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㉕좌빨 종북이냐 극우 꼴통이냐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3.03.22 13:21:03
  • 호수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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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얘기가 좀 길어졌지만, 한국의 진보파와 보수파는 진짜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분단된 남북한의 비극적 상황이 조종하는 피에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형극 장막 위의 손이 제멋대로 놀리는 꼭두각시…. 

자기 자신이 사이비가 아니라 진짜 진보나 보수라고 말하려면 우선 꼭두각시 마냥 세뇌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을 지녀야겠지. 어떤 이념(이데올로기)의 좀비 혹은 강시가 되길 거부하는 제정신 차리기.

스스로는 가장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착각)하겠지만 사실상 두 쪽 다 비이성적인 감정의 노예로서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꼭두각시

그러니 좀비 강시처럼 패거리를 지어 서로 좌빨 종북이니 극우 꼴통이니 비난하나마, 결국엔 진실보다는 이기적인 지배 욕망과 사리사욕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들고 마는 거겠지 뭐.


건전한 진보와 보수라면 자신이 지닌 견해가 반쪽임을 인식하고 온전함을 찾으려 다른 반쪽과 열정적으로 싸우면서도 가느다란 소통의 실마리라도 만들기 위해 애쓰겠지. 어디까지나 상대가 자기와 같은 인간 존재임을 잊지 않고 말야…. 

모든 존재하는 것은 나름 의미가 없잖다는 잠언이 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창발적으로 장단점을 잘 활용할 경우의 얘기고, 꼬투리나 잡고 앉아 싸울 땐 우리 자신이 회충의 먹이가 돼 곯아 버리겠지.

음, 여기서 이솝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군. 보수파는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 있는 대로 악도 수용한 채 그 속에서 미꾸리처럼 헤엄치며 어쨌든 살아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간을 두고 원래 악을 서서히 성찰해 소멸하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수구 꼴통파들이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의 영광 시절로 되돌아가길 망상하기 때문에 흙탕물은 좀체 맑아지기가 어렵다. 못된 미꾸라지와 망둥이가 연못을 망치는 격이다. 

진보파는 연꽃이 피어 나름 아름다운 연못을 혁파해 새로운 청정 삶터로 만들어 보자고 주장한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핀들 향기롭기보다 오히려 고통 어린 피비린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정부패로 오염된 연못 바닥 자체를 뒤집어엎은 뒤 청소하고 새 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파이프 라인까지 가설하자는 얘기다.

미래의 삶을 향한 비전은 좋지만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은 기존 생태계를 교란시켜 자칫 멸족적 파국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그들은 자기가 가장 옳다는 몽상에 빠져 살아서 그런지 자기네가 내지른 똥과 땟국물(월권과 부정 따위)에 대해서는 스스로 퍽 관대하다.


그래서야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지 않겠는가? 너는 하는데 나는 왜 못하냐며 서로 더 깊이 오물 속으로 들어가는 건 좋은데, 일반 국민들까지 물귀신처럼 끌어넣으려 발광해 버리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아아, 이솝 우화는 읽고 나면 한 점 교훈이나마 떠오르건만…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의 싸움에선 건질 게 없기 때문에 백년하청인지 모른다.

올챙이가 개구리로 환골탈태해 개골개굴 외치며 스스로 연못을 정화할 능력이 있을 때에만 한국판 우화 속의 망둥이와 미꾸라지 모리배들은 어디론가 다른 후진 연못으로 사라질는지….

티없이 푸른 하늘이다. 햇빛은 따스하게 비치고 새들이 해맑은 소리로 지저귄다. 

쫙쫙 갈라진 진보와 보수 진영 
흙탕물 풍기는 연못의 미꾸라지

어떤 사람이 쭉 뻗은 길을 걸어간다. 그는 색다른 모자를 쓰고 있다. 한쪽은 빨간색이고 다른 한쪽은 파란색이다. 

길 오른쪽 논에서 씨를 뿌리던 사람들은 그 모자가 빨간색이라 말하고 왼쪽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파란색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행인은 허허 웃으며 지나간다. 양쪽 논의 사람들은 입에서 침을 튀기며 설전을 벌인다. 급기야 한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욕설까지 퍼부으면서 일손을 놓은 채 내가 옳으니 네가 나쁘니 왈가왈부 싸움을 벌인다.

한 나절이 지나도록….

땅거미가 내릴 무렵, 시내에서 볼일을 마친 행인이 다시 돌아온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길 오른쪽에서 쳐다보던 사람들이 파란 모자라고 주장했으며, 왼쪽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은 붉은 모자라고 떼를 쓰며 마구 삿대질마저 해댔다. 

“저건 빨간 모자다! 내 목숨을 걸겠다!”

“무슨 개소리냐! 네 할아비한테 물어 봐라. 파란색이 분명한데 어거지 쓰지 마라!”


행인이 멀리 가 버린 뒤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고 다음날 다음날 다음날에도 논쟁은 이어졌다…

혹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날아가던 참새는 그 태극기 색깔 모자를 내려다보며 대체 뭐라고 짹짹거렸을까?

무지개 식당이 자리잡은 해방촌은 이름만큼 썩 자유롭고 멋진 파라다이스 지역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서울역 앞의 아스팔트 바닥을 기준점으로 삼아 맨 꼭대기에 있다.

달동네. 자가용이 드물던 예전엔 꾸불구불한 시멘트 골목길을 오르느라면 겨울에도 땀방울이 맺히던 달동네였단다.

더구나 부자들이 사는 후암동의 으리으리한 집채 옆을 지나칠 때면 왠지 어깨가 더 무거워져 걷기가 힘겨웠다는 얘기다.


또한 얼마 멀잖은 곳 이태원의 이국적 요사스런 색등[色燈]은 그들의 심정을 솔찮이 어지럽혔으리라. 인근한 갈월동 미군 부대의 철조망은 아마 그들의 마음과 정신조차 억죄지 않았을까 싶다.  

각시탈

괜한 소린 아니다. ‘해방촌’은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이 잘 모를 좀 슬픈 유래를 지니고 있단다. 일본의 압제로부터 이른바 해방이 된 후 곧장 미군이 들어와 통치했고, 이어 남북한 동족 전쟁이 일어났다.

남산 기슭에 무허가 판자촌이 생겨난 건 그때부터였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그런 빈민촌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는 성싶다.

해방을 기념해 지은 마을이라기보다, 전쟁 중 피난민들이 살기 위해 남산 기슭을 파 움막을 만들었고(이것도 좀 의문스럽다)…

휴전 이후 북에서 내려온 난민들이 개미떼 마냥 모여들어 한 빈민 마을을 형성했다는 얘기다. 아마 달동네 중에서 민족적 비극과 비애를 가장 진하게 간직하고 있는 곳인지 모른다.

사실상 서울역부터 시작해 동자동 후암동 갈월동 남영동 이태원을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미군부대의 철조망 속에 갇혀 훼손된 민족사가 읽혀진다. 그래서 그런지 해방촌에서 바라보는 달은 어딘지 반쯤 갈라진 피 흐르는 각시탈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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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