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 부작용 두 번 울리는 병원 피해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6.27 15:30:27
  • 호수 1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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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사 까는 진단서 “안 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성형외과서 기능코 수술을 했다. 기능코 전문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수술 후 결과는 처참했다. 코안의 뼈는 심각하게 휘었고, 귀 모양 변형까지 왔다. 하지만 그 어떤 병원서도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진단서를 써 주지 않는다.

성형외과는 사람 몸에 생긴 선천적·후천적 변형과 기형으로 생긴 형태와 기능을 정상에 가깝도록 수술해 교정하는 외과수술을 하는 곳이다. 성형외과가 다루는 의료 분야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 ‘성형수술을 한다’고 하면 미용수술과 재건 수술을 생각한다. 한국이 인구 대비 성형 건수가 가장 많은 나라인 탓이다.

실제로 성인남녀 10명 중 1명, 30대 여성은 10명 중 3명이 성형수술 유경험자다. 눈, 코, 입을 포함한 15개 신체 부위에 134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부위별 시술법과 보형물의 종류에 따라 세분하면 시술 방법은 940가지가 넘는다.

늘어나는 분쟁
합의는 제자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형수술 부작용이나 후유증으로 분쟁 조정도 함께 증가하는 추세다. 수술, 시술, 주사, 처치 등 부작용과 피해사례도 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까지 피부과 및 성형외과 의료분쟁 신청 건수는 114건이었다.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료분쟁은 2018년 225건서 2019년 208건, 2020년 190건으로 감소하다가 2021년 194건으로 다시 느는 추세였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수술 분쟁이 2018~2020년 53건, 2021년 54건으로 전체의 25% 내외를 차지하며 가장 많았으며 ▲2018년 27건 ▲2019년 24건 ▲2020년 27건 ▲2021년 12건이었다. 시술 분쟁은 2021년부터 16건으로 신규 집계됐다. 지난해엔 10건이 발생했다. 

합의에 이르는 비율은 높지 않았다. 2018년엔 총 225건의 분쟁 중 합의된 건은 59건에 그쳤다. 합의율은 2019년 25.4%, 2020년 24.7%, 2021년 33.5%로 조사됐다. 지난해 8월 기준 114건 중 19건이 합의됐고 이 중 36건은 분쟁 조정이 진행 중이다.

한국의 의료기술이 해외서 인정받고 있고, 특히 성형수술 분야는 독보적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그렇다면 성형수술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코안 쪽 뼈가 심각하게 휘어 기능코 수술을 한 A씨는 “피해자가 되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일을 겪기 전엔 전혀 몰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A씨는 B 병원서 기능코 수술을 받았는데 이 병원은 초창기부터 기능코 수술로 자리매김했다. 코 성형수술 상담 당시 병원 의사는 A씨에게 “코안 쪽이 심각하게 휘어 있고 협착도 있다. 이미 코가 매우 높으니 보형물을 넣지 말고, CT상에 메부리가 보이니 교정하자”고 권유했다.

그는 해당 병원 의사를 믿었다. 당시 기능코 수술은 시간이 경과하면 실비 보험처리가 불가능했다. 5월은 병원 비수기라 그달에 상담하고 바로 수술을 받았다.

점점 늘어나는 K-성형의 그늘
10군데 이상 거절당한 소견서


부작용은 수술한 뒤 바로 나타났다. A씨는 수술을 담당했던 간호조무사에게 수술 경과에 대해 물었다. 간호조무사는 원내 총괄실장을 통해 ▲귀 연골을 크게 떼어냈고 ▲인조 진피를 사용했다 등의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상담 과정에선 인조 진피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실제로 A씨는 귀가 계속 불편했다. 수술에 귀 연골을 사용했기 때문에 몰딩을 귀에 넣어줘야 하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몰딩은 연골을 뗀 귀 모양에 변형이 오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계속 귀를 포함한 머리 통증이 있었지만, 담당 주치의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네이버 지식인에 “코 수술을 한 지 약 20일째다. 비중격이 작아 귀 연골을 사용했다는데, 병원서 준 귀 몰딩은 맞지 않는다. 30분씩 씨름하고 끼면 귀만 아프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문의했다.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해당 지식인 상담 의사는 “연골을 어떻게 떼어냈는지 알 수 없지만, 절개한 상처 아래로 들뜸 현상이 생겨 굴곡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며 “혈종(혈관 밖 국부 출혈)이 생긴 것이 흉살로 바뀐 것 아닌지 의심된다. 이런 상황이니 레진몰드도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 귀 모양의 변형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몸이 망가진 느낌이 드는 데다, 주치의를 믿고 기다리기엔 귀 모양도 좋지 않았다. A씨는 지인 의사에게 귀 사진을 보여주며 자문을 구했는데, 귀 모양만 문제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 코 모양까지 틀어져서, 한쪽 콧속 뼈는 너무 휘어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으며 당연히 비염도 개선되지 않았다. 

지인 의사는 A씨에게 귀 모양 변형이 심각한 상태인 만큼 조속히 귀 성형 전문병원을 찾아 가라고 조언했다. 이미 귀가 수축 및 착색으로 구축됐고, 피부 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틀어진 귀
휘어진 코

귀 성형 전문의는 “귀 피부가 죽었다. 연골 채취 양과 위치가 잘못됐다”며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진단내렸다. 그러면서도 해당 의사는 A씨의 귀가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이라는 소견서를 써 주는 것은 거절했다.

이후에도 성형수술 집도의는 귀나 코 상태가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코 모양이 최고며 구조적인 문제도 없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A씨는 연골을 채취했던 귀 뒤쪽서 끊임없는 통증에 시달렸으며 원래 매끈했던 콧대도 혹이 난 것처럼 울퉁불퉁해졌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대개 성형수술은 수술 이후 6개월까진 무조건 경과를 지켜본다. 수술 후 모양이나 기능적인 부분의 문제점은 6개월 뒤에 확인하는 게 보편적이다. 이 시기에 귀의 상처는 점점 아물었다. 하지만 귀 뒷머리 통증은 여전했고, 어느 때는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이 들 정도의 통증이 몰려왔다.

9개월이 지난 시점이 되자, 집도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귀 모양이 많이 틀어진 건 아니다. 이 정도 변형은 다 있다. 환자가 생각하는 것과 객관적인 것은 다르다. 귀 통증은 일반적이지 않으니 정확하게 검사해봐야 알 수 있다. 검사 결과지를 가져오면 진단에 맞춰 치료 방법을 확인해주겠다”고 했다.

A씨는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적힌 의사소견서나 진단서가 필요했다. 수술 전에는 비염 증상 외엔 어떤 문제도 없었지만, 이런 부분은 의미가 없었다.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을 진단서에 써주지 않았다.


이후 A씨는 이비인후과와 성형외과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성형외과서 코 성형수술 후 귀에 문제가 생겼다”고 문의하자 “성형외과서 수술 받았으면 진료가 불가하다. 당장 염증 등의 문제가 심각하면 응급실을 통해서 올 순 있다”는 답을 들었다.

여러 번
진료 거부

다른 대학병원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료가 가능하긴 하지만, 이비인후과에서는 신경외과로 가라고 했고, 신경외과에선 통증의학과를 권유했다. 다시 통증의학과를 가면 성형외과로 가 보라는 식이었다. 당연히 진단서는 받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대학병원에선 ‘성형외과가 없는 병원’이라며 진료를 거부했다. 이 외에도 일반 이비인후과 세 곳을 더 방문했지만 모두 진단서 작성을 거부했다. 어떤 성형외과는 진단서 코드명을 넣을 수 없어 진단서를 발급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서울이 아닌 지역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귀 통증의 원인이 궁금했던 A씨는 해당 의사로부터 “귀 연골을 떼내서 생긴 통증으로 증명이 잘 안 된다. 소견서에는 ‘의심이 된다’고만 쓸 수밖에 없다”며 “아마 다른 의사도 소견서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을 들었다.

그러면서 “유명한 곳에서 수술한 거 아니냐? 거기서 뭐라고 했나? 귀는 잘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A씨는 해당 병원을 찾아 “귀 검사를 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병원은 “검사를 해도 의미가 없다”며 돌려보냈다.


다른 지역의 이비인후과에선 “귀 부위를 교정하면 좋다. 하지만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실리콘을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성형외과로 큰 업적을 이룬 의사도 있었는데 그는 A씨를 수술한 B 병원 의사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것 같다고 의심했다.

해당 의사는 “코 모양이 완전히 돌아갔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맞는지 의심된다. 이 정도면 재수술해야 한다. 연골이 완전히 누웠다. 코가 거의 통째로 쓰러졌고, (코끝이)수술했다고 도장 찍어 놓은 것처럼 연골을 넣었다. (귀를 확인한 뒤)Y자는 건드리면 안 되는데, 귀 브리지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코 재수술로 유명한 성형외과도 의견은 같았다.

해당 성형외과는 “코 시작 부분이 아예 옆으로 누웠다. 안장코가 된 것 같다. 메부리 부분을 간 게 아니고 뼈를 친 것 같다. 오른쪽 코로는 숨이 안 쉬어질 것”이라며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속이 문제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옆으로 더 주저앉을 것이다. 비중격(비강을 좌와 우로 나누어주는 칸막이 벽)이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주치의가 “문제없다” 하면?
“피해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의사들은 한결같이 A씨의 코와 귀가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망가졌다고 진단했지만, 소견서나 진단서를 써 주진 않았다. 겨우 받은 소견서에서도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 내용은 빠져 있었다. 

소견서에는 “우측 귀의 연골 관련 수술 이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있어 신경과 외래로 내원했다. 상기 진단 가능성 있을 것으로 사료되며, 이에 대해 약제 처방 추적 관찰 예정이다” “환자 내원 시 시행한 비내시경검사 및 이학적 검사상 우측 코막힘, 우측 턱 비대증 소견이 확인됨”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전부 이런 식이었다. 성형수술이 문제가 됐다는 말은 일절 들을 수 없었다.

A씨는 ‘재수술’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뒤 대학병원서 진료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재수술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해당 대학병원 의사는 “코안 쪽이 완전히 휘어 숨을 쉴 수가 없다. 다시 비중격 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코가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어서 재수술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우측 코막힘이 지속할 시, 기능코 재수술을 권유했다.

재수술 문의에 의사들은 “이제는 코에 실리콘을 사용하려고 해도 사용 불가능한 상태다. 코끝 포인트만 뾰족하고 양옆은 퍼져 있어서 주먹코가 될 수도 있다. 코안 비중격이 휘어있으나 수술 시 상태를 다시 봐야 하지만 귀는 수술이 불가하다” “귀 수술이 잘못돼 3차 신경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 코 모양으로 복원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귀는 수술이 불가하다” 등의 진단을 내렸다.

A씨는 성형외과 수술 피해자다. 모든 수술이 잘될 수는 없겠지만, 비상식적인 방법의 수술로 코는 수술 효과가 전혀 없고, 귀는 재수술할 수도 없는 상태다. 그는 빈번하게 찾아오는 신경통으로 심각한 불면증마저 겪고 있다. 

이제 A씨에게 남은 것은 재수술뿐이다. 이번 일로 직장은 그만뒀고 어디를 가더라도 모자를 써야 했다. 이런 과정서 피해자가 느낀 것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진단서 받급도 할 수 없었다.

피해자는
어디로?

A씨는 “타 전문의와 일반인도 수술 후 귀와 코 모양이 이상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B 병원 의사만 인정하지 않는다. 나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재수술을 빨리 받고 싶다”면서도 “수술이 잘못됐다는 객관적 증거인 진단서를 받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부작용을 호소하는 것조차 B 병원은 협박이라고 한다”고 억울해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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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