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감사원 실세 유병호 사무총장

원장 위에 총장? 2인자 쥐락펴락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감사원의 하반기 감사 계획을 놓고 ‘보복 감사’ 논란이 불거졌다. 여야는 현 사태를 각각 전‧현 정부 탓으로 규정하고, 연일 정면충돌하는 형국이다. 감사원 안팎에선 ‘실세’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좌천 뒤 영전한 유 총장의 ‘복수혈전’에 중립·정중동이 사명인 감사원 전체가 흔들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지난 6월 15일 임명됐다. 지난 1월 감사연구원장직으로 사실상 좌천당한 지 5개월 만에 차관급인 사무총장으로 영전한 셈이다. 두 정권은 불과 반년 사이 유 총장에게 상반된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정부 바뀌고
다시 돌아왔다

유 총장은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에 발을 들였다. 1997년 감사원에 전입해 이후 25년간 근속한 ‘감사통’이다. 그동안 공공기관감사국장·심의실장·지방행정감사1국장·국방감사단장·IT감사단장 등 감사원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평가다. 대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전문위원에 임명되기도 했다.

감사원은 유 총장 임명 당시 “국가‧사회적 현안 관련 또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감사를 주도적으로 지휘해 문제를 해결해와 감사원의 신뢰를 높였다”며 “특히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감사를 통해 조직적인 감사 증거 은폐 등 관계기관의 감사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제성이 졸속으로 평가돼 조기 폐쇄 결정됐음을 밝혀 원칙주의자로서의 강직한 면모를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이어 “서울교통공사 등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친인척 채용 실태를 파헤쳐 위법부당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사례 등 원칙과 상식에 벗어난 공공기관 인사에도 제동을 건 바 있다”며 “확고한 소신과 함께 진취적인 도전정신으로 감사원을 활력 넘치고 역동적인 조직으로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전 정부 때와는 정반대의 평가다. 감사원이 언급한 두 사건은 모두 문재인정부 때 당시 정부와 집권여당을 정조준한 감사였다. 유 총장은 25년간 감사원에 근무하면서 두 번의 좌천을 맛봤다. 각각의 사건을 파헤친 뒤, 유 총장은 비(非)감사 부서로 보내졌다.

그는 2019년 9월 지방행정감사1국장 시절 ‘서울교통공사 고용 세습 비리’를 밝혀내고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고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에게는 주의 처분을 내렸다. 유 총장은 같은 해 12월 심의실장으로 발령받았다.

이듬해 4월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에 의해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복귀했다. 난항을 겪고 있던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사전 감사에 구원 등판한 것.

유 총장은 전면 재감사를 단행했고, 그해 10월 “정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불합리하게 저평가했다”는 감사 결과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증거 인멸 정황도 포착했다. 담당 국장 중징계 처분 요구와 포렌식 복구 절차가 이어졌다.

유 총장은 지난 1월 감사연구원장으로 또다시 좌천당했다.

‘인사보복’이라는 비판이 일자, 당시 감사원은 “본인이 원해서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 총장은 “‘희망을 당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며 인사보복이 실재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유 총장은 지난 6월15일 취임식에서 “새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약속한다”고 발언했다. 그는 “대한민국호가 물가 등 경제적 난제, 사회통합 등의 격랑을 헤치고 미래로 순항할 수 있도록 우리 감사원은 감사원장을 중심으로 밥값(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조직문화개혁’을 천명했다. 그는 “앞으로 전략과 방법론, 고민 없는 계획서·보고서 등이 얼렁뚱땅 결재·시행되는 일이나 그렇게 일하는 간부가 감사지휘 라인에 있는 사례는 없을 것”이라며 “우리는 현재 우물쭈물할 이유가 없다. 특히 간부가 제대로 감사지휘를 하지 못한 채 현재나 미래의 자리를 탐하는 것은 순리에 역행하는 부끄러운 행태임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감사원 안팎에서는 “개원 이래 가장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다”는 평이 자자하다. 유 총장이 지난달 초 간부회의에서 “악폐 진상규명을 시리즈로 해나갈 예정이니 놀라지 말라”고 밝힌 일화가 흘러나오면서다. 

감사원 25년 근속…요직 거친 ‘감사통’ 
문정권서 두 번 좌천, 윤정권에선 영전

일전에 유 총장은 문정부의 공공기관 평가에 관한 잘못을 덮었다는 의혹을 ‘악폐’로 규정한 바 있다. 연루된 감사원 간부와 직원 5명은 감찰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유 총장의 ‘시리즈’ 발언은 전 정권 의혹에 대한 고강도 감찰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 총장은 “향후 인사에서 감사교육원 공간을 빌려 (국·과장이)재충전과 성찰을 하도록 할 것이고, 성찰한 순서대로 (감사 부서로)복귀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유 총장 뜻에 따라 국·과장 100여명 중 능력이 애매한 간부를 최대 30명까지 재교육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복귀 기준으로 제시한 ‘성찰’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를 들어 “사실상 나가라는 의미”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이날 회의에선 강경 발언이 이어졌다. 유 총장은 “전 간부, 전 직원이 곧 인사가 난다고 보면 된다”며 “해야 하는 일인데도 안 하는 것이 제일 나쁘다. 심한 경우 형사처벌로 처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유 총장 말대로, 이달 초 감사원은 대규모 인사 조치를 단행했다.

이달 말로 예정된 국·과장급 간부 인사는 승진 59명, 전보 90명 규모다. 

이 같은 유 총장 방침에 대한 감사원 내부 평가는 엇갈린다. “분명히 충격 요법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의견과 “공포 통치 수준”이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윤석열정부 출범 후 감사원은 끊임없이 ‘중립의무 위반’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야권에선 감사원을 ‘윤정부 최전방 공격수’로 지칭하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정권 초기 ‘죽은 권력’을 향해 ‘칼춤’을 추는 주체는 대대로 검찰이었다. 하지만 사상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대규모 피바람을 우려한 더불어민주당이 검찰 수사권을 대폭 축소했다. 이에 검수완박으로 직격탄을 맞은 윤정부는 검찰 대신, 감사원을 ‘칼잡이’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 총장 영전 뒤에는 이 같은 맥락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전 정권 정조준
중립 위반 시끌

게다가 최재해 감사원장의 실언이 논란을 키웠다. 최 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를 받던 중 “감사원이 대통령 국정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야권은 이 발언을 빌미로 감사원 중립성 논란 맹공에 나섰다.

일각의 지적대로, 감사원은 정권이 바뀐 이후 전 정권 관련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관해 국방부와 해경을 시작으로 국가안보실·국가정보원·해양수산부·통일부 등 9개 정부 부처·기관을 현장 감사 중이다.

문정부 인사가 남아 있는 국민권익위에도 강도 높은 감사가 시행됐다.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부정 감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 위원장은 지난 10일 개인 SNS에서 “권익위 직원에 대한 괴롭히기식 불법 감사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상습 지각 등 제보’라는 억지 이유로 시작된 감사가 부위원장들과 수행원들 근태, 권익위 직원과 권익위 업무 전반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며 “감사원 감사는 처음부터 고래 잡기를 작정하고 망신주기나 겁박으로 사표를 내도록 압박하거나 임기 포기를 종용하는 사퇴 겁박용 표적 감사”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고래’란 고위 공직자가 연루되거나 규모가 큰 사건을 의미한다. 감사원에서 통용되는 은어는 아니지만, 유 총장이 자주 쓰는 말로 알려졌다.


지난 21일 올린 게시글에선 “(권익위 감사에)감사원 컴퓨터 포렌식 조사까지 동원됐다”며 “먼지 한 톨이라도 찾아낼 기세”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익위 업무가 마비됐다. 직원들이 4주째 감사에 대응하느라 사실상 업무를 제대로 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며 “직원 사이에 두려움이 소리 없이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감사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들과 국민권익위 모두 문정부 인사가 수장으로 있었거나 정권교체 후에도 남아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감사원은 병무청, 행정안전부,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 중 선관위 감사가 입방아에 올랐다. 헌법상 독립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감사는 상당히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지난 3월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 투표 시간에 투표용지를 소쿠리에 걷어간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미 지난 6월부터 자료수집 등 본격적인 감사 절차에 돌입했다. 

검찰 대신
칼춤 추나

감사원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회계 집행뿐 아니라 선거관리 사무 전반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군다나 최근 감사원이 공개한 ‘하반기 감사 운영 계획’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번 감사 계획에는 신재생 에너지 사업, 코로나 백신 수급 등 문정부의 핵심 정책이 포함됐다. 앞서 무분별한 추진으로 잡음이 일었던 태양광 사업 및 백신 도입 지연 사태 등을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문정부가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출범 1년 반 만에 감사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다. 

전례 없는 전방위 감사가 예고되면서 편파·표적 감사 의혹은 점차 심화되고 있다. 또한 이 같은 결정에 앞서 내부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감사위원이 특정 정책이 불과 1년 반 만에 다시 감사 대상에 오르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유 총장은 ‘보복 감사’ 논란을 부인하고 나섰다. 유 총장은 지난달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왜 그랬는지 사실관계를 엄밀히 밝혀야 하지 않나. 감사원은 원리·원칙에 따라 헌법이 부여한 기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한 게 있으면 벌주는 게 왜 보복인가. 경찰이 도둑을 잡는 것과 같다”며 “안 하는 게 직무 유기다. 마땅히 할 일을 보복으로 생각한다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유 총장은 “한국의 중요 이슈에 대해 감사원은 해야 할 일, 잘하는 일을 하는 거다. 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본래 감사원 사무총장은 감사원장에 이은 조직 내 2인자 자리다. 하지만 정·관계는 유 총장을 ‘원장까지 제친 실세’로 보고 있다. 최근 단행된 감사원 내부 개혁과 전 정권 감사 드라이브를 모두 유 총장이 진두지휘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유 총장이 감사원 내 특별감찰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것이 감사원 ‘집안싸움’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정중동’ 칼자루 입맛따라?
표적 수사·특별 감찰 논란

최 원장은 지난 22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 총장에 대한 특별감찰 사실을 시인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유 총장이 공공기관 감사국장 시절 행동강령 위반으로 신고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신고서가 접수된 걸로 알고 있다. 행동강령 위반이라는 내용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2020년 당시 유병호 공공기관 감사국장의 직속 부하들이 유 총장을 신고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공기업 경영평가, 실태감사를 하면서 행동강령을 위반했다고 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신고 배경은 ‘맞불 감찰’이다. 유 총장은 감사원 K 과장 등 5명을 지난달 초 직위해제하고 이들을 감찰해왔다. 유 총장은 기획재정부에 대한 봐주기 감사, 즉 ‘악폐’ 의혹을 밝히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다방면으로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땅한 탈출구가 없었고, 결국 K 과장이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든 것이다. 

‘유 총장 리스크’는 이뿐만이 아니다. 유 총장의 고압적인 태도는 내부 직원들과 지속적인 마찰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익명 비판을 입막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은 올해 초 내부망에 익명게시판 ‘감나무숲’을 개설했다.

내부 문제를 직원끼리 자유롭게 논의하라는 취지였다. 지난 6월 유 총장이 취임한 이래로, 감나무숲에 조직 운영 방향을 비판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 게 발단이 됐다.

비판 글은 유 총장이 회의 때 “(감나무숲의)명예훼손 글은 디지털 포렌식을 해서 고발하겠다”고 발언한 뒤 그 수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감사원 측은 “유 총장은 ‘익명성에 기댄 비방을 자제하고, 명예훼손 문제가 발생할 경우 피해자가 요청하면 법률 지원 등을 하겠다’고 말한 것인데 이를 오해한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유 총장과 감사원을 둘러싼 정치권 충돌 역시 날로 격화되는 형국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 행보를 겨냥해 ‘정치 보복성 감사’라고 비판한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비판이 사실 왜곡이라며 감사원을 엄호하고 나섰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권익위·방통위 같은 전 정권의 임기제 기관장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표적 감사는 직권남용 소지가 크다”며 “고발을 포함한 모든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더니, 윤석열정권에서 권력기관은 법보다 충성이 먼저인가”라고 꼬집었다.

지난 21일 같은 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감사원의 선전포고로 규정하고 전면 대응에 나설 것이다. 감사원은 민주당의 집중 감사 대상”이라며 “특히 (감사원 실세)유 총장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데 이은, 강경 발언의 연속이다. 

반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자신의 SNS에서 “문정부가 마땅히 했어야 할 감사를 그냥 넘어갔기 때문에 윤정부가 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사정기관의 정상화”라고 주장했다.

한통속?
폭풍전야

그는 “백신 수급도 제대로 못한 코로나 대응, 민간인 사찰 의혹을 받은 공수처, 대선 때 소쿠리 투표함을 내민 선관위까지 모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얼마나 지은 죄가 크면 감사원의 상시적 업무까지 경기를 일으키고 발목 잡기를 하느냐”고 비판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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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br>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