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거리 빠조직’ 말 많은 이재명 팬덤 해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BTS(방탄소년단)의 성공은 아미(BTS의 팬덤 이름)의 성공이기도 했다. 이름 없던 무명시절부터 BTS를 사랑한 ‘아미’들은 BTS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이제 이 같은 팬덤 문화가 아이돌들의 전유물만은 아닌 모양이다. 어느 순간부터 몇몇 거물 정치인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거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인의 ‘팬덤’은 아이돌의 ‘팬덤’처럼 순수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지난 대선을 거치며 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지지자들 사이에 ‘팬덤’이 몰려온 것이다. 몰려온 팬덤은 기존 정당 지지자들과 결을 달리한다. 기존 지지자들이 이념에 따라, 정책 노선에 따라, 혹은 자기 이익에 따라 표를 찍었다면 이들은 정치인 개인에 대한 팬심으로 투표한다.

호평과
부작용

팬덤은 인물의 정당이 어디건 본인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표한다. 정계는 이 같은 팬덤 정치를 좋지 않게 평가하고 있다. 팬덤은 정치의 대중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호평받기도 하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더 많이 받고 있다.

팬덤이 정치인의 대중성을 함몰하고 극단적인 성향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의 일이다. 그 중심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지방선거 직전인 지난 5월 말, 긴급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맹목적 지지에 갇히지 않고 대중에 집중하는 민주당을 만들겠다. 우리 편의 큰 잘못은 감싸고 상대편의 작은 잘못은 비난하는 잘못된 정치문화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민주당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잇따른 성비위 문제와 쇄신하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 지난 여당 시절 저질렀던 여러 실책들 때문에 대중은 하나둘 민주당에 등을 들렸고, 돌린 등은 좀처럼 다시 되돌려지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당 쇄신이 필요하고 해결책으로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제시했다.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은 비단 박 전 비대위원장의 주장만은 아니었다. 비명(비 이재명)계의 대표격 이원욱 의원은 지선 패배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팬덤이란 단어 자체에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이 의원은 “팬덤은 건전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아미(BTS 팬덤)’들이 소녀시대가 뜬다고 소녀시대를 공격하지 않는다”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BTS가 잘되기를 바라고 응원하는 것이지, 훌리건처럼 운동장에 난입하지는 않는다. 이들(이재명 의원의 강성 지지자)은 팬덤이 아니라 ‘훌리건’으로 불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이 이날 언급한 훌리건은 왜곡된 팬심으로 공정한 경기를 방해하는 극성 스포츠 팬층을 말한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그동안 이 의원의 팬덤이 비명계 의원들과 박 전 비대위원장 등 이 의원에 반기를 든 세력에게 일종의 테러를 가했기 때문이다.

문자폭탄을 받는 건 강성 비명계 의원들의 일상이 된 지 오래고, 의원실에는 종종 배신자를 뜻하는 수박이 배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의원의 강성 팬층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의원의 팬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킨 ‘손가락혁명군(이하 손가혁)’과 대선 때 대거 유입된 ‘개딸(개혁의 딸들)과 양아들’ 그리고 당의 개혁을 바라는 ‘대세층(중도세력)’이다. 


손가혁은 이 의원의 핵심 지지층을 형성한다. 이 의원은 현재 이들이 해체했다고 믿고 있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손가혁의 회원 대부분은 아직도 이 의원의 지지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아직 건재한 손가락혁명군, 총사령관에 ‘명?’
지난 10년간 선봉서 활동…불어난 2030 세력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직후인 2010년 초부터 이 의원의 곁을 지켜온 이들은 그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손가혁은 본래 이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경 형성된 인터넷 사조직이다. 이들은 온라인 활동으로 비주류 정치인인 이 의원을 주류 정치인으로 탈바꿈시키고 정치적 개혁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손가혁을 설립했다.

이후 2015년 경선 직전에는 ‘이재명과 손가락혁명군’으로 카페명을 바꿔 대중에게 이름을 각인시켰고, 대선 경선이 끝난 후에는 ‘재명 투게더’로 이름을 다시 한 번 바꿨다. 손가혁은 이 의원의 개혁 성향에 반해 그에게 뜻을 걸고 있는 세력이다. 이 의원의 진보적인 인권정책이나 경제민주화 정책에 특히 큰 점수를 준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급작스러운 자살이나 성비위 문제 등으로 와해된 급진 개혁 세력 또한 손가혁으로 대거 흡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의원의 팬덤 내에서 뿌리가 깊은 만큼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 성향도 가장 강하다. 이른바 비명계 의원들에 대한 ‘테러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이들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의 주된 무기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인터넷 기반으로 정보 공유를 활발히 하며 SNS나 타 세력의 홈페이지, 뉴스 기사 등에 댓글이나 비난 글들을 주로 올린다.

이 의원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경선 과정에서 극한 대립을 펼칠 때 손가혁 회원들은 야권 사이트 등에서 친문(친 문재인) 성향의 글들을 주로 비판했고, 나아가 친문 세력 전체에 대해 조롱 섞인 비난 글을 다수 개재했다고 알려진다.

이 의원 또한 이 같은 손가혁의 팬심을 자기 정치에 적극 활용해왔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이 의원 본인이 이런 팬덤을 ‘창시’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의원은 실제로 2015년경 본인의 SNS에 ‘손가혁 모집요강’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글에는 “1. 손가락이 건강하고 건전할 것 2. 옳은 말과 글에는 마구 흥분할 것 3.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있을 것 4. 새누리당, 일베 요원이 절대 아닐 것 5. 비록 적이라도 욕은 하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통령이 
될 때까지


이후 세가 불어난 손가혁 회원들을 데리고 이 의원은 SNS를 통해 정치운동을 빠르게 전개해나갔다. ‘SNS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다. 이 의원은 SNS를 통해 전국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에서의 지명도를 업고 성남시 복지사업에 대한 성과를 널리 알렸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면 “손가락혁명 동지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기사에 욕설 댓글이 난무. 응원 댓글 좀 부탁합니다”(2015년 9월경 이 의원이 올린 글에서 발췌) 등의 부탁을 대놓고 하기도 했다.

이들의 강성 성향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당시 빛을 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탄핵 역풍을 기억하고 있던 정치세력 모두가 ‘탄핵’이란 단어를 쉬쉬할 때, 강성 성향의 이 의원 지지자들은 탄핵이란 단어를 서슴지 않았다.

이 의원 본인 또한 이들의 환호에 힘입어 촛불 시위 현장에서 당시 야권 세력 최초로 ‘탄핵’을 주장하기도 했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나간 직후 민주당 지도자가 대거 모인 촛불 집회에서 이 의원은 “박근혜는 이미 이 나라를 지도할 기본적인 소양과 자질조차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스스로 자백했다”며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니다. 탄핵이 아니라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십시오”라고 주장해 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의 열띤 성원을 받았다.

이때의 탄핵 발언은 후에 그를 대통령 후보로 발돋움하게 했다.


‘이재명 탄핵 사이다’란 동영상이 인터넷에 빨리 퍼지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론이 공론화됐고, 몇몇 언론은 이 의원을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공신으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정치 초년생부터 그의 곁을 지킨 손가혁 멤버들이 이 의원 팬덤의 코어를 형성하고 있다면, 코어 가장 가까이에는 지난 대선 때 유입됐던 ‘개딸’로 불리는 2030 여성 세력들이 있다. 이 의원의 딸뻘 연령층인 이 세력은 이 의원의 팬으로 유입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제법 강한 결집력과 높은 충성도를 보인다.

뜨거운 열정
반감 세력도

한 드라마에서 나온 ‘개같은 성격의 딸’이란 대사를 대중은 ‘개딸’이란 단어로 줄여 사용했는데, 이후 누리꾼들은 성격이 괴팍하고 괄괄한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로 개딸을 즐겨 사용했다.

이 의원의 개딸 지지층은 본인들을 가리켜 ‘개혁의 딸’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손가혁 회원들은 이들이 손가혁 설립 당시 본인들이 가졌던 열정만큼 매우 뜨거운 팬층이라고 치켜세운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세대 포위론을 적극 수용해 2030 남성 표심을 공략한 바 있다. 세대 포위론이란 20대~50대 이상의 표심을 장악해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3040대 표를 에워싸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이 전 대표는 정통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20대의 표심을 돌려놔야 했다.

그 방법은 성별 갈리치기였다. 이 전 대표는 젠더 갈등이 심한 현대의 사회현상을 인식하고 이를 정치로 끌어들였다. 20대 남성들이 당하는 역차별 문제를 공론화시켰고 여성가족부의 무용론을 주장했다.

또 지난 몇 년간 사회에서 발생한 각종 젠더 이슈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20대 남성들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남성들을 열광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동시에 2030 여성들의 반감도 대거 샀다.

이 같은 국민의힘 모습에 반감을 산 세력이 이 의원의 지지층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측의 세대포위론에 대항해 여성표 결집을 시도했다. 이재명 대선 캠프는 이 전 대표가 주장한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반기를 들었고 대선운동 과정에서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높여나갔다.

2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박 전 비대위원장을 직접 영입한 것도 이 의원 본인이다. 20대 여성뿐 아니라 일부 남성도 팬층에 합류했다. 이들은 ‘양아들’이라 불리는데, 뜻은 ‘양심의 아들’이라고 전해진다. 양아들 또한 개딸과 함께 현재 이 의원의 핵심 지지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성향도 이들 못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중 하나는 정치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상의 유행어나 밈에 익숙한 이들이기에 어려운 정치현상을 재밌게 바꿔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종종 이 의원을 본인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빗댄다.

예를 들어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데뷔시키자’나 ‘이재명 센터 해’ ‘이잼 덕질’ 등 친숙한 용어들을 붙여 대중에게 ‘정치’를 전달했다.

개혁 의지 ‘개딸’ 
양심의 ‘양아들’

그러나 이 ‘덕질’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손가혁 회원들이 했었던 타 세력에 대한 공격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타깃은 주로 친문 의원들이다. 개딸은 본래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닌 이 의원 개인을 지지해 당에 편입된 인물들이다. 따라서 전통 민주당 세력인 친문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이 의원을 옹호할 때 자주 친문에 총구를 겨눈다.

지방선거 후 몇몇 인사가 이 의원의 책임론을 언급하자 개딸들은 그들에게 문자폭탄을 보내는 일을 주도했고 주요 인사들의 사무실에는 ‘치매’ 대자보를 걸어 도배하는 작업을 했다. 또 친문 의원실을 공격하기 위해 ‘팩스 공격’이라는 방법을 창안하기도 했다.

이들이 사용한 팩스 공격은 수백통의 팩스를 의원실에 보내는 방법인데 여기서 보내는 종이는 그냥 일반적인 A4 용지가 아니라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의 이른바 ‘검은 종이’ 팩스다.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잉크가 빨리 닳게 돼 의원실에선 프린터기 자체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팩스 공격을 기억하는 친문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때 한동안 옆 의원실에 프린터를 빌리러 갔던 기억이 난다”며 “정말 종일 팩스가 왔고 잉크가 소진됐다. 잉크값 처리하는 데도 애를 많이 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의원의 마지막 팬층은 민주당 내 ‘대세층’이다. 사실 이들을 팬층으로 분류하기는 애매하나 최근 이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충성심이 짙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기존 민주당의 기득권 세력을 배척하자는 데 동의하면서 팬덤에 흘러들어왔다. 때문에 손가혁과 개딸 팬덤군에 비해서 충성도와 결집도는 가장 약하다.

대세층은 당의 개혁을 위해서라면 어떤 사람이던지 지지할 용의가 있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 의원만큼 좋은 인사는 없다. 친문 세력과 대척점에 서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지난 대선에서 인기와 실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표로 당선된다면 ‘손가혁’과 ‘개딸’층과 같이 확실한 팬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 내 중론이다.

이 의원의 득세를 저지하려는 비명 세력에게 이들은 좋은 포섭 대상이지만 그들의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이들의 상대로 떠오른 박용진 후보에 대한 결집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마땅한 후보를 내세우지 못한 친문 세력에게도 이들은 깊은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유동층

팬심이 두터운 정치인은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매우 유리하다. 흠들림 없는 지지율은 정치인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그들을 구해오곤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노사모가 그랬고, 박 전 대통령의 박사모가 그랬다.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호남 기반의 강력한 팬층의 도움으로 대통령까지 당선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건강함’을 유지했을 때 대통령 당선이 실현됐다. 이제 반대로 이 의원이 팬덤의 행보를 감시해야 할 때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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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