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빈’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운명

갈 길 먼데…노동자 없이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 복안이 출범 이후 공전을 거듭해온 가운데, 일각에서는 ‘탈선’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정부가 내린 결단이 매번 악수로 작용하면서 노동계와의 관계가 계속 악화됐다. 분수령은 내년 초 예정된 한국노총 새 위원장 선거다. 이 결과에 정부 노동정책의 사활이 달렸다.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마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한다면, 윤정부의 노동개혁 동력에 큰 타격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의 굵직한 노동정책은 모두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거쳐서 나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사노위의 협의를 거친 노동정책은 대표성과 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 자체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정부 들어 경사노위가 유명무실화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한 윤정부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경사노위는 근로자·사용자 등 경제·사회 주체와 정부가 고용 노동정책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논의 대상은 ▲주요 노동정책 및 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제도·의식·관행 개선 ▲노사정 협력 증진사업 지원 등이다.

경사노위는 1998년 ‘노사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도부와 이틀 간 회담을 나눈 끝에 노사정위원회 발족에 합의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사태 극복과 노사관계 개혁 등을 주제로 머리를 맞댔다.

이윽고 이들은 출범 20일 만에 헌정사상 최초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냈다. 공공·금융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을 협의하며 체결한 사회협약은 그 항목이 90개에 달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일궈냈다. 이윽고 물 흐르듯 법적 상설기구로 격상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 시작 직후 관련 대통령령 제정을 통해 노사정위원회의 법적 기반과 기능을 명시했다.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그 이름과 형식을 조금씩 바꿔오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합의 도출, 노사 갈등 중재 등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들은 2008년 경제위기 당시에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했고, 현대자동차·철도 파업 사태 등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다.

경사노위 중용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박근혜정부는 노동개혁을 경사노위의 틀 안에서 추진했다. 문재인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연착륙 방안·과로사방지법·근로자대표제 등 노동계 현안 20여가지를 경사노위에서 합의했다.

경사노위가 이 같은 ‘감초’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동계와 재계의 꾸준한 참여가 있었다. 특히 한국노총은 정부의 사회적 대화 요청에 지속적으로 협조했다. 1999년 민주노총이 탈퇴한 이래로, 정부에게 한국노총은 사실상 노동계 유일한 ‘대화 창구’다.

반면, 민주노총은 탈퇴 후 중대 사안을 논의하기 위한 임시특별기구에 몇 번 참여한 것 외에, 공식 회의체에는 전면 불참 중이다. 한국노총 역시 이탈한 전적이 있지만 그 기간은 대부분 길지 않았다. 

이에 역대 정권들은 대부분 한국노총을 정책 파트너로 낙점했다. 한국노총은 제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제18~19대 대선 때는 문 전 대통령과 정책 연대를 맺은 바 있다.


한노-정부 사사건건 충돌 ‘이러다 이탈?’
노총 빼고 사회적 합의 사실상 불가한데… 

이번 대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당시 대선후보)와 정책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노총은 국내 제1 노조로, 조합원 수가 2020년 기준 115만4000명에 달한다. 노동계 최고 대표성을 보유한 한국노총의 지원사격은 그동안 정권의 노동정책 개편안에 든든한 명분을 제공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윤 대통령 역시 한국노총에 적극적인 구애를 보냈다.

그는 후보와 당선인 시절 한 번씩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한국노총을 찾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평가하지 않는 국가·사회·기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어느 때보다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정부 출범 이후로 한국노총의 적극적인 협조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노총은 윤정부와 노동 현안에서 사사건건 충돌했다. 한국노총은 윤정부의 노동개혁안에 공공연히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노총은 다음 달 5일 전국노동자대회 대규모 개최를 예고했다. 이들의 목표는 ‘윤정부의 노동개혁 저지’다. 한국노총은 윤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간 유연화 ▲공공 부문 구조조정  ▲공적연금 개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에 모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지난달부터 회원조합을 순회 방문하는 등 이미 투쟁 일정 조율에 한창이다.

김 위원장은 순회 일정에 앞서 “윤석열정부의 노동시장·공공 부문 개악과 연금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회원조합별 투쟁을 기조로 11월5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대규모로 개최하겠다”며 “불평등 양극화 해소와 노동 중심의 정의로운 사회 전환을 위한 한국노총 결의를 천명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안팎에선 이 같은 맥락을 이유로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결단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현 상황만 놓고 보면 당장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평이 나온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 운영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는 차기 지도부의 협상 카드를 굳이 낭비하지 않는 한편, 정부를 압박하며 태도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불참 결단?
유리한 고지

실제로 한국노총의 새 위원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예정일은 내년 1월 중이다. 선거운동 기간 등을 고려하면 오는 12월부터는 완연한 선거 국면에 접어든다고 봐야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노총 출신인 점도 결정 유보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분석한다.


보수정권 입장에서 민주노총과의 전면적 협력 가능성은 희박하다. 협상 주도권이 한국노총 측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는 현재 충돌 중인 노동개혁안 외에도 추가적인 과제를 경사노위에서 만들어 내겠다는 방침이다.

더구나 극심한 진통이 예상되는 ‘정년 연장 논의’는 경사노위를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과제로 분류된다. 이대로 한국노총이 이탈하면서 경사노위가 ‘(노)사정협의체’로 전락해버린다면, 정부가 각계 의견수렴조차 진행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2016년 한국노총은 정부의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용 지침의 양대 지침 강행처리에 강력 항의하며 위원회를 탈퇴했다. 2015년 극적으로 체결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사회적 대타협’은 폐기됐고, 2018년 한국노총이 복귀할 때까지 위원회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하지만 윤정부와 노동계의 관계는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없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노-정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김 위원장의 인선 배경에 관해 “정치력과 행정력을 겸비했다”며 “노동현장 경험이 많아 정부·사용자·노동자 대표 간 원활한 협의와 의견 조율은 물론이고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 등 윤석열정부 노동개혁 과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1970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운동권에 투신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제적된 뒤에는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했다.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을 주도하다가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이력이 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다

하지만 정치 입문 이후의 발자취를 보면 위원장 인선에 의문부호가 따른다. 1996년 그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신한국당에 입당해 3선 의원·재선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극우 행보를 이어왔다. 박근혜정부 때 탄핵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전광훈 목사와 함께 강경 우파 정당인 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탄핵 재판소 탄핵’ ‘문 전 대통령 총살’ 등의 발언 등으로 막말 논란에 수차례 휩싸인 바 있다. 그가 경사노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몇 달 전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불법 파업에 손배(손해배상청구) 폭탄이 특효약”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 인선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노동계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9일과 지난 4일 연이어 논평을 내고 김 위원장을 맹폭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정부의 노동 개악 추진에 들러리로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경사노위 위원장에 그간 색깔론과 노조혐오에 가득한 시각과 발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김문수씨를 임명한 것은 그 속이 너무 뻔하다”며 “경사노위가 정말 형식적으로나마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할 계획도 없어 인선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고 설마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부라면 해프닝에 그칠 인사라고 생각했다”며 “지금까지처럼 윤석열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악에 맞서 투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역시 우려를 표했다. 한국노총은 “김 위원장은 197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로 위장 취업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세 번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경기도지사를 역임할 당시 노동계와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면서도 “몇 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구속에 반대하는 태극기부대에 합류하고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반노동 발언을 일삼는 행보 등으로 노동계가 환영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비판보다는 올바른 역할 수행 촉구에 주안점을 뒀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위원장 낙점
극우·반 노동 행적에 노동계 반발

이들은 이어진 성명에서 “그동안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그렇게 어렵게 이룬 성과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김 위원장 스스로 노동계의 우려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노총이 어렵게 이어온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도록, 역할을 수행해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지명 이후 유튜브 채널을 폐쇄하는 등 제기된 비판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취임식에선 “경사노위와 저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말씀, 잘 듣고 있다”면서 “특히 저 개인에 대한 불신에 대해서는 저 자신이 더욱 진지하고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 리스크’는 여전히 노-정 갈등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이날 이어진 질의에서 과거 막말 논란과 극우 행적을 바로잡을 뜻이 없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문 전 대통령은 총살감’ 등의 과거 발언에 대해 “집회하다 보면 흥분해서 그런 소리는 할 수 있는데”라며 “이제 와 갑자기 수정하는 것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관해서는 “헌법재판소도 문제가 많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저도 깨끗하다고 소문나 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저보다 훨씬 깨끗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이 같은 태도를 계속 견지한다면, 이를 비판한 노동계와의 협의 역시 더욱 요원해질 것으로 점쳐진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이날 ‘노란봉투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제한)’ ‘중대재해처벌법’ 등 현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양대 노조와의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씨가 또 하나 남겨진 셈이다. 

경사노위 위원장은 장관급 인사로, 임기가 2년이다. 김 위원장으로 인해 정부와 노동계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틀어진다면 윤정부는 임기가 반환점을 돌 때까지 노동정책 추진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다. 

윤정부는 우선 대내외적으로 이번 인선의 적절성을 입증해야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김 위원장을 통해 정부의 방향성에 맞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첫 번째 전제부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되레 “김 위원장의 강경 기조로 2016년 한국노총의 장기 이탈 사례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앞선다. 

그나마 정부가 기댈 곳은 한국노총의 차기 위원장 선거 구도가 아직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지금으로서는 한국노총 내 여당 지지파와 반대파 중 어느 쪽이 실권을 잡을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탈 분수령
위원장 선거

현재 한국노총 내부에서는 지지파에 속하는 산하 위원장 중 일부가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파에서는 김 위원장의 연임 도전이 거론된다. 이로써 다가오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는 이례적으로 노동계를 넘어 정치권의 주목까지 한 몸에 받을 전망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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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