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 분석> 문재인 트위터의 이면

온라인서 지핀 불, 정치판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의 말은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공식 석상에서 한 말은 물론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온 말에도 다양한 해석이 따라붙는다. 퇴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자리가 주는 압박서 벗어난 상태라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발언 하나에 온갖 정치적 해석이 난무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어떨까?

사실 전임 대통령에게 ‘잊힐 권리’는 없다. 자리서 물러나도 발언과 행보에 대한 주목도는 늘 높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전임 대통령은 조용한 행보를 택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그런 듯 보였다. 재임 시기 여러 차례에 걸쳐 ‘잊히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
180도 달라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2020년 신년 기자회견)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지난해 3월 제15대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 추대 법회) 등 문 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은 언론 보도를 통해 ‘박제’돼있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의 실제 행보와 발언 사이의 괴리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SNS 활동을 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리면 지지자는 공감을 표하고 댓글을 단다. 말 그대로 잊히려야 잊힐 수 없는 상황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9일 임기를 마치고 지난달 25일까지 1년여 동안 트위터에 58개의 글(날짜 기준)을 올렸다. 6일에 한 번 꼴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9일 트위터에 퇴임 인사를 남겼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 놓습니다”로 시작된 글은 “선거 과정에서 더욱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며 국민 통합의 길로 나아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성공의 길로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로 끝을 맺었다. 

다음 날인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 확고한 지지층을 보유한 정치인이다.

‘문파’로 불리는 지지자는 문 전 대통령에 무한한 지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5년 만에 보수정당에 정권을 빼앗겼다.

대선 직후부터 5년 만의 정권교체에 대한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득표율 격차는 0.7%p에 불과했고, 윤 대통령이 정치 신인이라는 점에서 문 전 대통령이 도마에 올랐다. 문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행보가 진영 사이에 뚜렷한 갈등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정권교체로 이어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퇴임 사흘 만에 글 올려
책 추천으로 에둘러 비판?

많은 정치인이 선거 패배 이후 외국으로 떠나는 등 공식적인 외부 활동을 줄이는 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문 전 대통령이 당분간 별다른 활동 없이 사저서 ‘자연인’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정권교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 조용한 행보를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예상을 깨고 윤 대통령 취임 사흘째 되던 날인 지난해 5월12일 트위터에 글을 게시했다. 이미지 파일로 업로드된 글에는 문 전 대통령의 일상이 주된 내용으로 담겼다. 퇴임 이후 처음 올라온 근황 글에 문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마음에 들어요’(하트) 4만3000개, 리트윗 1만9000개, 댓글 2793개로 화답했다.  


이후 그는 평산책방 개점 소식을 알린 지난 25일까지 날짜 기준으로 58개의 글을 올렸다. 트위터는 짧은 글에 특성화돼있는 SNS다. 280자의 글자 수 제한이 있어 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개를 이어 쓰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 문 전 대통령은 페이스북 링크를 통해 긴 호흡의 글을 전달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업로드한 트위터 글을 보면 ▲일상 ▲책 추천 및 서평 ▲기념일 인사 ▲현안에 대한 발언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평산마을 비서실]’이라는 말머리로 시작되는 글이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이 아닌 관계자가 대신 작성하는 것으로 사진을 첨부해 업로드한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첫 글을 올릴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 [평산마을 비서실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직접 쓰시는 글 외에도 평산마을에서의 일상을 비서실에서 간간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내외분께서 평산마을에 오시고 첫 외출을 한 날입니다’라는 내용의 글도 함께 업로드됐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책과 관련된 글이다. 책을 추천하고 짤막한 서평을 덧붙이는 식이다. 책을 추천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해석이 뒤따른다. 추천자의 의중이 책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녹아있기 때문.

책 20여권
담긴 의미는?

대통령이 추천하는 책은 더욱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이 첫 번째 책을 추천했을 때 ‘정치 행보’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문 전 대통령은 <짱깨주의의 탄생> <실크로드 세계사> <한컷 한국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지정학의 힘> <시민의 한국사> <하얼빈> <쇳밥일지> <지극히 사적인 네팔> <옛 그림으로 본 서울> <우주시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독일인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기술의 충돌>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나무수업> <차이에 관한 생각> <털 없는 원숭이> <말하는 눈> <조국의 법고전 산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서울편> <작별하지 않는다> 등 20여권의 책을 언급했다.

처음으로 추천한 김희도 광운대 교수의 <짱깨주의의 탄생>을 두고는 윤석열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짱깨주의의 탄생>은 한국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반중·혐중 정서를 들여다본 책이다. 문 전 대통령은 “도발적인 제목에 매우 논쟁적입니다. 책 추천이 내용에 대한 동의나 지지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습니다.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합니다”라며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닙니다.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라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글의 서두에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는 문구를 넣었다. 그럼에도 문 전 대통령이 윤석열정부의 외교정책을 책 추천을 통해 에둘러 비판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정부의 미중 균형 외교를 실패로 규정짓고 한·미·일 동맹 강화를 내세웠다. 중국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한국역사연구회의 <시민의 한국사>를 추천하면서는 “한국사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폐지했던 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운 책입니다”라고 적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추천하는 글에는 “책을 추천하는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했다. 정 작가는 평산책방의 첫 손님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조국 책 추천
여전히 옹호?


지난 2월8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추천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저자의 처지가 어떻든 추천하고 싶은 좋은 책입니다”라고 표현했다. 글 말미에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 꽃을 피워낸 저자의 공력이 빛납니다”라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현재 본인과 가족이 비리 의혹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책 추천보다 뚜렷하게 의중을 밝힌 글도 눈에 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된 것을 두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서 전 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고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살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23일 오전 1시께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피격 사실을 은폐하려 합참 관계자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 ‘보안 유지’ 조치하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받고 있다. 

서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3일 구속됐다. 문 전 대통령은 “서훈 실장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정부의 모든 대북협상에 참여한 최고의 북한전문가·전략가·협상가입니다. (중략)서훈처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은 다시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정권이 바뀌자 부처의 판단이 번복됐다”며 “부디 도를 넘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문도 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대독으로 문 전 대통령의 입장이 전해졌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은 문재인정부와 윤석열정부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면서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문 전 대통령이 지목된 바 있다.


풍산개 논란과 관련해서도 “지금이라도 내가 입양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라는 걸 밝혀둡니다”라고 강조했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 곰이와 송강의 거취를 두고 불거진 논란이다.

서훈 구속, 적극적으로 비판
사회 현안마다 얹은 한 마디

풍산개를 사저로 데려갔던 문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자 곰이와 송강을 반납했다. 

평소 반려동물을 아끼던 모습을 보였던 문 전 대통령이 풍산개를 반납하면서 파양 논란이 불거졌다. 풍산개 사육비용이 250만원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자 트위터에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제주 4·3사건과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지난 3월28일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면서 “더 이상 이념이 상처를 헤집지 말기를 바랍니다. 4·3의 완전한 치유와 안식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4·3희생자 추념일 당일에는 제주도를 직접 찾아 추념식에 참석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4·3사건과 관련해 다양한 발언이 나오고 있던 시기였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해석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현장서 나온 윤 대통령의 추념식 불참 관련 질문에 문 전 대통령은 “달리 말씀 드리지 않겠다”며 말을 아낀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 현안과 관련해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유홍식 신부의 추기경 임명(지난해 5월30일),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지난해 6월21일), 일본 아베 전 총리 서거(지난해 7월7일), 수해 복구(지난해 8월12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서거(지난해 9월9일), 이태원 참사(지난해 10월30일), 튀르키예 대지진(지난 2월7일) 등을 언급했다.

새해 인사도 잊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이 올린 가장 최근 게시물은 평산책방 개점 소식이다. 지난 25일 ‘평산책방이 문을 열었습니다’라는 내용의 이미지 파일을 업로드했다. “평산책방의 중심은 북클럽 ‘책 친구들’입니다. (중략)여러분을 평산책방과 문재인의 책 친구로 초대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책방지기’로 지칭했다.

해당 글을 두고 문 전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활동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4·3 추념식 참석에 이어 책방 개점으로 지지자 결집을 도모하려는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시기상으로도 22대 총선을 1년 앞두고 있다. 다음 달 11일에는 영화 <문재인입니다>도 개봉한다. 전임 대통령 가운데 역대급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책방 이면
총선 때문?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은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정치적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문 전 대통령은)역대 전직 대통령 중에 가장 활발하게 정치와 사회활동을 하시는 분”이라며 “잊히고 싶다라는 말은 진심이 아닌 게 100% 드러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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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