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출소’ 제2의 조두순 3인방 추적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01 11:06:19
  • 호수 14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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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에 금수가 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한결같이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지 마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그나마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라면 다행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성범죄자들이 있다.

대한민국 여성 10명 중 4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 전체 성폭력 범죄 피의자 중 절반만 재판에 넘겨졌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2월29일 여성 폭력의 발생과 범죄자 처분, 피해자 지원까지 총 152종의 통계를 종합한 ‘2022년 여성 폭력 통계를 여가부 홈페이지에 공표했다.

미성년자
상대로…

해당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여성이 38.6%, 남성이 13.4%였다. 피해 여성 중 성추행, 강간미수, 강간을 포함한 신체적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비율(복수 응답)은 18.5%로 나타났다. 이외에 성폭력 피해 유형으로는 성기 노출 22.9%, 음란 전화 등 10.4%, 불법 촬영 0.5%, 불법 촬영물 유포 0.2% 등이 있었다.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은 통계서 드러난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사한 성범죄자 신상 등록 현황에 따르면 10년간 성범죄로 7만4956명이 등록됐다.

이 중 신상 재등록자는 2901명으로 전체의 3.9%다. 2901명의 재등록 성범죄자 중 1811명이 3년 이내 성범죄를 다시 저질렀다. 출소 직후 성범죄자를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범죄를 다시 저지른 재등록 대상자 중 무직 비율이 44.7%로 가장 높았고, 단순 노무자가 18.8%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해당 지역 시민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상해치사, 아동 성범죄, 성폭행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전과 18범 조두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13일에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는 2020년 12월12일 새벽 6시46분 관용차량을 타고 만기 출소해 즉시 경기도 안산시로 돌아갔다.

조두순 출소 당시 사회는 적잖은 혼란에 빠졌다. 단순히 조두순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모이거나, 유명한 범죄자에게 관심을 갖는 현상 정도가 아니었다. 조두순이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두순은 피해자와 불과 500m 거리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피해자의 부친은 “조두순은 법정서 피해자의 기억이 잘못됐다고 주장했고 사과와 반성도 없는 사람이다. 영구 격리하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조두순·박병화 외 악질 성범죄자 출소
동일 범죄 반복할 위험성 높아 예의주시

이 같은 이유로 정부는 조두순의 재범 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당국은 조두순이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내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주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CCTV를 확대 설치했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안산단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력팀 5명을 특별대응팀으로 편성했다.

조두순뿐 아니다. 박병화는 2002년과 2005~2007년에 경기도 수원서 20대 여성 8명을 성폭행했다. 2008년 1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같은 해 6월 항소심서 11년으로 감형받았다. 대법원은 징역 11년, 전자발찌 부착 명령 10년을 선고했다. 이후 2002년과 2005년에 저질렀던 2건의 여죄가 밝혀지면서 4년이 추가됐다.


출소는 지난해 10월31일 이뤄졌다. 박병화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으로 거주지를 정했다. 이에 따라 경기남부경찰청은 박병화가 거주 중인 지역 주변 5곳에 경찰 지구대와 기동대 인원 10명을 상시 배치했다. 또 주요 진입로엔 순찰차 3대를 배치하고, 특별치안센터도 2곳 마련했다. CCTV 27대와 비상벨 12대를 설치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범죄 행각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정부가 범죄자의 사진과 신상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성폭력처벌법 제25조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영구 격리
가능할까?

덕분에 누구나 성범죄자알림e 앱에 성범죄자 이름을 검색하면 거주지 정보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성범죄자알림e 앱은 범죄자의 기본정보를 알아야 검색이 가능한데, 이름이나 주소가 알려지지 않은 성범죄자들은 아예 검색 자체가 불가한 경우다. 물론, 성범죄자 신상 공개가 법적으로 이뤄지지 않아도,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가구에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하지만 독립한 미혼 20~30대 여성이나 결혼했어도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성범죄자의 정보를 알 수 없다. 특히 성범죄자의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인터넷이나 타인에게 알리는 것 자체도 법에 저촉된다. 성범죄자의 이름과 나이가 같은 다른 사람이 성범죄자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범죄자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서 생긴 결과다.

혼자 사는 여성은 옆집에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자가 거주해도 피할 방법이 전혀 없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지난달 22일 발생했다. 이날 10~30대 여성 13명을 성폭행한 연쇄 성범죄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후 전남 순천에 거주해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것.

같은 달 27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연쇄 성범죄자 A(50)씨가 출소하면서 유관기관들은 특별 관리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A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광주서 10~30대 여성 피해자 12명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2008년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2029년까지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내려졌다.

2019년 형 집행이 종료된 A씨는 사회로 나왔지만, 경찰이 성범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추가 범행이 드러나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이 형량까지 모두 끝난 상태다. 현재 A씨는 전남 순천의 한 임시 거주지에 머물고 있으며 8월 초까지 주거지를 결정해 법무부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성범죄자 출소 소식과 함께 자리 잡은 임시 거주지가 초등학교와 800m 거리에 위치해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했다. 특히 13명의 피해자 중 3명이 미성년자이며 A씨가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서 재범 위험성이 ‘높음’ 수준으로 나왔다.

불안한
주민들


당시 재판부는 “각 범행의 반복성과 수법의 유사성 등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추후 다시 동종의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더 이상의 무고한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방위하기 위해서 피고인에 대해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판시했다.

전문가들은 A씨의 관리·감독이 엄격하게 이뤄지지만, 고위험 성범죄자의 경우 법 개정을 통해 일정 기간 보호 수용과 주거지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순천 시민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성범죄자알림e에 검색해봤는데 인증해야 하고, 캡처하고 공유하면 처벌받는다는 문구가 협박처럼 느껴졌다”며 성범죄자알림e 앱을 향한 불만을 제기했다.

또 “너무 끔찍하다. 성범죄자들은 남의 인권을 훼손하고 자신은 법 테두리 안에서 숨는 것 아니냐” “성범죄자 신상 공개 고지가 독신 성인 여성에게도 이뤄져야 한다” “성범죄자들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다. 과거 사진이 아닌 현재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성범죄를 다시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는 건 정말 무섭다” 등의 부정적 의견들도 쏟아졌다.

충북 청주에도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성범죄자가 있다. 주거침입, 강간, 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B(49)씨는 지난해 2월 청주교도소서 출소했다.

B씨는 2007년 1월부터 한 달 동안 6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 중 5명은 미성년자였다. B씨는 혼자 귀가하는 피해자를 미행한 후 집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직접 현관문을 여는 아이들이 범행 대상이었다. 집에 부모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 택배기사로 위장해 현관문을 열게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수법, 나이 등에 비춰볼 때 동종 범행을 반복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B씨는 출소 전 실시한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조두순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법 테두리에 숨는 것”
“보호수용제 입법 필요”

이처럼 비상식적인 범죄를 반복했던 B씨는 현재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 원룸촌에 거주하고 있다. 등하교 시간이 되면 수백명의 아동·청소년이 B씨 거주지 앞을 지나 다닌다. B씨는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있다. 또 통학 시간 외출 제한, 유치원·학교·놀이터 등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상시 이용 장소 출입 금지 등의 준수사항이 부과돼 있다.

그러나 정확한 거주지 위치, 사진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초범인 탓에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 등록 및 제한적 열람’ 대상에도 속하지 않는다.

2021년 생후 20개월된 딸을 무참히 폭행해 숨지게 한 데다 성폭행까지 저지른 혐의를 받는 20대 계부 C(29)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의 동의했다. C씨는 2020년 6월, 20개월된 딸이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이불을 덮고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와 20개월된 아이를 성폭행하고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 외에도 C씨는 장모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반인류적이고 패륜적인 행태를 보였다. C씨는 이날 추가로 당시 아이를 유기 후 도주하는 과정서 신발, 음식, 금품을 훔치는 절도 행각을 벌인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해당 청원 작성자는 “가해자 C씨가 20개월 아기 피해자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인정했으니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부합한다”며 C씨의 신상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C씨 사건은 재판이 넘겨진 상태여서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신상 공개 범위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서 ‘피의자’ 신분인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재판받는 C씨는 이미 ‘피고인’ 신분이 돼있었다.

성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것은 신상 정보 공개를 명시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 법률 등 제정 이전이기 때문이다.

확인할
방법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범죄자는 보호관찰관이 전담해도 위치 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 장기수, 강력범죄자는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 사회 적응이 어려운 데다 또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야간 외출 제한 대신 시설서 생활하면 성매매와 음란물을 보고 있는지 등 생활 관리와 관리·감독이 체계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시설서 보호관찰관과 함께 상담 등에 참여하는 등 치료 목적도 달성할 수 있어 재범 방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추가적 관리를 위해 중간 처우 보호수용제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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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