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의 함정’ 설날 특수 사기주의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16 15:31:04
  • 호수 1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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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 들떠…눈 뜨고 코 베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민족의 명절 설날이 찾아왔다. 그리운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일상생활에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이다. 이번 설 연휴는 총 4일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이 주말이어서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을 망치는 불청객이 있다. 바로 명절마다 나타나는 사기꾼들이다.

오는 22일은 추석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명절인 설날이다. 이날은 일가친척을 만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친척이나 이웃 어른에게 세배를 하는 것이 전통이다. 설날은 음력설 당일을 기준으로 전날과 다음 날을 포함해 총 3일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올해 설 연휴는 대체 공휴일을 포함해 1월21일부터 24일까지로 결정됐다.

치밀한 
시나리오

처음부터 설날이 ‘설날’이었던 건 아니다. 설날은 1989년 공휴일로 지정됐고, 3일 연휴제가 시행했다. 이때부터 설날에 고향을 방문하는 귀성행렬이 시작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설날이 되면 고향에 못 내려가더라도,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을 찾아 덕담을 나누고 선물을 주는 문화가 있다.

설날이 ‘대목’이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들은 ‘설날 감사 선물세트’ ‘전통주 세트’ ‘설날 명절맞이 기획전’을 기획 상품으로 내놨다. 설 명절 베스트 선물도 온라인에선 화제다. 추천 선물로 ▲건강식품 선물세트 ▲수산물 세트 ▲육류 세트 ▲과일 세트 ▲와인 및 술 세트 ▲육가공류 세트 ▲기름 세트 ▲상품권 및 현금 ▲화장품 및 세면도구 ▲커피 세트가 있다.

올해는 대목이 사라진 설날이라고도 하지만, 그만큼 정부나 지자체는 지원금을 배포해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성수품 물가안정을 위해 ▲20만8000만톤 성수품 공급 ▲300억원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대형 유통업체 연계 할인 및 우체국·공영홈쇼핑 등 할인행사 ▲신속통관·운송 지원 및 성수품 수급 안정 대책반 일일 운영을 지원했다.

이 밖에도 중소·소상공인 근로자를 위해 ▲중소·소상공인 대상 39조원 규모 명절 자금 공급 ▲노인, 청년 등 취업 취약계층을 위한 조속한 고용 여건 개선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말 그대로 명절은 국가적 잔칫날이 되는 것이다. 반면 ‘잔칫날 맏며느리 앓아 눕는다’는 말이 있다. 가장 중요한 때 일해야 하는 사람이 탈이 나서 눕게 된다는 말이다. 명절만 되면 극성인 사기꾼들 때문에 명절선물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설날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명절 전, 각 지자체와 지역 소속 경찰청이 범죄 취약지 점검과 강력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 조치를 발표한다. 지역별로 범죄 현황을 분석하고 범죄 다발 지역의 상가·주택 등 대상으로 방범 진단을 해 취약 요소에 대한 보완을 당부한다.

경찰은 순찰 중에 만나는 주민의 안부를 직접 확인하기도 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해 치안 시책에 반영하는 등 주민과 접촉을 강화해 세밀한 순찰활동을 강화한다.

선물 샀더니 벽돌 배송·먹튀도 당해
대부분 “선착순이니 빨리 입금부터”

이런 상황에도 막을 수 없는 것은 SNS를 통한 사기다. 설날에 가족과 친구의 선물을 많이 사는 사람이 당하기 쉬운 사기 유형이다. SNS와 중고거래 사이트에 ‘설날’ ‘설 선물’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설 선물 저렴하게 판매합니다” “설 연휴 숙박권 양도합니다” 등의 판매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좋은 기회처럼 비춰진다. 하지만 개인과 개인 간의 온라인 거래로 판매가 이뤄지는 만큼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는 ‘먹튀’와 하자가 있는 상품을 보내는 행위 등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기행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생 A씨는 이 같은 사례를 경험했다. 명절 연휴 동안 국내 유명 관광지를 여행할 예정이었던 A씨는 SNS에 올라온 숙박권 반값 양도 글을 발견했다. 숙박권 판매자는 “연휴 기간 개인사정으로 인해 숙박권을 급하게 처분하는 중이다. 선착순이니 빨리 입금하라”고 A씨를 재촉했다.

급한 마음에 A씨는 곧바로 숙박권 가격을 판매자에게 입금했다. 하지만 입금이 확인되자 판매자는 연락이 두절됐다. 문제는 개인정보를 주고받은 것이 아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사용해서 사기꾼의 개인정보를 추적하기 어려웠다.

A씨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너무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서 사기일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개인 간 거래 사이트인 네이버 중고나라 사례는 더 심각하다. 30대 직장인 B씨는 설 선물로 전복을 구매했는데 전복 대신 벽돌 두 개를 배송받았다. B씨는 “처음에 택배를 받아보고 무게감이 있어 눈치를 못 챘는데 열어보니 벽돌이었다”고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개인 간의 거래가 아닌 사기를 당한 경우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현금결제를 유도한 뒤 돈만 챙기고 챙기고 사라지는 사기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업계 1위로 불리는 온라인 쇼핑몰 XX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몰이 대응을 잘하지 못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불청객 접근
사기꾼 극성

C씨는 온라인 쇼핑몰에 올라온 121만원짜리 TV를 구매했다. 제품 설명에는 한정판매 특가상품이라며, 별도로 재고 문의를 해달라고 적혀있었고 문의는 카카오톡으로 가능했다.

C씨가 카카오톡으로 문의하자 판매자는 C씨에게 “XX 판매는 종료됐다. 사고 싶으면 다른 오픈마켓서 현금으로만 살 수 있다”며 계좌이체 사이트를 보냈다. ‘저렴한 가격에 TV를 구매할 수 있다’는 기대에 급하게 돈을 입금한 C씨는 곧 이런 방식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느낌이 이상해서 ID 1234, 비밀번호 5678 이렇게 로그인을 했다. 로그인이 되고 입금계좌가 다 똑같이 나오더라. 어처구니없이 속았다”고 허탈해했다.

C씨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곧바로 피해 사실을 해당 온라인 쇼핑몰에 알렸지만, 사측은 “담당 부서가 없다. 휴일 지나 처리하겠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는 “내가 미숙해서 사기를 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이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날 걸 뻔히 아는 상황에서 항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온라인 쇼핑몰의 대응은 황당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주말 사이에 추가 피해는 계속됐다. 처음부터 C씨에게 TV를 판매한다고 사기 친 아이디는 다른 판매자의 것으로, 이 판매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아이디를 도용당했다. 주말 내내 해당 판매자에게 문의와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해킹당한 판매자는 “아이디를 해킹한 것 같다. 나는 TV를 판매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말에 전화만 80명 넘게 왔던 것 같다. 전화 때문에 일도 못하고, 경찰서만 왔다 갔다 했다”고 밝혔다.

명절에 기차표를 구매하지 못한 귀성객들을 상대로 하는 티켓 사기도 여전하다. 명절을 앞두고 고향으로 가는 열차 승차권이나 항공권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명절이 다가오면 기차표나 항공권의 수요가 급증한다. 먼저 구입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한 소비심리가 작용해 사기 피해를 보기 쉽다”고 조언했다.

최근 비교적 잠잠했던 백화점 상품권 사기도 다시금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피해자가 주로 생성되는 곳은 지역구 기반의 플랫폼인 당근마켓이나 지역 커뮤니티였다.

저렴한 물건
미끼로 유인

D씨는 명절을 맞이해 백화점 상품권 구매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의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에 “30만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온 것을 확인했다. D씨는 곧바로 오픈 채팅방을 열고 판매자를 초대했다.


판매자 아이디는 아파트 동호수까지 기입돼 아파트 주민인 것처럼 보였다. 판매자는 은행 계좌번호를 전달해 “남편 계좌로 입금 부탁한다. 우리도 명절 선물로 받았던 건데, 사용하지 않아서 판매한다”며 “필요 수량이 어느 정도냐? 더 구매해도 되는데 많이 판매하니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구매할 수 없어도 다른 백화점 상품권도 구매할 수 있다. 상품권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연락줘도 된다”고 설명했다. 

D씨는 판매자의 말을 믿고 돈부터 입금했다. 판매자는 D씨에게 “고맙다. 연락처를 남겨주면 바로 문자 발송을 해주겠다. 5분 안에 문자가 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후 판매자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인 E씨는 시세보다 싸게 백화점 상품권을 판다는 당근마켓 글을 보고 구매했다가 피해를 봤다고 호소했다. 다른 점은 D씨는 돈을 지불하고 상품권조차 받지 못한 사례였고, E씨는 상품권을 받았다는 점이다. 다만 문제는 종이로 출력한 백화점 상품권 이미지였다.

E씨는 “10% 할인된 가격으로 백화점 상품권을 판매 중이었다. 블로그에 댓글도 많고 카카오톡으로 상담해보니 괜찮아 보였다. 사업자등록증을 보내줬는데, 대표자와 통장 계좌주 이름이 동일했다”며 “인증한다고 이것저것 보내주니 믿고 입금했고, 퀵 발송했더니 종이로 출력한 백화점 상품권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무슨 배짱으로 사업자등록증까지 보여주면서 사기를 치는지 모르겠다. 이번 명절 선물로 보내려고 백화점 상품권 200만원을 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피해 사실 인지 후 곧바로 당근마켓에 신고했다. 그러나 수일간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통장 거래정지를 위해 경찰에 전화도 했지만 보이스피싱 거래가 아니라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백화점 측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해 그간 경찰에 수사 의뢰, 피해 주의 공지 등을 지속해서 진행했다. 하지만 뾰족한 예방법이 없는 게 문제다. 백화점 관계자는 “안전하게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하려면 백화점이나 공식 상품권 숍을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으로 낚시질
연휴 스미싱 비율 전체 건수 42%

개인 간 거래로 인한 사기가 명절 사기의 보편적 방법이라면, 최근 급상승하는 방법은 피싱 사기다. 실제로 최근 설날 연휴를 앞두고 대출 등 금융 지원 안내, 택배 배송 등을 사칭한 스미싱(문자메시지와 피싱의 합성어)과 지인 명절 인사 등으로 위장한 메신저 피싱이 증가했다.

이에 각 은행은 고액 현금 인출 시 보이스피싱 피해가 없는지 확인을 강화하는 한편, 각 사가 개발한 금융 사기 탐지 기술을 활용해 피해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9월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2021년 동안 스미싱은 매년 설날과 추석이 있는 1·2·9월 명절 기간에 발생하는 비율이 전체 건수의 42.4%에 달했다. 

특히 2021년에는 50.4%로 절반을 웃돌았다. 이들은 악성 앱 주소가 포함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전송해 이용자가 악성 앱을 설치하거나 전화하도록 유도해 금융 정보·개인정보 등을 탈취하는 수법을 이용한다.

스미싱에는 대표적으로 5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로는 명절에 가장 흔한 ‘택배 관련 스미싱’이다. 문자가 “[배송조회] 1/31 고객 주소가 잘못되었습니다. 택배가 반송되었습니다. 배송 주소 수정 uuuu.ne/FgMRD7” “[○○택배] 설날 배송 물량 증가로 배송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배송 일정을 확인하세요. http://nene.you/MKin78”이런 식으로 오면 대부분 택배 스미싱이다.

두 번째는 공공기관을 사칭하는 스미싱이다. 공공기관 사칭은 “[생활불편신고] 귀하에게 민원이 접수되어 통보 드립니다. 민원 확인 http:/bit.ly/2Hh9vp9” “고객님께서는 아래 상품 승인 대상자입니다. 상품 내용 : 정부 지원 서민금융상품 http.365.com”이라고 문자가 온다.

세 번째는 지인 사칭·선물 관련 스미싱이다. 이 스미싱은 친근한 메시지를 보내 속이는 게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0^) 설날 잘 보내시고 2023년에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http://woz/kr/mhgd” “설날 선물 도착 전 상품 무료 배송! 할인쿠폰 지급 완료! 즉시 사용 가능! 확인 : http://yno.kr/ncnqbH” “○○○님 설날 명절 선물로 모바일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확인 바랍니다. http:/hpbl.are/nbaBl” “설 명절 직접 찾아뵈어야 하는데 영상으로라도 인사드립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http://mnon.it/Pnti1” 등 형태로 스미싱 문자다.

코로나19 정부 지원금 사칭 관련 스미싱도 있다. 스미싱은 “손실보상금 지원을 위해 아래에 접속 후 신청해주십시오. http://sxxxs.xyz/?phogcd” “지원금 신청이 접수됐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mxxxt.xyz/ldxxdz” “[긴급재난자금] 상품권이 도착했습니다. 확인해주세요. http://bit.ly/3xxxMel” “2월 추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www.coroona-19.net 신청”이다.

마지막으로 스미싱을 이용한 보이스피싱 피해다. 이런 문자는 “[Web] 발신 ㈜XOXXXOXX 주문하신 안마의자 57만2000원 결제됐습니다. 문의번호 : 02-○○○○-○○○”라고 온다.

신고하라고?
무용지물

이런 문자를 받는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문자를 바로 삭제하는 것이다. 만약 스미싱·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면 ▲경찰서에 피해 내용을 신고하기 ▲경찰서에 발급받은 ‘사건사고 사실 확인원’을 이동통신사, 게임사, 결제대행사 등 관련 사업자에 제출하기 ▲핸드폰의 악성 파일을 삭제하기 ▲핸드폰에 저장돼있는 공인인증서를 즉시 폐기하고 재발급받아야 한다.

결국 은행이 피해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더라도, 결국 개인이 받은 문자가 ‘스미싱’인지 알아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명절 연휴 중 사기 의심 문자메시지를 수신했거나 악성 앱 감염 등이 의심되는 경우 국번 없이 118 상담센터에 신고하면 24시간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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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