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참사’를 말하다…법치의학자 윤창륙 조선대 명예교수

“망자를 가족의 품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택시기사는 몇 번이나 주소가 맞는지 물었다. 광주에서 2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했지만 이 길은 처음이라고 했다. ‘차를 돌릴 수 있을까’ 걱정이 나올 때쯤 3층집이 보였다. 벨을 누르자 개 짖는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추사재, 생각을 따라가는 집에 도착했다. 

“무등이 앉아, 손. 그다음에 간식을 줘야 돼요.” 추사재를 찾은 취재진은 나란히 서서 ‘무등이 아빠’의 지시에 따랐다. 온 집안이 떠나가라 짖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무등이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름의 의식을 치른 후 얌전해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탁탁’ 바닥에 꼬리치는 소리만 가끔 날뿐 조용히 기다렸다. 

책과 술

1.5층 높이의 서재는 2만5000권 분량의 책으로 가득했다. 3층집 곳곳 어딜 가도 책이 놓여있었다. 책뿐이랴. 추사재에는 술도 그득했다. 지난 15년 동안 윤창륙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법의치과학교실 명예교수가 마개를 딴 와인만 4500여병에 이른다. 단순히 계산해도 1년에 300여병 수준이다. 

지난 8월5일 작열하는 태양 아래 책 향기와 술 향기가 공존하는 곳, 추사재에서 윤 교수를 만났다. 윤 교수는 “추사재는 생각을 따라가는 집, 지나온 생을 반추해 미래를 지향하는 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중 이기백 작가의 <근대한국사논선>을 꺼내 들며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 소개했다. 

1989년 조선대 치과대에 부임한 윤 교수는 지난해 2월 은퇴했다. 전공은 법의치과학으로 법의학의 한 분야다. 일반적으로 법의학자가 죽음의 원인, 죽음의 발생 기전 등을 살핀다면 법치의학자는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낸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사체나 그 사체로부터 분리된 조각이 누구 것인지를 찾아내는 ‘개인 식별’ 작업이다.


현재 활동 중인 국내 법치의학자는 윤 교수를 비롯해 7명에 불과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부산대, 가톨릭대 등에서 근무한다. 윤 교수는 이 일을 40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치대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 도망 다니던 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본인하고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윤 교수 인생의 수레바퀴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건 본과 3학년 때 김종열 연세대 교수의 법의학 강의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윤 교수는 ‘모골이 송연해졌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후 그는 ‘사부’ 김 교수를 찾아가 법의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위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국 7명뿐인 법치의학자
사체 신원 찾는 ‘개인 식별’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딱 두 분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김종열 사부님. 한 분은 개인적인 삶에 영향을 줬고 한 분은 내 전공에 영향을 주셨습니다. 젊었을 때뿐만 아니라 은퇴한 이후에도 계속 저한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싫어하면서도 좋아하고, 미워하면서도 존경하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죠.”

법치의학자로서 윤 교수의 삶은 ‘참사’와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형 참사가 발생한 곳으로 향하면서 전 세계를 누볐다. KAL기 폭파사건, 중국 민항기 추락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세월호 사건, 남아시아 대지진(쓰나미) 때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윤 교수가 있었다.

특히 윤 교수는 2003년 대구지하철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 중앙역에 갔는데 현장이 시커멓게 다 재로 변해 있었다. 같이 간 정낙은 선생에게 ‘욕심내지 말자. (사망자의)30%만 찾아서 유족에게 돌려 드리면 신도 우리가 정말 잘했다 하실 거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현장 상황이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실제 대구지하철 사건에서 사망자의 90% 이상 개인 식별이 이뤄졌다. 사후 자료는 존재하지만 생존 자료가 없어 비교를 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망자를 밝혀낸 셈이다.


윤 교수는 “그때 정말 많이 울었다. 왜 이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많이 생각했다. 70일 정도 현장에 있었는데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작은 태만과 이기심이 얼마나 큰 사고로 돌아올 수 있는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건 때는 큰 충격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트라우마로 술도 마시지 못했다. 아이들이 왜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야 했는지 하염없이 되묻는 시간이었다. 윤 교수는 “현장에서 ‘우리 어른의 잘못으로 너희들이 이렇게 죽어 갔구나. 이 잘못된 세상, 우리가 바꿔주마.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하곤 했다”고 읊조렸다.

지문과 치아, 유전자 중 하나만 일치하면 개인 식별이 이뤄진다. 지문은 종생불변 만인부동(모든 사람이 다르고 평생 변하지 않음)이기 때문에 확인만 된다면 빠른 속도로 개인 식별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불에 탄 사체는 지문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치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구지하철·세월호 사건 현장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치아는 모든 장기 중에 가장 단단하기 때문에 현장에 가장 오래 남아 있습니다. 치아 하나만 있으면 성별과 연령을 파악할 수 있고요. 치아를 자르면 그 안에 분포돼있는 신경과 혈관 등을 통해 DNA를 채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치아는 일단 손상되면 절대 재생이 안 되기 때문에 충치치료를 한 흔적 등으로 생전 자료를 찾아낼 수 있어요.”

윤 교수가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8년. 그중 6년을 치대 공부와 전혀 관계없이, 말 그대로 ‘놀러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김종열 교수의 강의를 듣고 ‘각성’한 뒤 2년 동안 다시 말해 자신의 적성을 찾은 순간부터 그는 치대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몰두했다. 그 결과 7000여명(국과수 기록)의 누군가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줬다.

윤 교수는 법치의학자로서의 삶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말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문에 나오는 표현이다. 정조 때 문장가인 유한준이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부친 발문에서 나온 표현을 유 교수가 약간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제가 이 일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법의학에 종사하면서 사체를 부검하고 사건·사고를 접하는 과정에서 망자의 억울함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한 분, 두 분 살피는 과정에서 사명감이 생긴 거죠. 사명감이 생기면 내 학문을 사랑하게 되고 법의학을 사랑하게 되고요. 연역법이 아니라 귀납법으로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아마 다들 그럴 겁니다.”

생각을 따르다

윤 교수는 전 세계 도처에 희생된 이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망자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평생에 걸쳐 현장에서 배운 경험으로 망자의 안식을 돕겠다는 취지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체라도 따뜻한 곳에 묻을 수 있고 그 나라의 장례 풍습에 따라 영원한 안식을 비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게 내가 해왔고 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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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