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임박설’ 멍 때리는 한국 막전막후

방법 없는데 자꾸 있는 척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세계 핵전쟁이 임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엄포를 놓고 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핵전쟁이 시작되면)아마겟돈이 올 것”이라고 응수했다. 세계 핵전쟁이 실제로 발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긴 할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핵전쟁에 대비한 현재 한국 정부의 처세술은 ‘전무’한 상태다.

인류는 ‘인류 종말’에 대한 걱정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문명을 이룩한 이래 천적이 없어진 인류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경고를 날려온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말하는 ‘기후종말론’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걱정하는 ‘AI 종말론,’ 우주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 믿는 ‘소행성 충돌론’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히로시마
2000배

다행히도 이 같은 종말론들은 모두 ‘낭설’로 치부될 만큼 당장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인류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실질적인 위협이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낭설이 하나 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믿는 ‘핵전쟁 종말론’이다.

우크라이나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가 ‘핵전쟁’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벌어진 ‘우-러 전쟁’ 초기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금방 패할 것으로 보였다.

약 70배에 달하는 군비 지출 규모, 100배가량 차이 나는 공군력과 해군력 등 모든 지표는 우크라이나의 ‘조기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는 선전 중이다. 수도 키이우를 사수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저항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이 참전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선전을 예측하지 못했던 나라에는 러시아도 포함된다.

몇 주 내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추가 징집 명령을 내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암울해져만 간다.

그러던 중 푸틴 대통령을 ‘대노’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인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를 폭파시킨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평가했다. 크림대교가 푸틴에게 보급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2014년, 푸틴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했다. 크림반도 사태는 냉전시대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넓어진 사건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는 푸틴의 ‘악행’으로,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의 ‘공적’으로 기록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도 ‘크림반도 강제 점령’을 본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언급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마자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건설을 추진했다. 총 5조원 가량 들어간 이 공사는 푸틴의 ‘유도 상대’라 알려진 최측근 재벌이 맡아 수년 만에 완성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다리 개공식에서 직접 트럭 운전을 해 다리를 건너가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건설을 자축했다.

크림대교 폭파 후 심각해진 우-러 상황
핵 누르면 나토 참전 불가피 ‘3차 대전’


러시아의 자존심이자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가 파괴되자 푸틴 대통령은 전격적인 ‘피의 보복’을 감행했다.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각) 러시아는 키이우와 중남부 지역, 서부 지역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75개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지 취재진은 전체적인 피해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키이우에서만 적어도 네 차례 큰 폭발이 발생했고 최소 19명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매체 BBC는 “초기 일부 폭발은 키이우 중심부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전쟁이 시작된 후로 키이우 중심부가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전례 없던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번 폭격은)에피소드 1화에 불과하다”며 추가 보복 계획을 시사했다. 추가 보복 계획에는 ‘핵무기 사용’도 배제되지 않은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대국민 방송 연설에서 “러시아의 영토가 위협받을 경우, 국익 수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지체 없이 동원할 것”이라며 “이는 허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모든 수단’에 핵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충격적인 연설을 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의 발언이 허세가 아님을 재차 확인해줬다. 그는 “푸틴이 전술핵이나 생물무기 또는 화학무기를 말할 때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핵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러시아가)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아마겟돈으로 끝나지 않게 할 능력 같은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마겟돈’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 종말 전쟁’이다. 성경 내용에 따르면, 아마겟돈 후 현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신이 ‘새 인류’를 창조한다.

푸틴은 한다?
아마겟돈 공포

군사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아마겟돈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저 정도로 ‘센’ 발언이 구체적인 보고 없이 가능하겠냐는 분석 때문이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무수히 많은 예측을 쏟아냈고, 대부분 사실로 귀결됐다. 

언론은 그의 예측이 맞아들어갈 때마다 바이든에게 보고된 미군의 정보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정확하다고 분석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핵전쟁 가능성을 직접 시사한 이면에 ‘러시아의 핵사용 징후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푸틴의 핵 발언 이후, 미국은 러시아의 핵을 찾아내기 위해 미군 위성과 정찰기를 총동원하고 있다. 미 정치 일간지 <폴리티코>는 백악관 인사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러시아를 전보다 더 밀착해서 감시하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매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우주와 공중 모두를 감시 대상에 넣고 있으며 핵무기 예상 배치 지역에 상업용 위성까지 동원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고 있는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갖고 있다. 신뢰도가 높은 매체 중 하나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가 총 7454개라고 보도했다. 이 중 전략 핵탄두는 2565개, 비전략 핵탄두는 1830개, 비축 핵탄두는 2889개다. 

위력도 상당하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러시아는 미사일 ‘사르마트’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르마트는 '악마의 미사일'이라 일컬어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최대 18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초장거리 미사일이다. 

군 전문가
한 목소리 

이날 사르마트에 장착된 핵탄두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의 약 2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텍사스주 전체나 프랑스 영토 전체를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는 위력이다.

러시아는 현재 가장 많은 수의 핵탄두를 만들었을뿐더러 초경량 기술까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제’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떨어지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근 국가들 또한 피해를 보게 된다. 폭탄 자체의 위험만큼 치명적이라 평가받는 낙진 피해가 접경 국가들에게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러시아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이유다.


접경국에 대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면 세계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핵 사용을 걱정하고 있는 접경국이 모두 군사공동체인 ‘나토(NATO)’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나토는 경제적, 정치적 색채를 거의 띠지 않는 대신, 강력한 군사적 색채를 띤다. 나토 헌장 제5조에는 “어느 일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다. 즉 나토 회원국에 대한 낙진 피해는 회원국 전체의 피해로 인식되는 것이다.

비록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 위험에서 대한민국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방 세계에 대항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는 나라 중 북한도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기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은 ‘반미’ 블록화를 모색해왔다.

그리고 이 블록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북한과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전투를 지속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다. 양측의 국력 격차가 점차 차이 날 무렵인 1980년대, 북한은 군사력에서라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핵개발을 시작했다. 한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시키려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정부 처세? “사실상 없다”
전술핵, 사드 등 무용지물?

그 결과, 북한은 현재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평가받고 있고, 이는 한국을 괴롭히는 만성적인 근심거리로 자리 잡았다. ‘북핵’이라는 고질병은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현됐다.

비교적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는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는 더욱 그랬다. 북한은 본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늘 무력 시위를 펼쳤고, 반응이 없으면 ‘더 센’ 무력 시위를 보여줘왔다. 최근 선을 넘는 위협 비행이나 일본 국경 인근에 발사한 미사일이 대표적인 예다.

윤석열정부도 굴하지 않았다. 전술핵 재배치를 계획하고있는 것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가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있었던 저수지 미사일 발사에 정부가 크게 놀란 상태”라며 “저수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전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만일 저 주장(저수지에서 미사일 발사)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사일이 발사된 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 의지에 대해서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그 자체로 ‘무력의 평등’을 가져오는 의미가 있는 만큼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것”이라 전했다.

그러나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에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일요시사>는 용산에서 근무 중인 군인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실상 핵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드가 유일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사드 요격으로 북핵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며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고 해서 핵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같이 사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 단계까지 넘어가면 그 이후 군사적 대응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핵 대응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고 일침한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에 핵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미국이다. 전술핵을 용인해줄 리가 없다”며 “갖다 놔도 무용지물이겠지만 북한 무력 시위에 명분만 더 만들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이 핵을 사용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 이거는 말이 안 되겠지만 ‘핵 사용’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사용 전
대처해야

그는 통화 말미에 “전술핵 재배치와 사드가 모두 전문가들에게 ‘실익 없는 안보’라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끊임없는 잡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핵전쟁 위험이 엄습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필사적으로 처세술을 연구해야한다. 다만 그 처세술은 핵 사용 ‘후’가 아닌 ‘전’이어야 할 것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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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