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추락사’ 검경 알력다툼 내막

‘살인 인정’ 두고 수사 암투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검수완박 이후 수사권을 놓고 벌이는 검경의 힘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수사권을 뺏긴 검찰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라도 경찰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전략을 택했다. 지난해 ‘인하대 성폭력 추락사’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살인죄 혐의 적용을 망설인 반면, 검찰은 결단을 내렸다. 이들의 승패는 끝까지 지켜봐야 안다. 앞서 검찰이 ‘계곡 살인사건’에서 비슷한 전략을 펼치다 망신살만 뻗친 전례가 있어서다.

지난달 19일 인천지검은 ‘인하대 성폭력 추락사’ 사건의 가해자 A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8월9일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준강간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후 지난해 9월13일 1차 공판이 열린 지 3개월 만에 1심 재판 절차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섰다. 

국민적 공분
엇갈린 판단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7월15일 새벽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 캠퍼스 내 건물에서 또래 여학생 B씨를 성폭행하려다 추락시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B씨가 건물 2층과 3층 사이 복도 창문에서 추락하자, B씨를 구조하는 대신 증거인멸을 시도한 뒤 달아났다. A씨는 자취방에 머무르다 당일 오후 경찰에 체포됐다.

사건 정황이 알려지면서 당시 국민적 공분은 엄청났다. 경찰의 수사 진척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도될 정도였다. 성난 여론은 엄벌을 원했고, 관심은 자연스레 경찰의 혐의 적용으로 쏠렸다. 수사 초반부터 살인죄 적용 가능성이 언급됐다.

범행 당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A씨가 B씨를 고의로 밀어 추락시켰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설령 고의성을 입증하기는 어렵더라도, 추락 이후 구조나 신고 없이 현장을 이탈한 점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행 나흘 만인 지난해 7월19일 KBS <용감한 라이브>에 출연해 “(건물에서)떨어지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건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인데 119에 신고하지 않고 구조도 하지 않았다”며 “최소한 미필적 고의 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까지 갈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경찰은 관련 물증을 확보하는 대로 죄명을 살인으로 변경할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경찰은 A씨를 강간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이후 A씨 진술을 통해 파악된 사실관계에 따라 구속영장 신청 때는 준강간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하지만 경찰은 끝내 A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지 못했다. A씨의 고의성을 입증할만한 명백한 물증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통상적으로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살인 장면이 직접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실제로 사건 현장을 직접 비추는 CCTV가 없었고, A씨가 찍은 동영상에는 소리만 녹음됐던 데다 A씨는 계속 고의성을 부인해왔다. 사정당국 입장으로선 살인죄 혐의 적용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정당국이 무리하게 혐의를 적용하더라도, 법원에서 이를 ‘치사’로 뒤집는 경우도 종종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준강간치사 혐의로도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경찰의 판단 근거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관련 법상 (준)강간치사는 10년 이상의 징역부터 무기징역까지, (준)강간살인은 무기징역부터 사형까지 형벌에 처할 수 있다.

‘치사냐 살인이냐’ 같은 사건 정반대 판단
검, 보강 후 살인죄 적용…무기징역 구형

판례상 (준)강간치사는 통상 11~14년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죄질에 따라 형량은 달라질 수 있다. 준강간치사 혐의에서 죄질의 불량함을 최대한 강조한다면, 무기징역 선고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사형 선고·집행 가능성이 희박한 우리나라의 사법체계를 감안할 때, 준강간치사 혐의로도 준강간살인에 준하는 형량을 받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이 무리한 혐의 적용 대신 이 같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관측이다. 혐의 입증 안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처벌 수위까지 함께 고려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은 A씨를 검찰에 준강간치사 혐의로 송치하면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추가했다. 일명 ‘불법 촬영’ 혐의다. 

관건은 동영상에 피해자 모습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과연 혐의 입증이 가능할 것인지 여러 의견이 오갔던 바 있다. 하지만 경찰은 내부 법률 검토 끝에 혐의 추가를 결정했다. 이는 A씨의 죄질이 불량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됐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경찰과 정반대의 판단을 내렸다. 인천지검은 A씨를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불법 촬영 혐의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해 분석했지만, A씨의 B씨 신체 촬영 의도를 입증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송치 이후
혐의 변경

혐의는 일부 인정되지만 증명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반면 검찰은 핵심 혐의에 관해선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검찰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직후부터 2주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전담수사팀을 꾸려 보강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검찰은 A씨에게 부작위를 넘어 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작위’란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행한 것을 의미한다. 즉 검찰은 A씨가 추락한 B씨를 방치해 B씨가 사망에 이른 것이라고 본 게 아니다. 대신 A씨가 직접 위력을 발휘해 B씨를 추락시켰고, 추락 자체가 B씨의 직접적 사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같은 검찰 판단에는 법의학 감정 결과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8월 검찰은 법의학자인 이정빈 가천대 의과대학 석좌교수와 함께 사건 현장을 조사했다. 당시 이 교수는 “B씨가 외력에 의해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의 소견을 남겼다.

이들은 창문 높이·벽의 두께·피해자의 손 등에서 단서를 찾았다. 창문의 높이와 벽의 두께를 합치면 약 130㎝에 달한다. B씨의 신장을 고려했을 때, 스스로 창문 밖을 향하려면 바깥쪽에 손을 짚어 몸을 끌어올렸어야 한다. 하지만 벽면과 B씨 손 중 어디에서도 ‘짚은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B씨의 복부 상단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 창문틀에 눌린 듯한 자국이 발견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이 교수는 “외벽 페인트가 산화하면서 묻어나는 물질이 피해자의 손에서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피해자의 팔이 창문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상태에서 배가 오래 눌려 있다가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B씨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사고가 벌어지고 수 시간 뒤에 혈액을 공급받은 뒤 측정됐음에도 0.19%에 달한 점을 눈여겨봤다. 추락 당시에는 농도가 더욱 높았을 것이고, B씨가 스스로 떨어지기는 어려운 상태였을 것이란 게 이 교수 소견이다.

검찰도 B씨의 추락 장면이 직접 찍힌 CCTV 영상은 확보하지 못했다. 다만 A씨가 복도 창문을 여는 순간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맞다”
힘겨루기

A씨는 B씨 추락 직후 수십초 간 곁에 머무르다 도주했다. 검찰은 이 교수에게 ‘A씨가 구호·신고에 나섰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겠느냐’고도 문의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추락 직후 이미 뇌를 비롯한 장기들에 다발성 손상이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구호 여부와 무관하게 B씨를 추락시킨 행위 자체가 사망을 초래했다는 의미다.

결국 검찰은 이를 근거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 대신 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을 단행했다. 재판부는 지난달 12일 검찰 요청에 따라 현장검증을 벌였다. 

형사 처리 과정만 놓고 본다면, 이 사건의 진행 양상은 지난해 벌어진 ‘계곡 살인’사건과 유사하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은 모두 인천지검으로 향했다. 인천지검은 이 사건들에서 경찰 판단을 넘어선 혐의 적용을 감행했다. 보강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뒷받침할만한 추가 증거를 대거 입수했기 때문이다.


인천지검은 계곡 살인사건 수사 당시 이은해와 조현수가 피해자를 살해하기 위해 수차례 공모·시도했던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검찰 수사 내용에 따르면 이은해와 조현수는 피해자를 가평 계곡에서 빠뜨리기 이전에 낚시터 익사, 복어 독 독살 등을 계획·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인천지검은 이 같은 내용을 이들의 혐의에 추가했다. 동시에 이들의 혐의를 작위에 의한(직접) 살인으로 변경했다.

당초 경찰은 이들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통상적으로 작위에 의한 살인이 부작위에 의한 것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받는다.

인천지검은 직접 찾아낸 증거를 통해 이들의 ‘고의성’을 피력했다. 또 가평 범행 역시 ‘정신적 지배(가스라이팅)에 의한 극단적 선택’이므로, 직접 살인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검찰은 혐의 확대에서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이 사례를 이용해 당시 한창 논란이었던 ‘검수완박’법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당시 인천지검은 입장문에서 “검수완박 상태였다면 경찰에서 확보한 증거만으로 계곡 살인사건 피의자들을 기소해 무죄판결을 받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해당 사건 보강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확대(변경)할만한 결정적 증거를 찾아낸 게 검수완박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 의견 넘어선 기소 
‘계곡 사건’ 판박이?

하지만 검찰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체면을 구겼다. 재판부가 “혐의 인정이 어렵다”며 이례적으로 공소장 변경을 직접 요구하면서다. 결국 검찰은 공소장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추가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이은해의 직접 살인 혐의에 무죄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결과적으로는 당초 경찰이 적용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가 받아들여진 셈이다. 검찰은 직접 살인 혐의가 무죄판결을 받은 점에 반발해 항소했다.

‘전례’가 있는 만큼, 인천지검이 이번 재판에서 성과를 내 이를 검수완박 ‘여론전’에 활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성과를 낸다면 검수완박법의 타당성을 비판할 때 쓰이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검찰의 망신살 뻗치기가 재현될 경우, 혐의 확대의 저의 자체가 의심받을 수 있다는 지점이다. 자칫하면 ‘검찰이 경찰 수사의 한계를 지적할 요량으로 과도한 차별성 부각에 골몰한다’는 식의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검찰이 끝까지 A씨의 진술 번복을 이끌지 못한 점이 변수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물론 검찰이 작위에 의한 살인을 입증할만한 주변 정황을 상당수 확보한 건 사실이다. 다만 범행 장면이 찍힌 CCTV 등 ‘스모킹건’이라 불릴만한 증거가 없는 것도 일리 있는 지적 중 하나다.

이 때문에 A씨의 관련 자백 확보가 더욱 관건으로 꼽혔다. 

A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구형 직전까지 18차례 반성문을 작성해 재판부에 제출하면서도 시종일관 고의성을 부인해왔다. A씨 측은 막판까지 ‘살인 대신 준강간치상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A씨가 알리바이를 조작한 여러 정황을 포착·지적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했다. 이를테면 검찰은 A씨가 경찰 최초 조사 때 “B씨를 직접 추락시켰다”며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 진술 기록을 근거 삼아 ‘A씨 행위에 고의성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이후 조사부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검수완박
공격 근거?

1심 판결은 오는 19일로 선고될 예정이다.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되면, A씨는 역대 최연소 무기수가 된다. 또 선고 결과에 따라 검경 둘 중 하나는 자존심을 구길 공산이 크다. 살인죄가 인정되면 경찰의 부실한 수사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입길에 오를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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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