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에 씹힌 한동훈 법무 장관 필패론

총선, 나와도 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벌써 3번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차출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일단 “지금은 업무에 집중할 때”라며 출마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행보를 보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보인다. 국민의힘이 위기 때마다 한 장관에게 이미지를 빌리고, 있지만 최근에는 중도층마저 그에게 시큰둥한 모습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행보가 ‘정치’에 방점이 찍힌 모양새다. 한 달간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한 장관은 지난 7월, 전남 영암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를 방문했다. 조선업계의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외국인 노동자 허용을 위한 비자 발급을 늘리기로 한 뒤다. 

이후에도 법무부 장관이 하는 경제 이야기를 통해 법무부 장관과는 거리감 있는 영상을 게재했다. 한 장관의 총선 출마 여부를 두고 여론의 관심이 높은 가운데 해당 영상 조회수는 100만회를 넘겼다. 

다음 선거
대표 얼굴?

최근 국민의힘에서는 또다시 한 장관에게 정치에 참여하라며 손을 내밀고 있다. 사실상 내년 총선서 ‘얼굴’로 쓰겠다는 의도다. 한 장관의 출마지로 마포를 비롯해 동작, 강남 3구,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까지 예정지도 다양하다. 강남 3구를 제외하면 이른바 ‘국민의힘 험지’로 불리는 지역들이다. 

이처럼 한 장관의 총선 출마 여부와 역할을 두고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현 상황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게 오히려 좋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현재 국민의힘이 처한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은 탓이다. 차기 총선서 선거를 총 지휘할만한 인물을 발굴하기도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준석 전 대표는 지방선거와 대선을 모두 승리한 당 대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데 반해 김기현 현재 대표의 존재감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서 윤석열 대통령을 얼굴로 선거를 치르려고 한다는 말도 들린다. 

이 같은 상황서 당내 얼굴 부재 사태로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한 장관을 연일 소환하는 것으로 추론된다. 한 장관의 법무부 장관 지목은 이미 예견됐으며, 신속하게 이뤄졌다. 이때부터 그의 존재감과 몸값은 줄곧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그는 엘리트 이미지와 속 시원한 발언으로 일찍부터 여의도 정가서 이미 주목받아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파급력이 컸다. 전체회의, 특정 현안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늘 한 장관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해 도무지 그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민주당서 여러 의혹을 제기했지만 매번 되레 민주당이 역풍을 맞기에 바빴다. 

이 덕에 한 장관은 윤 대통령이 강조한 스타 장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보수는 물론 중도층에게까지 소구력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총선의 얼굴로 쓰여도 크게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그의 존재감은 때릴수록 커졌다. 거대 야당의 공세를 비교적 잘 방어해냈고, 차기 대권주자까지 인식됐다. 이번 총선서도 한 장관이 할 역할이 있다면서 보수 및 중도층서 열렬한 지지를 받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발판 삼아 야당 의원과의 설전을 보여준 덕에 국민의힘서도 내년 총선에 필요한 인물로 여긴다. 중도층이 30%를 넘는 현 시점에 한 장관을 통해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인 중도층 공략을 실행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의힘에선 자꾸 오라 손짓
민주당 놓고 보면 이길 적임자


한 장관은 차기 대권 지지도도 높은 편에 속한다. 범여권 주자 중에서는 1위를 독주 중이다. 문제는 한 장관이 중도층에 가진 영향력을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나서도 펼칠 수 있겠느냐는 부분이다. 

최근 한 장관에게 여러 비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런 기조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윤 대통령과 따로 분류해놓고 한 장관을 바라봤지만, 최근에는 한 장관이 윤석열정부의 2인자로 인식되면서 미묘하게 다른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한 장관의 약점이라는 시선이 강하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리스크를 함께 짊어져야 할 위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국민의힘의 지지도가 높지만, 차기 총선에서는 정부 견제론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 장관이 차출되더라도 쉽게 이기기 힘든 선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만 상대하는 싸움이라면 한 장관은 적임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문제는 중도층을 끌어들일 방법이다. 

최근 한 장관이 미국 출장비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민주당은 한 장관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던 바 있다. 지난해 6월 한 장관은 미국으로 9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 당시 한 장관과 동행한 법무부 직원 3명이 사용한 돈은 약 4800만원이다. 

출장의 목적은 한국과 미국 사법기관의 공조 및 협력 방안 논의였다. 문제는 한 장관이 제출한 출장계획서상 미국 법무부 장관과 만나겠다고 명시돼있었지만, 실제 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다. 일각에선 한 장관의 9일 출장 중 3일간의 일정이 누락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한 장관과 법무부는 ‘국익 침해’라는 이유로 끝내 공개를 거부했다. 

생기는
약점들

사용했던 출장 경비 내역이 국가안전 보장,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달랐다. 11개월 만에 출장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단순한 출장 경비의 세부적인 집행 내역, 지출증빙 서류가 국가안전 보장 등에 관한 사항에 해당한다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전에 공개돼있는 상황서 출장업무가 종료된 이후, 세부적 집행 내역 및 지출증빙서류를 추가적으로 공개한다고 해서 이익을 해친다고 볼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공개를 요구했다. 

현재 법무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렇듯 한 장관에게도 조금씩 약점이 생기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 장관은 정치 이력이 전무하다는 게 걸림돌인 만큼 정치권 일각에선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 설도 제기되고 있다. 보통 총선 지휘는 중량감을 가진 인물이 맡기 마련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등이 그런 존재였다. 한 장관의 정치 이력은 없지만, 인지도만큼은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은 파격적일 수 있다. 민주당의 86세대에 제대로 각을 세워가며 비교적 젊은 나이를 앞세워 세대교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서 승리만 한다면 한 장관은 단숨에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 장관이 총선을 진두지휘했다가 국민의힘이 패배할 경우, 모든 책임은 한 장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경우 치명상은 물론, 향후 정치적 행보까지 불투명해질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설에 대해 비관적으로 평가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치 이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다”며 “지도부와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치 이력이 없어 대놓고 싸우기도 애매하다”고 곤란해했다. 

보수층
믿을맨

이 전 대표도 “제2의 황교안이 될 수 있다”며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설을 두고 우려 목소리를 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설을 두고 그를 향한 아부성 발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윤정부 2인자,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한 장관에게 이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줬다는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서라는 것. 


이처럼 한 장관은 보수층에게 믿을맨으로 인식되며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언급되고 있지만, 패배 시 국민의힘은 소중한 대권주자를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전쟁서 승리해야 한다. 이 대표는 성남FC 의혹으로 검찰 소환조사 요구 및 체포동의안 표결 등 최근 잇따라 위기 상황이다. 검찰을 완전한 ‘적’으로 돌렸고, 단식투쟁으로 윤석열정부와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한 장관 역시 이 대표를 자주 겨냥하고 나섰다. 이번 사법 전쟁서 패배할 경우 한 장관 역시 타격을 입는다. 민주당서 차기 총선 지휘를 이 대표가 맡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한 장관과 총선 쟁탈전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판단은 김기현 대표의 존재감서 비롯된 시선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용산의 적극적인 밀어주기를 통해 전당대회서 과반의 득표를 얻어 당선됐다. 그러나 시작부터 지도부가 여러 설화에 휩싸였고, 김 대표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는 지적들이 다수 나온 바 있다. 

최근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호남을 방문하는 등 여러 행보를 보이고는 있지만, 두드러지는 편이 아니다. 한 장관의 선대위원장설 역시 한 장관이 이 대표와 맞붙을만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온 듯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 장관 차출론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드러냈다.

중도층 확장에 한계성 있어
잘 보이기 위한 아부 경쟁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한 장관은 많은 장점을 가졌지만, 대통령과 캐릭터가 많이 겹친다. 결국 윤 대통령이 소구할 수 있는 지지층과 중첩된다”며 “선거서 이기려면 밖에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하는데, 기존 지지자들 중 수도권, 중도, 청년층을 끌어올만한 인물에게 선거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 장관이 정치권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한 장관은 최근 ‘밉상’ 이미지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조선제일검서 점차 보수제일검으로 바뀐 게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검찰특활비 공개 부분이 그렇다. 검찰 조직을 보호하는 동시에 윤 대통령의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감추는 모양새다. 

민주당은 이를 고리로 한 장관과 윤 대통령을 연일 겨냥하고 있다. 한 장관은 “특활비 지침을 제출하지 않는 것은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한 장관이 민주당 공세에 적절히 대응하고는 있지만, 총선 출마 시에는 약점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 야당 공세에 맞설만한 인물임에는 확실하나, 점차 윤 대통령과 여당을 보호하려는 의견을 많이 내면서다. 다음 선거의 키워드는 ‘중도 표심’이다. 중도층이 표심을 가르는 만큼 한 장관이 중도층을 확실히 포섭해야 한다는 게 선대위원장이 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윤석열정부는 지속적으로 우클릭만 향하고 있다. 

조직만 지키며 중도층은 나 몰라하는 형국이다. 지난 총선서 자유한국당이 패한 이유는 과도한 우클릭 탓이었다. 이대로라면 한 장관이 중도층에도 소구력을 펼치는 데 한계를 맞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는 국민의힘이 한 장관의 출마에 유보적인 태도를 비치는 이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국민의힘 중도층 이탈이 심각하자, 현 시점서 한 장관이 총선에 출마한다고 해도 힘을 받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은 지지층을 모을 수는 있지만 중도층까지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과도한 
우클릭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선대위원장설은 가능성 없는 이야기다. 나와서 지지층을 결속시키기 위해 선대위원장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며 “한 장관이라고 해서 중도층이 무조건 반응할지 의문이다. 윤정부 내각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만큼 현재 당 내에서 아부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동훈, 사형시설 점검 지시 이유는?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사형 시설 점검을 지시했다.

다만 법무부 측은 실제 사형을 집행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각에서는 단순 시설관리 지시를 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범죄자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함이라고 해석한다.

한 장관은 “주권적 결정이다. 외교적 문제, 형사정책적 기능,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어 “25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어떤 정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입장을 정한 적 없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법에 사형제도가 명시돼있는 만큼 진행 시설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수감돼있는 사형수는 총 59명이다.

이들 중에는 연쇄 살인, 존속 살인 등의 범죄자가 다수 포함돼있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