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든 호남탑’ 딜레마

다시 영남으로 핸들 돌리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역시 말뿐인 챙기기였던 모양새다. 그토록 탄탄히 쌓아온 성을 아주 쉽게 부숴버린 형국이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과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발언으로 인해 보수당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과거 발언들까지 소환되면서 호남 표심이 제대로 흔들리고 있다. 지도부가 다급하게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늦은 듯 보인다. 당내에서는 이미 불안함이 감지된다.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내뱉은 말의 후폭풍이 거세다. 소위 전라도를 배척하려는 태도가 강해서다. 전 목사는 김 위원에게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오지 않는다. 전라도는 영원히 10%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또다시
극우로?

김 최고위원은 “불가능하고, 반대”라며 “표 얻으려고 하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라고 답변했다.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해당 발언은 이틀 만에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됐고, 파장이 일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 최고위원은 즉시 “죄송하다”며 SNS를 통해 사과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임 지도부는 김 최고위원의 발언이 일파만파 커지자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김기현 대표는 진지한 자리가 아니지만 적절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성일종 정책위원장 역시 당과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개헌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이야기지만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다만 지도부는 본인이 반성했기 때문에 별도의 징계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문제는 김 최고위원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임명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과거 인터뷰도 다시 재조명됐다. 


앞서 김 위원장은 임명에 앞서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자격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는 공개 석상서 다시 한번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서 민주당 의원이 김 위원장의 과거 인터뷰를 근거로 질의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북한군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20년 열린 한 정책 심포지엄 발표한 논문서도 5·18 헬기 사격은 허위라고 언급한 이력도 있다. 얼마 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가 일제히 삭제된 사건까지 발생했다. 

교육부는 급히 해명에 나섰다. 교육과정 대강화 취지에 따라 교사의 교육 자율권 보장을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5·18 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지우기라는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명시하도록 전면 공고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과거 논란까지 다시금 떠오르는 형국이다. 이처럼 여당 지도부 핵심 인사와 윤석열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공격모드에 들어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두 인물이 5·18 정신을 훼손했고, 반국가적 발언을 했다며 해임을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함께 끌어들였다. 두 인물과 결별하지 않으면 한 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해당 여파는 쉽게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지금껏 다져온 호남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양새다. 즉시 윤 대통령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5·18 정신 헌법 수록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히며 해명에 진땀을 뺐다. 그러면서 “김 위원의 발언은 당론이 아니며, 대통령실과 연결지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여러 단체들은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전국 18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망언을 규탄했다. 이날 해당 단체는 “윤 대통령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공약을 득표를 위한 공수표 공약으로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말 한마디에 호남 표심 추풍낙엽
물거품 된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

호남 정치권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인물을 향한 사퇴 압박까지 가하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시절을 거치면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논란이 끊임없이 터졌던 바 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이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어내지 못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깨고자,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은 호남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왔다. 후보 시절 무려 일곱 차례나 호남권을 찾으면서 지지를 호소했던 바 있다. 오프라인 홍보물도 모두 호남에 올인해 호남 230만가구에 손편지까지 발송한 적도 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보수정당이 호남서 거둔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이른바 ‘호남 챙기기’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보수당의 새로운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 기념식은 윤 대통령의 요청으로 여당 의원이 전원 참석했는데 이는 보수당 대통령으로서 헌정사상 유례없던 일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민주의문을 통과한 것도 보수정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 중 처음이기도 했다. 기념식서도 윤 대통령은 자유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덕분에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동반 상승했다.

분명 윤 대통령도 “42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 지켜낸 전 광주·호남 시민의 5월 항거를 기억한다”며 “5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고 추켜세웠다. 이 같은 행보는 여야 정치권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책적인 부문에서도 호남 챙기기는 빠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두드려왔다. 대선 기간에도 호남 정책을 제시했다. 꾸준히 힘들여온 덕에 지방선거에서도 효과를 거뒀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승리한 후보는 없지만 모두 1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할 정도였다. 

모두 다
물거품

이 덕에 호남 후보들은 선거비를 보전받을 수 있게 됐고, 보수 열풍이라는 새 기록도 세웠다. 지속적인 호남 포용 효과가 빛을 발한 셈이다. 

광주광역시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김용님 후보가 시의원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다. 광주서 보수정당 시의원이 탄생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수정당서 시의원이 당선된 것은 무려 27년 만이다.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이 민주당 후보를 앞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의힘은 기존처럼 호남을 배제하려 하지 않았다. 또 보수당이 광주와 전남, 전북서 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올라서는 쾌거도 이뤘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역시 호남에 공들여온 인물 중 한 명이다. 이 전 대표 체제하에서는 일찌감치 호남에 상당한 힘을 쏟아부었다. 미리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친호남 기조를 닦았고, 호남 공략을 위한 내실화에 이 전 대표가 힘을 보탰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선언한 뒤, 본격 지원하겠다는 노선을 깔았다. 

심지어 이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흑산도까지 방문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간 호남을 찾았다. 이른바 서진정책을 펼치기 위한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이 전 대표는 호남을 찾아 새벽까지 시민 한 명 한 명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윤리위 징계를 받은 뒤 장외 여론전을 펼칠 때도 호남은 이 전 대표가 빠짐없이 찾았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무등산을 등반하고 진도, 광주, 순천 등 호남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처럼 이 전 대표의 호남 방문으로 호남 당원도 크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 이번 3·8 전당대회서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호남서도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졌다. 

없어진
공략점


현장서 준비한 800석의 좌석보다 2배 가까운 1500명의 당원이 몰리는 등 말 그대로 대성황을 이뤘다. 호남서 달라진 보수정당의 위상을 한껏 보여줬던 셈이다. 호남서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당원으로 활동하고, 국민의힘을 돕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고 연설했던 바 있다. 

그는 “다른 지역서 노력하는 것에 100배, 1000배 노력을 기울여야 비슷한 결과가 온다”며 “한 표를 주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호소했다. 앞서 김 최고위원의 망언 논란은 지금껏 쌓아올린 포인트를 한 번에 무너뜨린 측면이 있다. 

이번 3·8 전대를 통해 새로 꾸려진 지도부서 호남 세력은 찾을 수 없다.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민영삼 홍보본부장이 전라도 출신이긴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민 본부장은 스스로를 호남의 강을 건너온 귀순용사라고 밝혔다.

최고위원들 중에서는 조수진 최고위원이 유일하게 호남 출신으로 정계 입문 당시 보수당으로 발을 들였다. 호남의 딸이라며 외연 확장에 자신감을 보이고는 있지만, 혼자서는 호남 표심을 다지기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호남을 제외하더라도 영남 지역의 인구가 더 많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서울에만 호남 출신 유권자가 34%를 넘어섰다. 국민의힘이 자꾸 호남을 배척하는 그림을 연출한다면 차기 총선서 수도권 승리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힘들어진 외연 확장
이대로라면 총선 망가질 판

그나마 있던 호남 표심이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지도부는 급하게 전주 현장 최고위원회의 개최라는 해결책을 내놨다. 전주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다시 한번 5월에 개최될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소속 의원 전원 참석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이번 전주 보궐선거는 국민의힘에 대한 호남 민심을 가늠할 시험대다. 이번에 득표율 15%를 넘기지 못하면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 펼쳐질 수 있어서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 외연 확장에도 빨간불이 함께 켜질 수 있다. 양당의 지지율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상황서 불리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대선도 외연 확장으로 선거전략을 꾸려온 마당에 그마나 끌어온 호남을 잃는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여당과 정부가 점차 우클릭 중이라는 것은 정치권 안팎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윤정부 출범 이후 정부 주요 부처 등에도 호남 인사가 극소수란 점으로 대통령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호남 표심을 다져야 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악재 속에서 호남 민심이 점차 식어가고 있는 가운데, 호남과의 연결통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사업이 진척되고 있긴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습보다는 공약 이행 차원이나 특별법을 발의해 진전시킨 사례가 많다. 기대를 모았던 광주 최초의 복합 쇼핑몰, 고속철도 등의 대선공약 사업도 예산에서 줄줄이 누락됐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광주서 무릎을 꿇기까지 했던 이유는 보수당에 대한 호남의 긍정적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고,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재 뿌린
중앙당

두 인사의 망언을 두고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호남서 뛰는 사람이 백날, 천날 뛰어도 중앙에서 재를 뿌린다”고 작심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총선 패배 트라우마가 벌써부터 불거지는 모양새다. 총선이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같은 이유로 패배할까 하는 우려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이번 3·8 전대처럼)당원으로만 총선을 치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공든 탑을 한꺼번에 부셔버렸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현도 전광훈 찬양?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발언과 함께 김기현 당 대표의 과거 발언도 함께 주목받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극우로 평가되는 전광훈 목사를 과거 메시아라고 칭했던 점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당시 울산시장이었다.

과거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서 “패악한 (문재인)정권, 독재 정권을 향해 외치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전광훈 목사”라고 했던 과거 이력 때문이다.

이런 탓에 당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총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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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