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묵살된 79건 신고 의혹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11.07 11:57:23
  • 호수 1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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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부터 뒤엉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지난달 30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최초 신고 시각은 이날 오후 10시15분이며, 이때가 사고 발생 시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최초 신고는 4시간 전에 있었다. 최초 신고 시각인 오후 6시와 사고 발생 시각인 오후 10시 사이 이태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름과 얼굴을 모르지만 그립습니다. 삶이 이렇게 허무할 수 없습니다. 그대들이 가버린 삶을 하루하루 더 소중히 살아가겠습니다.” “언니가 쓴 블로그의 글을 보면 언니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언니가 너무 그리워.” 

끊이지 않는
긴 추모 행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붙은 메모지의 글귀다. 모르는 사람을 추모하는 글귀도 있고, 지인을 떠나보낸 사람이 그리운 마음을 담아 적은 절절한 글귀도 있다. 이들은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난달 30일 핼러윈 데이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의 골목에서 압사사고로 사망한 156명의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그날 이후 이태원역 1번 출구의 풍경이 바뀌었다. 상가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5일 국가 애도 기간까지 휴점합니다.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출구에는 국화꽃, 소주, 초코우유, 물병, 사진, 편지 등이 놓여있다. 

종교계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오후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추모 기도회를 열었다.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지몽 스님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부상당한 분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사고 원인에 대한 세밀한 조사, 각계각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고,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 가족들에게 위로금 10억원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만난 한 시민은 <일요시사>에 “대체 생때같은 자식이 왜 이렇게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내 자식이 죽은 것은 아니지만, 내 자식이 죽은 것처럼 힘들다”며 “도대체 애들이 왜 죽은 것이냐”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길거리에는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보였고, 멍하니 서서 스님들의 염불을 듣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외국인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 추모 행렬은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최초 신고 시각은 10시15분이고, 이때를 기점으로 압사가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곧 최초 신고 시각이 잘못됐다고 발표됐다. 이후 최초 신고 시각을 정하는 발표가 나왔다. 압사사고를 최초 신고한 시각은 오후 6시34분이며, 총 79번의 신고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오후 6시 첫 신고 “압사 위험 있다”
오후 7시부터 길 걸어 다닐 수 없어

압사 관련 신고가 마지막으로 접수된 시각은 오후 10시11분이다. 

최초 신고자는 “지금 골목에 사람이 오르고 내리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다. 나는 겨우 빠져 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아서 통제해달라”며 “경찰이 와서 통제 후 이태원 골목의 인구를 뺀 다음에 다시 사람들을 들어가게 해야 한다. 지금은 나오지도 못하는데 사람이 쏟아져서 들어가고 있다”고 긴급한 상황을 설명했다.


두 번째 신고에는 “인원이 너무 많고 정체가 된다. 사람들이 밀치고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가 났다”고 신고했으며, 오후 8시33분에는 “지금 길바닥에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 사고가 날 것 같다. 길이 완전히 막혔다”고 세 번째 신고가 들어왔다.

이후 신고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압사를 당하고 있다” “지금 인파가 너무 많아서 대형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 경찰이 와서 통제해야 한다” “길에서 사람이 다 떠밀리고 있다. 사람들이 다 난리가 났다. 길을 어떻게든 해달라. 진짜 사람이 죽을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할 위기다” “지금 심각하다. 안쪽에 사람이 압사당하고 있다” “제발 빨리 와서 인원 통제를 해달라” “(비명소리가 들리며)이태원 뒷길로 빨리 와 달라. 압사될 것 같다” 등의 신고가 줄을 이었다.

즉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접수된 신고에는 공통적으로 ‘압사’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단순히 사람이 너무 많다거나, 교통정리가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넘어지고 뒤엉키고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결국 이는 잘못 발표된 최초 신고 시각처럼 압사가 시작된 시각 자체도 훨씬 이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에서 확인된다. 우선 오후 6시에는 이태원역 지하철에 내려서 이태원역 1번 출구까지 올라가는 데만 20분 넘게 걸렸다. 이 시간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버스에 내리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기도 했다.

나무처럼
엉킨 다리

오후 7시에 이태원에 도착한 A씨는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차를 세워놓고 이태원의 핼로윈 분위기를 보러 이태원역 인근으로 걸어갔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이태원역까지 거리는 1㎞ 정도로 가장 빠른 골목으로 걸으면 16분 정도다.

이태원역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싶어도 불법 주정차가 심각해서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차가 양방향으로 꽉 막혀 있었다. A씨는 아빠, 엄마, 동생, 오빠와 함께 길을 걸었다. 각 골목 코너에는 핼로윈을 기념해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식당 앞 대기줄, 식당에서 나와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등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못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앞사람을 따라서 천천히 걸어가면 앞으로 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지점인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상황이 달랐다. 오후 7시에도 골목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애당초 들어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특히 해밀톤 호텔 옆 골목 입구에는 코스프레한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어 길이 막히고 있었는데, 굳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많았다. 이 와중에 사람한테 밀쳐져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이태원이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길을 둘러서 이태원역으로 내려갔다. 

A씨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고가 난 골목을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마 거기를 지나갔으면 집에 더 늦게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고 밝혔다.

오후 8시가 지나가는 시점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B씨는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이태원을 방문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핼러윈의 이태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파 휩쓸려
슬슬 흘러가


이태원 메인 길거리는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골목마다 사람이 많은 정도는 달랐다. 우선 ‘세계문화거리’에서 ‘와이키키 골목’으로 향하는 초입은 걸을 수 있는 정도였다. 초입을 지나자 사람이 점점 더 몰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모여 서 있는 구간도 있었다. 

멈췄다 섰다를 반복했고 인파에 휩쓸려서 흘러간다는 말이 정확할 정도로, 자력으로 걸을 수 없는 순간이 왔다. 길에서 뒤를 돌아보거나, 동행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야 할 방향으로는 절대 갈 수 없었다.

결국 B씨는 동행과 엇갈리게 됐다. 여태까지 B씨의 동행은 B씨가 다치지 않도록 감싸주고 있었는데 헤어지게 된 것이다. B씨는 떠밀리듯 해밀톤 호텔 옆 골목으로 흘러 내려갔다. 

이때부터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내려가려는 사람, 길에서 넘어진 사람, 내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뒤엉켰다. 이 과정에서 키가 작은 B씨는 발이 땅에 닿지 않았고, 주위 사람들과 나뭇가지가 엉키듯 다리가 엉켰다. B씨는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이미 넘어진 사람도 있었다.

당시 상황은 몇 명의 사람이 넘어져서, 이미 사고가 발생한 시점이었다. B씨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순간 사람들이 밀거나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 왔고 이때 다시 일어났다. 넘어지는 것도 힘을 안 줘서 넘어지는 게 아니라, 다리는 그대로 있는데 몸만 앞으로 밀려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옆에 있던 남자의 어깨에 목이 눌려서 숨을 쉬기 힘든 상황이 됐다. 흉부 쪽 공간을 확보해도 키가 작으면 다른 사람 어깨에 목이 눌렸다. 


B씨는 바로 옆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넘어져서 못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겹쳐있던 상황은 아니지만,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B씨가 넘어진 여자를 부축해서 겨우 일어났다.

근처 술집 난간에 매달려서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바닥에는 중간중간 장애물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B씨는 중간에 있었던 클럽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클럽에서는 사람이 많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 큰 문제 없이 이태원에서 빠져나갔다. 시간은 오후 8시30분이었다.

“넘어지고, 매달리고
비명 지르는 사람들”

B씨는 “내가 있었을 때는 재미로 사람을 미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빠져나가려고 하는 사람이나 지나가려는 사람만 있었다.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핼러윈 파티를 구경하러 이태원에 갔는데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며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참사가 일어난 게 너무 무섭다. 넘어진 사람들, 매달린 사람들,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생생하게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람이 조금만 많아져도 숨을 쉬기가 힘들다. 몸은 크게 다친 곳이 없다. 멍들고 어깨가 뻐근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한 정도다. 정말 체구가 작으면 숨쉬기가 너무 힘들다. 불편한 옷이나 신발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혼잡한 출근길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A씨와 B씨의 증언에서 나오듯 오후 8시부터는 이미 인파에 밀려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분명히 부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오후 9시부터는 더 많은 사람이 이태원역 인근으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는 빈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인파가 가득 찼다. 일반적으로 길을 걷거나, 끼어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거의 앞사람을 끌어안고 걸어가는 형국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은 내리막길이라 더 위험했다. 이때부터는 간헐적으로 밀리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도망치게 됐고, 다시 밀고 밀리는 사람들이 마주하게 됐다. 골목길 안에서 사람들은 휩쓸려 다녔고 결국 도로로 나가게 됐다. 

이태원역에서 골목길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인구 밀집도가 높아지니 휴대폰 데이터도 먹통이 됐다. 이때부터는 골목뿐 아니라 이태원 전체 지역에 사람이 밀리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술을 마신 사람들이나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사람들은 사람이 밀리는 현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1시간에서 2시간 전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놀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해밀톤 호텔 옆 골목에 몸싸움이 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이태원 압사사고 신고가 첫 번째로 들어간 오후 6시부터 마지막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까지 있었던 일이다. 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오후 10시15분 전부터 이미 사람이 넘어지고 뒤엉키는 사고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만 많이
빨리 왔어도…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한 112 신고자 변모씨는 이태원 참사가 오후 7시부터 예견됐다고 주장한다. 변씨는 “사고는 이미 오후 8시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산발적인 압사가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내가 신고한 것이 오후 9시가 넘은 시점인데, 나는 해밀톤 호텔 컨테이너 창고에 올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5분 간격으로 사람들이 계속 들어찼고, 술을 마신 청년이 모여서 밀기도 했다. 사방에 비명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발에는 옷 같은 것이 계속 밟혔다. 클럽 음악이 너무 크게 틀어져 있어서, 바로 밑에서도 상황을 몰랐다. 나도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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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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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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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