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의 여권으로 입국해 서울 활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10 11:48:08
  • 호수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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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외국인’ 뻥 뚫린 출입국 실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타인의 여권으로 입국한 일부 외국인은 처벌할 수 없다. ‘난민 신청자’이기에 가능하다. 경찰은 사문서위조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법무부 측은 “난민 신청자라면 강제퇴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난민 신청에는 횟수 제한이 없다. 종교, 정치적 의견 등의 이유를 들면 몇 번이고 가능하다. 불법체류자와의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생존의 욕구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여권을 도용해 국내로 입국하는 사례는 흔한 수법이라고 한다. 공항 화장실서 도용 후 버려진 여권들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는 엄연히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다. 사문서위조 혐의를 받아도 강제퇴거할 수 없다. 난민 신청자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법무부는 경종을 울리고자 “남용적 난민 신청은 불필요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1만1539명으로 전년(2341명) 대비 5배가량 폭증했다. 코로나 펜데믹이 잠잠해지자 ‘눈치 게임’이 시작된 분위기다.

위조여권 입국했는데…

2016년 2월28일 남의 여권으로 입국한 왕모씨는 난민 비자로 체류 중이다. 전능신교 신도인 왕씨는 종교적 난민으로 신청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가 타인 여권으로 난민 비자를 취득한 점이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안휘(安徽)성에 있는 가족들의 제보로 발각됐다.

여권 주인 경모씨는 중국 강소(江苏)성 출신으로 본국에 있으며 여권상 그는 한국에 난민 비자로 체류 중이다. 왕씨가 경씨의 여권을 도용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왕씨의 신분증 번호로는 입국기록조차 없으며 가족들의 실종신고로 들통났다. 법무부도 왕씨의 신분을 파악할 도리가 없다. 타인 여권이라도 정식 발급된 여권이기 때문이다. 엄연히 출입국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다. 출입국관리법 제7조를 위반한 것이다. 이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같은 법 제46조 제1항 제1호에 따라 외국인은 강제 퇴거할 수 있다. 다만, 난민 신청자나 비자를 받은 외국인은 처벌이 어렵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왕씨는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발당했다. 고발장에는 왕씨의 생년월일, 주소, 신분증 번호 등이 기재됐다. 경씨의 신상정보도 모두 포함됐다. 고발인은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왕씨에게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수사 결과 불송치에 그쳤다.

지난 5월 서울영등포경찰서는 왕씨가 경씨의 여권을 도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불송치한 이유는 공소시효(7년)가 지났기 때문이다. 또 국외범으로 적용돼 국내 재판권이 없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문서위조 혐의는 공소시효가 지나도 처벌이 가능하지만, 왕씨는 난민이기에 처벌 대상서 제외됐다. 남용적 난민 신청의 전형적인 폐해로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한국에 들어왔던 전능신교 신도들은 “중국으로부터 탄압을 피한 종교적 난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곱게 보일 수는 없다. 이들의 등장은 난민법 시행, 제주 무비자 입국 시기와 겹친다. 전능신교가 성행한 곳은 중국 허난성이다. 신도들은 이곳의 관문인 쩡조우 공항을 통해 제주로 왔다.

“7년만 버티면 된다” 구멍 난 시스템
불법체류자와 난민 간 ‘모호한 경계’

2013년 당시 제주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다. 제주로 들어와 난민 신청 후 비자를 발급받아 제주 밖의 지역으로 진출했다. 제주 출입국 외국인청은 박해 사유를 심사했다. 난민 인정 여부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현재까지 종교적 난민을 인정받은 전능신교 신도는 많지 않다. 중국의 박해 수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전능신교 신도 샤오루이는 중국 공안에게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한국행을 택한 그는 <한겨레21>와 가진 인터뷰서 경험담을 털어놨다. 2009년 공안에 붙잡힌 그는 허공에 매달린 채 온몸을 구타당했다고 한다. 2012년 10월, 형 만기를 채우고 출소했다고 전했다. 신도별로 주장은 다르게 나왔다.

2018년 <노컷뉴스>와 만난 한 전능신교 탈퇴자는 “중국서 박해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서 “(공안이)처벌은 하지 않았고 전능신교의 위해성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해 수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법무부 측은 종교 난민이 가장 많지만,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2014년 1월부터 올해(5월 말 기준)까지 전체 난민 신청자는 9만1748명이다. 종교 난민 신청자는 1만9459명으로 가장 많다. 이 중 난민 지위는 987명만 인정됐다. 종교적 난민 인정 수는 개인정보라 파악할 수 없는 만큼 일부 불법체류자에게는 남용의 소지가 있다. 종교 난민을 빙자해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슬림이 난민으로 인정받은 판례도 존재한다. 기독교로 개종한 경우로 본국서 박해받을 근거가 다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손 놓은
법무부

지난 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송각엽 부장판사는 이란인 A씨를 난민으로 인정했다. 송 부장판사는 “종교활동을 공개적으로 못 하는 자체가 박해”라고 설명했다. 앞서 A씨는 2021년 5월 법무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다. A씨는 김세진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종교는 물론, 형제들이 유산을 빼앗으려 신고해 체포·구금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기독교인 태국인 여성과 한국서 결혼도 했다.

A씨의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의혹은 있다. 법무부는 A씨가 실제 교회에 나간 게 8년간 4번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당시 판결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개종으로 인한 박해로 난민을 인정한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난민 신청자가 사업 목적으로 들어온 것처럼 속인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국제협약에 따라 처벌하지 않았다. 이란인 B씨는 2016년 ‘한국 기업으로부터 초청을 받았다’며 단기 상용 사증(비자)을 신청했다. 이 초청장은 B씨가 브로커에게 4700달러를 주고 구했다.

브로커는 초청장 구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그의 말대로 한국 기업에 “직접 만나고 싶다. 비자를 받을 수 있게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하자 손쉽게 구했다. B씨는 이렇게 받은 비자로 입국해 2016년 난민 신청을 했다. 법무부는 신청을 기각했다.

검찰은 2018년 B씨가 한국 대사관을 속였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같은 해 9월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한 B씨는 난민 지위를 둘러싼 행정소송서 승소했다. 


난민 신청자
처벌 대상 제외

B씨는 2020년 말 ‘기독교 개종’을 이유로 난민 신분이 인정됐다. 대법원은 “난민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 형사재판서 형을 면제할 근거 조항이 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은 ‘난민이 불법으로 입국하거나 불법으로 체류한다는 이유로 형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해 이듬해 3월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사유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다. 예멘 정부군과 반군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내전을 벌이고 있다. 2018년, 제주로 들어왔던 예멘인 561명 중 549명이 “난민으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당시 2명은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412명은 인도적 체류가 허가됐으며, 최근 412명 중 한 명이 난민으로 인정됐다.

법무부는 난민 인정 사유에 관해 구체적 답변이 없었다.

인도적 체류자는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체류 허가를 받은 것이다. 한 예멘인 하산은 내전이 시작된 2015년 쯤 한국으로 피신했다. 민병대의 합류 강요를 거부한 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안전, 정의, 질서, 법 속에서 살 수 있는 대안적 조국”으로 한국을 선택했다.

그 뒤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부인과 자녀들을 탈출시켰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가족의 장기 거주를 허용하지 않고 퇴거를 압박했다. 한국은 이들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산은 “가족과 재결합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난민인권센터 등은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구성권을 요구했다.


현재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매년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저수준이다. 2019년 기준 러시아 출신 난민 신청자들의 인정률은 미국이 41.3%다. 같은 해 기준 중국 출신 난민 신청자들의 인정률도 미국은 32.2%로 높았다.

반면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러시아·중국 출신 모두 0%다. 남용적 난민 신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인권 보호단체의 입장이 크게 갈린 탓이다.

허위 비자로 들어왔는데 처벌 불가
단기체류자는 ‘검지’ 지문만 채취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그럼에도 난민에 인색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난민협약 가입은 1992년에 했다. 난민법이 통과되면 심사 과정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서 난민으로 인정되려면 많은 양의 입증 서류가 필요하다.

또 입증 서류를 제출했다 하더라도 심사를 받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법무부 공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 난민 심사 대기 건수는 1만3890건이다. 심사관당 140건 정도를 처리해야 하는 양이다. 물리적으로 쉽게 처리하기 어려운 숫자로 난민을 향한 혐오 인식 때문만은 아니라는 증거다. 

이들은 ‘불법체류자’와 엄연히 다르다. 법을 어긴 범죄자가 아니라 ‘미등록 외국인’에 불과하다. 90일 이내 단기체류 외국인으로 들어와 불법체류하는 것보다 안전하다. 단기체류 외국인은 범죄를 저질러도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양쪽 검지 지문만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90일 초과 장기체류 외국인은 열 손가락 지문과 얼굴 정보를 등록한다. 난민 신청자도 마찬가지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과 이지연 경위는 지난 5월 학술대회서 “불법체류자의 열 손가락 지문 등록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단기체류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면 검지 외에 지문은 파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특히, 검지가 훼손된 채 사망하면 신원 확인도 어렵다.

지문 등록을 두고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참여연대 등의 단체들은 “개인의 고유한 생체정보 보호가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김정식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장은 이날 “법과학적 타당성, 법과학 전문가의 증언이 보다 중요하게 취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한국보다 지문 채취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부는 2021년 1월부터 14세 이상~70세 미만 외국인의 양손 지문을 모두 채취하고 있다. 중국 방문을 위해 필요한 비자를 발급하기 위함이다. 기재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절대적으로 많다. 연봉과 상사 이름·연락처 등 훨씬 상세한 정보를 넣어야 한다. 부모 등 가족 정보 역시 이름만 입력하면 되는 미국 등과 달리 중국은 부모의 직업과 주소까지 넘겨야 한다. 

종교적 난민
1만9000여명

다만 지나친 정보를 요구하는 데에 대한 반감도 존재한다. 관광객이 줄어드는 것도 불편한 정보 수집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에 거주 중이라는 한 교민은 “비자 발급 과정에 요구하는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 가족들이 오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난민 신청은 까다롭지만, 입국 심사는 간단하다. 단기체류자에 대한 절차를 소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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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