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묵살된 79건 신고 의혹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07 11:57:23
  • 호수 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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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부터 뒤엉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30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최초 신고 시각은 이날 오후 10시15분이며, 이때가 사고 발생 시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최초 신고는 4시간 전에 있었다. 최초 신고 시각인 오후 6시와 사고 발생 시각인 오후 10시 사이 이태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름과 얼굴을 모르지만 그립습니다. 삶이 이렇게 허무할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가버린 삶을 하루하루 더 소중히 살아가겠습니다.” “언니가 쓴 블로그의 글을 보면 언니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언니가 너무 그리워.” 

끊이지 않는
긴 추모 행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은 메모지의 글귀다. 모르는 사람을 추모하는 글귀도 있고, 지인을 떠나보낸 사람이 그리운 마음을 담아 적은 절절한 글귀도 있다. 이들은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난달 30일 핼러윈 데이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의 골목에서 압사사고로 사망한 156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그날 이후 이태원역 1번 출구의 풍경이 바뀌었다. 상가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5일 국가 애도 기간까지 휴점합니다.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출구에는 국화꽃, 소주, 초코우유, 물병, 사진, 편지 등이 놓여있다. 

종교계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 스님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부상당한 분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사고 원인에 대한 세밀한 조사,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금 10억원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일요시사>에 “대체 생때같은 자식이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내 자식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식이 죽은 것처럼 힘들다”며 “도대체 애들이 왜 죽은 것이냐”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길거리에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였고, 멍하니 서서 스님들의 염불을 듣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 추모 행렬은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최초 신고 시각은 10시15분이고, 이때를 기점으로 압사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곧 최초 신고 시각이 잘못됐다고 발표됐다. 이후 최초 신고 시각을 정하는 발표가 나왔다. 압사사고를 최초 신고한 시각은 오후 6시34분이며, 총 79번의 신고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오후 6시 첫 신고 “압사 위험 있다”
오후 7시부터 길 걸어 다닐 수 없어

압사 관련 신고가 마지막으로 접수된 시각은 오후 10시11분이다. 

최초 신고자는 “지금 골목에 사람이 오르고 내리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 나는 겨우 빠져 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아서 통제해달라”며 “경찰이 와서 통제 후 이태원 골목의 인구를 뺀 다음에 다시 사람들을 들어가게 해야 한다. 지금은 나오지도 못하는데 사람이 쏟아져서 들어가고 있다”고 긴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두 번째 신고에는 “인원이 너무 많고 정체가 된다.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가 났다”고 신고했으며, 오후 8시33분에는 “지금 길바닥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사고가 날 것 같다.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세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이후 신고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압사를 당하고 있다” “지금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 경찰이 와서 통제해야 한다” “길에서 사람이 다 떠밀리고 있다. 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다. 길을 어떻게든 해달라. 진짜 사람이 죽을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다” “지금 심각하다. 안쪽에 사람이 압사당하고 있다” “제발 빨리 와서 인원 통제를 해달라” “(비명소리가 들리며)이태원 뒷길로 빨리 와 달라. 압사될 것 같다” 등의 신고가 줄을 이었다.

즉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접수된 신고에는 공통적으로 ‘압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단순히 사람이 너무 많다거나, 교통정리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뒤엉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이는 잘못 발표된 최초 신고 시각처럼 압사가 시작된 시각 자체도 훨씬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에서 확인된다. 우선 오후 6시에는 이태원역 지하철에 내려서 이태원역 1번 출구까지 올라가는 데만 20분 넘게 걸렸다. 이 시간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버스에 내리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기도 했다.

나무처럼
엉킨 다리

오후 7시에 이태원에 도착한 A씨는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차를 세워놓고 이태원의 핼로윈 분위기를 보러 이태원역 인근으로 걸어갔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이태원역까지 거리는 1㎞ 정도로 가장 빠른 골목으로 걸으면 16분 정도다.

이태원역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싶어도 불법 주정차가 심각해서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가 양방향으로 꽉 막혀 있었다. A씨는 아빠, 엄마, 동생, 오빠와 함께 길을 걸었다. 각 골목 코너에는 핼로윈을 기념해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식당 앞 대기줄, 식당에서 나와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등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못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앞사람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가면 앞으로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점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상황이 달랐다. 오후 7시에도 골목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애당초 들어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특히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입구에는 코스프레한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어 길이 막히고 있었는데, 굳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많았다. 이 와중에 사람한테 밀쳐져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이태원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길을 둘러서 이태원역으로 내려갔다. 

A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고가 난 골목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 거기를 지나갔으면 집에 더 늦게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밝혔다.

오후 8시가 지나가는 시점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B씨는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이태원을 방문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핼러윈의 이태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파 휩쓸려
슬슬 흘러가


이태원 메인 길거리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골목마다 사람이 많은 정도는 달랐다. 우선 ‘세계문화거리’에서 ‘와이키키 골목’으로 향하는 초입은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초입을 지나자 사람이 점점 더 몰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구간도 있었다. 

멈췄다 섰다를 반복했고 인파에 휩쓸려서 흘러간다는 말이 정확할 정도로, 자력으로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길에서 뒤를 돌아보거나, 동행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야 할 방향으로는 절대 갈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동행과 엇갈리게 됐다. 여태까지 B씨의 동행은 B씨가 다치지 않도록 감싸주고 있었는데 헤어지게 된 것이다. B씨는 떠밀리듯 해밀톤 호텔 옆 골목으로 흘러 내려갔다. 

이때부터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내려가려는 사람, 길에서 넘어진 사람, 내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뒤엉켰다. 이 과정에서 키가 작은 B씨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뭇가지가 엉키듯 다리가 엉켰다. B씨는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이미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당시 상황은 몇 명의 사람이 넘어져서, 이미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었다. B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이 밀거나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왔고 이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는 것도 힘을 안 줘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몸만 앞으로 밀려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옆에 있던 남자의 어깨에 목이 눌려서 숨을 쉬기 힘든 상황이 됐다. 흉부 쪽 공간을 확보해도 키가 작으면 다른 사람 어깨에 목이 눌렸다. 


B씨는 바로 옆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넘어져서 못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겹쳐있던 상황은 아니지만,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B씨가 넘어진 여자를 부축해서 겨우 일어났다.

근처 술집 난간에 매달려서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바닥에는 중간중간 장애물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B씨는 중간에 있었던 클럽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클럽에서는 사람이 많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큰 문제 없이 이태원에서 빠져나갔다. 시간은 오후 8시30분이었다.

“넘어지고, 매달리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

B씨는 “내가 있었을 때는 재미로 사람을 미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람이나 지나가려는 사람만 있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핼러윈 파티를 구경하러 이태원에 갔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며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난 게 너무 무섭다. 넘어진 사람들, 매달린 사람들,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람이 조금만 많아져도 숨을 쉬기가 힘들다. 몸은 크게 다친 곳이 없다. 멍들고 어깨가 뻐근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한 정도다. 정말 체구가 작으면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불편한 옷이나 신발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혼잡한 출근길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A씨와 B씨의 증언에서 나오듯 오후 8시부터는 이미 인파에 밀려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분명히 부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오후 9시부터는 더 많은 사람이 이태원역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는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가득 찼다. 일반적으로 길을 걷거나, 끼어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거의 앞사람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형국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내리막길이라 더 위험했다. 이때부터는 간헐적으로 밀리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도망치게 됐고, 다시 밀고 밀리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됐다. 골목길 안에서 사람들은 휩쓸려 다녔고 결국 도로로 나가게 됐다. 

이태원역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니 휴대폰 데이터도 먹통이 됐다. 이때부터는 골목뿐 아니라 이태원 전체 지역에 사람이 밀리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술을 마신 사람들이나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사람들은 사람이 밀리는 현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1시간에서 2시간 전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놀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몸싸움이 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태원 압사사고 신고가 첫 번째로 들어간 오후 6시부터 마지막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까지 있었던 일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오후 10시15분 전부터 이미 사람이 넘어지고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만 많이
빨리 왔어도…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한 112 신고자 변모씨는 이태원 참사가 오후 7시부터 예견됐다고 주장한다. 변씨는 “사고는 이미 오후 8시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산발적인 압사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내가 신고한 것이 오후 9시가 넘은 시점인데, 나는 해밀톤 호텔 컨테이너 창고에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5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찼고, 술을 마신 청년이 모여서 밀기도 했다. 사방에 비명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발에는 옷 같은 것이 계속 밟혔다. 클럽 음악이 너무 크게 틀어져 있어서, 바로 밑에서도 상황을 몰랐다. 나도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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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