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대위?’ 여의도 드리운 김종인 그림자, 왜?

‘돌고 돌아’ 도로 민주당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22대 총선 전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면, 비대위원장은 어떤 인물이 맡아야 할까? 민주당의 플랜B를 걱정하고 있는 의원들은 벌써부터 비대위원장에 누구를 앉힐지 고민하고 있다. 몇몇 비명계 의원은 이낙연 전 대표의 복귀를 주장하고 있고, 친명계는 새로운 인물의 영입을 염두에 놓고 있다. 일각에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영입설이 나오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유권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민주당 당사 앞에서 한 민주당 지지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은)정상적인 지도체제보다 비상체제인 기간이 훨씬 긴 것 같다. 올 연말에도 비슷한 상황이 올 것”이라며 “마치 2016년 비대위 체제가 생각난다. 다가오는 내년 총선서도 비슷한 그림이 연출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예측했다.

내년 총선도 
비슷한 그림?

이 같은 예측은 최근 민주당에서 나온 ‘질서 있는 퇴진론’에 그 기반을 둔다. 질서 있는 퇴진론은 3월 둘째 주, 한 친명(친 이재명)계 중진 의원이 <문화일보>와 한 단독 인터뷰서 제기한 이 대표의 ‘퇴진 시나리오’다. 해당 의원은 인터뷰서 “이재명 대표가 질서 있는 퇴장을 할 것으로 본다”며 “당이 소프트 랜딩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재판이 많아지는 연말쯤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지도자가 공당을 자신으로 인한 논란 속에 오래 놔둘 수는 없다. 적어도 대권을 꿈꾸는 지도자라면 그렇게 못한다”며 “총선에 관여하지 않고, 불출마 선언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해당 인터뷰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민주당 의원들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이 대표 퇴진론’을 대놓고 말할 명분을 줬다. 비명(비 이재명)계 대표 스피커들은 질서 있는 퇴진론이 친명계 내부서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연말은 너무 늦다며 퇴진 시기를 더 앞당기자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서 “연말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멀다. 내년 총선이 4월인데 그때쯤은 (민주당의)침몰 직전일 수도 있다”며 “지금 지도부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단일 색채다. 선출된 최고위원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임명직, 지명직은 다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도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재판이 몰려 있어서 연말이라고 하는데, 그때쯤이면 당 지지율이 이미 다 빠져 있는 상태일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사퇴하는 의미가 매우 퇴색될 것이다. 지금 물러서면 ‘당을 구하기 위해’ 퇴진하는 것이 되지만, 그때 퇴진 하면 ‘살려고 혼자 나가는’ 퇴진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연말까지 기다리는 몽니 자체가 이미 퇴진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킨다는 것이 비명계 의원들의 설명이다. 이왕 퇴진할 거라면 당 지지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지금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민주당 지지율은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이라고 평가받는 리얼미터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이 대표의 검찰 출석 당시인 1, 2월 소폭 하락했다가 가장 최근인 3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는 42.6%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41.5%의 국민의힘을 근소하게 앞질렀다.

이 대표의 조기 퇴진을 원하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들은 아직 민주당의 인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지금의 퇴진’이 지지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미 지난 3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출석했고, 올해 말쯤에는 적어도 세 번 이상 법정에 더 출석할 예정이다.

친명서 이 대표 ‘질서 있는 퇴진론’
“연말쯤 각종 송사 전 먼저 나가야”

총선을 앞두고 당 대표가 법원에 계속해서 출두하는 것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정부를 중간평가하는 ‘중간 선거’ 성격을 띤다. 정계 전문가들은 역대 중간 선거에서 여당이 항상 유리했다고 입을 모은다.


여의도 소식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 임기 중간에 치러지는 선거는 대부분 야당이 ‘언더독’ 역할을 하는 형태였다”며 “선거라는 것은 항상 중도층 싸움인데, 중도층 유권자들은 의회와 정부가 협조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번에 민주당은 쉽지 않은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이라 분석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가뜩이나 힘겨운 싸움에서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안고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민주당 관계자는 “퇴진 시점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을 뿐, 민주당 의원 과반 이상이 그(이재명 대표)가 퇴진해야 한다는 데 어느 정도 동의하는 걸로 안다”며 “이 대표 스스로도 연말쯤이면 각종 공판에 참여하는 상황인데, 제대로 총선을 준비할 수 있겠나. 자진 사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혹은 2016년 총선 때처럼 새로운 리더에게 전권을 맡기고 2선으로 후퇴하는 방법도 있다”며 “실제로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의원님이 몇 분 계신다. 총선에서 전권을 맡길 인물을 외부에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2016년 민주당은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위기를 맞았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연합 공동 대표를 맡던 시절, 안 의원이 민주당 비노(비 노무현)계 의원을 대거 이끌고 신당을 창당한 것이다. ‘호남 홀대론’을 들고나온 비노계는 문 전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며 그에게 사퇴를 요구했다.

이후 당내 인사권을 독단적으로 행사한 점,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 패배한 점을 문제삼아 비노계는 문 전 대통령이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끝까지 사퇴하지 않았고, 돌아선 이들의 마음을 다시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비노계는 문 전 대통령의 손을 뿌리치고 모두 당을 떠났다.

박지원 전 의원을 중심으로 비노계가 뭉치기 시작했고, 여기에 천정배계, 김한길계, 박주선계, 정동영계 등 탈당한 모든 야권 인사들이 안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으로 모였다. 이들은 대부분 호남 출신 인사들로 ‘호남홀대론’을 새로운 당의 원천으로 삼았다.

전면 등장?
2선 후퇴?

호남에 정치적 뿌리를 둔 민주당으로선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흔들리던 새천년민주연합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교체한 뒤, 새로운 인재 영입에 박차를 가했다. 이때 문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영입한 인물이 바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다.

문 전 대통령은 본인의 힘으로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해 전권을 김 전 비대위원장에게 넘긴 후 스스로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해 1월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선대위에 권한을 모두 이양하고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고, 다음 날인 20일 정청래 의원 등 당시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모두 동반 사퇴했다. 문 전 대통령도 그로부터 5일 뒤인 25일, 당 대표에서 공식 사퇴하기에 이른다.


선출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간 것이다.

사퇴 당시 문 전 대통령은 SNS에 “지난 1년간 저와 동고동락하며 어려운 시기에 당을 이끌어주신 최고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변화와 혁신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과 당원들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당 대표 시절을 회고했다.

다수의 정계 관계자는 이때 문 전 대통령이 사퇴한 것이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사퇴 이후 새로운 사령탑이 된 김 전 위원장은 광폭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테러방지법 독소 개정을 주장하며 필리버스터를 주도하더니, 주요 당내 인선을 중도층을 끌어올 수 있는 인물들로 임명했다.

같은 해 3월 중순 김 전 위원장은 총선 출정식을 열고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며 “이명박정부 5년과 박근혜정부의 3년은 ‘잃어버린 8년’이었다”고 선거 전 프레임 전쟁에 돌입했다.

문 전 대통령도 대표직에서 사퇴한 신분이었지만 전국 선거유세를 다니며 동료 의원들을 지원했다. 그는 특히 총선을 앞두고 광주를 방문해 ‘호남홀대론’에 대해 직접 해명하기도 했다.

그는 “노무현정부가 호남을 홀대했다는 ‘호남홀대론’은 제 인생을 부정하는 치욕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패해 호남을 실망시켰던 질책은 모두 제가 받겠다.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를 어필했다.


당 대표직 사퇴와 믿을만한 인물 영입 등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혔고, 민주당은 2012년 대패의 치욕을 2016년에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총선서 123석을 확보해 122석을 확보한 새누리당을 누르고 원내1당 자리를 되찾아온 것이다.

이낙연은…
생각 없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강세를 보이며 38석을 확보해 범야권은 총 161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시의 성공을 ‘문재인의 결단’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이 쪼개지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었던 것은 문 전 대통령이 공천권을 내려놓고 공정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물론 새누리당 내부의 내홍도 원인이었겠지만, 문 전 대통령이 전권을 잡고 친노(친 노무현) 대 비노 싸움으로 몰고 갔다면 선거서 대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그렇게 됐으면 유권자들이 보기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별반 다를 거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7년이 지나 민주당은 비슷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민주당은 총선서도 뚜렷한 승부수를 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이 대표의 퇴진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 외부인사 영입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6년 향수를 잊지 못하는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조용히 ‘김종인 추대론’을 다시 꺼내들고 있다. 김 전 위원장만큼 경제지식도, 정치적 감각도 있는 무게감 있는 인사가 어디 있냐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김 전 위원장 영입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이제는 경제민주화를 부활시켜야 할 때”라며 “그러기 위해선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이에 국민들 대부분은 호응했다. 2016년 선거를 승리로 김 전 위원장은 이후 몸값이 한층 높아졌고 2020년 총선에서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영입되며 보수당 선거를 돕기도 했다.

비명 “지금으로선 김종인이 대안”
이번엔 어떤 제안으로 유혹하나?

당초 민주당의 새로운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인물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였으나, 민주당 소식통에 따르면 이 전 대표 측이 아직은 정치 전면에 나설 뜻이 없음을 여러 채널을 통해 민주당에 알려오고 있다.

이 때문에 플랜B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이 전 대표를 대신할 인물을 물색하고 있고, 김 전 위원장의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도 최근 이 대표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옥신각신하고 있다. 당의 진로를 놓고 최종 결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결국 이재명 대표”라며 “(이 대표의)개인적인 사법 리스크와 당과는 관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비명계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아시다피시 김 전 위원장이 여기서도(민주당) 저기서도(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아봤고, 양쪽에서 모두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며 “그러나 그 이후 김 전 위원장의 정치적 이익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거기서 오는 배신감이 무척이나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그를 영입한다면 총선 승리 이후의 열매까지 모두 보장해야 된다. 그 정도의 제안을 해야 김 전 위원장도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현재로선 김 전 위원장이 (민주당의 제안을)받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여전히 정치적 욕심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예상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16년 총선 승리를 이끈 뒤 문 전 대통령과의 기나긴 갈등 끝에 민주당을 탈당한 바 있다. 총선 당시 비례대표 두 번째로 자진 공천한 김 전 위원장은 여의도에 입성한 뒤 각종 현안마다 문 전 대통령과 상반된 견해를 보였다. 

오랜 갈등을 이어오던 두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던진 10차 개헌 제안에 오랜 갈등을 터트렸다. 문 전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주장했고, 김 전 위원장은 의원내각제를 주장한 것이다.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던 둘은 결국 갈라섰다. 

김 전 위원장이 2017년 3월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탈당 당시 그는 “이 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당을 떠나고 의원직도 내려놓는다”며 당내 계파 싸움에서 완패한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동안 정계를 떠나있던 김 전 위원장이 정계에 다시 등장한 건 지난 2020년 총선 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미래통합당은 김 전 위원장에게 당의 운명을 맡겼고, 김 전 위원장은 수도권, 청년, 호남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세우고 다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탄핵 정국과 민주당의 강세 속에 미래통합당은 21대 총선에서 유례없는 대패를 하게 됐고, 김 전 위원장은 이 모든 책임을 안고 물러나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열매?

그는 지난해 대선에서도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의 선대위원장직을 맡았으나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간 벌어진 갈등에 휘말려 선대위를 박차고 나와 그 이후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동안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에서 일해 성과를 냈으나 양쪽 모두에서 버려진 꼴이 됐다.

김 전 위원장은 이때의 아픔을 잊지 않고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이 말한 ‘승리 뒤 권한 보장’도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조건이다. 만일 민주당이 큰 결단을 내리고 ‘김종인의 민주당’이 될 결심을 세운다면, 김 전 위원장의 민주당 복귀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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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