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버스 용역 시비’ 부산외대 녹취 조작 진실공방

“소송 지고 증거까지 건드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부산외국어대학교가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패소하자 관련 정보를 조작한 뒤 넘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단 학교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근거는 대지 못했다. 학교가 ‘조작 의심 자료’를 보낸 곳은 현재 회사와 법적 분쟁 중인 한 회사. 앞서 학교는 수차례에 걸친 자료 전달 요구를 모두 거부한 것으로 드러나 의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강의 실시였다. 부산외국어대학교(이하 부산외대)와 A 버스 회사(이하 A사)는 2020년 2월 셔틀버스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3월부터 A사 소속 버스 8대가 셔틀 운행에 나서는 대가로 부산외대가 A사에 매월 일정 대금과 운행거리에 비례하는 유류비를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대금 끊고
강요·갑질

그런데 학생들은 개강 이후에도 등교하지 않았다. 비대면 강의 여파였다. 결국 셔틀버스는 5월 중순이 돼서야 운행을 시작했다. 이마저도 부분 운행이었다. 이에 A사는 3~4월 유류비를 제외한 운영 대금만 받았다. 문제는 운행 중단 사태를 바라보는 양측 시각이 현저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은 만큼 지급 대금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부산외대는 2020년 8월까지만 대금을 정상 지급하고, 그 이후로는 실제 운행량에 비례한 금액만 법원에 공탁했다. 아울러 앞선 6개월 동안 A사에 관련 대금을 전액 지급한 직원을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반면 A사는 학교 측 요청으로 운영 규모를 운행 상황과 같게 유지했던 만큼, 관련 대금 역시 온전히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가운데, 부산외대의 자체 감사가 시작됐다. A사 대표 B씨는 그해 8월 부산외대 감사실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당시 “처음 운행이 중단됐을 때 학교를 방문해 ‘중단 기간과 재개 시점을 보다 명확하게 알려달라. 이를 근거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 인건비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며 “하지만 학교는 ‘언제는 차량이 들어갈 것 같다’거나 ‘언제 운행할 것 같다’는 등 계속 운행 준비를 하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이에 즉시 운행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 설명에도 학교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감사실은 조사 도중 B씨에게 “앞으로는 대금을 일부만 지급하겠다”고 통보했다.

B씨는 “당시 감사실장이 근거도 없이 회사와 총무팀의 유착관계를 의심했다”며 “이외에도 ‘계약 내용 변경에 동의하라’거나 ‘소송을 통해 과지급된 용역비를 환급받을 것’이라는 등 나를 겁박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1시간30분이라는 시간 동안 감사실 직원 3명이 한 일은 정상적인 조사가 아니었다. 강요와 갑질이었다”고 비판했다.

‘일방적 계약 위반’ 유류비 지급 분쟁
정보공개 청구 과정서 정보 왜곡 발견

그날 이후 A사는 학교로부터 대금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부산외대는 남은 계약기간 6개월 중 3개월간 운행 중지를 지시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셔틀버스가 일부 운행된 두 달은 일방적으로 대금을 계산해 법원에 공탁했다. 결국 1년 계약 후반기 동안 A사가 당초 합의한 대금을 받아든 건 단 한 번뿐이었다.


B씨는 “애초에 부산외대 계산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버스 운전사들은 일용직 노동자가 아니다. 모두 우리 회사에 소속된 정규직원들”이라며 “학교 입맛에 따라 버스 운행 여부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직원들에게는 기본급이 꾸준히 지급돼야 한다. 회사로서는 학교 요청에 따라 고용 규모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부담을 줄일 방법을 먼저 제시했음에도 학교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고선 뒤늦게 막무가내로 계약 변경을 종용한 것은 갑질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B씨는 조사 이후 부산외대 측에 당시 녹음파일과 감사결과 보고서를 공개할 것을 꾸준히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부산외대에 관련 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부산외대는 사학재단이 운영하는 학교지만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외대는 B씨가 당시 감사실장을 강요죄로 고소하는 과정에서도 녹취파일 제출을 요구받았다. 이번에도 학교는 불응했고, 감사실장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부산외대의 연이은 거부 행렬은 법원이 B씨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B씨는 지난해 부산외대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내 목소리”
제공 거부 왜? 

<일요시사>는 해당 재판의 판결문을 입수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부산외대 측은 B씨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이 초래됨’ ‘원고(B씨)에게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할 경우 유사한 민원이 증가하게 됨’ ‘원고가 향후 부산외대와의 민형사 분쟁에서 이 사건 정보를 왜곡해 악용할 우려가 있음’ 등을 들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같은 학교 측 주장을 모두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정보가 공개될 경우 부산외대 감사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관련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원고에게 이 사건 정보를 공개한다는 이유만으로 유사한 민원이 증가한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산외대가 정보공개법상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이상 정보공개에 관한 민원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원고가 이 사건 정보를 왜곡해 이용하리라는 근거가 없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사건 정보를 여전히 가지고 있는 피고(부산외대)로서는 이를 수정·반박할 기회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B씨가 청구한 정보 중 직원 인적사항을 제외한 모든 정보의 공개거부 처분을 취소했다. B씨는 법적 다툼에서 이기고 나서야 본인 목소리가 함께 담긴 녹음파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녹음파일을 들어본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기억하고 있던 당시 대화 중 일부가 녹음파일에서는 빠져 있었다. B씨는 녹음파일이 편집·조작된 것을 확신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삭제된 부분은 10곳에 달했다. B씨가 녹음파일을 확인한 시점은 조사가 있었던 날로부터 불과 5개월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존재했던 대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없던 대화를 열 곳이나 만들며 착각한 것으로 치부하기는 상식적으로 어렵다.

더군다나 B씨는 “빠진 대화 주제들을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조사 당일 주차 문제로 예정보다 10분가량 늦게 도착했었다. 그런데 녹취파일과 함께 받은 녹취록에 명시된 시각은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또 삭제된 내용 대부분은 하필 학교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만한 발언들”이라고 지적했다.

“확인 불가”
전면 부인

부산외대는 녹음파일 편집 사실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 초 B씨에게 보낸 공문에서 “해당 파일은 삭제·편집한 바 없는 원본임을 확인한다”며 “원본이 아니라면 증거를 제시하라”고 밝혔다.

B씨는 녹음파일의 편집·조작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음향 감정까지 받았다. 감정서에 따르면 녹음파일에서는 녹취 후 편조작 시 발생 가능한 현상이 다수 발견됐다. 일명 ‘배경 잡음’이 비정상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관찰된 것이다.


대부분의 현상에 대해서 “다른 요인을 배제할 수 없어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달렸지만, 감정서는 배경 잡음의 비정상적 변화를 5건 이상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감정서는 녹취파일 31분44초 시점에 대해 “B씨 발화 시 배경 잡음이 급격히 감소되는 특이점과 함께 그 전후 근접부에서도 간헐적으로 유사한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는 해당 음성부를 여타 재가공해 편집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다만 녹취기기의 주파수 응답 특성을 알 수 없어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파형과 주파수 분석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됐다. 감정 소견에는 “스펙트로그램상 음향 정보의 과다 지속과 그 연관 현상으로 배경 잡음의 순간적 특성 변화가 관찰되는 바, 이는 원본 녹취 후 여타 편집 시 발현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이어진 총평에서는 “녹취록상 기재 발화 내용 및 발화자 특정에 오류 가능성이 관찰되고, 음향정보 전반에서 특이점이 관찰되는 등 감정 대상물로서의 온전성에 결함을 보인다”고 평했다.

B씨는 감정 결과를 부산외대에 통보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계속해서 녹취파일 편집·조작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B씨는 지난달 초 부산외대에 “책임 있는 사과와 변상이 없다면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10군데 삭제…편집·조작 확신” 주장
음향 감정 결과에도 “전혀 사실무근”

부산외대는 “감사실에 당시 직원이 남아있지 않아 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B씨는 “부산외대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녹음파일 재검증을 해보자는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불가한 게 아니라, 그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교직원 대부분은 자리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부산외대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계약기간 만료로 퇴사한 계약직 감사반장을 제외한 감사실장과 감사직원은 현재 각각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근무 중이다.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단순히 ‘부서 변경’을 이유로 확인할 수 없다는 학교 측 입장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일요시사>는 부산외대에 제기된 의혹에 관한 입장을 직접 문의했다. 부산외대 관계자는 “당시 근무했던 직원 중 2명이 여전히 교내서 근무 중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나간 직원이 A사에 파일을 전달한 당사자다. 그래서 사실관계 파악이 어렵다고 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학교 측도 편집·조작 사실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까진 파악이 잘 안 되는 것은 맞다”며 “그래도 우리는 그 파일이 원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쪽에 남아있는 것과 동일하다”고 답했다. 

부산외대 측은 앞선 대금 지급 논란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A사와 부산외대는 현재 대금 지급을 놓고 민사 재판을 벌이고 있다.

A사는 계속해서 법적 절차를 이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감사실장 강요죄 혐의는 녹음파일 제출과 이의신청을 통해 다시 고소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음향 감정에 소요된 비용 등도 법적 대응을 통해 받아낸다는 구상이다.

“강력히 대응”
결국 법정으로

B씨는 “법원 판결에 따라 제공한 증거를 조작한 건 사법부 기만 행위”라며 “이에 대한 부산외대 책임을 제대로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전적인 부분은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면 된다. 추가적인 법적 절차를 밟는 게 돈을 돌려받기 위한 포석은 아니다”라며 “다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답을 듣고 싶다. 그들이 왜 일부 녹음을 삭제한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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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