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사정기관 새 단장 플랜

반년 내내 물갈이…엇갈린 희비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 출범 반년 만에 주요 사정기관들의 새 단장이 얼추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검찰에 이어 경찰·국정원도 고위직 대규모 물갈이가 단행됐다. 일각에선 정부가 검찰을 중심으로 한 사정기관 서열 재편을 끝냈다고 분석한다. 정권이 다른 사정기관들의 힘을 빼고, 검찰을 ‘원톱’으로 띄우기 위해 이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검찰이 주도하는 야권 사정국면은 점차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윤석열정부는 취임 반년 만에 검찰을 중심으로 사정기관 서열을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출범 직전 검수완박법이 통과되면서 계획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당초 의도한 바를 대체로 이뤄낸 형국이다.

꽂아넣고
갈아엎고

검찰 요직에는 ‘윤 대통령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들어섰다. 다른 사정기관에 대해서도 정부가 인사권을 꽉 쥐고 흔드는 모양새다. 그 결과 감사원은 정치 중립성 의무 위반 논란에 휩싸였고, 경찰과 국정원은 안팎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 정권부터 검찰과 경쟁 관계에 놓인 경찰의 난맥상이 두드러진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2·3급 간부 보직인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100여명에 달하는 간부가 보직을 받지 못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요직을 거쳤던 인물도 대거 ‘대기발령’ 상태에 놓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 전원이 퇴직한 지 석 달 만이다. 


김규현 국정원장은 지난 9월 초 1급 간부 20여명을 교체한 직후부터 2·3급 인사작업에 착수했다. 관련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김 원장은 직무평가와 내부 감찰 등을 통해 대공업무 등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했다. 

반면 전 정권의 시책을 뒷받침하는 업무에 투입됐던 인사에겐 보직을 부여하지 않았다. 대북 관계 지원부터 간첩 수사·대북 공작 분야를 맡았던 간부들이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아울러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등과 가까웠던 것으로 분류된 인사들도 무보직 신세로 전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기관의 대규모 인사에서 대기발령으로 남은 이들은 통상 교육·지원 부서 등 한직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윤정부 출범 직후부터 국정원 물갈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국정원 물갈이는 정권교체마다 관례처럼 이뤄져왔다. 

김영삼정부는 집권 초반인 1994년 국정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 안기부) 직원 300여명을 대기발령했다. 국회에는 정보위원회를 설치해 외부 감시장치를 마련했다. 김대중정부는 안기부를 국정원으로 바꾸면서 직원 10% 이상을 줄였다. 10년 만에 정권을 넘겨받은 문정부는 국정원 내부에 ‘적폐 청산TF’를 설치하고 고강도 개혁과 활동범위 조정 등을 단행했다. 

‘검찰 원톱’ 서열 재편 완료
경찰·국정원은 대규모 인사

윤정부는 김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에 감찰심의관 자리를 신설해 현직 부장검사를 파견했다. 국정원은 감찰심의관을 앞세워 전 정권 때 진행된 북한 관련 업무에 관해 강도 높은 내부 감찰을 진행해왔다. 

그간 감사원과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귀순 어민 북송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초, 서 전 실장과 박 전 원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서 전 실장은 귀순 어민 사건 당시 정부합동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킨 혐의를, 박 전 원장은 서해 사건 관련 첩보를 무단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윤정부는 이와 전 정권 대북 업무를 한데 묶어 국정원 인사 정리 명분으로 삼은 셈이다. 아울러 국정원은 검수완박으로 타격을 입은 검찰의 입지 회복용 제물로 쓰이는 모양새다.

검찰은 윤정부 들어 국정원 관련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발 일주일 만에 국정원 청사에서 압수수색을 단행한 데 이어 서욱 전 국방부 장관·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서 전 실장 등을 잇달아 구속수사했다. 검찰은 박 전 원장도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일각에선 이번 국정원 물갈이 양상이 앞선 ‘경찰 길들이기’와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이 인사권을 쥐고 수뇌부를 압박하는 구도를 짠다는 점에서 방식이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윤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줄곧 “경찰을 휘어잡으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5월12일 임명 직후 행안부 장관 산하에 ‘경찰제도 개선 자문 위원회’를 꾸리라고 지시했다. 즉각 꾸려진 자문위는 바로 다음날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총 4차례 회의한 끝에 경찰국 신설 방안을 발표했다.

공을 넘겨받은 정부는 발표 후 약 열흘 만에 국무회의에서 경찰국을 신설하는 시행령을 의결했다. 경찰국은 경찰 고위 간부 인사권을 쥔 채로 지난 8월2일 출범했다. 아울러 이 장관은 지난 6월 당시 경찰청장 후보군으로 꼽히던 치안정감 승진·내정자 6명과 일대일 면담을 가진 뒤 “필요하다면 경찰청장 후보 면접을 보겠다”고 발언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사단
야권 사냥꾼

당시 경찰 내부에서는 “처음에는 경찰 길들이기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길들이기가 아니라 통제한다고 선포한 것 아니냐”는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정치권에선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의 정권 충성 경쟁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참사 당일 경찰 수뇌부가 대통령 퇴진 시위 통제와 대통령 관련 시설 경호에 과도한 인력을 배치한 이유가 인사권을 쥔 정권에 잘 보이려는 속셈에 있었다고 의심한다. 

다만 경찰국은 10·29 참사 이후 존재 명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정부 책임론’을 논할 때 인사권과 충성 경쟁 간의 연결고리가 지속적으로 언급되면서다. 비록 철회되기는 했지만, 한때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가 경찰에 가하는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여곡절을 겪긴 했어도, 경찰국과 인사권은 아직도 정부 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경찰은 당분간 별다른 대응을 보이기 어려울 전망이다.

경찰은 경찰국 설치 논란이 불거진 이후로 잇달아 부침을 겪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 안팎의 비판 세례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논란 당시 경찰국 설치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참사 발생 당시에는 미흡한 대처가, 이후 진상조사 국면에서는 책임을 현장 일선으로 돌리는 듯한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아울러 최근에는 몇 달간 억눌려 있던 경찰국 설치 반대 여론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최근 윤 청장이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에 류삼영 총경을 중징계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류 총경은 울산중부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 7월 행안부 경찰국 설립에 반발해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최한 인물이다. 


감·검
원투펀치

부산경찰청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회장단(이하 직장협)은 지난 6일 ‘류삼영 총경 중징계 요구에 대한 입장문’에서 “경찰국 설치가 정당한 것인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세미나 형식의 회의를 개최한 것이 복무규정 위반이라고 징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직장협은 “경찰 조직 내 현안이 있을 경우 경찰관들이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총경회의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외에도 현직 경찰 간부들이 잇달아 수사선상에 오르내리는 점도 경찰 내부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일찌감치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은 어느덧 사정국면을 주도하고 나섰다. 

윤정부는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하루 만에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와 한 달 뒤 열린 첫 정기인사에서 ‘검찰 빅4’로 불리는 요직에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전면 배치했다. 

당시 임명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신자용 법무부 감찰국장·김유철 대검 공공수사부장·신봉수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은 모두 윤석열 라인의 ‘코드인사’로 분류된다.


검찰 안팎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전반적인 인사는 탕평책처럼 진행됐다. 하지만 전 정권 관련 수사가 유력한 일선 검찰청에는 어김없이 특수통 출신 검사장들이 자리했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지검, 국회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 등은 모두 윤석열 사단의 지휘를 받고 있다. 

이들에게 공을 넘긴 건 또 다른 사정기관인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윤정부 출범 이후 줄곧 정치 중립성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유병호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표적 감사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일각에서는 윤정부가 검찰과 감사원을 ‘원투펀치’로 쓰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위법 사항을 밝히고 고발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하는 식이다.

검, 검수완박 버텨내고 야권 정조준
전 정권·이재명 넘어 전방위 타격

아울러 검찰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관한 수사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장동 의혹의 ‘키맨’으로 꼽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가 입을 열면서 의혹 규명이 급물살을 탔다. 검찰은 여세를 몰아 민주당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구속했다. 

이외에도 검찰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같은 당 노웅래 의원 등 야권을 겨냥한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연결점이 많다고 해서 의도성을 예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그 여부를 떠나 검찰의 전방위적 야권 수사가 둘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겠나. 검찰은 조직 역량을 다시금 입증하고, 정부는 야권 비위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사이익을 누릴 것”이라고 짚었다.

검찰은 특수본 수사 및 국정조사 결과에 따라 존재감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진상규명이 ‘용두사미’에 그치면 검찰의 진상규명 경험·역량을 다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1404호 ‘열리는 이태원 국조’ 몰래 웃는 검찰 속내). 향후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한다면 정권 내 수사권 복구까지 바라볼 수 있다. 

정부가 경찰국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사회 각계에서는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정권의 시선이 국정원을 향하면서 비슷한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

박 전 원장은 지난 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정권교체 때마다 정치보복이 일어나선 안 된다”며 “이렇게 일괄적으로 비리도 없는 27명의 1급 부서장이 4~5개월간 대리인 체제로 가면 이 나라의 안보 공백이 온다”고 말했다.

치안·안보
공백 우려

그러면서 대기발령을 받은 인사들에 관해 “박근혜정부에서 잘나갔던 인사들이 국내 정보 수집·분석이 폐지돼 정치 관련 일을 하지 않으니까 굉장히 한직에 가 있었다”며 “나중에 알고 유능하기 때문에 다 좋은 보직을 줬다. 제가 그 사람들을 발탁하지 않았으면 지금 더 좋은 보직으로 와서 잘 일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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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무기력 국민의힘과 봉건제 연결고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비판을 들을지언정 정국 대응에 일사불란하다. 이는 강성 지지층의 압박으로 형성된 중앙집권 형태의 정치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봉건제 형태 정치를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무기력함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가 진행되면 ‘맹탕’이란 표현이 나온다. 올해도 어김없었다. 올해엔 ‘추태’란 표현도 나왔다. 미국 의회에선 상시 청문회 제도를 안착시켜 아주 촘촘한 청문회 제도를 운용한다. 이를 토대로 “정기 국정감사를 없애고, 상시 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어김없이 나왔다. 변함 없는 맹탕 국감 국민의힘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의 과거 이력과 함께 그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려고 한다. 국민의힘은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에 당력을 기울였다. 대통령실을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는 운영위원회는 물론,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도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범여권에선 방어막을 쳤다. 당력을 기울여 김 실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태도는 김 실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키운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더라도 국민의힘이 그에 대한 각종 의혹을 명쾌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엔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이 반말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박 의원은 법사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사건 질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이 발언 시간 초과로 마이크 전원이 나간 이후에도 계속 질의를 이어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 들었다. 박 의원이 “조용히 하라”고 소리치자, 신 의원은 “왜 반말을 하느냐”고 반발했고 다시 박 의원이 “난 옛날부터 너한테 말 내렸다” 등 언쟁을 벌였다. 한술 더 뜨는 논쟁은 같은 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에서 이어졌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은 박 의원으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문자 중엔 박 의원이 김 의원에게 “에휴, 이 찌질한 X아”라는 욕설이 들어가 있었다. 이때 박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에 항의하던 박 의원은 김 의원에게 “한심한 XX는 나가”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지난달 2일 상임위에서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방통위 관련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저를 지칭해 ‘저 인간만 없으면 과방위가 좋을 텐데’라고 말했다”며 “김 의원이 시끄럽게 전화 통화까지 하길래 항의했더니, 김 의원이 욕설을 퍼붓고 멱살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제 가족 사진까지 화면에 띄우면서 저를 비판했다”며 “김 실장의 경기동부연합 연루 사실까지 폭로했더니 제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고 강조했다. 친여 성향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13일 조희대 대법원장을 상대로 진행된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조 대법원장과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합성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조요토미 히데요시’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다음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도움되지 않았고, 조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압박해 망신을 줬단 프레임에 갇혔다”며 “지나치게 과했다”고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 눈치에 몰아치는 민주당 특유의 봉건제…국감서도 의욕 상실 최 의원은 지난달 20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상대로 “나 의원의 언니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의 내연남 김충식씨의 새 내연녀를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김 법원장은 “나 의원에겐 언니가 없다”고 반박하면서 최 의원에 대한 비판·조롱이 이어졌다. 최 의원은 이튿 날 진성철 대구고등법원장에게 재판소원 관련 질의를 하는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옆에 있다가 바라보는 자세로 몸을 돌렸다. 이어 주 의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 사랑재에서 딸 결혼식을 진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최 의원이 배포한 모바일 청첩장엔 신용카드 결제 링크가 포함돼있었다. 지난달 초엔 청첩장을 과방위 소속 국회 사무처 직원들에게도 전달했다.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기이한 해명을 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지난달 26일엔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보좌진에게 “축의금을 피감기관들에 돌려주라”고 지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결혼식 축의금 50만원을 냈다가 돌려받은 사람 중 1명은 다름 아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이 지정한 경조사비 한도는 5만원이다. 여야의 정쟁 때문에 국정감사가 중단되는 등 파행이 일어나는 사례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국정감사엔 다수의 증인·참고인이 출석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출석 의무에 응했거나, 출석할 필요가 없는데도 출석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이들의 시간·일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모적인 정쟁을 거듭하면서 이들 증인의 시간도 잡아먹는다. 이는 국회의원 특유의 꼰대질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김 의원과 박 의원이 욕설을 주고받는 현장엔 사이버 레커들로부터 피해를 본 유튜버 쯔양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있었다. 쯔양은 이들이 욕설을 주고받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몰아치는 사법개혁 이날 여야는 박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공방을 밤 늦게까지 이어갔다. 양당은 국정감사가 이어진 지난달에도 자신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김 의원이 박 의원의 전화번호를 공개한 후 박 의원은 이날 내내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를 필두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에 법원의 재판을 포함하는 재판소원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추진되는 듯했다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의 반대로 사그라들었던 법원행정처 폐지도 다시 추진할 조짐을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5월1일 이재명 대통령의 허위 사실 공표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후 민주당은 일사불란하게 대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대법관 수 증원은 민주당 내 사법개혁 특별위원회가 지난달 20일 확정한 방안이다. 재판소원은 민주당 김기표 의원이 당 지도부와 협의해 당론 법안으로 별도 추진할 예정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의 사법개혁 방안을 일컬어 “과도하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대법원이 이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기 전엔 법원의 각종 숙원사업을 들어주려고 했다”며 “판결 이후 개혁을 명분으로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라며 “법원이 마음에 안 드는 결정을 할 때마다 단세포적으로 대응한단 느낌마저 든다”고 해석했다. 반대 진영의 날 선 지적에도 민주당은 특유의 몰아치기를 유지하고 있다. 검찰·법원 등 개혁은 민주당의 오랜 관념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강성 지지층의 욕구는 몰아치기와 일부 의원들의 과도한 언행으로 이어진다. 민주당 소속이 아닌 최 의원도 대법원·국민의힘 공격 최전선에 서자,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송금받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반대로 예의 무기력함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김 실장 관련 의혹 제기 ▲정희철 단월면장 사망 등 김건희 특검의 과잉 수사 의혹 제기 ▲10·15 부동산 대책 비판 등 문제 제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별다른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힘 특유의 무기력함이 국민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선 별다른 의욕도 느껴지지 않고, 국민이 관심가질 만한 내용도 발언으로 채우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김상욱 의원이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진짜 친윤)’ 그룹의 존재를 주장한 이후 많은 사람에게 인식된 국민의힘 특유의 봉건제로부터 비롯된다. 토착 세력 주도 형태 김 의원이 주장하는 ‘언더 찐윤’은 대구·경북·강원 등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두고, 지역구 관리에만 몰두하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은 지역구의 왕이자 소리 없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핵심 그룹이다. 이들은 “당권을 지켜 공천만 계속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기반을 완전히 움켜쥐고, 중앙 정치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토착 세력이 주도하는 정치 형태는 봉건제 정치 형태와 비슷하다. 국민의힘 내부의 봉건제는 전제 왕조 시절의 봉건제보다 후퇴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언더 찐윤 의원들이 지역구를 스스로 개척해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중국 주나라에선 왕이 제후들에게 국가의 힘이 미치지 않는 이민족 중심 미개척지를 봉토로 하사했다. 이는 “미개척지를 개척·장악하면, 봉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취지였다. 주나라는 봉건제를 토대로 중앙의 왕이 각지의 제후들을 통제하는 통치 형태를 완성했다. 초기엔 주로 종친들을 제후로 책봉했기 때문에 가부장적 질서가 유지됐지만, 세월이 흘러 혈연 의식과 왕실의 힘이 약해지자 춘추전국시대란 난세가 열렸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중앙 정치에선 적당히 치적으로써 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사진’만 얻으면 된다. 이런 성향이 핵심 지지 기반에 퍼져 굳어지자, 국민의힘에선 이준석 전 대표와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추진했던 체질 개선이 번번이 무력화됐다. 그럴수록 당은 무기력해지고, 존재감을 잃는다. 반면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자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의원들도 이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면서 옳고 그름을 떠나 당론을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이는 중앙집권형 정치 형태가 만들어졌다. 이는 국민의힘 같은 무기력한 야당을 만나면 상대적인 장점으로 보일 소지가 강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한번 어긋나면 결정적인 파국으로 연결될 위험이 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였던 지난 2021년 12월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와 갈등하던 중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들을 ‘봉건 영주’라고 지칭했다. 당시 이 대표는 “윤 후보가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싶어하는 봉건 영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선을 치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 정치는 ‘사진’만 얻으면 그만? 귀족이 왕권 능가했던 백제의 끝은? 이들이 바로 훗날 김 의원이 규정한 ‘언더 찐윤’이라고 볼 수 있다. 핵심 지역 기반에서 자리 잡은 국민의힘 의원들은 중앙당으로부터 지역구를 ‘분봉’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분봉받은 지역구의 공작 작위를 받아 공국을 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봉건제 국가에서 외침이 발생하면 제후들이 각자 군을 이끌고 와서 연합군을 구성한 후 전쟁에 나선다. 따라서 왕이 제후와 사이가 안 좋으면, 제후가 방어에 협조하지 않아 국가에 큰 위기가 닥친다. 백제 개로왕은 왕권 강화를 시도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기존 귀족을 배제하고, 잦은 토목공사를 강행했다. 그러던 중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침략해 큰 위기를 맞았다. 고구려는 공격 7일 만에 수도 한성을 함락했고, 개로왕은 고구려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귀족은 아무도 개로왕을 돕지 않았고, 당시 동맹이었던 신라만 구원군을 보내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백제에선 문주왕·삼근왕·동성왕 등이 연이어 귀족에게 피살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은 즉위 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추방하고, 아들 40명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좌평에 임명해 중앙 정계에 진출시켰다.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엔 귀족이 구원군을 제대로 보내지 않았던 영향이 있다는 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실제로 영화 <황산벌>에선 이 설을 그대로 반영해 귀족이 의자왕에게 “당신이 아들 40명을 좌평에 임명했을 때, 우리의 조국은 진작 망했다”고 비웃는 장면이 묘사됐다.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도 미개척지가 많은 영토 특성 때문에 세습령병제가 시행됐다. 이는 신하가 병사를 대대로 소유하면서 마음대로 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 때문에 오나라는 위나라·촉한의 침략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 한 영토 확장은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신하들의 이권도 함께 걸려 있던 남방 개척은 성공적이었던 것과 비교된다. 백제와 오나라의 상황은 핵심 지지 기반을 지역구로 둔 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엔 능숙하지만, 중앙 정치에선 기행을 거듭하는 등 불성실한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초유의 기행을 거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옹립된 대선후보였다. 체계적인 계획 없이 그때그때 이익에 따라 큰 선거를 치르는 국민의힘의 특성과 맞물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사는 봉건제를 중앙집권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선 많은 변혁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체질 개선을 거부했다. 계획 없이 그때그때 장동혁 대표도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됐다. 장 대표 취임 이후 국민의힘에선 혁신 담론이 아예 실종됐다. 장외투쟁에 대해선 보수 성향 신문도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웬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이는 국민의힘 내부에 스며든 봉건제로부터 비롯된 일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을 보면 봉건제가 보인다. 뒤집어 말하면, 봉건제를 알아야 국민의힘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정말 봉건 영주의 연합정당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