서 진상규명에 힘이 실렸다. 

박 이사는 “A씨가 사망한 호텔의 허가가 있어야 경찰에게 협조받을 수 있는데 김 영사 대리가 있어 그나마 가능했다”며 “보라카이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기에 코리안 데스크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보라카이는 좁은 지역에 많은 관광객이 오기 때문에 단위면적과 관광객 수로 따지면 상황이 열악하다. 보라카이 내 한국 교민들은 400~500명 되는데 교민들 사이에서도 자잘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박 이사는 “현지서 사건이 발생하면 영사 대리 1명으로는 부족하다”며 “김 영사 대리가 직무를 맡은 지 20년인데 아직도 한국 대사관의 지원이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한달에 20만명…30% 한국인
중범죄 대부분 한국인 연루

보라카이에 사는 한국인 대부분은 자영업과 관광업을 하고 있는데 간혹 전과자도 있어 불안감을 감수해야 한다. 또, 자영업자들이 경제인연합회를 운영하면서 당국과 소통하려 하지만, 상주하는 영사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박 이사는 “보라카이서 한국인 익사 사고나 관광 도중 실족사가 발생하면, 대사관과 영사를 통해 보고 후 통역만 해주고 판단하지는 못한다”며 “그저 원론적으로 통역만 해줄 수 있고 수사권은 필리핀 경찰에게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기 어렵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현재 마닐라나 세부에 위치한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영사는 3~4개월에 한 번씩 보라카이를 방문해 민원을 해결한다. 박 이사는 “영사가 보라카이를 방문하면 만료된 여권을 연장해 주는 등 이민자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영사들이 와서 한인회총연합회 행사, 이벤트 등을 공식적인 행사로 격상시키고 필리핀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보라카이에 코리안 데스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보라카이가 관광객으로만 들끓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서 보라카이에 까띠끌란 공항을 통해 수월하게 입국할 수 있어 보라카이가 범죄자들의 경유지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라카이서 자영업과 관광업으로 수익을 내는 사람 일부가 한국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것도 해당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실제 보라카이서 한 단체를 만들고 잘나가는 경제인 노릇을 하던 남성은 한국서 보이스피싱범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외에도 악행을 일삼은 인물들이 보라카이를 들른 바 있다. ‘마약왕 전세계’로 알려진 박왕열은 보라카이와 연이 없다. 그러나 그의 여자친구가 보라카이서 ‘월세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또 지난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도 보라카이서 붙잡혔다. 강씨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아직까지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 7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다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강씨는 1kg의 마약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 역시 일부러 필리핀 현지 교도소에 더 머무르기 위해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에 무게가 실린다.

도망 온 
피싱범

필리핀법상 외국인이 마약을 거래하면, 종신형에 처해져 국내법상 처벌이 어렵다.

강씨가 마약범으로 종신형을 받게 되면 박왕열이 있는 문틴루파에 위치한 뉴빌리비드(NBP) 교도소로 가게 된다. 그가 NBP에 가게 된다면 제2의 박왕열이 될 가능성은 불 보듯 뻔하다. 재소자들은 NBP서 마약을 유통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한다.

필리핀 보라카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오혁진 기자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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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