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결혼도…’ 친족상도례의 허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3.28 08:22:31
  • 호수 1420호
  • 댓글 2개

가족은 고소할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사기 결혼을 당해서 혼인취소소송을 해 현재는 혼인 취소 상태다. 결혼 생활 중 전 남편은 내 주민등록증을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해 명의를 도용했다. 그때 생긴 빚이 1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친족상도례’ 때문에 전 남편을 고소할 수도 없다.”

형법 제328조(친족간의 범행과 고소)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고 나와 있다. 또 형법 제365조(친족 간의 범행)에는 ‘죄를 범한 자와 본범 간에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신분 관계가 있는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고 적시돼있다.

가족 문제는 
가족이 해결

이 법률은 ‘친족상도례’라고 한다. 법률을 쉽게 해석하면 8촌 내 혈족이나 4촌 내 인척·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죄·사기죄 등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특례를 말한다. 이 법의 취지는 가족 문제에 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가족 내 문제는 가족이 해결하자고 만든 것이다. 하지만 허점이 존재하는 만큼 비판도 많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적 처벌을 면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친족에게 경제범죄(사기·횡령·배임·특별경제 범죄)를 저지른 사람 수는 지난 3년간 평균 800명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친족상도례를 이용한 범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법 테두리 밖의 삶은 최유라(가명)씨가 겪은 일로 설명된다. 최씨는 전 남편 강지훈(가명)씨를 보육원 봉사활동서 만났다. 최씨보다 5살 어렸던 강씨는 봉사활동 중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많이 앞장섰다. 누가 봐도 싹싹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 


강씨가 다니는 직장은 삼성이었다. 그는 보육원에 올 때마다 회사 명찰을 목에 걸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공모전에 붙어서 삼성에 취직했다고 했다.

강씨는 당시 집이 충남 천안이었는데, 자신의 차인 제네시스로 봉사활동에 온 사람 모두를 집까지 데려다줬다. 여기에 서울에 살던 최씨도 포함됐다.

강씨는 최씨의 마음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천안에 거주 중이었던 강씨는 퇴근 후 최씨를 보기 위해 매일 서울에 갔다. 여기에 최씨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런 과정에 가족관계증명서, 월급증명서, 재직증명서 등을 최씨에게 보여줬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강씨의 부모가 모두 사망으로 기록돼있었다. 

만남부터 도주까지 완벽한 플랜
주민증 사진 찍어서 명의 도용

강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고 치고 다녔다. 아버지는 그러다 돌아가셨다. 부모님 사이가 너무 안 좋았다. 그런데 너희 집은 따뜻한 것 같다. 어머니, 아버지도 너무 좋으신 분 같다. 나도 가족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둘은 2016년 결혼에 골인했다.

강씨는 최씨를 위해 이직한 뒤 최씨 부모 집 근처에 집을 구했고 행복해했다. 가족 식사를 할 때면 “나는 살면서 이런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씨는 당시의 삶이 “평범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집에서 업무를 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회사에서 일을 했다. 퇴근은 늦은 시간에 이뤄졌다.  

강씨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2021년 초다. 강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상속 정리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다고 했다. 어머니가 남긴 재산은 꽤 많았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직계가족만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최씨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강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이 최씨는 둘째를 출산해 부모님 집에서 한 달 동안 몸조리를 했다. 그 후 집에 돌아갔을 때, 감춰져 있던 비극이 눈앞에 드러났다. 다시 찾아간 집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비밀번호로 문을 열어도 열리지 않았다. 인근 주민센터에 동사무소 직원이 동행해 집 문을 열었다.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 주인은 황당해했다. 강씨가 집주인에게 연락해 보증금을 모두 받고 집을 내놨다는 것이었다. 집안에 있었던 가구도 모두 사라졌다. 모든 것이 감쪽같았다.

사라진 가장
무너진 가정

공동으로 사용하는 은행 계좌는 2000만원 넘는 돈이 있었지만 250만원, 500만원씩 계속 돈이 출금됐다.

최씨는 강씨의 고향에 찾아갔을 때부터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했다. 강씨의 부모는 모두 살아 있었고 남동생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강씨의 명의도용으로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강씨 고향에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앞서 그는 자신을 고등학교 졸업 후 삼성에 취직해 야간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었으나 대학교 졸업도, 삼성에 다닌 것도 거짓말이었다. 강씨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고, 삼성 하청업체서 일했으며 겨우 6개월을 다니면 다행이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강씨가 보육원 봉사활동에 오기 직전 교도소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사기죄로 1년6개월 형을 살았다. 강씨는 사기 결혼을 계획해 의도적으로 최씨에게 접근한 것이다.

연애 중 방문한 강씨 부모 산소는 모르는 사람 것이었는데 당시 옷을 태우기도 했다. 결혼식에 왔던 강씨 어머니와 친척,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 거짓이었다. 강씨는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해 최씨에게 접근했다.

강씨가 최씨에게 접근했던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다. 그는 최씨 친구에게 연락해 “둘째 출산 비용이 부족하다”며 600만원을 빌렸고 “아내가 유산했다”며 다시 500만원을 빌렸다. 

사람들은 최씨의 남편이니까, 최씨가 힘든 상황이니까, 최씨에게 따로 연락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 


대출까지 
고스란히

강씨는 최씨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자동차를 사거나 렌트했는데 명의는 당연히 최씨였다. 자동차 렌털숍에 가서 “아내가 탈 것”이라며 최씨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이런 식으로 구매한 차량이 외제차 아우디와 국내 중형차인 그랜저였다. 

강씨는 이 차량 두 대를 빌려 일주일만 돈을 냈고, 나머지는 모두 체납했다. 체납 고지서는 모두 최씨에게 날라왔다. 현금으로 K7도 샀다. K7을 살 현금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최씨 이름으로 대출을 3000만원 냈고 갚지 않았다. 강씨는 K7을 대포차로 팔았지만 과태료는 최씨 앞으로 날라오고 있다.

강씨의 사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평소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할 일이 많아 사업자등록을 했다. 이때 최씨는 기존에 쓰던 컴퓨터 비밀번호와 공인인증서 비밀번호를 동일하게 했다. 강씨는 최씨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접속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는데, 이 금액이 얼마인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도 연금·건강보험을 이용한 대출 2000만원, 사채를 받으면서 신체포기각서를 최씨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딸이 신체포기각서 쓴 것을 알고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사채업자가 집에 찾아와서 돈을 내놓으라고 한 적도 있다.

최씨의 지인 역시 강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전부 강씨의 아내인 최씨를 신뢰하고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 지인 4명에게 친 사기로 피해 금액은 1억원이 넘는다. 이들은 모두 강씨에게 소송을 걸었다.


더 황당한 것은 컴퓨터에 저장돼있던 파일들이다. 강씨는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사람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놨다. 그중에서 빨간 줄이 그어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가 사기 치려고 했을 때 실패했던 사람들이었다. 뚜렷하게 사기 친 흔적이 드러난 문서가 있는가 하면,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문서도 있었다. 

“아내가 쓸 거”라면 전부 “OK”
‘혼인 과정 중’이라 발만 동동

강씨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협동조합에 가입시켰다. 그 문서에는 아이가 갖고 있는 보유 금액으로 215억원과 878만원이 적혀 두 개로 나눠져 있었다. 또 상속 진행 및 출금화 완료 예정일도 결정돼있었다.

최씨가 알지 못했던 아이의 국민은행 통장도 있었다. 이 통장에는 6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가 있었다. 부동산 영수증도 있었다. 역시 아이 이름으로 2억7000만원 가량의 부동산 영수증이었다.

최씨 이름으로 피감자 원산지 확인 증명서, 한 번도 입원한 적 없는 삼성병원 입원 확인서 등의 서류들이 쌓여있었다.

최씨 지인은 최씨에게 “강씨가 아이 통장에 이 정도 돈이 들어있다거나, 최씨가 피감자를 판매했다는 증명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빌렸을 확률이 높다”며 “나도 이런 영수증을 보여줘서 돈을 빌려줬는데, 문서는 조작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최씨는 강씨와 혼인무효소송을 했고, 혼인이 취소됐다. 그는 강씨를 상대로 ▲금전적 사기 ▲문서위조 ▲상간녀로 총 3건의 고소를 했다. 그러나 이 중 2건은 ‘친족상도례’로 인해 고소 건은 취소됐다. 

최씨는 <일요시사>에 “전 남편은 나와 결혼한 기간 동안 나를 중심으로 뻗어나가 사기를 쳤다. 결혼 자체도 사기였는데 혼인 중이었다는 이유로 고소가 취소된 건 말이 안 된다”며 “미혼모 모임에 나가 보면 친족상도례로 피해본 사람이 많다. 일부러 이 제도를 노리고 결혼한다.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고 억울해했다.

친족상도례 관련 전문가는 “이 법은 1953년 형법과 함께 제정됐다. 과거 농경시대와 대가족제도를 배경으로 면책 범위를 넉넉히 준 것이 특징이다. 당시는 가족이나 친족 내 큰 어른에게 갈등을 중재할 권위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대가족은 해체됐고 가족의 개념과 형태는 크게 달라졌다”고 짚었다.

취소된 고소
범죄 면죄부

이 전문가는 “그런데도 1항은 2005년, 2항은 1995년에 개정된 게 마지막이다. 범죄를 예방하고 단죄해야 할 형법이 악질적 범죄의 ‘면죄부’로 악용되는 게 현실”이라며 “자녀가 노부모 재산을 절도하거나 횡령하고, 부모를 상대로 사기 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배우자 몰래 이혼을 계획하고 배우자 재산까지 빼돌리거나 훔쳐 다른 가정을 꾸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장애가 있는 친족을 착취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사건도 마찬가지”라고 조언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