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목사’ 기부금 횡령 의혹

성착취에 대기업 돈 빼돌렸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해 부모가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인물이 있었다. 2020년 4월28일 KBS1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했던 안모 목사다. 그는 두 아이를 입양해 법적보호자가 됐고 자신이 운영하는 아동보호센터 소속 아이들에게 선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여성들을 향한 성폭력과 폭언은 기본이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까지 갈취한 정황도 있다. <일요시사>는 안 목사가 아이들에게 자행한 행태에 대해 알아봤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른바 ‘보호 종료 아동’으로 불린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사회로 냉정하게 던져진다. ‘키다리 아저씨’로 유명한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센터)’ 대표 안모 목사는 홀로서기에 내몰린 아이 여럿에게 선행을 베푸는 척 지옥을 선물했다. 부모가 없는 청년들에게 지원되는 국가지원금을 갈취하고 폭행한 데 이어 성폭력까지 저질렀다. 아이들에게 그는 이른바 ‘사탄’이었던 것이다.

“악마이자
금수였다”

센터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다. 만 24세 이후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좋은 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기업들이 안 목사의 행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센터에 수억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해왔다.

안 목사는 백석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해 2018년까지 성령과 율법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직접 기독교 관련 책까지 썼고 자신이 만든 성경학습을 끝낸 아이에게는 센터 ‘리더’라며 임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KBS1에서 방영된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 편에서 안 목사는 2016년 보육원에서 나와 갈 곳 없는 A씨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안 목사는 A씨에 대해 “한 달에 한 번 월차 때 같이 노니까 좋더라”며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인원이 부족했다. 마침 지인이 축구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말하며 데려온 게 A씨였다. 할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축구부에 있었다고 하더라. 잘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게 인연이 돼서 축구를 하면서 몇 개월 알고 지내다가 A씨의 아픈 과거와 부족했던 면을 듣게 됐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파 그렇게 지내 오다가 A씨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돼주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A씨는 안 목사에 대해 “자주 만나게 되고 ‘내 딸 할래?’라고 물어봐 줬는데, 남자 어른을 대하는 게 처음이었다. 시설 안에는 수녀님과 선생님이 여자다. 그래서 어려웠다”면서도 “자주 만나면서 많은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내 고민을 털어놓으며 많은 말을 듣게 되고 가까워지면서 ‘이분이면 내 인생이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A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 목사를 믿고 있었다. 갈 데 없는 이들에게 희망인 줄 알았던 센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옥으로 변했다.

타락 아닌 거룩함이라고?
거부했는데 생일날 강간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영상에서 안 목사는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성추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목사는 “XX 가슴은 내 가슴과 같아” “XX랑 XX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이어갔다.

센터 피해자 B씨는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안 목사의 생일이 7월16일인데 그날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안 목사가 벗어야지! 벗어야지! 라고 말할 때 저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이 같은 성폭력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고 한다. 안 목사의 비상식적 행태에 치를 떨던 일부 아이는 센터를 피했다. 안 목사는 센터를 피하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 쇠몽둥이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아이는 몸에 안 목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B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넌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넌 내 말 안 들으면 뇌혈관 세포가 터질 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안 목사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은 본인 영어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거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 안 목사는 설교 예배 중 신도들에게 “내 말에 집중 안 하면 뇌혈관 세포를 터트려 버린다고 했다. 기절해봤어, 안 해봤어?”라고 겁을 줬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딸,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니까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희망 아닌
지옥이었다

C씨는 “딸의 가슴을 만지는 아빠는 없지 않나”라면서 “진짜 가족이 없어서 원래 가족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근친상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한 건 센터를 홍보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목사가 성범죄와 관련된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씨는 “센터가 아닌 외부에서 움직일 때는 CCTV가 없는 곳에서 성폭력을 당한 이들도 있다”며 “하지 말라고 거부해 쫓겨나는 순간 갈 곳이 없이질까 불안해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목사는 언론을 통해 “아이들에게 폭행은 있었지만 훈육 차원이었고, 성추행과 성폭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와서 ‘대표님, 대표님’이랬다. 얘네가 막 만지고 이러니까 친해지고 싶은 그런 것들에서…”라며 자신은 친밀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목사의 만행은 성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인의 사진을 피해자를 포함한 센터 아이들에게 경매로 부쳐 사게 하기도 했다.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센터에 다니던 D씨의 통장에 국내 한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특별 장학금 500만원이 3분 만에 센터 상임이사 계좌로 송금됐다. 한 달 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비 명목 후원금 1000만원이 들어왔는데 이중 700만원도 센터 상임이사에게 보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 목사가 기부금 일부를 고가 차량과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쓴 정황도 포착됐다. 법조계에서는 안 목사에게 횡령과 갈취·사기죄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기부한 목적 이외에 금전을 유용했다면 횡령죄가 적용된다”며 “개인 후원자와 기업을 기만한 것이기에 사기죄 적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센터 간부·아이들 사실상 세뇌
자신의 이름 몸에 문신도 새겨

1년에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이 누적됐다면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 변호사는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등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횡령 금액이 커진다면 처벌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윤미향 의원의 후원금 횡령 사건이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지석)은 2020년 9월14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 회계 부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윤 의원을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혐의는 총 6가지로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신청, 등록하는 방법으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보조금 약 3억원을 부정하게 수령했다.

또 정대협 상임이사이자 정의연 이사와 함께 관할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단체 계좌로 총 41억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했다. 이 외에도 해외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과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으로도 총 1억7000만원의 기부금품을 윤 의원 개인계좌로 받았다.

특히 윤 의원이 단체 기부금 중 개인 용도로 쓴 돈은 1억여원에 달한다. 윤 의원은 2012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개인 계좌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해외여행, 나비기금, 조의금 등 명목으로 모집한 약 3억3000만원 중 5755만원을 개인적으로 썼다.

기업 기부금
사적 사용?


검찰은 윤 의원이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 점을 악용, 길 할머니가 받은 상금 가운데 792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만든 점도 ‘준사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단체나 개인이 후원금을 받는 단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안 목사의 횡령 의혹에도 비슷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의 분위기와 좋은 곳이라는 풍문을 들을 순 있어도 외부에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범죄수사대 소속 한 경찰은 “단체가 후원금을 받은 곳에 대해 돈의 사용처에 대한 감사를 정부기관에 요청할 수는 있다”면서도 “후원금을 받은 곳이 여러 통장을 만들어 받은 후원금을 나눠 관리하고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을 설립해 우회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까지는 일반인 또는 단체가 범죄에 대해 자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센터에 약 1억원의 돈을 후원한 단체는 센터의 후원금 관리에 대해 전문가들과 분석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왔다고 한다.

해당 단체의 관계자는 “돈이 제대로 입금이 됐는지와 수천만원의 돈을 어떤 용도로 썼는지는 사정기관이 아니기에 알 길이 없다”며 “돈이 아이들에게 입금된 후 안 목사의 손에 들어가 사적 용도로 쓰였다는 건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센터의 한 피해자는 안 목사에 대한 고소장을 지난 10일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에 접수했다. 경기북부청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고 2차 고소인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최종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피고소인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갈취 정황도
기부 목적 외 사용?

고소장에는 안 목사가 입소자들을 상대로 술자리 등에서 신체 접촉을 하며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경찰은 아직 안 목사의 횡령 의혹과 사기죄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아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센터 피해자는 1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줄인 채 외부에도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센터에서의 생활이 지옥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일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에는 “지금은 내가 쓰레기다. 이제는 기대해라. 다 죽여주마, 하하하 맞아주니 좋았냐? 나의 시간이다”고 적혀 있었다. 센터 피해자들 입장에서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은 협박이나 위협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안 목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센터 간부는 피해자의 지인을 통해 “고소하지 마라” “얼마면 되냐”는 등의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센터 간부 대부분은 그동안 안 목사의 성폭력과 비상식적 행위를 지켜보기만 했다. 피해자가 아닌 안 목사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회유하기만 한 것이다.

사실과 다른 왜곡된 발언들이 퍼지면서 2차 가해도 이뤄지고 있다. 일부 센터 직원들은 지금까지 보도된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안 목사와 피해자들과의 관계가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을 주변에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센터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근에 ‘사실이 아니고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라며 이제 와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연락이 왔었다”며 “소름이 돋았던 것은 통화에서도 일부 센터 직원들이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센터 간부들이 안 목사에게 이른바 ‘그루밍(grooming)’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거나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에 의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기에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

최근 일부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들이 신도들을 대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재록 만민성결교회 목사나 정명석 JMS 교주 등의 사례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루밍 성폭력은 종교단체 외에도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성인과 미성년자 등 주로 서열이 확실하며 예속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주로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성직자나 교사, 상사들과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가 이뤄지면 그들에 의한 성적 접근을 거부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고소 마라”
회유와 협박

그루밍 성폭력의 문제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성적 도구로 착취한다. 믿고 따르는 성직자나 교사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센터 피해자들은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한 이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B씨는 “안 목사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나서지 않으려 하고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씨도 “여러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 센터 간부들 중 안 목사의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