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 버린 윤석열 정계개편 큰 그림

역시 믿을 사람은 스승뿐?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에게 사실상 이별을 고한 윤석열 대통령이 새 그림을 그리는 모양새다. 국정 동력에 계속 타격을 받자 과거 구상했던 자신만의 세력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앞세우는 인물은 찐핵관(진짜 윤핵관)인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이다. 

대통령실에서 여의도 라인이 얼추 정리돼가는 모양새다. 그동안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검찰 라인과 여의도 라인의 내부 투쟁이 있었다. 인사권을 쥔 검찰 라인이 이들을 밀어내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여의도 라인을 대체할 적임자 찾기에도 고심 중이다.

대선 기간
창당 시도

지금까지 대표적인 윤핵관에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이 자리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들은 대선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을 밀착 보좌하는 등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실에서 대거 인적 개편을 단행하면서 윤핵관도 다소 힘이 빠진 듯하다.

장 의원은 2선으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고, 권 원내대표 역시 물러나서다. 

여당의 끊임없는 내홍이 윤 대통령에게 윤핵관의 정치력을 의심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앞으로 윤핵관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 정리 대상이 된 대통령실 근무자 대부분이 장 의원의 측근인 만큼 여의도 라인 정리를 확실히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함께할 정치세력을 바꾼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윤핵관이 좀처럼 당내 혼란 등을 수습하지 못하자 결국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필두로 한 정계개편에 나선다는 말이 떠돈다.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은 정권교체를 주요 키워드로 내세우며 윤 대통령과 손을 맞잡았다.

본래 김 위원장은 진보 정당 출신으로 보수당의 후보와는 어색한 동행으로 비쳤다. 과거 진보정당의 비주류 좌장 역할을 맡으며 친노(친 노무현), 친문(친 문재인) 세력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은 2013년부터 이어왔다.

윤 대통령이 여주지청장 근무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를 하며 국감에 출석했을 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했고, 김 위원장이 측면에서 지원했다. 2014년에는 윤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할 때도 TV 토론회 질문에 답변하는 법부터 정치 언어 설파까지 윤 대통령을 정치인으로 변화시키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멘토이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맡아온 셈이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국민 통합을 내세우며 새시대준비위원회(이하 새준위)를 출범시키며 김 위원장을 임명했다. 김 위원장도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본격적으로 정계개편설이 흘러나왔다.

새준위는 출범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다. 정계개편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 때문이다. 당시 새준위는 국민의힘 선대위 외곽 별동대로 불리기도 했다. 조직도엔 대표, 비서실장, 인재영입 담당자까지 있었을 정도다. 산하에는 대외협력본부, 지역화합본부, 기획조정본부 등 7개 본부가 있고, 심지어 상임고문까지 존재했다.


당시 영입 인물로는 외연 확장을 위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이 주를 이뤘다. 기획조정본부장에는 민주당 최명길 전 의원, 대회협력본부장은 국민의힘에 입당했던 호남 출신 이용호 의원이 맡았다. 지역화합본부장은 국민의당 김동철 전 원내대표였다.

이뿐만 아니다. 신지예 한국정치네트워크 대표, 강경 보수인 전광훈 목사와 가까운 김승규 전 국정원장까지 폭넓은 인선이 이어졌다. 

새준위도 창당 위한 별동대
민주당 텃밭 공들여 밑그림

다양한 인사 영입을 통해 새준위 출범 초기에는 중도층을 겨냥한 외연 확장을 조직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개적인 성과가 거의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신 정당이나 창당을 앞둔 준비위원회 조직과 유사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탓에 새준위는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의 발언도 창당설에 힘을 싣는 모양새가 됐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전남 선대위 출범식에서 “선뜻 내키지 않는 정당이라고 생각한다”며 “혁신을 위해 진보, 중도 진보, 호남과 여성, 청년 등 유능한 분이 동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당을 비판한 것은 물론, 경선 과정에서 당 해체 관련 발언과도 유사한 것으로 읽힌다. 많은 정치 전문가들도 윤 대통령이 집권 시 여소야대의 한계성 등 여러 문제들로 인해 정계개편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당내에 인물들조차 새준위와 윤 대통령의 발언에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새준위가 창당을 염두에 둔 기구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런 탓에 선대위와의 마찰도 터져 나왔다. 결국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선대위를 폭파시키면서 새준위 역시 힘이 빠졌고, 정계개편설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새준위 수장이었던 김 위원장도 잠시 물러났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김 위원장이 다시 힘을 받게 됐다. 국정 7대 과제에 국민 통합이 포함됐고, 김 위원장 역시 국민 통합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돌아와서다. 

윤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탈진보, 중도 포섭 등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6월 국민통합위원회(이하 국통위)가 대통령 직속위원회로서 공식 출범하면서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호남 지역
공들이기


국통위는 조직은 정치·지역분과, 경제·계층분과, 기획분과, 사회·문화분과로 4개의 큰 갈래로 나뉘어 있다. 국통위가 집행력을 가진 행정부처나 기관은 아니다. 다만 자문위원회라는 점에서 의견을 충분히 개진 가능하다는 게 눈여겨볼 지점이다. 

위원으로 합류한 인물을 살펴보면 전직 민주당 및 보수당 출신 등 각계각층의 인물이 포진돼있다. 여러 민간 위원 중 6명은 국회의원 출신이다. 이들 중 4명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새준위에 인선됐던 최명길 전 의원이 다시 합류했고, 최원식·임재훈 전 의원이 대표 얼굴이다.

이들은 김 위원장의 핵심 측근으로 꼽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민주당 내 반문(반 문재인) 인사였다는 공통점도 가진다.

정치권에서도 창당을 기반으로 한 정계개편 이야기가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앞서 대통령실에서 여의도 라인을 정리하기 시작한 이유도 김 위원장의 정계개편 노림수 때문이라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이 되면서 다수 의원들이 친윤(친 윤석열)을 표방하고 있지만, 언제 등을 돌릴지 모른다. 사실상 당내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데다 윤핵관의 본거지는 MB(이명박 전 대통령) 라인이다.

보수에 주안을 둘 수밖에 없는 위치다. 또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 속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만의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호남을 의식한 행보를 보였던 점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그는 취임식 이후 보수당 출신 대통령 중 최초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 또 그동안 방치하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시위와 관련해 사저 인근 경호구역 확장을 지시한 바 있다. 사면이 유력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역시 단행하지 않았다. 

과거와
비슷하게?

보수당의 새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호남 출신인 박주선 전 대통령취임식준비위원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최근 지명된 이원석 검찰총장 후보자 역시 호남 출신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및 지방선거 이후로 호남 유권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실제로 지난달 28일에 열렸던 전당대회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본거지인 호남의 투표율은 전국 평균 투표율보다 낮았는데 전통 지지층마저 등을 돌린 셈이다.

반면 윤 대통령은 보수당 출신으로서 호남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지속적으로 노력하던 외연 확장 공략이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보여준 셈이다.

다만 윤 대통령 주변에는 검찰 쪽 인사들로 수두룩하다. 정치적 기반을 쌓기 위한 ‘믿을맨’은 정권교체 동맹 세력이 아닌 사석에서 형님이라 부를 수 있는 멘토뿐이라는 점이 강하게 인식됐을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정계개편을 소명으로 여기는 모양새”라며 “정치 경험이 없어 국민이 정치판을 개혁해 신진세력이 정치판을 개혁하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을 필두로 정계개편을 노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김 위원장의 이력도 한몫한다. 그는 과거 민주당 계열의 창당과 합당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직을 맡았고, 4선 의원을 지냈을 만큼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다.

당시에는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맡은 이력도 있다.

윤핵관을 내치고, 김 위원장을 필두로 정계개편에 나선다면 보수당을 넘어 더 큰 정계개편도 가능하다. 정계개편 시 신당 창당과 함께 검찰 라인도 다수 합류해 세 확장에 유리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 확장과 더불어 김 위원장의 정계개편 핵심은 중도에 찍혀 있다. 대선 때도 중도에 방점을 찍고 재미를 톡톡히 봤던 만큼, 반 민주당 세력을 합치고 국민의힘 세력인 영남·호남까지 전선을 확대하겠다는 큰 그림이다. 

대통령의 세력 모으기 절실
당장은 불가…총선 전 시동?

그가 창당하려는 모델은 열린우리당 창당 모델을 따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위원장으로 국민의힘을 넘어선 진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인 것으로 해석된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인사들이 새천년민주당을 집단 탈당해 창당했던 당이다. 국회를 양분하고 있던 세력인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전국 정당 건설, 지역구도 타파 등을 슬로건을 내세웠다. 

만일 곧 나올 국민의힘 비대위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윤핵관 세력이 패배한다면 이준석 전 대표의 살 길이 열리는 동시에 김 위원장발 여당 정계개편에 탄력이 붙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창당설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전 대표와의 당내 갈등 이면에도 정계개편으로 자신이 팽당할 수 있다는 당 일각의 시선도 있었다.

실제로 이 전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배척하는 세력의 창당을 의심하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 사이에선 구체적인 세력화도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시선도 감지된다. 국민 통합이라는 화두와 함께 비전을 던질 경우, 구심점이 나타나 뭉칠 수 있다는 복안이다. 

현재 양당 모두 민생은 뒷전이라는 비판에 휩싸인 가운데,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기존 세력을 배제하자는 새 욕구가 분출될 수 있는 까닭이다. 앞으로 김 위원장이 국민 통합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제시하면 정계개편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사자인 김 위원장 역시 크게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없다”며 못 박으면서도 “제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무르익은 상태가 되면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해당 발언은 정계개편의 명분이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다만 대선 기간 꾸준히 언급돼온 만큼 차기 총선 전에 이뤄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새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똑같은 상황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의심이 짙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낮은 상태서 신당 창당과 새 세력을 규합할 동력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인사 개편 이후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세를 새로 꾸릴 명분을 만들 수 있도록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명분이 문제
충분히 가능

한 여권 관계자는 “당장은 무리지만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여당의 혼란이 계속돼 국민의힘을 넘어선 더 큰 정계개편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양당이 국민에게 욕을 먹고 있는 만큼 화두를 띄우면 국민에게 요구가 나올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무라인 개편 계파색 없애기 시도?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인적 개편이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앞서 해임했던 정무수석실 산하 정무1비서관과 정무2비서관 자리에 국민의힘 전희경 전 의원과 장경상 전 국가경영연구원 사무국장을 임명했다. 

인선 발표 전 내정설이 거론됐던 두 인물은 지난 6일 대통령실에 첫 출근을 해 정무비서관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전 전 의원과 장 사무국장은 인수위에서 직을 맡지 않았다. 특정 계파에 얽매이지 않은 평을 받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대선 기간 동안의 기여도와 무관하게 역량을 보고 인선한 결과라는 셈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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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