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출소’ 제2의 조두순 3인방 추적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01 11:06:19
  • 호수 14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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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에 금수가 살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성범죄자들이 출소할 때마다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한결같이 ‘내가 사는 지역으로 오지 마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그나마 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라면 다행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성범죄자들이 있다.

대한민국 여성 10명 중 4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 전체 성폭력 범죄 피의자 중 절반만 재판에 넘겨졌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2월29일 여성 폭력의 발생과 범죄자 처분, 피해자 지원까지 총 152종의 통계를 종합한 ‘2022년 여성 폭력 통계를 여가부 홈페이지에 공표했다.

미성년자
상대로…

해당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비율은 여성이 38.6%, 남성이 13.4%였다. 피해 여성 중 성추행, 강간미수, 강간을 포함한 신체적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비율(복수 응답)은 18.5%로 나타났다. 이외에 성폭력 피해 유형으로는 성기 노출 22.9%, 음란 전화 등 10.4%, 불법 촬영 0.5%, 불법 촬영물 유포 0.2% 등이 있었다.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은 통계서 드러난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조사한 성범죄자 신상 등록 현황에 따르면 10년간 성범죄로 7만4956명이 등록됐다.

이 중 신상 재등록자는 2901명으로 전체의 3.9%다. 2901명의 재등록 성범죄자 중 1811명이 3년 이내 성범죄를 다시 저질렀다. 출소 직후 성범죄자를 특별히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성범죄를 다시 저지른 재등록 대상자 중 무직 비율이 44.7%로 가장 높았고, 단순 노무자가 18.8%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이유로 성범죄자가 출소하면 해당 지역 시민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상해치사, 아동 성범죄, 성폭행 등의 중범죄를 저지른 전과 18범 조두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13일에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그는 2020년 12월12일 새벽 6시46분 관용차량을 타고 만기 출소해 즉시 경기도 안산시로 돌아갔다.

조두순 출소 당시 사회는 적잖은 혼란에 빠졌다. 단순히 조두순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모이거나, 유명한 범죄자에게 관심을 갖는 현상 정도가 아니었다. 조두순이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두순은 피해자와 불과 500m 거리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피해자의 부친은 “조두순은 법정서 피해자의 기억이 잘못됐다고 주장했고 사과와 반성도 없는 사람이다. 영구 격리하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조두순·박병화 외 악질 성범죄자 출소
동일 범죄 반복할 위험성 높아 예의주시

이 같은 이유로 정부는 조두순의 재범 예방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세웠다. 당국은 조두순이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내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주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CCTV를 확대 설치했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안산단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강력팀 5명을 특별대응팀으로 편성했다.

조두순뿐 아니다. 박병화는 2002년과 2005~2007년에 경기도 수원서 20대 여성 8명을 성폭행했다. 2008년 1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같은 해 6월 항소심서 11년으로 감형받았다. 대법원은 징역 11년, 전자발찌 부착 명령 10년을 선고했다. 이후 2002년과 2005년에 저질렀던 2건의 여죄가 밝혀지면서 4년이 추가됐다.


출소는 지난해 10월31일 이뤄졌다. 박병화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으로 거주지를 정했다. 이에 따라 경기남부경찰청은 박병화가 거주 중인 지역 주변 5곳에 경찰 지구대와 기동대 인원 10명을 상시 배치했다. 또 주요 진입로엔 순찰차 3대를 배치하고, 특별치안센터도 2곳 마련했다. CCTV 27대와 비상벨 12대를 설치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범죄 행각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정부가 범죄자의 사진과 신상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성폭력처벌법 제25조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성폭력 범죄의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는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피의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영구 격리
가능할까?

덕분에 누구나 성범죄자알림e 앱에 성범죄자 이름을 검색하면 거주지 정보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성범죄자알림e 앱은 범죄자의 기본정보를 알아야 검색이 가능한데, 이름이나 주소가 알려지지 않은 성범죄자들은 아예 검색 자체가 불가한 경우다. 물론, 성범죄자 신상 공개가 법적으로 이뤄지지 않아도,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가구에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하지만 독립한 미혼 20~30대 여성이나 결혼했어도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성범죄자의 정보를 알 수 없다. 특히 성범죄자의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인터넷이나 타인에게 알리는 것 자체도 법에 저촉된다. 성범죄자의 이름과 나이가 같은 다른 사람이 성범죄자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범죄자 얼굴이 공개되지 않아서 생긴 결과다.

혼자 사는 여성은 옆집에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자가 거주해도 피할 방법이 전혀 없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지난달 22일 발생했다. 이날 10~30대 여성 13명을 성폭행한 연쇄 성범죄자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후 전남 순천에 거주해 시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것.

같은 달 27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연쇄 성범죄자 A(50)씨가 출소하면서 유관기관들은 특별 관리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A씨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광주서 10~30대 여성 피해자 12명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2008년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2029년까지 전자장치 부착 명령도 내려졌다.

2019년 형 집행이 종료된 A씨는 사회로 나왔지만, 경찰이 성범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추가 범행이 드러나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이 형량까지 모두 끝난 상태다. 현재 A씨는 전남 순천의 한 임시 거주지에 머물고 있으며 8월 초까지 주거지를 결정해 법무부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성범죄자 출소 소식과 함께 자리 잡은 임시 거주지가 초등학교와 800m 거리에 위치해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했다. 특히 13명의 피해자 중 3명이 미성년자이며 A씨가 성범죄자 위험성 평가서 재범 위험성이 ‘높음’ 수준으로 나왔다.

불안한
주민들


당시 재판부는 “각 범행의 반복성과 수법의 유사성 등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추후 다시 동종의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더 이상의 무고한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방위하기 위해서 피고인에 대해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판시했다.

전문가들은 A씨의 관리·감독이 엄격하게 이뤄지지만, 고위험 성범죄자의 경우 법 개정을 통해 일정 기간 보호 수용과 주거지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순천 시민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성범죄자알림e에 검색해봤는데 인증해야 하고, 캡처하고 공유하면 처벌받는다는 문구가 협박처럼 느껴졌다”며 성범죄자알림e 앱을 향한 불만을 제기했다.

또 “너무 끔찍하다. 성범죄자들은 남의 인권을 훼손하고 자신은 법 테두리 안에서 숨는 것 아니냐” “성범죄자 신상 공개 고지가 독신 성인 여성에게도 이뤄져야 한다” “성범죄자들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다. 과거 사진이 아닌 현재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성범죄를 다시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는 건 정말 무섭다” 등의 부정적 의견들도 쏟아졌다.

충북 청주에도 신상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성범죄자가 있다. 주거침입, 강간, 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B(49)씨는 지난해 2월 청주교도소서 출소했다.

B씨는 2007년 1월부터 한 달 동안 6명의 피해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 중 5명은 미성년자였다. B씨는 혼자 귀가하는 피해자를 미행한 후 집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직접 현관문을 여는 아이들이 범행 대상이었다. 집에 부모가 없는 것을 확인하면, 택배기사로 위장해 현관문을 열게 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수법, 나이 등에 비춰볼 때 동종 범행을 반복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B씨는 출소 전 실시한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조두순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법 테두리에 숨는 것”
“보호수용제 입법 필요”

이처럼 비상식적인 범죄를 반복했던 B씨는 현재 학교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 원룸촌에 거주하고 있다. 등하교 시간이 되면 수백명의 아동·청소년이 B씨 거주지 앞을 지나 다닌다. B씨는 전자장치를 부착하고 있다. 또 통학 시간 외출 제한, 유치원·학교·놀이터 등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상시 이용 장소 출입 금지 등의 준수사항이 부과돼 있다.

그러나 정확한 거주지 위치, 사진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초범인 탓에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 등록 및 제한적 열람’ 대상에도 속하지 않는다.

2021년 생후 20개월된 딸을 무참히 폭행해 숨지게 한 데다 성폭행까지 저지른 혐의를 받는 20대 계부 C(29)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명 이상의 동의했다. C씨는 2020년 6월, 20개월된 딸이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이불을 덮고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와 20개월된 아이를 성폭행하고 시신을 아이스박스에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 외에도 C씨는 장모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반인류적이고 패륜적인 행태를 보였다. C씨는 이날 추가로 당시 아이를 유기 후 도주하는 과정서 신발, 음식, 금품을 훔치는 절도 행각을 벌인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해당 청원 작성자는 “가해자 C씨가 20개월 아기 피해자를 잔인하게 학대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인정했으니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부합한다”며 C씨의 신상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C씨 사건은 재판이 넘겨진 상태여서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신상 공개 범위는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서 ‘피의자’ 신분인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재판받는 C씨는 이미 ‘피고인’ 신분이 돼있었다.

성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는 것은 신상 정보 공개를 명시한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 법률 등 제정 이전이기 때문이다.

확인할
방법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범죄자는 보호관찰관이 전담해도 위치 정보만 확인할 수 있다. 장기수, 강력범죄자는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아 사회 적응이 어려운 데다 또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야간 외출 제한 대신 시설서 생활하면 성매매와 음란물을 보고 있는지 등 생활 관리와 관리·감독이 체계적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시설서 보호관찰관과 함께 상담 등에 참여하는 등 치료 목적도 달성할 수 있어 재범 방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추가적 관리를 위해 중간 처우 보호수용제에 대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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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