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 측정기 무용론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1:40:53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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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다녀도 소용없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돌입했다. 방사능 노출에 관한 우려도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일부 시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했다. 오염된 수산물은 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측정기의 정확도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피복된 생선의 껍질을 벗겨야 정확한 검증이 가능하다.

일본이 오염수 처리 방안으로 제시한 ‘해양 방류’를 결정한 지 2년이 지났다. 인체에 문제가 없을 만큼 희석해 방출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오염수 내 유해 핵종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오염수에는 크게 삼중수소, 세슘, 스트론튬, 플루토늄 등이 들어 있다. 이 중에서 삼중수소는 물과 화학적 성질이 같아 분리하기 어렵다. ALPS의 효용성이 의심받고 있어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사람 몸에도?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 명예교수는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휴대용 측정기는 잡음까지 측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방사능 측정기기가 오염수와 무관한 자연 감마선까지 잡아낸다는 뜻이다. 

애초에 수산물이나 사람 몸에는 칼륨40이라는 방사성 물질이 들어있다. 오염수에 포함된 세슘에서는 물론, 전자레인지서도 감마선이 나온다. 자연적인 감마선의 대표격이 칼륨40이다.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기가 칼륨40까지 측정한다면 정확도는 떨어진다. 감마선은 투과율이 높아 체내에 축적되지 않는다. 

반면 베타선이 나오는 삼중수소, 스트론튬 등은 투과율이 낮다. 그만큼 인체에 흡수될 시 빠져나가기 어렵다. 삼중수소는 우리 몸에 쌓여 유전정보를 바꿔놓을 위험이 있다. 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를 발생시키는 것도 이런 원리다. 피복에 따른 위험성은 알파, 베타, 감마선 순으로 나열된다. 플루토늄에선 알파선이 나온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방사능 측정기기는 대부분 감마선만 측정한다.


기기는 방사능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면 안전하다고 판단할 뿐이다. 플루토늄, 스트론튬 등 고위험 방사능 피폭 가능성은 배제한 셈이다.

또 장비가 부족해 전체 유통량 중에서 검사받는 물량이 극히 일부분이다. 현재 일본서 수입되는 농축수산 가공식품의 양은 20만~40만㎏에 달한다. 이에 사용되는 방사능 검사장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방사성 핵종에 대한 유해성도 전문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누굴 믿고 안심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티머시 무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교수는 삼중수소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반대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는 안심하라는 입장이다. 

오염수 방류에 들끓는 여론
불안한 마음에 유행처럼 구입

지난 4월 방한한 무쏘 교수는 “삼중수소는 생물 체내에 들어가면 고에너지 감마선보다 두 배 이상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중수소 원자는 물에 가까워 체내로도 쉽게 들어올 수 있다. 그는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은 순간적으로 DNA나 세포에 영향을 미치면서 곧바로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며 “투과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세포조직이나 장기 내부를 벗어나지 못하고 피폭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무쏘 교수는 195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된 삼중수소의 영향을 다룬 25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생물학적 효과비가 세슘-137의 2~6배라는 점이 다수 문헌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삼중수소의 성질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서 “오염수에는 물과 구별할 수 없는 ‘삼중수소수’로 들어 있다”며 “물이 몸 안에 쌓이나? 방류 반대자들이 체내에 축적되는 중금속처럼 말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5000만 국민이 모두 속았다고 강조했다. 유해 핵종에 관한 유해성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유통된 수산물을 검증한다고 안심할 수 없다. 특히, 방사능 피복에 부작용은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면역력 저하, 암 발병 등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날 뿐이다.

의사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술, 담배를 줄이세요” 밖엔 없다. 대처 방안에 대해 서 교수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7~8년간 일본 수산물은 먹지 않을 것”이라며 “조심해서 나쁠 게 없는데, 음모론자로 비판받는 게 씁쓸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기 도입 시범을 보이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3일 부산어패류처리조합 관계자는 기기를 들고 수산시장을 찾았다. 약 30㎝ 떨어진 거리서 돌돔에 대자 0.66이라는 수치가 떴다. 세슘(Cs)-134값이 ㎏당 0.66베크렐임을 의미한다.

세슘서 나오는 감마선 측정은 비교적 쉽다. 세슘을 측정하면 다른 핵종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긴다.

플루토늄에선 알파선, 스트론튬에선 베타선이 나오는데 검사법과 측정 방법이 모두 다르다. 식약처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서만 세슘 농도를 측정·조사하고 있다. 국산 수산물은 해양수산부가 맡는다. 이 측정기는 부산시설공단 자갈치시장사업소가 무상으로 대여했다.

생선 껍질 벗겨야 
정확한 검증 가능

관계자는 “부산시가 검사를 진행하자고 제안해 지난 10일부터 매일 오전 7~8시마다 검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단 1건도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염수 방류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처럼 매일 검사하니 앞으로도 수산물을 마음껏 먹으라고 안심시켰다. 부산시는 휴대용 방사능 검사장비를 추가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 수산진흥과 관계자는 “기기를 추가 구입해 검사 지역을 광안리 민락회센터 등 부산 전역으로 확대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5월 말, 여수시도 측정기 4대를 1800만원에 사들였다. 수산물 검사 품종과 수거 장소, 검사 건수 등 자료도 만들었다. 안전성 검사 결과는 매달 홈페이지 등에 공개할 방침이다.

여수시는 생산·판매 단계의 수산물을 수집해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 방사능 검사 횟수도 늘려 올해부터 어획 수산물에 대해 연 160건으로 확대한다. 지자체의 대응은 높이 평가된다. 문제는 방사능 측정기에 대한 신뢰도다. 정확한 검사가 어려운 상태라면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가령 오염수가 침투된 생선을 껍질째로 검사하면 측정이 어려울 수 있다. 식약처도 검사 시엔 생선 껍질을 제거한다. 시료를 잘게 자른 후 차폐용기에 넣어 3시간 가량 검출 여부를 확인한다. 측정기로 스치듯 갖다 대는 건 정확한 검사가 아니다.

서 교수는 “휴대용 측정기는 주로 표면이나 공기 중에 검출되는 방사능을 검출하는 데 쓰인다”며 “위험하지 않은 방사능까지 잡히니까 오해의 소지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휴대용 측정기는 교체 시기도 짧다. 전문가들은 “측정기는 사용 후 6개월서 1년마다 기기 교정이 필요하다”며 “중고거래 등을 통해 오래된 측정기를 구매할 경우, 오작동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즉 10만~100만원대의 저가 측정기는 정확한 검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불안한 심리를 겨냥한 상술에 각별한 주의도 요구된다. 최근 한 보험사는 오염수 방류로 국내 암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광고했다. 암 보험이 필요하다는 1차원적인 마케팅이다. 

잡음까지 나와

또 ‘오염수 방류 전 마지막 물량’이라고 불안 심리를 자극해 수산물을 판매하는 업체들도 있다. 정부도 “비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소비자 불안감을 조성하는 소비자보호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조치하겠다”고 나섰다. 

한편, 일본 정부는 방류 시기를 예고하지 않고 있다. 박성훈 해양수산부 신임 차관은 “아직 방류가 시작도 안 된 상태”라며 “일본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오염수 방류 시점을 통보받은 바는 없다. 방류에 앞서 인접 국가와는 시기 조율을 거칠 것으로 본다”고 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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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