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카타르월드컵 깜짝 스타 조규성

보잘 것 없었던 ‘멸치’ 월드컵 그라운드 누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벤투 감독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다. 월드컵 무대를 밟은 조규성은 K리그 득점왕의 진가를 어김없이 증명했다. 우루과이전 교체 출전해 예열을 마친 그는 가나전에 선발 출전해 멀티골을 기록했다.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아직 월드컵이 끝나지도 않았지만, 조규성을 향한 국내외 관심이 뜨겁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그가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규성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카타르 알 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과 가나의 월드컵 조별 예선 H조 2차전 후반전에 2골을 몰아넣었다. 전반전 가나에 2골을 내주고 끌려가던 상황에서 순식간에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은 귀중한 득점이었다. 이는 조규성의 18번째 A 매치에서 나온 5~6호 골인 동시에 월드컵에서 터트린 데뷔골이다.

왜소한 체격
급격한 성장

조규성은 후반 13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이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불과 2분 27초 뒤에는 김진수의 크로스를 또다시 다이빙 헤딩슛으로 꽂아 넣었다. 조규성은 이날 두 골로 역대 월드컵 최단 시간 연속골 4위라는 이색 기록을 거머쥐었다.

또 조규성은 한국 선수 최초로 월드컵 한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한 주인공으로 남게 됐다. 아시아 전체로 놓고 봐도 페널티킥 득점 없이 한 경기 멀티 골을 기록한 선수는 조규성이 처음이다.

조규성을 필두로 선수들이 분전했지만, 결국 후반 23분 가나 선수 모하메드 쿠두스에게 추가 골을 허용하면서 한국은 최종 2:3으로 석패했다. 국민들은 아쉬움을 삼키면서도 조규성의 활약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아울러 조규성의 잘생긴 외모에 국내외 관심이 폭발했다. 조규성이 우루과이전에 교체한 직후부터 온라인상에는 ‘한국 9번’의 이름과 SNS 계정을 찾는 이가 속출했다. 조규성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선 영어·아랍어·스페인어 등 언어를 가리지 않고 “잘 생겼는데 축구도 잘한다” “멋있다” 등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대회 직전 3만명 정도였던 팔로워는 어느덧 160만명에 육박한다.

이번 대회로 물이 오른 조규성의 기량은 해외에서도 널리 인정받는 사실이다. 조규성은 가나전 선전을 통해 축구 통계 매체들이 주관한 ‘2022 FIFA 카타르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베스트 11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명 축구 통계 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명단에서 조규성은 평점 8.7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1골1도움을 기록한 레반도프스키와 함께 2라운드 최고 공격수로 선정됐다. 폴란드 국가대표로 출전한 레반도프스키는 발롱도르 수상자인 카림 벤제마와 함께 현시점 최고의 완성형 공격수로 평가받는 ‘월드클래스’ 선수다.

명단에는 레반도프스키 외에도 앙투안 그리즈만, 브루노 페르난데스, 킬리안 음바페, 테오 에르난데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후스코어드닷컴>뿐 아니라 또 다른 통계 매체 <소파 스코어> 역시 베스트11에 조규성을 선정했다. 

이렇듯 조규성은 이제 세계대회에서도 통하는 기량을 가진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높은 기대를 받아온 선수는 아니었다. 그의 축구 인생을 돌아보면, 탄탄대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규성은 1998년 1월 경기도 안산에서 태어났다. 조기 축구를 하던 일반인 아버지와 실업 배구선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조규성은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원곡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축구부에 들어가 실력을 다졌다. 


하지만 조규성은 중학교 축구부에 들어가고도 경기를 뛰는 날보다 벤치에 앉아 있는 날이 더 많았다. 비교적 작은 덩치가 발목을 잡았다. 빠른 1998년생인 조규성은 동급생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뎠다. 

가나전 헤더 멀티골 폭발…한국 축구 새 역사
공 잘 차는 만찢남 신드롬 ‘제2의 안정환’

경기에 잘 나오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고등학교 진학도 어려워졌다. 다행스럽게도 안양공업고등학교의 이순우 감독이 조규성의 잠재력을 높게 보고 그를 데려갔다. 

이는 조규성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로 꼽힌다. 조규성이 안양공고에 입학한 직후 지역 프로팀인 FC 안양이 창단했다. 이듬해에는 안양공고가 FC 안양의 U-18 팀으로 선정됐다. 이에 조규성은 2학년부터 자연스레 K리그 주니어에 참가하는 프로 유스 선수가 됐다.

한국 유소년 축구계에서 프로 산하 팀에 들어가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각종 지원이 뒷받침되고, 프로 지명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고등학교 축구부에 들어가는 것에 비하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고교생 조규성은 큰 행운을 누린 셈이다. 

그럼에도 조규성은 고교 시절 축구를 그만두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여전히 작았던 체구가 또 걸림돌이 됐다. 조규성은 지난 1월 국가대표 전지훈련장에서 당시 상황을 직접 회상했다. 

그는 “중학생 때 키가 1m60㎝대였다. 안양공고 2학년 때 ‘축구로 대학 진학이 힘들겠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받았다”며 “어머니에게 ‘겨울까지만 마지막으로 해보고 안 되면 공무원 준비할게요’라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절실했던 조규성은 훈련에 매진했다. 당시 그는 새벽 5시부터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키가 갑자기 1m80㎝대까지 자랐다. 지금 조규성의 키는 1m89㎝에 달한다. 졸업반이 된 조규성은 키도 기량도 모두 급격하게 성장했다. 

조규성은 팀 성적의 수직 상승을 견인했다. 안산공고는 전년도 K리그 주니어 A 권역에서 17위를 기록했지만, 이듬해 조규성의 활약에 힘입어 4위까지 도약했다. 조규성은 여러 승부처에서 큰 신장을 활용한 헤더 골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자신의 잠재력을 여실히 보여준 조규성은 FC 안양의 우선 지명을 받아 광주대학교에 진학했다. 1학년 때는 중앙 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바꾸며 출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감독이 교체되면서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화위복이 됐다. 새로 부임한 이승원 감독은 조규성의 공격적 재능에 주목했다. 결국 조규성은 이 감독의 지도에 따라 공격수로 변신했다. 공격 부문의 재능이 만개했고, 과거 후방에서 뛴 경험이 큰 자산으로 남았다. 

수려한 외모
스타성 장착


공격수 조규성은 기본적인 득점력을 갖춘 동시에, 안정적인 전개와 번뜩이는 위치 선정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왕성한 활동량과 큰 키를 활용한 제공권 장악도 강점이다. 이를 기반으로 조규성은 대학 무대에서 인정받는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3학년 때는 팀의 2018 U리그 8권역 우승에 기여했다.

조규성은 2019년 1월4일 FC 안양을 통해 프로 무대에 입문했다. 그는 안양공고 출신 중 최초로 FC 안양 1군에 우선 지명으로 입단한 선수가 됐다. 데뷔 시즌 33경기 14골 4도움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프로 무대 정착을 알렸다. 득점 3위를 기록하면서 당해 K리그2 베스트11에도 이름을 올렸다. 

다음 시즌에는 K리그1의 강호 전북 현대로 이적하면서 전 소속팀인 안양에 8억8000만원이라는 구단 사상 최고 이적료를 안겨줬다. 이적 후에는 시즌 34경기 8골 3도움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 김천 상무FC 소속으로 뛰었다. 시즌 중 27경기 8골 3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2 베스트11 공격수 부문 후보에 선정됐다. 조규성은 입대 이후 오히려 기량이 한층 상승했다. 본래 강점이었던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연계에 높은 골 결정력과 피지컬까지 탑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성장은 결국 지난해 9월, 생애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규성은 올해 커리어하이 시즌을 기록했다. 시즌 도중 친정팀 전북으로 복귀(전역)한 조규성은 두 팀을 오가며 리그를 폭격했다. 그는 이번 시즌 35경기 21골 5어시스트, 리그 17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단골 우승팀인 전북에서도 13년 만에 나온 득점왕이었다.


국가대표팀 안에서의 입지도 점차 올라갔다. 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9월 레바논과의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조규성을 처음 출전시킨 이후로 꾸준히 발탁했다.

이때는 기량이 완전히 올라오기 전인 상무 시절이었다. 조규성이 매번 발탁되자 의문부호가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벤투 감독은 조규성의 선발 이유로 제공권과 기술적인 움직임을 꼽았다. 벤투 감독은 조규성이 다양한 전술에 녹아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평소에는 국가대표 주전 골잡이 황의조와 유사한 유형으로 뛰지만, 때로는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규성은 데뷔 초 황의조처럼 공간으로 빠져 나가는 공격 패턴을 주로 구사했다. 하지만 점차 최전방에서 버텨주고 공을 지켜내는 등 연계 관여도를 높이는 역할을 맡게 됐다. 탄탄한 피지컬과 안정적인 연계 능력이 뒷받침되면서 장점이 극대화됐다.

조규성의 이 같은 움직임은 국가대표팀의 전술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조규성이 넓혀둔 공간을 손흥민·황인범 등이 마음껏 활용하면서 다양한 공격 패턴을 구현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와 관련해 조규성은 “K리그1 강팀 전북, K리그2 강팀 김천에서 뛰다 보니 공간이 안 생겨서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 벤투 감독님도 ‘앞에서 많이 싸워주고 버텨줘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밝혔다.

준비된
스트라이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조규성의 좋은 경기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벤투 감독은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조규성에게 몇 가지 더 전수해주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조규성은 이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지난해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치러진 이라크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6차전에서 첫 풀타임 경기를 완벽하게 마쳤다. 강점인 왕성한 활동량과 공중볼 경합 능력이 돋보였고, PK까지 얻어내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로도 조규성은 최종 예선 7차전과 각종 평가전에 출장하며 최종 명단 승선이 일찌감치 예견됐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조규성은 주전보다는 ‘백업 자원’으로 분류됐다. 국가대표팀에서 수년간 최전방 공격수 주전 자리를 꿰찬 황의조의 벽은 높았다.

조규성은 잇달아 선발되면서도 차선책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대회 직전까지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황의조와 충분히 주전 경쟁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규성은 이를 결과로 증명해냈다.

조규성은 가나전 직후 “나도 솔직히 별거 없는 선수인데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무대에서 골도 넣었다”며 “끝까지 자신을 믿고 열심히 꿈을 위해 쫓아가면 이런 무대에서도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어린 선수들도 꿈을 갖고 열심히 하면 된다. 지금은 이런 세계적 무대에서 골을 넣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런 마음뿐”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대회가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조규성을 향한 관심은 이미 뜨겁다. 특히 유럽 축구계 일각에서는 조규성 영입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유럽리그들은 스트라이커 기근 현상에 허덕이고 있다.

양발을 모두 활용하고 유럽 리그에서도 제공권을 발휘할만한 신장을 가진 조규성은 실제로도 매력적인 매물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군다나 한국 선수들의 커리어를 위협하는 병역 문제가 이미 해결된 점 역시 유럽 진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벤투호 골잡이’에 쏟아지는 관심
완성형 공격수 유럽 기회 잡을까?

이와 관련해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우루과이와 첫 경기가 끝나고 유럽의 아주 괜찮은 구단 테크니컬 디렉터(기술이사)가 스카우트와 관련해 연락이 왔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연락이 온 구단이 어디인지는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기술이사가 저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함께 뛰었던 친구”라고 귀띔했다. 이에 여론은 연락의 출처가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 구단일 가능성을 높게 치고 있다.

독일 언론 <푸스발 뉴스>에 따르면 이영표와 도르트문트에서 뛰었고 현재 구단의 테크니컬 디렉터를 맡고 있는 사람은 독일 도르트문트의 기술이사 제바스티안 켈, 그리고 헝가리 페렌츠바로시의 기술이사 허이날 터마시 등 2명이다.

이 부회장은 “이게 두 골 넣기 전에 왔던 연락이었는데, 이제 두 골을 넣었으니까 유럽 팀들에서 훨씬 더 조규성 선수에 관해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튀르키예 언론사 <탁빔>에서는 ‘터키 페네르바흐체 SK와 프랑스 스타드 렌 FC가 조규성 영입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탁빔>은 과거 김민재의 페네르바흐체 시절 바이아웃 조항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한 언론사로, 공신력이 비교적 높다는 평이다.

페네르바흐체와 조규성의 현 소속팀 전북 간에 선수 거래가 활발했던 점도 눈에 띈다. 올해 들어 전북 유스 소속의 조진호(3월), 이건혁(11월)이 잇달아 페네르바흐체로 이적했다. 도중에 다른 팀을 거치긴 했지만, 김민재 역시 전북에서 2년간 뛴 경험이 있다.

다만 원 소속팀 전북과 김상식 감독이 조규성의 이적을 쉽사리 허용할지가 의문이다. 전북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리그 5연패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우승컵을 놓쳤다. 이에 절치부심해 다음 시즌 우승컵 탈환을 노리고 있다. 이 가운데 득점왕 조규성의 이적을 허용한다면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규성에게도 아직 증명할 요소가 조금 남아있다. 조규성은 괄목할만한 침투와 공간 능력을 가지고도 페널티 박스 안 쉬운 찬스를 더러 놓친다는 단점을 여러 번 지적받았다.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세밀한 플레이 보강에 관한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또 페널티킥을 잘 차기는 하지만, 득점 중 페널티킥 골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도 있다. 조규성은 이번 시즌 리그와 컵대회에서 기록한 18골 중 7개를 페널티킥으로 넣었다. 조규성이 해외리그로 이적하고도 페널티킥 키커로 발탁될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페널티킥을 차지 않는다면, 지표처럼 득점력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빅리그
초읽기?

조규성은 10여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왔다. 막다른 길이라 여겼던 난관에서 늘 기대 이상의 도약을 보여줬다. 이제 또 다른 증명의 장 앞에 섰다. 국민들은 조규성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 크게 도약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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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