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특별 인터뷰> ‘불교계 큰 어른’ 여수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이 본 속세 이야기

“우리나라 종교 지도자들 부끄럽지만 게을러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직 어둠이 다 가시지 않은 시간. 사람들은 해무가 잔뜩 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쥐고 해를 기다리던 이들은 예정된 일출 시간이 넘어가자 하나둘씩 사라졌다. “오늘은(해를) 안 보여 주시려나 보네.” 아쉬움 섞인 한탄과 함께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어, 어!” 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짙은 안개를 뚫고 해가 삐져나왔다.

“향일암으로 가주세요.” 여수EXPO역에 도착한 시간은 지난달 10일 오후 6시30분. 따뜻한 기온 때문인지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잡은 택시는 빠른 속도로 달렸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굽이친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굴곡졌다. 40여분을 내달려 향일암 입구에 내렸을 때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바다와 접한
산속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금오산 향일암.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4년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현재의 관음전 자리에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금오암, 책육암, 영구암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1949년 편찬된 <여수지>에는 ‘100년 전에 지금 이곳으로 옮겨 건축하고 기해년에 이름을 향일암으로 바꿨다. 암자가 바위 끝에 붙어 있고 계단 앞은 벼랑인데, 동쪽으로 향하고 있어 일출을 바라볼 수 있어서 향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쓰여 있다. 

가만히 서있어도 뒷걸음질이 쳐질 만큼 경사진 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향일암에 다다를 수 있다. 일출 명소로 알려지면서 매년 100만명이 경사 40도의 향일암 돌계단을 오른다. 향일암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확산됐을 때도 연 70만명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향일암을 찾았다. 


지난달 11일, 여수의 일출 시간은 오전 7시26분. 7시부터 향일암 종무소 주변이 해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바다를 뒤덮은 해무가 걷히지 않자 안타까운 탄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붉은 해가 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간은 오전 7시37분. 해가 뜨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사위가 고요해졌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의 일출은 특별하다. 대부분 일출 명소라고 하면 바다를 마주하는 높이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향일암은 바다보다 100~200m 이상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수평선과 눈높이가 맞다. 이렇게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전국에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지리산 대화엄사에서 출가한 연규 스님은 지난해 6월29일 향일암 주지로 취임했다. 취임식 대신 자비행으로 취임을 알렸다. 2021년 화엄사의 말사로 등록된 부산 해동용궁사의 주지를 맡기도 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용궁사 역시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용궁사 이어 지난해 6월 취임
취임식 대신 ‘자비행’부터

“용궁사는 바로 눈앞에 바다가 있어요. 용궁사 앞바다는 바람이 많이 불고 파도도 많이 칩니다. 변화무쌍하고 거칠어요. 반면 향일암 앞바다는 ‘은빛 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 일렁임이 거의 없는 고요한 호수 같다고 해야 할까요. 밀물과 썰물의 차이도 심하지 않고 잔잔합니다. 두 사찰에서 보는 일출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지난달 11일 오후 향일암에서 연규 스님과 마주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향일암 주지로 온 이후 5개월 동안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연규 스님은 취임 직후 향일암에서 숙식하고 있는 20여명의 ‘식구’(직원)와 불자를 위한 건물 개‧보수 등 시설정비에 나섰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사찰인 만큼 안전사고를 대비해 CCTV도 늘렸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오후 시간이 되면서 찬찬히 넘어가 햇살이 길게 들이쳤다. 찻물을 데우고 거르고 따르기를 반복하는 연규 스님의 손놀림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거침없었다. 질문에 대한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에 대한 소회를 밝힐 때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2023년 새해를 맞는 국민에게는 따뜻한 당부를 건넸다. 

“올해(2022년)는 참 힘들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아직 못 벗어나다 보니 사람들이 전부 마음을 닫고 사는 것 같아요. 경쟁 구도도 더욱 심해졌고요. 얼마 전에는 이태원 참사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2023년)도 대한민국이 그렇게 밝아질 것 같진 않습니다.”

매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라고 표현하지만 지난해는 유독 사회 전체가 들썩일만한 사건 사고가 많았다. 대통령선거(3월)와 지방선거(6월)라는 대형 이벤트가 연이어 열리면서 여야, 진보·보수 등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일출 보러
100만명씩

연규 스님은 “코로나는 종식 단계로 가는데 사람들의 마음 속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은 것 같다. 밝은 사회를 만들려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자꾸 생긴다. ‘빨리빨리’ 문화가 조급증으로 이어지고 여유가 없어지면서 불안감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세대를 넘나드는 불안감을 갈등의 제일 큰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갈등 해소에 나서야 할 정치인과 종교인의 행태를 비판했다. 정치인은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고 종교인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규 스님은 “정치인이 제일 반성해야 한다. 가끔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곤 한다. 그럼 한결같이 정치학적 답변을 한다. 나는 그게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잘 살도록 하는 게 정치인데 대부분의 정치인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집단이 세속화되고 종교인들이 부패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종교인이 나서서 국민에게 잘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고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 종교인의 책임도 있다는 작심 발언이다. 

실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21년 3월18일부터 4월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1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종교 현황에 따르면 국민의 60%는 ‘무교’다. 20대(78%), 30대(70%), 40대(68%) 등 젊은 층의 탈종교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되는 양상이다. 호감 종교가 없다는 응답도 61%에 달한다. 

종교 불신
종교인 책임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어드는 이유로 출산율 하락을 꼽기도 하는데 그 부분도 분명히 영향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종교인이 국민에게 이정표가 돼주지 못한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인은 청렴해야 하며 국민에게 길을 열어주고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물음표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이 ‘종교도 별 거 없구나’ 생각하는 거죠.”

종교인이 갖는 말의 파급력이 일반인과 비교해 1000배 정도 큰데, 일부 종교인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회를 아프게 하고 병들게 하고 갈라치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 종교가 국민과 함께 발맞춰 걸어야 하는데 실제 대중 속으로 뛰어드는 종교인이 많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종교인, 종교 지도자가 ‘우리(국민)와 같이 가는구나’라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국민이 아픔을 드러내고 의지할 수 있도록 국민과 마주하고 나눔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와 국민 사이에 있는 괴리를 종교인과 종교 지도자의 활동을 통해 좁혀 나가자도 했다. 

연규 스님은 “부처님도 그렇게 하셨다.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45년간 설법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 훌륭한 분도 그렇게 살다 갔는데 부처님의 발뒤꿈치에도 못 따라가면서 그분의 행동보다 훨씬 못한 모습으로 있다는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게을러서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코로나로 비대면이 확산되면서 마음을 닫은 사람이 많아진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눈치를 보는 사회가 돼야 한다. 나쁘고 무시하는 눈치가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할 수 있는 눈치가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욕심을 채우고 싶어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는 눈치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종교인에 쓴소리…국민에 덕담
“욕심 버리세요, 절대 못 가져갑니다”


‘아무거나 막 해도 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해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 

패륜 범죄가 늘어나는 등 가족관계가 위험하다고도 우려했다. 연규 스님은 “모든 게 연결돼있다고 생각한다. 인용하지 못하는 마음, 하고자 하는 욕심, 의무와 책임은 버려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한다’는 생각이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면서 통제가 안 되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를 언급했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부분이다. 태어날 때는 옷 없이 태어나지만 죽을 땐 옷(수의)을 입고 간다는 뜻이다. 살아생전 아무리 큰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세상을 떠날 때는 무엇 하나 가져갈 수 없다. 가져가고 싶어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 

“욕심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욕심이 없으면 미래가 없고 미래가 없으면 오늘이 없어요. ‘이걸 하겠다’는 마음이 욕심이잖아요. 제 말은 무게를 잘 달자는 겁니다. 요즘 사람은 저울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두고 있어요. 못 가져갑니다. ‘한 만큼만 가져가자’ 이게 제 생각입니다.”

막힘없이 쓴소리를 이어가던 연규 스님은 계묘년을 맞아 국민에게 덕담을 해달라는 요청에 잠시 머뭇거렸다. 덕담이 가장 어렵다면서 잠깐 말을 골랐다. 그는 “매일매일 같은 날이면 참 좋을 것 같다. 365일이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 늘 선물 같은 날이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구시화문’(입은 화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계묘년에는 구시화문이 아니라 구시화복이 됐으면 한다. 서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넴으로써 누군가에겐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식당 주인이 되는 그런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SNS나 메신저가 발달하면서 보여주기식으로 자신을 가꾸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게 아니라 나를 꾸며서 남들이 따라올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지식보다는 배려하는 마음, 같이 가려는 마음으로 계속 노력하다 보면 희망찬 내일, 희망찬 미래가 오지 않을까요?” 

남이 나를 
따르도록

연규 스님 등에 닿았던 햇살이 기자에게까지 다다를 무렵에야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말씀 중 좋아하는 구절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에 연규 스님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답했다.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명승지 향일암 왜? “역사·학술적 가치 있다”

전남 여수 향일암 일대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0일 ‘여수 금오산 향일암 일원’을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향일암은 강원 양양 낙산사, 경남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관음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금오산 기암괴석 절벽에 세워진 암자는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짊어지고 남해 용궁으로 들어가는 듯한 지형적 형상과 거북의 등껍데기 무늬를 닮은 암석, 울창한 숲 등이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다. 

백도 이어 43년 만에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문화재청 관계자는 “인근에 돌산군관청, 돌산향교, 은적암, 방답진성 등 문화유적들이 다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향일암 일원의 명승 지정은 1979년 ‘상백도와 하백도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여수에서는 43년 만이다.

향일암 주지 연규 스님은 “향일암 곳곳이 명승이 아닌 게 없고 문화재가 아닌 게 없다. 대한민국의 보물”이라며 “아주 의미 있고 크게 축하받을 일이고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기쁨을 드러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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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