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임박설’ 멍 때리는 한국 막전막후

방법 없는데 자꾸 있는 척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세계 핵전쟁이 임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엄포를 놓고 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핵전쟁이 시작되면)아마겟돈이 올 것”이라고 응수했다. 세계 핵전쟁이 실제로 발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긴 할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핵전쟁에 대비한 현재 한국 정부의 처세술은 ‘전무’한 상태다.

인류는 ‘인류 종말’에 대한 걱정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문명을 이룩한 이래 천적이 없어진 인류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경고를 날려온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말하는 ‘기후종말론’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걱정하는 ‘AI 종말론,’ 우주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 믿는 ‘소행성 충돌론’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히로시마
2000배

다행히도 이 같은 종말론들은 모두 ‘낭설’로 치부될 만큼 당장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인류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실질적인 위협이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낭설이 하나 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믿는 ‘핵전쟁 종말론’이다.

우크라이나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가 ‘핵전쟁’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벌어진 ‘우-러 전쟁’ 초기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금방 패할 것으로 보였다.

약 70배에 달하는 군비 지출 규모, 100배가량 차이 나는 공군력과 해군력 등 모든 지표는 우크라이나의 ‘조기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는 선전 중이다. 수도 키이우를 사수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저항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이 참전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선전을 예측하지 못했던 나라에는 러시아도 포함된다.

몇 주 내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추가 징집 명령을 내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암울해져만 간다.

그러던 중 푸틴 대통령을 ‘대노’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인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를 폭파시킨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평가했다. 크림대교가 푸틴에게 보급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2014년, 푸틴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했다. 크림반도 사태는 냉전시대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넓어진 사건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는 푸틴의 ‘악행’으로,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의 ‘공적’으로 기록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도 ‘크림반도 강제 점령’을 본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언급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마자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건설을 추진했다. 총 5조원 가량 들어간 이 공사는 푸틴의 ‘유도 상대’라 알려진 최측근 재벌이 맡아 수년 만에 완성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다리 개공식에서 직접 트럭 운전을 해 다리를 건너가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건설을 자축했다.

크림대교 폭파 후 심각해진 우-러 상황
핵 누르면 나토 참전 불가피 ‘3차 대전’


러시아의 자존심이자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가 파괴되자 푸틴 대통령은 전격적인 ‘피의 보복’을 감행했다.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각) 러시아는 키이우와 중남부 지역, 서부 지역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75개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지 취재진은 전체적인 피해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키이우에서만 적어도 네 차례 큰 폭발이 발생했고 최소 19명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매체 BBC는 “초기 일부 폭발은 키이우 중심부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전쟁이 시작된 후로 키이우 중심부가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전례 없던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번 폭격은)에피소드 1화에 불과하다”며 추가 보복 계획을 시사했다. 추가 보복 계획에는 ‘핵무기 사용’도 배제되지 않은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대국민 방송 연설에서 “러시아의 영토가 위협받을 경우, 국익 수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지체 없이 동원할 것”이라며 “이는 허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모든 수단’에 핵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충격적인 연설을 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의 발언이 허세가 아님을 재차 확인해줬다. 그는 “푸틴이 전술핵이나 생물무기 또는 화학무기를 말할 때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핵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러시아가)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아마겟돈으로 끝나지 않게 할 능력 같은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마겟돈’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 종말 전쟁’이다. 성경 내용에 따르면, 아마겟돈 후 현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신이 ‘새 인류’를 창조한다.

푸틴은 한다?
아마겟돈 공포

군사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아마겟돈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저 정도로 ‘센’ 발언이 구체적인 보고 없이 가능하겠냐는 분석 때문이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무수히 많은 예측을 쏟아냈고, 대부분 사실로 귀결됐다. 

언론은 그의 예측이 맞아들어갈 때마다 바이든에게 보고된 미군의 정보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정확하다고 분석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핵전쟁 가능성을 직접 시사한 이면에 ‘러시아의 핵사용 징후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푸틴의 핵 발언 이후, 미국은 러시아의 핵을 찾아내기 위해 미군 위성과 정찰기를 총동원하고 있다. 미 정치 일간지 <폴리티코>는 백악관 인사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러시아를 전보다 더 밀착해서 감시하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매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우주와 공중 모두를 감시 대상에 넣고 있으며 핵무기 예상 배치 지역에 상업용 위성까지 동원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고 있는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갖고 있다. 신뢰도가 높은 매체 중 하나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가 총 7454개라고 보도했다. 이 중 전략 핵탄두는 2565개, 비전략 핵탄두는 1830개, 비축 핵탄두는 2889개다. 

위력도 상당하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러시아는 미사일 ‘사르마트’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르마트는 '악마의 미사일'이라 일컬어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최대 18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초장거리 미사일이다. 

군 전문가
한 목소리 

이날 사르마트에 장착된 핵탄두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의 약 2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텍사스주 전체나 프랑스 영토 전체를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는 위력이다.

러시아는 현재 가장 많은 수의 핵탄두를 만들었을뿐더러 초경량 기술까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제’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떨어지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근 국가들 또한 피해를 보게 된다. 폭탄 자체의 위험만큼 치명적이라 평가받는 낙진 피해가 접경 국가들에게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러시아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이유다.


접경국에 대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면 세계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핵 사용을 걱정하고 있는 접경국이 모두 군사공동체인 ‘나토(NATO)’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나토는 경제적, 정치적 색채를 거의 띠지 않는 대신, 강력한 군사적 색채를 띤다. 나토 헌장 제5조에는 “어느 일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다. 즉 나토 회원국에 대한 낙진 피해는 회원국 전체의 피해로 인식되는 것이다.

비록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 위험에서 대한민국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방 세계에 대항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는 나라 중 북한도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기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은 ‘반미’ 블록화를 모색해왔다.

그리고 이 블록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북한과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전투를 지속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다. 양측의 국력 격차가 점차 차이 날 무렵인 1980년대, 북한은 군사력에서라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핵개발을 시작했다. 한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시키려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정부 처세? “사실상 없다”
전술핵, 사드 등 무용지물?

그 결과, 북한은 현재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평가받고 있고, 이는 한국을 괴롭히는 만성적인 근심거리로 자리 잡았다. ‘북핵’이라는 고질병은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현됐다.

비교적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는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는 더욱 그랬다. 북한은 본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늘 무력 시위를 펼쳤고, 반응이 없으면 ‘더 센’ 무력 시위를 보여줘왔다. 최근 선을 넘는 위협 비행이나 일본 국경 인근에 발사한 미사일이 대표적인 예다.

윤석열정부도 굴하지 않았다. 전술핵 재배치를 계획하고있는 것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가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있었던 저수지 미사일 발사에 정부가 크게 놀란 상태”라며 “저수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전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만일 저 주장(저수지에서 미사일 발사)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사일이 발사된 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 의지에 대해서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그 자체로 ‘무력의 평등’을 가져오는 의미가 있는 만큼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것”이라 전했다.

그러나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에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일요시사>는 용산에서 근무 중인 군인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실상 핵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드가 유일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사드 요격으로 북핵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며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고 해서 핵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같이 사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 단계까지 넘어가면 그 이후 군사적 대응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핵 대응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고 일침한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에 핵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미국이다. 전술핵을 용인해줄 리가 없다”며 “갖다 놔도 무용지물이겠지만 북한 무력 시위에 명분만 더 만들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이 핵을 사용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 이거는 말이 안 되겠지만 ‘핵 사용’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사용 전
대처해야

그는 통화 말미에 “전술핵 재배치와 사드가 모두 전문가들에게 ‘실익 없는 안보’라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끊임없는 잡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핵전쟁 위험이 엄습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필사적으로 처세술을 연구해야한다. 다만 그 처세술은 핵 사용 ‘후’가 아닌 ‘전’이어야 할 것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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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