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학폭’의 굴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6.27 10:44:51
  • 호수 1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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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근래 들어 일선 학교들이 난리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난 뒤 학교폭력 범죄는 계속 늘고 있는데, 이를 제지해야 할 교사들은 힘을 잃었다. ‘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 때문인데, 문제 행동을 하는 학생이 교사를 아동학대범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일반 학생들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초·중·고교서 일어난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2만건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에 따라 원격수업이 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한때 줄었던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재차 증가했다. 더욱이 최근 들어 학교폭력 중 언어폭력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신체폭력, 집단따돌림, 성폭력 외에 언어폭력의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난리통

지난 2월28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전국 초·중·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 건수는 9796건에 이른다. 2학기 포함, 지난해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만건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학폭위 심의 건수는 코로나 이전 연간 2만~3만건 수준이었는데 코로나로 원격수업이 이뤄진 2020년 8357건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대면 수업이 다시 이뤄지면서 2021년에는 1만5653건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엔 코로나 이전과 동일한 수준까지 재차 상승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학폭위가 처분한 조치(가해 학생 한 명에게 2개 이상의 조치 가능) 중 상당 부분은 ▲서면 사과(63.1%) ▲접촉금지(78.5%) ▲학교 봉사(48.8%)였지만 사실상 중징계로 불리는 출석정지 비율(14.9%)도 두 자릿수에 이른다.


학교폭력은 코로나 엔데믹 이후 다시 심각해지고 있다. 교육청은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폭력예방·지원센터 설치 ▲학교폭력 예방교육 등을 실시했지만, 이 같은 방식이 학폭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일선 현장의 교사들은 허무함을 느낄 정도로 학폭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분위기다.

문제의 시작은 학생이 교사를 상대로 아동학대라고 신고하면서다. 서울시내 소재의 한 초등학교 A 교장은 학부모가 찾아와 ‘담임교사가 아이를 폭행했다’고 주장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해당 교사가 머리를 밀치고 색연필로 배를 때린 것도 모자라 친구들 앞에서 질책하는 바람에 왕따를 당했다는 것이다.

A 교장은 담임교사를 불렀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말을 들었다. 교장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혹시라도)무슨 말이 나올까 봐 학생과 단둘이 있는 상황조차 만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피해 학생은 해당 사건이 미술 수업 시간에 일어났다고 했지만, 담임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장면을 본 학생은 없었다. 교장실까지 찾아와 항의한 학부모가 친구들에게 물었으나 여전히 목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장은 수사권이 없는 데다, 쌍방 진술이 일치하지 않으니 무작정 문제를 덮을 수도 없었다. 담당 교육지원청 학교통합 지원센터는 해당 사건에 대해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공문으로 답변해주기 어렵다”고 말할 뿐이다.

만약 폭행이 사실일 경우, 해당 교사는 아동학대범이 돼 교직을 잃는다. 당시 그는 아동학대범으로 몰리면서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병가를 낸 상태였다. 반면 허위 사실이라면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침해됐다고 판단되고 학부모도 처벌 대상이 된다.

학생과 학생 간 다툼서 교사에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모두 2020년 아동학대처벌법에 ‘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가 신설된 이후 벌어졌다.


문제 행동 제지하면 ‘정신적 학대’
싸움 말리려 잡으면 ‘육체적 학대’

해당 절차는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 시·군·구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다’고 기재돼있다. 일선 학교에서는 이때부터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힘든 건 교사들이다. 학생이 수업 중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더라도, 교사는 아동학대범으로 몰릴 수 있어 강하게 제재할 수 없다. 사명감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지원한 B씨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현재 학교 상황은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고 느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B씨는 “예쁜 학생과 점잖은 학부모가 대다수다. 하지만 소수의 악성 학부모와 학생이 있다. 교사는 민원인과 1년 내내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야 한다”며 “어떤 학생은 수업 중에 익룡처럼 ‘으악’이라고 고성을 지르며 ‘선생님! 저 소리 좀 지르고 싶은데 잠깐 소리 질러도 돼요?’라고 질문하는데 이건 오히려 예의 바른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학생은 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 든 시도 때도 없이 본인이 원할 때마다 교실을 가로지르며 소리 지른다. 이런 상황에도 교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면 안 되지, 조용히 하고 얼른 앉아’라고 말하는 수 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때 제지하기 위해 교사가 학생의 손목을 잡거나, 강하게 말하면 아동학대범으로 신고될 수 있다. 특히 제지 과정서 학생의 기분이 나빴거나 무서움을 느꼈다면 ‘정서적 학대’의 사유가 된다. 또 학생들의 싸우는 상황서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강하게 문제 학생의 팔을 잡으면 ‘신체적 학대’가 된다.

현행 아동학대범죄 신고의무와 절차는 교사가 교육의 목적으로 한 행동이 아동학대 신고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결국 교사는 아동학대죄가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만큼 학생 지도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은 소수지만, 다른 일반 학생들이 수업을 받을 권리인 수업권마저 침해받는다. 교사의 교육 활동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충북초등교장협의회(이하 충초협)는 지난 20일 “최근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아동학대 면책조항에 관한 논의는 바람직하다. 교단의 정상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작용

충초협은 “잠자는 학생을 깨우거나, 다른 대다수 학생의 수업권을 방해하는 등 문제행동 학생에 대한 교사의 당연한 제지 행동도 무조건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학교 현장을 개선해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태규 의원은 지난달 11인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았다. 악의적인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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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