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시즌 끝나지 않은 ‘개고기 논쟁’

“이제 그만” 동물자유연대 
“먹을 자유도” 대한육견협회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은 김칫국이었다. 지난해 말 정부 주도로 출범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가 공전만을 거듭하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4월 유의미한 결론을 냈어야 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기간만 연장했다. 그 사이 ‘복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정말 우리 사회는 ‘개고기 논쟁’을 결판낼 준비가 된 걸까. <일요시사>는 각각 개 식용에 찬성·반대하는 두 단체에 개식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현주소를 물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인간에 의해 관리되는 모든 동물이 인도적 대우를 받고, 인간에 의해 이용되거나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동물의 수와 종을 줄여나감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사이 조화를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단체다. 

피학대 동물·유기동물 등 위기상황에 처한 동물의 구조, 농장동물·전시동물·실험동물 복지 제고를 위한 대시민 캠페인, 입법 및 정책 활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이들에게 개 식용을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개 식용을 반대하는 이유는?

▲개 농장의 열악한 사육환경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개 농장에서 태어난 개들은 평생을 뜬장이라 불리는 철망 위에서 살아간다. 관리의 품을 줄이기 위해서다. 발바닥의 좁은 면적에 체중이 실리다 보니 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가해진다.

사육 과정뿐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개들에게는 고통의 연속이다. 농장에서 도살장으로 옮겨지는 개들은 한 마리가 제대로 서지도 못할 크기의 케이지에 구겨 넣어지고, 그 상태로 던져지기도 한다. 도살 과정에서는 대개 개에게 물을 끼얹고 전기로 감전을 시키는 데 극심한 고통이 수반된다. 쉽게 이야기해 감전사를 시키는 거다.


차라리 여기서 바로 죽음에 이른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곧이어 불에 그을려 털을 제거당하기 때문이다. 혹시 이때까지도 죽지 않았다면 말 그대로 불에 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개 식용 찬성 측에서는 개고기가 몸에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2017년 전국 12개 재래시장에서 판매 중인 개고기를 수집해 검사했다. 조사 결과, 93개 샘플 중 3분의 2에 이르는 61개 샘플에서 8종의 항생제 성분이 검출됐다.

보다 엄격한 시·도축산물시험검사기관 기준을 적용해도 42개다. 일반 축종 축산물 검출 비율인 0.47%의 무려 96배에 달하는 수치다. 

세균 문제 또한 항생제만큼 심각했다. 함께 진행된 미생물 배양검사에서 대장균을 비롯해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연쇄상구균 등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균들이 검출됐다.

또 최근 인간을 넘어 동물 역시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불필요한 동물의 희생 및 이용은 줄이고, 불가피하게 동물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 고통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개 식용 종식은 굳이 개를 식량으로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현 시대서 나타나는 시대적 변화의 당연한 산물이다. 굳이 개를 죽이지 않아도 돼 막자는 것과 개 식용을 용인해달라고 하는 것 어느 것이 더 생명 존중 사회에 부합하는지 되묻고 싶다.

“몸에 좋다고? 항생제·세균 가득”


-현실적으로 봤을 때 개 농장 완전 폐지까지 필요한 기간은 얼마나 되나?

▲식품위생법상 개고기를 파는 행위 등은 이미 불법이다. 따라서 개 식용은 정부가 법에 따라 행정만 집행하면 당장이라도 사실상의 종식에 이를 수 있다. 다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부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 식용 금지에 이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절차적으로 식용 목적의 개 사육을 금지하는 입법 과정과 법 시행까지의 기간, 집행 과정 등에 소요될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짧아도 몇 년은 더 걸릴 문제다.

-개 농장 폐지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개 식용 종식의 가장 이상적인 경로는 사회적 합의로 향하는 것이다. 개 식용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종식에 동의하도록 설득해야 하고, 입법부와 행정부는 개 도살 금지 혹은 개 식용 금지와 같은 입법적 장치 확충과 산업 종사자를 위한 출구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개 식용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실질적인 개 식용 종식 절차에 들어설 때라는 의미다. 우선 개 식용을 금지하는 법적 장치를 만든 뒤 지속적인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계도·철거명령·행정집행 등 행정절차를 밟아나가야 한다. 동시에 전·폐업을 원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행정적 지원을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일각의 “소·돼지는 되고, 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비판에 답한다면?

▲‘소·돼지는 되고, 개는 안 된다‘는 명제는 비판이라기보다 악의적 왜곡에 가깝다. 임종식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에 불과하다. 개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 중 누가 소·돼지는 되고, 개는 안 된다고 주장하나? 마치 개 식용 반대 측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처럼 비틀고, 이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 것이다.

동물보호와 권리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대부분 개뿐 아니라 소·돼지·닭 등 다른 동물의 고기 소비량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자유연대만 하더라도 육식을 줄이고 대신 채식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다만 개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의 식용을 금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장 모든 육식을 금지하자고 주장을 한다면 합리적이라고 수긍할 것인지 궁금하다.

“정부 적극적 금지 규정 만들어야”
“종사자 생계 지원 방안도 필요해”

-식용 개 업계는 머지않아 자연 소멸된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제도화를 통해 ‘개 식용 금지’를 못 박을 필요성이 있나?


▲개 식용은 그 자체가 윤리적·법적인 문제로 뒤범벅돼있다. 그럼에도 ‘사양길에 들어섰으니 기다리자’식의 논리는 사회적 문제를 방치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개 식용 산업은 정부의 폐기물(음식물 쓰레기) 정책 등에 기대고 있다. 정부의 정책 전환과 개입 없이 시장에만 맡긴다면 생각보다 긴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개가 또 희생될 것이다. 동시에 제도화를 통해 개 식용 종식 및 금지에 도달한다면 오랜 세월 지속된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개 식용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오히려 제도화가 필요하다. 마땅한 대체 생계수단이 없어 개 식용 산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행위는 수용할 수 없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개 식용 산업의 몰락을 방관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일부, 그리고 그와 생계를 같이 하는 이들의 삶의 붕괴를 방치하는 것과도 같다. 이 같은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개 식용 종식과 금지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개 식용 문제 관련한 활동 이력과 향후 계획을 알려달라. 

▲그동안 우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개 식용의 법적·윤리적 문제를 밝히고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편으로는 산업종사자들이 스스로 다른 생계를 찾도록 인내심을 갖고 정부와 개 식용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설득을 이어왔다. 하지만 해마다 희생되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완전한 종식에 이르기까지 필요하다면 대화에 응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고착된다면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불법 개 농장 및 영업행위 등을 몰아내는 데 보다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먹을 사람만 먹으면 된다”

대한육견협회는 개 농장을 운영하는 사육 농가가 모여 만든 협의체다. 전국적으로 1300개 남짓의 농가가 가입됐다. 이들은 개 식용 논쟁이 재점화될 때마다 최전방에서 사육농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여의도, 종로 등지에서 집회를 열고 개 식용 금지 정책 기조를 강화하는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 이들에게 개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를 물었다.

-개 식용에 찬성하는 이유는?

▲우선 반대할 이유가 없다. 수백년의 긴 세월 동안 많은 국민이 먹고 즐기고 있는 개고기를, 어느 순간 법령으로 다스려 먹을 자유를 박탈하려는 행보가 적절한가. 이보다는 사회적 흐름과 적절한 협의를 통해 어느 누구도 피해 보지 않도록 다 같이 노력하는 게 옳다.

우리나라는 식문화의 특성으로 볼 때 많은 잔반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람이 먹다 남은 잔반을 가공해 동물에게 주고, 또다시 그 동물을 사람이 섭취하는 것보다 더 친환경적인 순환이 있을 수 있겠는가. 현재 일부 국민이 가지고 있는 개 식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반대파가 내세운 침소봉대한 자극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봐온 영향도 있다고 본다.

제대로 제도화해서 관리하면 일부에서 자행된다는 그런 잔인한 일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개선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부와 반대 단체들이 노력하는 우리를 방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개 농장 완전 폐지까지 필요한 기간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

▲법적으로 폐기하는 것보단, 흐름에 따라 자연도태되도록 지켜보는 것이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폐지 기간을 논하자면 20년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 농장 폐지를 위해선 종사자 구제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 전업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폐업 시 생계 유지와 관련된 구직 활동 등의 기간을 고려한 보상이 필요하다. 생존권 보장을 위한 현실적인 구제방안을 검토해달라.

-“다른 고기도 많은 시대에 굳이 개를 먹을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건 자유고, 그 논리에 따라 개를 안 먹을 수도 있다. 뭘 먹고 안 먹고, 육식하고 채식하는 건 모두 개인의 선택이다. 개인의 선택을 왜 사회가 강제하려 드는가? 물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은 먹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개가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은 아니지 않은가.

소·돼지·닭·오리처럼 개 식용은 다양성 문제다.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뭐라고 할 게 아니다. 만약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한다면, 이는 ‘먹어야 할 것’을 규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파시즘 아닌가.

-개 식용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먹는 사람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국민 상당수가 개고기를 즐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한 동물단체에서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18.8%가 ‘개를 먹거나 먹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표본으로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5000만명 가운데 1000만명 정도가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나온다. 여론조사가 동물권 단체에서 의뢰한 것이니 문항 자체에 개 식용 반대 프레임이 있었을 것이고, 사회적 소망성 효과 때문에 개고기를 먹는다고 말하지 못한 응답자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 비율은 더 높을 수도 있다고 본다. 아울러 개는 돼지·닭·소·오리에 이은 5대 축종이다. 오리가 연간 9만2000톤 정도 소비되는데, 개는 7만톤이 소비되고 있다.

“개인의 선택 문제…사회 강요는 파시즘”
“식용 폐지하려면 합당한 대안 제시돼야”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하면 개 식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파는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는데?

▲식용견은 딱 보면 안다. 우리나라 개 사육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식용견은 30여년에 걸쳐 사육 농민들이 최고급 개고기 생산을 위해 개량한 품종이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한 품종이다. 반려견보다 몇 배는 크다. 식용견은 체중이 최소 40㎏에서 90㎏까지 나간다.

육질이 좋고 껍질이 얇은 투견, 뚱뚱해서 고기 양이 많은 미견, 털이 긴 장모 등을 교접한 결과다. 반려견과 혼동할 수 없을 정도로 외견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처럼 식용견과 반려견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걸 구분해서 키우면 문제없다.

요즘 보면 반려동물이 다양해지면서 개 말고 돼지·닭(병아리)·오리 등도 키우는 사람이 많아졌더라. 개를 먹지 말라는 논리대로라면 이것들도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심지어 개가(식용견과 반려견이) 외견상 구분이 더 쉽다.

-반려견이나 진돗개를 사육해 도축하는 사례가 알려졌다

▲사실과 다르다. 개 식용을 업으로 하는 사람 입장에선 반려견을 잡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반려견 중에 소형견은 도축하면 2근 정도 나온다. 1근에 5000원쯤 하니까, 한 마리 잡으면 1만원 정도 나오는 셈이다. 반려견이 커지면 그만큼 육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 역시 돈이 되질 않는다.

개 한 마리 도축하는 비용이 5만~6만원 선이다. 여기에 유통비용은 별도다.

반려견 가져와서 도축해봤자 밑지는 장사인데, 업자들이 이걸 할 이유가 있겠나. 세간에 알려진 사례들은 대개 정식 개 농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제대로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한두 달에 한 번씩 개인적으로 개를 잡아먹는 것이다. 이걸 우리가 한 일로 둔갑시키니 난감하다.

시골에서 노인이 자식이 놓고 간 반려견을 키우다가 줄 음식도 없고 하니 잡아먹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 역시 전문 개 농장과는 상관이 없는 얘기다. 또 가끔 개 사육농장에 자기가 키우던 반려견이나 진돗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잔인한가.

이걸 농민들이 굶겨 죽일 수도 없으니까, 농장 한 쪽에 묶어두고 밥을 주기도 한다. 개 농장에 개가 먹을 건 많지 않겠나. 그럼 동물단체에서 이런 걸 사진 찍어서 개 사육농장에서 반려견이나 진돗개를 도축한다고 거짓 프레임을 퍼뜨린다. 그만 좀 했으면 좋겠다.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 식용 문제는 선거철 표심잡기 공약으로 매번 등장한다. 초복만 되면 그 논란이 반복된다. 정치적으로 활용하지만 말고,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리해 안전한 먹거리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 식용견 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약자다. 이들을 사각지대에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구제방안을 검토해달라.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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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