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운명

갈 길 먼데…노동자 없이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 복안이 출범 이후 공전을 거듭해온 가운데, 일각에서는 ‘탈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정부가 내린 결단이 매번 악수로 작용하면서 노동계와의 관계가 계속 악화됐다. 분수령은 내년 초 예정된 한국노총 새 위원장 선거다. 이 결과에 정부 노동정책의 사활이 달렸다.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마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한다면, 윤정부의 노동개혁 동력에 큰 타격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의 굵직한 노동정책은 모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거쳐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사노위의 협의를 거친 노동정책은 대표성과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 자체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정부 들어 경사노위가 유명무실화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윤정부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경사노위는 근로자·사용자 등 경제·사회 주체와 정부가 고용 노동정책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논의 대상은 ▲주요 노동정책 및 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제도·의식·관행 개선 ▲노사정 협력 증진사업 지원 등이다.

경사노위는 1998년 ‘노사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도부와 이틀 간 회담을 나눈 끝에 노사정위원회 발족에 합의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사태 극복과 노사관계 개혁 등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이윽고 이들은 출범 20일 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다. 공공·금융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을 협의하며 체결한 사회협약은 그 항목이 90개에 달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이윽고 물 흐르듯 법적 상설기구로 격상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 직후 관련 대통령령 제정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의 법적 기반과 기능을 명시했다.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그 이름과 형식을 조금씩 바꿔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합의 도출, 노사 갈등 중재 등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들은 2008년 경제위기 당시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했고, 현대자동차·철도 파업 사태 등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경사노위 중용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박근혜정부는 노동개혁을 경사노위의 틀 안에서 추진했다. 문재인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연착륙 방안·과로사방지법·근로자대표제 등 노동계 현안 20여가지를 경사노위에서 합의했다.

경사노위가 이 같은 ‘감초’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동계와 재계의 꾸준한 참여가 있었다. 특히 한국노총은 정부의 사회적 대화 요청에 지속적으로 협조했다. 1999년 민주노총이 탈퇴한 이래로, 정부에게 한국노총은 사실상 노동계 유일한 ‘대화 창구’다.

반면, 민주노총은 탈퇴 후 중대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임시특별기구에 몇 번 참여한 것 외에, 공식 회의체에는 전면 불참 중이다. 한국노총 역시 이탈한 전적이 있지만 그 기간은 대부분 길지 않았다. 

이에 역대 정권들은 대부분 한국노총을 정책 파트너로 낙점했다. 한국노총은 제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제18~19대 대선 때는 문 전 대통령과 정책 연대를 맺은 바 있다.


한노-정부 사사건건 충돌 ‘이러다 이탈?’
노총 빼고 사회적 합의 사실상 불가한데… 

이번 대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대선후보)와 정책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노총은 국내 제1 노조로, 조합원 수가 2020년 기준 115만4000명에 달한다. 노동계 최고 대표성을 보유한 한국노총의 지원사격은 그동안 정권의 노동정책 개편안에 든든한 명분을 제공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윤 대통령 역시 한국노총에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그는 후보와 당선인 시절 한 번씩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한국노총을 찾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평가하지 않는 국가·사회·기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어느 때보다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정부 출범 이후로 한국노총의 적극적인 협조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노총은 윤정부와 노동 현안에서 사사건건 충돌했다. 한국노총은 윤정부의 노동개혁안에 공공연히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노총은 다음 달 5일 전국노동자대회 대규모 개최를 예고했다. 이들의 목표는 ‘윤정부의 노동개혁 저지’다. 한국노총은 윤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 유연화 ▲공공 부문 구조조정  ▲공적연금 개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에 모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지난달부터 회원조합을 순회 방문하는 등 이미 투쟁 일정 조율에 한창이다.

김 위원장은 순회 일정에 앞서 “윤석열정부의 노동시장·공공 부문 개악과 연금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회원조합별 투쟁을 기조로 11월5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대규모로 개최하겠다”며 “불평등 양극화 해소와 노동 중심의 정의로운 사회 전환을 위한 한국노총 결의를 천명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 같은 맥락을 이유로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결단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당장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 운영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차기 지도부의 협상 카드를 굳이 낭비하지 않는 한편, 정부를 압박하며 태도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불참 결단?
유리한 고지

실제로 한국노총의 새 위원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예정일은 내년 1월 중이다. 선거운동 기간 등을 고려하면 오는 12월부터는 완연한 선거 국면에 접어든다고 봐야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노총 출신인 점도 결정 유보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한다.


보수정권 입장에서 민주노총과의 전면적 협력 가능성은 희박하다. 협상 주도권이 한국노총 측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현재 충돌 중인 노동개혁안 외에도 추가적인 과제를 경사노위에서 만들어 내겠다는 방침이다.

더구나 극심한 진통이 예상되는 ‘정년 연장 논의’는 경사노위를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제로 분류된다. 이대로 한국노총이 이탈하면서 경사노위가 ‘(노)사정협의체’로 전락해버린다면, 정부가 각계 의견수렴조차 진행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2016년 한국노총은 정부의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용 지침의 양대 지침 강행처리에 강력 항의하며 위원회를 탈퇴했다. 2015년 극적으로 체결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사회적 대타협’은 폐기됐고, 2018년 한국노총이 복귀할 때까지 위원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하지만 윤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노-정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김 위원장의 인선 배경에 관해 “정치력과 행정력을 겸비했다”며 “노동현장 경험이 많아 정부·사용자·노동자 대표 간 원활한 협의와 의견 조율은 물론이고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 등 윤석열정부 노동개혁 과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1970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운동권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된 뒤에는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했다.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을 주도하다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이력이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다

하지만 정치 입문 이후의 발자취를 보면 위원장 인선에 의문부호가 따른다. 1996년 그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에 입당해 3선 의원·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극우 행보를 이어왔다. 박근혜정부 때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전광훈 목사와 함께 강경 우파 정당인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탄핵 재판소 탄핵’ ‘문 전 대통령 총살’ 등의 발언 등으로 막말 논란에 수차례 휩싸인 바 있다. 그가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몇 달 전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불법 파업에 손배(손해배상청구)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 인선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노동계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과 지난 4일 연이어 논평을 내고 김 위원장을 맹폭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정부의 노동 개악 추진에 들러리로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경사노위 위원장에 그간 색깔론과 노조혐오에 가득한 시각과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김문수씨를 임명한 것은 그 속이 너무 뻔하다”며 “경사노위가 정말 형식적으로나마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할 계획도 없어 인선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고 설마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부라면 해프닝에 그칠 인사라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에 맞서 투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역시 우려를 표했다. 한국노총은 “김 위원장은 197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로 위장 취업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세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경기도지사를 역임할 당시 노동계와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면서도 “몇 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구속에 반대하는 태극기부대에 합류하고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반노동 발언을 일삼는 행보 등으로 노동계가 환영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비판보다는 올바른 역할 수행 촉구에 주안점을 뒀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위원장 낙점
극우·반 노동 행적에 노동계 반발

이들은 이어진 성명에서 “그동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어렵게 이룬 성과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 스스로 노동계의 우려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노총이 어렵게 이어온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도록, 역할을 수행해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지명 이후 유튜브 채널을 폐쇄하는 등 제기된 비판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취임식에선 “경사노위와 저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말씀, 잘 듣고 있다”면서 “특히 저 개인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는 저 자신이 더욱 진지하고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리스크’는 여전히 노-정 갈등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이날 이어진 질의에서 과거 막말 논란과 극우 행적을 바로잡을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은 총살감’ 등의 과거 발언에 대해 “집회하다 보면 흥분해서 그런 소리는 할 수 있는데”라며 “이제 와 갑자기 수정하는 것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문제가 많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저도 깨끗하다고 소문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저보다 훨씬 깨끗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태도를 계속 견지한다면, 이를 비판한 노동계와의 협의 역시 더욱 요원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이날 ‘노란봉투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제한)’ ‘중대재해처벌법’ 등 현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양대 노조와의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씨가 또 하나 남겨진 셈이다. 

경사노위 위원장은 장관급 인사로, 임기가 2년이다. 김 위원장으로 인해 정부와 노동계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진다면 윤정부는 임기가 반환점을 돌 때까지 노동정책 추진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다. 

윤정부는 우선 대내외적으로 이번 인선의 적절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위원장을 통해 정부의 방향성에 맞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첫 번째 전제부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되레 “김 위원장의 강경 기조로 2016년 한국노총의 장기 이탈 사례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앞선다. 

그나마 정부가 기댈 곳은 한국노총의 차기 위원장 선거 구도가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국노총 내 여당 지지파와 반대파 중 어느 쪽이 실권을 잡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탈 분수령
위원장 선거

현재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지지파에 속하는 산하 위원장 중 일부가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파에서는 김 위원장의 연임 도전이 거론된다. 이로써 다가오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는 이례적으로 노동계를 넘어 정치권의 주목까지 한 몸에 받을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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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