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갔다” 막 오른 ‘검수완박’ 2라운드

민주 VS 한동훈의 강대강 단두대 대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올해 정치권을 뒤흔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쟁. 일명 ‘검수완박’ 갈등이 여전하다. 검수완박 1차전은 문재인정부 말기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강행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시행령 개정과 권한쟁의 심판 등 국회 밖 ‘장외’에서 2차전이 발발했다. 민주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힘겨루기에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경찰의 공개 입장 표명으로 ‘입법부 대 행정부’ 대결구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검수완박법’의 골자는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 및 경제범죄(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검수완박법을 발의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입법 절차를 매듭지었다.

엎치락
뒤치락

검수완박법은 지난 5월9일 정부 전자관보 게재를 통해 정식으로 공포됐다. 이날은 문재인정부의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법안은 지난달부터 시행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자 정부 입장이 정반대로 돌아섰다. 법무부는 지난 6월 “검수완박법이 내용뿐 아니라 절차상으로도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권한쟁의심판이란 국가기관끼리 권한의 존재 여부·범위 등을 다툴 때, 이를 헌재가 헌법 해석을 통해 심판하는 제도다.

우리 헌법에서 ‘검사’는 두 번 등장한다. 헌법 제12조 3항과 제16조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법무부는 “헌법 조문에 검사에게 수사권이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영장 신청을 위해선 수사가 필수 불가결하므로 수사권이 전제돼있다”는 취지로 주장해왔다.


국회가 만든 검수완박법이 수사권을 침해했고, 이는 영장청구권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이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월 법무부 시행령인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검찰 수사권 축소를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 한 장관은 법안 자구 중 ‘등’에 주목했다. 여러 가지 명분을 대며 관련 대통령령에 들어가는 ‘중요 범죄’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종전에 삭제된 공직자·선거범죄 수사가 사실상 가능해졌고, 부패·경제 범죄 해석 범위도 더욱 넓어졌다.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이었다.

검수완박법 입법을 강행했던 민주당은 크게 반발했다.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한 장관에 대한 탄핵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계 일각에서는 “한 장관의 강경대응으로 ‘검수완박 2라운드’ 서막이 올랐다”는 평이 나왔다.

그동안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설전을 이어오던 민주당과 한 장관은 헌재로 전장을 옮겼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권한쟁의 심판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재에서 검수완박법 관련 공개변론이 열린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7월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안 처리는 국회법상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국회 등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을 때도 헌재는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시행령 개정, 권한쟁의 심판…장외 2차전
‘입법 VS 행정’ 민주당-한동훈 힘겨루기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 사건은 ‘꼼수 탈당’ ‘회기 쪼개기’ 등 입법 과정에서의 절차상 하자에 초점을 맞췄고, 이번 사건은 법 내용과 입법 목적의 위헌성까지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이날 헌재 대심판정에는 법무부 측 대리인으로 한 장관과 검사들을 비롯해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이 출석했다. 국회 측에선 이광재 국회사무총장과 박경미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피청구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리인으로는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 장주영 변호사가 출석했다.

양측은 변론 전부터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각각의 주장을 반박하는 주된 논거를 재반박하면서 명분 쌓기에 열중했다.

한 장관은 변론 전 헌법재판소 청사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위헌 소지가 해소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이 법이 유지된다는 전제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라며 “시행령으로 위헌성과 국민 피해 가능성이 해소된 게 아닌 만큼 헌법재판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장 변호사는 개정법 시행으로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장 변호사는 “개정 법률에는 시정 조치나 재수사, 보완수사 요구 등 검사의 권한이 다양하게 규정돼있다”며 “법이 부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면 국민 피해 발생 우려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개변론은 5시간가량 이어졌다. 한 장관은 대심판정에 서서 “정권교체를 불과 24일 남긴 4월15일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을 실제로 당론으로 발의했다. 새로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전례 없이 시간까지 바꿔가면서 국무회의를 열고, 정권 출범 딱 하루 전에 공포했다”며 “일부 정치인을 지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추진한 입법이 정권교체 직전에 마치 ‘청야전술’하듯 결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수사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담당해온 다양한 국민 보호 기능에 어떤 구멍이 생길지 생각조차 안 해본 것이고, 이미 디지털 성범죄 수사, 스토킹 수사 등에서 예상하지 못한 국민 보호의 구멍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보탰다.

역공
맞불

반면 국회 측은 법무부가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이 애초에 부적법하기 때문에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측은 “검찰사무를 관장하고 감독하는 법무 장관은 수사·소추권이 없기 때문에 검사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법률개정행위에 대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또 법무부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규정한 헌법 조항들을 근거로 ‘검사에게 수사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조항들은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헌정사를 반성해 무분별한 영장 남발을 막으려는 ‘국민의 권리장전’에 속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국회 측은 “1954년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때 권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 담당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당시의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유보됐다”며 “권한 집중으로 인한 남용을 방지하고 수사와 기소 기능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수완박법의 제안·심사·상정 및 의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헌법의 다수결 원칙과 국회법 규정이 모두 준수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이종석 재판관은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 논란에 관해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가장행위는 효력행위로 인정하지 않는 게 법의 원칙”이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중요 원리인 다수결 원칙을 위배한 게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국회 측은 “국회의원의 정치적 선택을 내심의 의사를 통해 법 위반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치인의)이합집산을 고도의 정치적 형성 행위로 이해하고 있다. 사법관계로 평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선애 재판관은 검수완박법으로 형사사법 체계에 공백이 발생했는지를 살폈다.

윤정부 출범 
알아서 기다…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무고·마약·조폭·보이스피싱 처벌이 감소한 그래프를 제시했다. 그는 “도둑을 못 잡으면 도둑이 없는 것 같은 착시효과가 생긴다”고 표현했다. 범죄가 줄어든 게 아니라, 적발 및 처벌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으로 변론 절차를 마친 뒤 심리를 거쳐 추후 선고기일을 지정할 계획이다. 헌재는 재판관 9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찬성할 때 인용·기각·각하 결정을 내린다. 


양측이 ‘총공세’를 펼치는 가운데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한 것은 경찰이다. 경찰은 검수완박의 주요 당사자이면서도 윤정부 출범 이후 공식 발언을 삼가해왔다. 하지만 경찰이 이번 헌재 심판에서 법무부와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입장 변화가 주목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경찰에 법무부·검찰이 헌재에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를 참고자료 형태로 작성해 기 의원에게 건넸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300페이지 분량의 정식 의견서를 작성, 헌재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은 의견서에서 법무부·검찰의 검수완박, 즉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에 대한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논박했다.

이를테면 경찰은 의견서에서 “검찰 수사권이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라는 법무부와 검찰 주장을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검찰에 수사권 축소를 거부할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요지다.

검수완박법 내용 가운데 ▲고발인 이의신청권 삭제 ▲수사개시 검사의 공소유지 금지조항 신설 ▲별건수사 금지조항 신설 등이 위헌적이라는 주장에도 일일이 반론을 달았다.

침묵하던 경, 이번엔 의견 표명 검토
검 수사권 헌법이 보장? 헌재 판단은?

또한 기 의원은 “법무부와 헌재가 경찰에 권한쟁의심판에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주지 않아 경찰이 세 달 가까이 의견을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가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를 경찰과 공유하지 않아 경찰이 의견서를 낼 수 없었고, 이에 기 의원이 법무부·검찰의 청구서를 경찰에 전해주고 나서야 의견서 제출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하던 경찰이 반기를 든 것은 검수완박법을 둘러싼 대립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행정부 소속인 경찰이 ‘단일대오’에서 이탈하면서, 그간 법무부와 검찰이 짜던 ‘입법부 대 행정부’ 대치구도가 붕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대강 대치 속 새로운 변수가 떠오른 상황.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어느 쪽이 승기를 거머쥘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법무부와 검찰 측에 대한 회의론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승리 가능성이 미지수인 데다, 설령 승리해도 가져갈 실익은 크지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 YTN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헌재 결정을 예측했다.

박 전 의원은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법, 그리고 그 추진 과정에 대해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권 법률의 형성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헌재 입장을 보면 위헌 판결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앞서 헌재가 입법 절차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법률 자체의 효력은 인정한 판례가 있다는 점이 회의적 전망에 힘을 싣는다.

아쉬운 대로
명분 쌓기?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수완박법의 위헌 여부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다룰 수 없고,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다만 정당성 획득의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소득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만약 법무부와 검찰이 승리한다면 ‘검수원복’ 시행령에 대한 반발을 원천 차단할 명분을 쥔다는 의견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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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