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극악무도’ 7명 죽인 연쇄살인범 풀스토리

유영철, 정남규…그들보다 더 무서운 놈

[일요시사=김지선 기자] 8년 전, 비오는 목요괴담의 주인공인 연쇄살인범이 강도 살인 등의 추가범행으로 경찰에 검거됐다. 이로써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했던 미아동 부녀자 살인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범인의 추가범행이 표면으로 드러난 정황에는 공범이 죽기 전 양심고백을 선언한 데에 있다.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들이 활개 치던 시절. 그 이면에는 이들이 있었다.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했던 비오는 '목요괴담'의 실체가 밝혀졌다. 괴담의 주범은 바로 성동구치소에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인 석촌동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모(46)씨. 이씨의 추가범행은 무기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7월 간암으로 사망한 공범 이모(64)씨의 양심고백으로 드러나게 됐다. 이들은 무직의 고향선후배 사이로 마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 및 절도행위를 일삼아 왔으며 대부분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다보니 별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총 7명 살해, 20여 개에 달하는 강도와 절도, 살인미수 행위 등 마약구매 이외의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묻지마 범죄를 저질러온 이씨 일행의 무자비한 연쇄살인 풀스토리를 나열해본다.

절도·강간·살인 등
각종 강력범죄 저질러

지난 1995년 7월, 필로폰을 투약한 뒤 환각상태였던 공범 이씨는 전북 익산 소재의 도로 노상에서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신원 불명의 한 피해자를 들이받고 사망케 했다. 이후 범행이 발각될까 두려웠던 그는 인근 야산에 시체를 암매장했다.

약 6년 뒤 이씨는 범행 장소로 또 다시 전북 익산을 선택한다. 그는 2001년 2월25일 전북익산 소재의 교보서적에서 손님으로 가장해 서점에 침입했다. 이날 역시 필로폰을 투약한 뒤였다. 그는 환각상태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 1명을 칼로 위협한 뒤 여성을 서점에서 끌고나와 강간 후 무참히 살해했다.

유영철, 정남규 등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가 기승을 부리던 암흑의 2003∼2005년에는 일명 ‘서울판 살인의 추억’도 국가 불안조성에 힘을 더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지난 2004년 1월부터 미아동을 포함한 서울시내 서남부권에서 비오는 목요일 새벽에 여성만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부녀자들이 외출하기를 두려워할 정도였다. 유영철에 이어 정남규 같은 사이코패스형 연쇄살인마가 전국을 뒤흔들면서 사회적 분위기는 점차 악화됐고 시민들은 매일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비 오는 새벽에 발생한 사건인 점을 꼽아 ‘비오는 목요일 새벽괴담’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 중 강북구 미아동에서 발생한 묻지마 부녀자 살인사건은 끝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었다. 공범 이씨가 사망을 앞두고 양심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04년에 들어와 이들의 습관적 범행은 지푸라기에 불붙듯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비오는 목요일마다 ‘서울판 살인의 추억’ 재현
마약 구매 위해 20차례 무차별적 강도·절도 행각

지난 2004년 1월 이씨 일행은 마약자금을 대기 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신문사 직원을 가장했고, 남모씨의 승용차에서 금품을 훔치려다 남씨에게 발각되자 칼로 피해자의 오른팔을 찌른 후 곧바로 도주했다.

다음 달에도 그들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2월 말 즈음 이씨 일행은 환자로 가장해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이비인후과에 침입했다. 당시에도 그들은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의사를 위협한 후 현금 2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

8월15일 오후 1시경에는 미제로 남을 뻔한 명일동 주부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 아파트에 침입해 혼자있는 주부 김모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지갑과 현금 등 금품을 훔쳐 달아나는 등 강도 살인을 저질렀다. 진범 이씨는 사흘 뒤인 8월19일 오전 3시30분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귀가하는 여성 2명을 뒤쫓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특별한 동기 하나 없이 단순히 살인을 하기 위해 힘없는 여성들을 노렸다. 이씨는 채모씨를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히고 10분 뒤 600m 떨어진 골목에서 원모양도 복부 등을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려고 했지만 주민의 신고로 그대로 도주해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명일동 주부살인과 미아동 칼부림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공범 이씨가 경찰에 과거의 추가범행을 털어놓으면서 전말이 드러났다.

이씨 일행의 묻지마 범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난 2004년 1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소재의 한 전당포에 침입했다. 그들은 범행 전 마약을 복용한 후 미리 소지한 흉기를 꺼내 전당포 주인 고모씨와 살해한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옆 비디오 가게 종업원 신모군을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끝을 알 수없는
‘묻지마 범죄’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이씨의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사건 당시 피해자의 “살려달라”는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질 때까지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난자했다. 이씨 일행은 두 명을 연쇄살해 후 현금 1500만원 상당을 갈취해 그대로 달아났다. 이 사건은 ‘석촌동 연쇄살인 사건’으로불렸고 흉악범죄 중 하나로 꼽히며 전 국민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같은 해 10월에도 이들은 원한관계가 전혀 없는 부녀자들을 흉기로 8∼10차례나 찔러 살해했다. 그 당시에도 이씨 일행은 필로폰을 투약한 상태에서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빌라에 침입해 김모씨 등 2명을 추가 살해하고 현금카드를 빼앗아 50만원을 인출했다.

공범 이씨도 다음해인 2005년 1월 길거리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담배 한 갑을 빼가려다 피해자가 항의하자 흉기를 휘두르는 등 단독범행을 감행했다.

1월8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한 성형외과에 침입해 원 내 직원들을 상대로 흉기 등으로 위협한 후 현금 210만원을 갈취하는 등 지속적으로 강력범죄를 저질렀다.

이씨는 공범 이씨와 함께 2004년 8월16일 첫 범죄를 저지른 이후 2005년 3월16일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8개월 동안 주요 6건의 강도 살인·상해를 단독 또는 공동으로 저질러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특히 2010년 이들이 무기형을 복수로 받게 된 경위에는 교도소 내에서 주고받은 편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 등은 “우리가 죽인 사람 알려지면 강호순·유영철은 게임도 안 돼” “송파구 방이동에서 죽인 사람이 자꾸 떠올라 괴롭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다가 진범 이씨의 살인 4명, 강도 2건의 추가 범행이 자연스럽게 들통 났다.

공범의 양심고백에
범죄 순순히 시인

그러다 한 강력계 형사가 이씨 일행의 추가 살인 범행이 더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는 1년6개월 동안 약 16차례에 걸쳐 이씨 등이 수감돼있는 서울구치소와 경북북부 제1교도소를 찾아가 끈질기게 범행을 추궁했다. 공범 이씨는 매번 범행사실을 부인해 오다가 간암으로 사망하기 일주일 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추가 범행을 털어놓았다.

그의 고백으로 인해 드러난 추가범행은 강도살인 1명과 살인미수 2건이었다. 그는 또한 진술 중 자신이 저지른 엽기적이고 잔인한 행위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지인의 병든 어머니를 위해 과거 자신이 죽인 사람의 머리를 파내서 끓여 먹인 적 있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이 사실을 접한 네티즌들은 그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이씨도 희대의 연쇄살인마들과 같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양심고백을 한 공범 이씨에 이어 진범 이씨도 자신의 무자비한 범죄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힘으로써 추가 범행을 시인했다. 간암으로 사망한 공범 이씨의 경우 2차례에 걸친 현장검증을 통해 범죄사실이 입증됐고 진범 이씨는 추가 강도 살인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히 진범 이씨의 경우 기존에 있던 두 번의 무기형에서 최근 추가 범행사실이 밝혀져 일각에서는 그가 사형선고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이로써 3건의 장기미제사건을 모두 해결하게 된 셈이 됐다.


환각상태서 묻지마 범행
무기서 사형 가능성 높아

이번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씨 일행은 2004년 8월경부터 2005년 2월 중순까지 모두 16회에 걸쳐 5100만원 상당의 금품을 강취했고 이는 모두 마약자금 마련에 동기를 뒀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대부분의 범행을 환각상태에서 저지르다보니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금품을 빼앗고 총 7명의 달하는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에서 이들을 두고 무기형 선고를 내릴 당시 판결문을 토대로 범죄 행각을 분석해 보면 이씨와 공범 이씨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진범 이씨는 어릴 때 모친이 재혼한 뒤 계부와 생활하다 중학생이 될 시점 가출을 결심했다. 어디 하나 정 붙일 곳 없었던 그는 어둡고 냉정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일찌감치 범죄의 세계로 뛰어 들었다.

강호순·유영철·정남규와 같은 사이코패스형 연쇄살인범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유년시절 문제가 이씨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공범 이씨 역시 진범 이씨 못지않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정 내 폭력까지 일삼았다.

이들은 전형적 사이코패스의 일환인 범죄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반사회적 성향이 강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들은 반성하지 않고 언제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교화 여지가 없고 위험성이 큰 만큼 피고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킬 필요가 크다”고 판결했다.

궁극적인 원인 찾아
사회적 문제 해결해야


사이코패스형 연쇄살인범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불우한 유년시절을 많이들 떠올리곤 하는데 전문가들은 원인이 꼭 이것 뿐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불우한 유년시절과 사회적 스트레스가 연쇄살인의 주요한 원인은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 대신 칼과 도끼를 마구 휘둘러댐으로써 회피해버리는, 보다 쉽고 비겁한 방법을 선택한 연쇄살인범의 자유의지가 결정적 요인이자 궁극적인 원인”이라며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나 시설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Tip>

<희대의 연쇄살인마 총집합>

 

[김대두] 1975년 8월13일부터 10월7일까지 55일 동안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마을 주민 안종현(63)씨 살인을 시작으로 무안군, 경기도 평택시, 서울 등지로 총 9차례에 걸쳐 17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내 최초의 연쇄살인으로 불릴 만큼 전국을 들썩인 사건이다.

[지존파]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김기환 등 지존파 일당 7명이 5명을 연쇄살인한 사건. 지존파는 애당초 연쇄살인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단순히 부유층이 싫다는 이유로 연쇄살인을 저질렀고 인육까지 먹는 등 극히 야만적인 행위를 일삼기도 했다.

[정두영] 1999년 6월부터 강도를 저지르며 약 17명을 살상했다. 그는 당시 18세였던 1988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 김찬일씨를 살해, 11년간 복역 후 출소했다. 1999년 출소 후 10개월 동안 19번의 강도행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9명을 살해했다.

[유영철] 2003년부터 2004년 7월까지 부녀자 약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혼 후 여성에게 더욱 혐오감을 느꼈으며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주로 노렸다. 살해 수법도 매우 잔인한 점을 미루어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정남규]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의 시민을 살해했다. 그 역시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았다. 그는 경기도 부천에서 윤기현군과 임영규군을 납치·살해했고 수도권 일대의 귀가하는 여성들을 노려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거나 거주지에 침입 후 방화한 혐의도 있다.

[강호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도 서남부일대에서 연쇄적으로 7명의 여성을 납치·살해했다. 그는 호감형 외모의 소유자로 여성들이 아무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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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