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실세’ 유병호 사무총장 막가는 리더십 막후

‘독불장군’ 막 휘두르는 잣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감사원의 선관위·권익위 감사가 시끄럽다. 위원들의 견해 차이가 있으나 유병호 사무총장의 월권 논란이 한몫하고 있다. 특히 유 사무총장이 최재해 감사원장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내부 직원들 사이서조차 ‘선을 넘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유 사무총장이 ‘감사원 실세’라고 불리는 이유다.

감사원은 본래 조용한 사정기관이었다. 언론과 정치권에 자주 언급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일을 잘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잇단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유병호 사무총장이 있다. 최재해 감사원장보다 앞서 나가는 스타일로 부담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무리한 감사
후폭풍 자초

유 사무총장은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위법·부당 행위를 확인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지난 1일 감사원 감사위원회는 전원회의를 열고 전 위원장에 대한 사무국 감사 결과를 논의한 끝에 8개 핵심 쟁점 ‘불문’ 조치를 결정했다.

위법·부당 행위 및 개인적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감사원이 조사한 전 위원장의 혐의는 총 8개로 ▲출·퇴근 포함 근태 문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이해충돌 유권해석과 관련한 쟁점 3개 항 ▲서해공무원 사건 유권해석 관련 1개 항 ▲전 위원장의 감사 방해 2개 항 ▲갑질 간부에 대한 탄원서 제출 등이 있다.


감사위는 8항의 탄원서 제출 쟁점을 두고 “부적절하다”며 기관 주의 조치를 내렸다. 기관 주의 조치도 “위법 부당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기관 경고조차 ‘법적 책임’이 없다는 설명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1항 출·퇴근과 탄원서 쟁점을 제외한 나머지 6개 항에 대해 전 위원장의 책임이 있다고 보고 대검찰청에 수사를 요청했다. 추 전 장관 이해충돌 유권해석과 관련된 2항의 보도자료와 3항의 보도자료는 같은 해 9월16일 권익위가 발표한 보도자료 건이다.

2항과 3항 보도자료는 추 전 장관의 직무와 아들(군 복무 중 휴가 논란) 수사 건에 대한 직무상 이해충돌에 관한 권익위 입장이다.

당시 권익위는 “이해충돌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사실관계 해석을 거쳐 유권해석을 했고, 그 해석도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라고 발표했다. 권익위는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추 전 장관이 아들 사건과 관련해 지휘권 등을 행사했는지 확인했다. 대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감사원은 굴하지 않고 전 위원장이 실무진에게 “허위로 보도자료를 내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간부들과 함께 수렴한 권익위 회의 내용을 실무자가 다른 직원들에게 메일로 발송하면서 ‘보도자료(위원장님 작성)’라고 제목을 잘못 쓰는 바람에 그런 ‘오해’가 생겼다”며 “그 자료는 해당 실무자의 컴퓨터에 그대로 저장돼있다”고 말했다.

특히 위 보도자료에선 “전적으로 담당 실무진의 판단 결과”라는 부분서 ‘전적으로’라는 표현이 쟁점이 됐다. 감사위가 보도자료를 내는 과정서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논의로 ‘방침’을 결정했고, 실무진은 그 방침에 따라 보도자료를 직접 작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전 위원장이 보도자료 작성에 직접 개입했다는 감사원 사무국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감사위 “전현희 위원장 부패·위법 없다”
따로 노는 사무국…간접적으로 인정 안 해


다만 감사위는 3항 보도자료 작성 부분에 관해 전 위원장에게 직접 책임을 묻지 않고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감사보고서에 관련 사실만 기술했다.

4항은 전 위원장이 추 전 장관의 이해충돌 유권해석 건을 두고 라디오 방송 시사프로에 ‘담당국장’을 시켜 허위로 인터뷰하게 했다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담았다. 그러나 감사원은 담당국장을 제외한 다른 관련 직원에게 “허위로 인터뷰하게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지 못했다.

결국 이 부분도 담당국장의 허위 진술로 확인됐다.

5항은 지난해 7월27일, 국회 정무위 출석 후 점심식사 당시 일어난 사건이다. 이날 국회 정무위서 서해 사건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의원의 질타에 대해 전 위원장은 “권익위가 사건의 사실관계를 잘 몰라 (유권)해석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감사원은 해당 결정을 전 위원장이 했고 담당국장에게 강요했다며 강요 미수로 고발했다. 이는 담당국장의 일방적 주장이었다.

감사원의 무리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감사원 대변인실은 지난 2일, 출입기자들에게 “감사위원회는 제보 내용을 안건별로 심의하며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관해 권익위원장에게 기관 주의 형태로 조치할 예정이며, 정무직이고 이미 수사 요청된 점 등을 고려해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 등은 서술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실 문자에서 “권익위원장 및 권익위의 ‘위법부당한 행위’에 대해”라고 적시한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즉, 감사위원회 결정은 개인 조치는 ‘불문’이고, 기관 주의도 ‘부적절했다’는 것이 끝이다. 감사위 결정을 간접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읽힌다.

실패한
전 잡기

유 사무총장은 대변인실이 입장을 밝힌 날 지휘서신을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감사원 관계자들은 유 사무총장이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기관에 대해 중대 감사로 취급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통상적으로 수사 요청 이전에 감사위 의결을 거친다. 예외는 ▲(감사 대상자)도주 우려 ▲증거인멸 우려 ▲당사자 본인 조사가 어렵거나 ▲범죄 혐의가 있거나 ▲긴급성이 있을 때만 둔다.

감사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사실상 감사원 사무국이 수사기관의 수사 이전부터 전 위원장을 범죄자로 봤다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무국이 직권으로 사전에 무리수를 뒀다. 내부서도 전 위원장에 대한 감사에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의 행태를 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전 위원장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을 제기하며 최 원장 등을 지난해 12월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 4월4일 공수처 조사에 앞서 경기 정부과천청사 민원인 안내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정치적 감사에 공수처가 수사로 경종을 울려달라”고 촉구한 바 있다.

공수처는 당시 구체적인 고발 경위 조사를 위해 60여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감사원의 보고서 발표 이전에는 수사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며 “특별수사본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잡기’에 실패한 유 사무총장은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위 회의서 최 원장의 발언을 끊거나 제지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이어갔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감사원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본인이 최 원장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정권과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최근까지 보여준 태도는 선을 한참 넘었다”고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도 “‘독불장군’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위원들과 말다툼을 벌이던 모습보다 심하다”고 말했다.

멈출 줄
모른다


지난해 유 사무총장이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과 고성이 오간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김 의원은 최 원장과의 질의서 문재인정부 시절 공공기관 감사국장이었던 유 사무총장의 직속 부하였던 A 과장이 유 사무총장을 비위 의혹으로 신고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감사원 직원들도 대부분 몰랐던 내용이다.

A 과장은 윤석열정부 출범 뒤 유 사무총장이 ‘문정부서 공공기관 평가 비위를 봐준 의혹이 있다’며 직위 해제한 인물이다. 당시 그의 상사가 유 사무총장이었다. 유 사무총장은 A 과장과 함께 당시 공공기관을 감사했던 4명의 감사관에 대해서도 직위해제와 동시에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그런데 A 과장이 최 원장에게 유 사무총장의 비위를 신고한 것이다.

유 사무총장을 향한 감사원 직원들의 불만이 언급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감사청구가 제기된 대통령실 용산 이전 의혹을 조사하던 감사원 B 과장이 돌연 사표를 제출했고, 배경으로 유 사무총장의 ‘감사 중단 압력설’이 거론되기도 했다.

CBS 구용회 논설위원은 ‘대통령실 감사 연장 불승인, 유병호 압력설 사실인가’ 칼럼서 “감사 업무를 총괄하던 행안 1과 B 과장이 사표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B 과장은 유 사무총장에게 대통령실 감사 기간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특히 B 과장은 ‘(대통령실 감사를)손을 봐 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제대로 정리를 해 놔야 한다’는 취지로 유 사무총장에게 감사 연장을 수차례에 걸쳐 요청한 것도 확인됐다”고 썼다.

이어 “하지만 유 사무총장은 감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유 사무총장은 ‘더 이상 건들지 말라’며 ‘여기서 끝내라’는 취지로 감사 연장을 중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감사원 규정에 의하면, 감사 연장 승인 여부 결정권은 감사원 사무차장에게 있다고 한다. 연장 승인권이 사무차장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 사무총장이 ‘중단 압력’ 결정을 내렸다면 이는 직권남용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10월 대통령실·관저 이전과 관련한 국민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했다.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는 5개의 청구 항목 중 2개를 인용하고 3개를 기각·각하했다. 이후 감사원은 ▲대통령실·관저 이전 의사결정의 부패 행위 및 불법 여부 ▲대통령실·관저 이전에 따른 건축 공사 등과 계약 체결의 부패 행위 여부 등에 대해 감사에 착수했다.

“유, 고집 안 꺾인다”
정부여당 뒷배 믿고?

참여연대는 기각·각하 결정이 난 ▲대통령실·관저 이전에 따른 비용 추계와 편성 및 집행 과정의 불법성과 재정 낭비 의혹 ▲대통령실 소속 공무원의 채용 과정의 적법성 여부 ▲국가공무원법상 겸직 의무 위반 여부 항목과 관련해 헌법소원심판 청구도 진행했다.

참여연대는 해당 칼럼에 대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헌법과 감사원법으로 독립적 권한이 보장된 감사원서 사무총장이 직권을 남용해 국민이 청구한 대통령실 감사를 중단토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국민감사를 방해한 중대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일단 전 위원장 건은 묻어두는 분위기다. 감사위 결과를 불복한 데 이어 논란을 자초하면 어깨의 짐만 더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충돌로 여유가 없기도 하다.

현재 선관위는 헌법을 내세워 감사원 감사 거부 입장을 피력했고 감사원은 감사원법을 근거로 감사를 거부하면 사법절차를 밟을 수 있다며 이를 갈고 있다. 이들 헌법기관의 충돌은 자녀 채용 특혜라는 현안과 보수 진영서 쌓여온 선관위에 대한 불만, 유 사무총장이 이끄는 감사원의 강성 성향, 헌법기관 위상을 지키려는 선관위의 판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도 선관위는 일반 행정(조직·운영)이나 회계 분야에 대해서는 감사원의 정기감사를 받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사안이 불거졌을 때 벌이는 직무감찰이다. 역사상 감사원이 선관위를 직무감찰한 적은 없다. 지난해 대선 사전투표서 불거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때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감사원은 직무감찰을 주장했지만 선관위가 거부한 바 있다.

감사원이 선관위에 직무감찰 권한이 있다는 근거로 든 조항은 감사원법 24조 3항이다. 직무감찰 범위 대상 공무원서 국회·법원·헌법재판소를 제외하는 내용이다.

감사원은 1995년 법 개정으로 제외 대상을 기존 국회·법원서 헌법재판소까지 확대했는데, 이때 국회서 논의 끝에 선관위를 넣지 않은 것은 선관위가 감사원 직무감찰을 받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권한은 있지만 선관위를 존중해 직무감찰을 자제해왔다고 주장한다.

‘황소고집’
불만 폭발

감사원은 여권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지금이 선관위의 벽을 깰 수 있는 적기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회가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권익위 조사, 선관위의 수사 의뢰에 따른 경찰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감사원까지 직무감찰을 고집하는 건 유 사무총장의 또 다른 무리수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감사원 관계자는 “현재 여권과 유 사무총장은 ‘한 몸’이다. 감사원이 검찰 다음 가는 ‘용산 하청기관’이라고 불리고 있다. 유 사무총장의 한 명의 고집으로 인해 무리한 감사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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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