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 측정기 무용론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1:40:53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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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다녀도 소용없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돌입했다. 방사능 노출에 관한 우려도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일부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했다. 오염된 수산물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측정기의 정확도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피복된 생선의 껍질을 벗겨야 정확한 검증이 가능하다.

일본이 오염수 처리 방안으로 제시한 ‘해양 방류’를 결정한 지 2년이 지났다. 인체에 문제가 없을 만큼 희석해 방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 내 유해 핵종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오염수에는 크게 삼중수소,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 삼중수소는 물과 화학적 성질이 같아 분리하기 어렵다. ALPS의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어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사람 몸에도?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 명예교수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휴대용 측정기는 잡음까지 측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사능 측정기기가 오염수와 무관한 자연 감마선까지 잡아낸다는 뜻이다. 

애초에 수산물이나 사람 몸에는 칼륨40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다. 오염수에 포함된 세슘에서는 물론, 전자레인지서도 감마선이 나온다. 자연적인 감마선의 대표격이 칼륨40이다.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기가 칼륨40까지 측정한다면 정확도는 떨어진다. 감마선은 투과율이 높아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다. 

반면 베타선이 나오는 삼중수소, 스트론튬 등은 투과율이 낮다. 그만큼 인체에 흡수될 시 빠져나가기 어렵다. 삼중수소는 우리 몸에 쌓여 유전정보를 바꿔놓을 위험이 있다. 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를 발생시키는 것도 이런 원리다. 피복에 따른 위험성은 알파, 베타, 감마선 순으로 나열된다. 플루토늄에선 알파선이 나온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방사능 측정기기는 대부분 감마선만 측정한다.


기기는 방사능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면 안전하다고 판단할 뿐이다. 플루토늄, 스트론튬 등 고위험 방사능 피폭 가능성은 배제한 셈이다.

또 장비가 부족해 전체 유통량 중에서 검사받는 물량이 극히 일부분이다. 현재 일본서 수입되는 농축수산 가공식품의 양은 20만~40만㎏에 달한다. 이에 사용되는 방사능 검사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방사성 핵종에 대한 유해성도 전문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누굴 믿고 안심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티머시 무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교수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반대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는 안심하라는 입장이다. 

오염수 방류에 들끓는 여론
불안한 마음에 유행처럼 구입

지난 4월 방한한 무쏘 교수는 “삼중수소는 생물 체내에 들어가면 고에너지 감마선보다 두 배 이상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중수소 원자는 물에 가까워 체내로도 쉽게 들어올 수 있다. 그는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은 순간적으로 DNA나 세포에 영향을 미치면서 곧바로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며 “투과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세포조직이나 장기 내부를 벗어나지 못하고 피폭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쏘 교수는 195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된 삼중수소의 영향을 다룬 25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생물학적 효과비가 세슘-137의 2~6배라는 점이 다수 문헌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삼중수소의 성질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서 “오염수에는 물과 구별할 수 없는 ‘삼중수소수’로 들어 있다”며 “물이 몸 안에 쌓이나? 방류 반대자들이 체내에 축적되는 중금속처럼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5000만 국민이 모두 속았다고 강조했다. 유해 핵종에 관한 유해성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통된 수산물을 검증한다고 안심할 수 없다. 특히, 방사능 피복에 부작용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면역력 저하, 암 발병 등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날 뿐이다.

의사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술, 담배를 줄이세요” 밖엔 없다. 대처 방안에 대해 서 교수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7~8년간 일본 수산물은 먹지 않을 것”이라며 “조심해서 나쁠 게 없는데, 음모론자로 비판받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기 도입 시범을 보이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부산어패류처리조합 관계자는 기기를 들고 수산시장을 찾았다. 약 30㎝ 떨어진 거리서 돌돔에 대자 0.66이라는 수치가 떴다. 세슘(Cs)-134값이 ㎏당 0.66베크렐임을 의미한다.

세슘서 나오는 감마선 측정은 비교적 쉽다. 세슘을 측정하면 다른 핵종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플루토늄에선 알파선, 스트론튬에선 베타선이 나오는데 검사법과 측정 방법이 모두 다르다. 식약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서만 세슘 농도를 측정·조사하고 있다. 국산 수산물은 해양수산부가 맡는다. 이 측정기는 부산시설공단 자갈치시장사업소가 무상으로 대여했다.

생선 껍질 벗겨야 
정확한 검증 가능

관계자는 “부산시가 검사를 진행하자고 제안해 지난 10일부터 매일 오전 7~8시마다 검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단 1건도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염수 방류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매일 검사하니 앞으로도 수산물을 마음껏 먹으라고 안심시켰다. 부산시는 휴대용 방사능 검사장비를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기기를 추가 구입해 검사 지역을 광안리 민락회센터 등 부산 전역으로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5월 말, 여수시도 측정기 4대를 1800만원에 사들였다. 수산물 검사 품종과 수거 장소, 검사 건수 등 자료도 만들었다. 안전성 검사 결과는 매달 홈페이지 등에 공개할 방침이다.

여수시는 생산·판매 단계의 수산물을 수집해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 방사능 검사 횟수도 늘려 올해부터 어획 수산물에 대해 연 160건으로 확대한다. 지자체의 대응은 높이 평가된다. 문제는 방사능 측정기에 대한 신뢰도다. 정확한 검사가 어려운 상태라면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가령 오염수가 침투된 생선을 껍질째로 검사하면 측정이 어려울 수 있다. 식약처도 검사 시엔 생선 껍질을 제거한다. 시료를 잘게 자른 후 차폐용기에 넣어 3시간 가량 검출 여부를 확인한다. 측정기로 스치듯 갖다 대는 건 정확한 검사가 아니다.

서 교수는 “휴대용 측정기는 주로 표면이나 공기 중에 검출되는 방사능을 검출하는 데 쓰인다”며 “위험하지 않은 방사능까지 잡히니까 오해의 소지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휴대용 측정기는 교체 시기도 짧다. 전문가들은 “측정기는 사용 후 6개월서 1년마다 기기 교정이 필요하다”며 “중고거래 등을 통해 오래된 측정기를 구매할 경우, 오작동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즉 10만~100만원대의 저가 측정기는 정확한 검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불안한 심리를 겨냥한 상술에 각별한 주의도 요구된다. 최근 한 보험사는 오염수 방류로 국내 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광고했다. 암 보험이 필요하다는 1차원적인 마케팅이다. 

잡음까지 나와

또 ‘오염수 방류 전 마지막 물량’이라고 불안 심리를 자극해 수산물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있다. 정부도 “비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소비자 불안감을 조성하는 소비자보호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조치하겠다”고 나섰다. 

한편, 일본 정부는 방류 시기를 예고하지 않고 있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신임 차관은 “아직 방류가 시작도 안 된 상태”라며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오염수 방류 시점을 통보받은 바는 없다. 방류에 앞서 인접 국가와는 시기 조율을 거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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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