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목사’ 기부금 횡령 의혹

성착취에 대기업 돈 빼돌렸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해 부모가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인물이 있었다. 2020년 4월28일 KBS1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했던 안모 목사다. 그는 두 아이를 입양해 법적보호자가 됐고 자신이 운영하는 아동보호센터 소속 아이들에게 선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여성들을 향한 성폭력과 폭언은 기본이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까지 갈취한 정황도 있다. <일요시사>는 안 목사가 아이들에게 자행한 행태에 대해 알아봤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른바 ‘보호 종료 아동’으로 불린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사회로 냉정하게 던져진다. ‘키다리 아저씨’로 유명한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센터)’ 대표 안모 목사는 홀로서기에 내몰린 아이 여럿에게 선행을 베푸는 척 지옥을 선물했다. 부모가 없는 청년들에게 지원되는 국가지원금을 갈취하고 폭행한 데 이어 성폭력까지 저질렀다. 아이들에게 그는 이른바 ‘사탄’이었던 것이다.

“악마이자
금수였다”

센터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다. 만 24세 이후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좋은 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기업들이 안 목사의 행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센터에 수억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해왔다.

안 목사는 백석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해 2018년까지 성령과 율법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직접 기독교 관련 책까지 썼고 자신이 만든 성경학습을 끝낸 아이에게는 센터 ‘리더’라며 임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KBS1에서 방영된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 편에서 안 목사는 2016년 보육원에서 나와 갈 곳 없는 A씨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안 목사는 A씨에 대해 “한 달에 한 번 월차 때 같이 노니까 좋더라”며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인원이 부족했다. 마침 지인이 축구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말하며 데려온 게 A씨였다. 할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축구부에 있었다고 하더라. 잘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게 인연이 돼서 축구를 하면서 몇 개월 알고 지내다가 A씨의 아픈 과거와 부족했던 면을 듣게 됐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파 그렇게 지내 오다가 A씨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돼주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A씨는 안 목사에 대해 “자주 만나게 되고 ‘내 딸 할래?’라고 물어봐 줬는데, 남자 어른을 대하는 게 처음이었다. 시설 안에는 수녀님과 선생님이 여자다. 그래서 어려웠다”면서도 “자주 만나면서 많은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내 고민을 털어놓으며 많은 말을 듣게 되고 가까워지면서 ‘이분이면 내 인생이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A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 목사를 믿고 있었다. 갈 데 없는 이들에게 희망인 줄 알았던 센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옥으로 변했다.

타락 아닌 거룩함이라고?
거부했는데 생일날 강간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영상에서 안 목사는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성추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목사는 “XX 가슴은 내 가슴과 같아” “XX랑 XX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이어갔다.

센터 피해자 B씨는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안 목사의 생일이 7월16일인데 그날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안 목사가 벗어야지! 벗어야지! 라고 말할 때 저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이 같은 성폭력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고 한다. 안 목사의 비상식적 행태에 치를 떨던 일부 아이는 센터를 피했다. 안 목사는 센터를 피하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 쇠몽둥이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아이는 몸에 안 목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B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넌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넌 내 말 안 들으면 뇌혈관 세포가 터질 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안 목사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은 본인 영어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거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 안 목사는 설교 예배 중 신도들에게 “내 말에 집중 안 하면 뇌혈관 세포를 터트려 버린다고 했다. 기절해봤어, 안 해봤어?”라고 겁을 줬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딸,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니까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희망 아닌
지옥이었다

C씨는 “딸의 가슴을 만지는 아빠는 없지 않나”라면서 “진짜 가족이 없어서 원래 가족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근친상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한 건 센터를 홍보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목사가 성범죄와 관련된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씨는 “센터가 아닌 외부에서 움직일 때는 CCTV가 없는 곳에서 성폭력을 당한 이들도 있다”며 “하지 말라고 거부해 쫓겨나는 순간 갈 곳이 없이질까 불안해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목사는 언론을 통해 “아이들에게 폭행은 있었지만 훈육 차원이었고, 성추행과 성폭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와서 ‘대표님, 대표님’이랬다. 얘네가 막 만지고 이러니까 친해지고 싶은 그런 것들에서…”라며 자신은 친밀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목사의 만행은 성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인의 사진을 피해자를 포함한 센터 아이들에게 경매로 부쳐 사게 하기도 했다.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센터에 다니던 D씨의 통장에 국내 한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특별 장학금 500만원이 3분 만에 센터 상임이사 계좌로 송금됐다. 한 달 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비 명목 후원금 1000만원이 들어왔는데 이중 700만원도 센터 상임이사에게 보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 목사가 기부금 일부를 고가 차량과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쓴 정황도 포착됐다. 법조계에서는 안 목사에게 횡령과 갈취·사기죄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기부한 목적 이외에 금전을 유용했다면 횡령죄가 적용된다”며 “개인 후원자와 기업을 기만한 것이기에 사기죄 적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센터 간부·아이들 사실상 세뇌
자신의 이름 몸에 문신도 새겨

1년에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이 누적됐다면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 변호사는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등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횡령 금액이 커진다면 처벌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윤미향 의원의 후원금 횡령 사건이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지석)은 2020년 9월14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 회계 부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윤 의원을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혐의는 총 6가지로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신청, 등록하는 방법으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보조금 약 3억원을 부정하게 수령했다.

또 정대협 상임이사이자 정의연 이사와 함께 관할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단체 계좌로 총 41억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했다. 이 외에도 해외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과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으로도 총 1억7000만원의 기부금품을 윤 의원 개인계좌로 받았다.

특히 윤 의원이 단체 기부금 중 개인 용도로 쓴 돈은 1억여원에 달한다. 윤 의원은 2012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개인 계좌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해외여행, 나비기금, 조의금 등 명목으로 모집한 약 3억3000만원 중 5755만원을 개인적으로 썼다.

기업 기부금
사적 사용?


검찰은 윤 의원이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 점을 악용, 길 할머니가 받은 상금 가운데 792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만든 점도 ‘준사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단체나 개인이 후원금을 받는 단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안 목사의 횡령 의혹에도 비슷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의 분위기와 좋은 곳이라는 풍문을 들을 순 있어도 외부에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범죄수사대 소속 한 경찰은 “단체가 후원금을 받은 곳에 대해 돈의 사용처에 대한 감사를 정부기관에 요청할 수는 있다”면서도 “후원금을 받은 곳이 여러 통장을 만들어 받은 후원금을 나눠 관리하고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을 설립해 우회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까지는 일반인 또는 단체가 범죄에 대해 자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센터에 약 1억원의 돈을 후원한 단체는 센터의 후원금 관리에 대해 전문가들과 분석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왔다고 한다.

해당 단체의 관계자는 “돈이 제대로 입금이 됐는지와 수천만원의 돈을 어떤 용도로 썼는지는 사정기관이 아니기에 알 길이 없다”며 “돈이 아이들에게 입금된 후 안 목사의 손에 들어가 사적 용도로 쓰였다는 건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센터의 한 피해자는 안 목사에 대한 고소장을 지난 10일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에 접수했다. 경기북부청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고 2차 고소인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최종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피고소인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갈취 정황도
기부 목적 외 사용?

고소장에는 안 목사가 입소자들을 상대로 술자리 등에서 신체 접촉을 하며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경찰은 아직 안 목사의 횡령 의혹과 사기죄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아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센터 피해자는 1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줄인 채 외부에도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센터에서의 생활이 지옥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일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에는 “지금은 내가 쓰레기다. 이제는 기대해라. 다 죽여주마, 하하하 맞아주니 좋았냐? 나의 시간이다”고 적혀 있었다. 센터 피해자들 입장에서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은 협박이나 위협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안 목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센터 간부는 피해자의 지인을 통해 “고소하지 마라” “얼마면 되냐”는 등의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센터 간부 대부분은 그동안 안 목사의 성폭력과 비상식적 행위를 지켜보기만 했다. 피해자가 아닌 안 목사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회유하기만 한 것이다.

사실과 다른 왜곡된 발언들이 퍼지면서 2차 가해도 이뤄지고 있다. 일부 센터 직원들은 지금까지 보도된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안 목사와 피해자들과의 관계가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을 주변에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센터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근에 ‘사실이 아니고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라며 이제 와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연락이 왔었다”며 “소름이 돋았던 것은 통화에서도 일부 센터 직원들이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센터 간부들이 안 목사에게 이른바 ‘그루밍(grooming)’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거나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에 의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기에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

최근 일부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들이 신도들을 대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재록 만민성결교회 목사나 정명석 JMS 교주 등의 사례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루밍 성폭력은 종교단체 외에도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성인과 미성년자 등 주로 서열이 확실하며 예속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주로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성직자나 교사, 상사들과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가 이뤄지면 그들에 의한 성적 접근을 거부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고소 마라”
회유와 협박

그루밍 성폭력의 문제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성적 도구로 착취한다. 믿고 따르는 성직자나 교사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센터 피해자들은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한 이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B씨는 “안 목사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나서지 않으려 하고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씨도 “여러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 센터 간부들 중 안 목사의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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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