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국가 위기, 탑다운 방식 훈련과 매뉴얼로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3.01.30 16:43:20
  • 호수 14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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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무인기 침투, 그리고 이태원 참사로 인해 국가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도 대책을 세우고 제일 빠르게 움직여야 할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정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의원들에게 쩔쩔매고 있는 모습만 보였다. 여야 의원들도 앞으로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인지는 물어보지 않고, 잘잘못을 따지며 정쟁의 모습만 보였다.

도발과 재난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먼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습과 동시에 더 이상 도발과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이나 국민이 총동원되는 훈련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 잘잘못은 나중에 따져도 된다. 

국방과 안전이 뚫린 국가적 위기 상황인데도, 왜 국방부는 육해공 전군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을 즉각 실시하지 않고, 행정안전부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공 훈련을 당장 실시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위기 상황에서 ‘앞으로 하겠다’는 다짐이나 계획은 무의미하다.

필자는 도발과 재난 같은 위기 상황에 대한 우리나라의 훈련과 매뉴얼이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보고체계를 중시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돼있어, 훈련과 매뉴얼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본다.

국방부에서 훈련 업무를 담당했던 모 장교의 말에 의하면, 군의 연간 훈련 일정은 먼저 소대서 훈련을 하고, 다음에는 중대·대대·사단 등으로 올라가면서 연합으로 훈련한 뒤, 최종적으로 미군과 합동훈련을 하는 바텀업 방식이라고 한다. 단계별로 전투력을 높이는 체계적인 훈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한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바텀업 방식 훈련을 통해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합사령부나 사단에서 종합적인 작전을 세워 연합훈련을 먼저 하고, 나중에 대대·중대·소대로 내려가면서 각각의 작전을 습득하게 하는 탑다운 방식 훈련이 더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탑다운 방식 훈련은 위기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즉각 대처할 때 효과적인 반면, 바텀업 방식 훈련은 평시 상황에서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어서, 바텀업 방식 훈련만으로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탑다운 방식 훈련보다 바텀업 방식 훈련에 익숙하다 보니, 최근 북한의 도발과 이태원 참사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당황하는 것이다.

탑다운 방식 훈련은 실전훈련이고 바텀업 방식 훈련은 대비훈련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명심해야 한다. IT 강국인 우리나라가 전 세계서 제일 빠른 나라가 됐는데 아직도 바텀업 방식 보고체계를 중시하다 이태원 참사 같은 재난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만약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매뉴얼이 탑다운 방식에 방점을 뒀다면 아마도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북한의 도발과 이태원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거나 구속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매뉴얼이 바텀업 방식에 방점을 두고 있어 중간 관리자만 처벌받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은 무혐의로, 그리고 경찰, 구청, 소방, 서울교통공사 등 24명(6명 구속)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입건한 것만 봐도 정부의 매뉴얼이 바텀업 방식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에서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주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하는 탑다운 방식의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고, 정부에서는 국가적 도발이나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 실무자나 중간 관리자가 책임지는 바텀업 방식의 처벌을 적용하는 이 모순을 우리 국민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위기 상황에서 탑다운 방식 매뉴얼이 성공하려면 최종 컨트롤타워가 위기 상황을 제일 먼저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청와대나 총리실이나 각 부처가 위기 정보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장치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 10일 새벽 1시28분에 필자는 꽤 큰 진동과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알림 문자메시지 때문에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인천 강화군 서쪽 26㎞ 해역서 규모 4.0 지진이 발생했으니 낙하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진동이 멈추면 야외로 대피하라는 기상청의 긴급재난문자였다.

당일 아침 7시 뉴스를 보니 최초 관측 이후 9초 만에 지진조기경보시스템 자동분석을 토대로 지진 속보가 발표됐고 진앙에서 반경 80㎞ 이내인 수도권에 긴급재난문자가 송출됐다고 했다. 도발과 재난 같은 위기는 이렇게 탑다운 방식 매뉴얼로 가동돼야 한다.

이태원 참사 때도 사고가 나자마자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고 사이렌도 요란하게 울리는 탑다운 방식 매뉴얼이 가동됐다면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다.

민방공 훈련도 중앙본부에서 컨트롤하고 나중에 점차 하위 지자체로부터 보고받으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탑다운 방식 훈련이다. 행정안전부는 지금이라도 강도 높은 민방공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탑다운 방식 훈련이 그나마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다.

국가 위기는 탑다운 방식 훈련으로 대비하고, 탑다운 방식 매뉴얼로 가동돼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야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국회서 여야 의원들이 국방부 장관에게 왜 육해공 전군이 참여하는 연합훈련을 하지 않느냐를 다그치고,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왜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방공 훈련을 하지 않느냐고 다그쳐야 했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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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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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